0살부터 슈퍼스타 557화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할게요!”
도련님의 방 쪽으로 달려가는 이씨 아저씨와 민한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으로 그날의 촬영이 끝났다.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고 팀원들은 촬영 도구를 정리했다.
“드디어 내일 찍는 거네?”
“그러게. 기대된다.”
“저도요.”
촬영 도구를 정리하는 학생들의 손길이 어제보다 느렸다. 손보다 입이 더 많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선을 정리하고 수다를 떨고, 카메라를 끄고 수다를 떨고.
산만한 촬영장 분위기에 황지윤과 김세연이 웃고 말았다.
“다들 엄청 궁금한가 보네.”
“연습 때 본 건 도윤 오빠랑 너랑 나뿐이니까. 근데 진짜 촬영장에서 볼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기대되긴 해. 너는 안 그래?”
김세연의 말에 황지윤이 웃으며 동의했다.
* * *
다음 날.
촬영장의 분위기는 묘하게 들뜨면서도 차분했다. 다들 첫 촬영 날보다 더 힘이 들어간 듯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커튼을 치면 이 정도까지 어두워져요. 빛은 이 정도로 넣을 생각이고요.”
황지윤이 창문 커튼을 살짝 열자 한 줄기 희미한 빛이 어두운 방 안에 퍼졌다. 김세연이 시험 삼아 카메라 앵글에 들어갔다.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얼굴은 분간이 될 정도였다. 카메라로 찍고 있던 박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은데?”
탁자와 의자, 침대, 옷장 등 생활감 넘치는 가구들이 방 안에 놓여 있는 ‘도련님’의 방은 아직 디테일 작업이 남긴 했지만, 나머지 작업은 모두 끝난 상태였다. 이 정도의 어둠 속이라면 끝내지 못한 부분은 스크린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촬영장이 촬영 준비로 바쁠 때, 배우들도 한창 준비 중이었다.
이씨 아저씨 역의 김성식과 민한 역의 황도윤이 어제처럼 한복을 입었다면 무명 화가 역을 맡은 서준은 구한말 지식인들처럼 새하얀 셔츠와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다.
“붕대는 손목까지만 할까?”
“팔꿈치까지 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분장팀도 겸하는 미술팀 팀원이 서준의 두 손에 하얀 붕대를 감아주었다. 동생한테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붕대가 깔끔하게 감겼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해주면 난리 나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붕대로 감긴 손을 움직이며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성식과 황도윤도 준비가 끝난 듯 어제 촬영 때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배우들이 2층으로 올라오자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다들 촬영인지 구경인지 모를 기대감 섞인 얼굴로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김세연의 말에 배우들이 각자 제자리로 향했다. 서준은 도련님 방의 안쪽으로, 황도윤과 김성식은 계단 쪽으로.
모니터로 확인하며 황지윤이 목소리를 높였다.
“레디, 액션!”
* * *
쿵! 쿵!
2층 방으로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커졌다. 무언가 내려치는 듯한 소리였다.
앞서 달려간 이씨 아저씨가 2층 오른쪽 세 번째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들어올 때 문 꼭 닫아!”
뒤따라오던 민한이 그 말에 얼떨떨한 얼굴로 얼른 방문을 닫았다.
복도에서 들어오던 빛이 사라지자, 방은 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해가 지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밖은 밝을 터인데, 안은 완전히 어두컴컴했다. 커튼 사이에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만 보였다.
밝은 곳에서 곧장 와서 그런지, 방 안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쿵! 쿵!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잘 들어보면 거친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에 민한은 몸을 조금 주춤했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눈이 적응되기 시작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영향도 있었다. 희미한 인영이 보였다. 그는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 어딘가(아마도 탁자)를 내려치는 듯했다.
망치질이라도 하는 건가?
그런데 쿵! 쿵! 하고 들리는 소리가 망치의 딱딱함과는 전혀 달랐다. 원인 모를 긴장감에 민한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컷! NG!”
와장창.
하고 적막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학생들의 날 선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 원인 쪽으로 향했다. 감독 황지윤이었다.
……아!
지금 촬영 중이었지.
그걸 깨닫고 나니,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숨죽여 보고 있던 학생들과 정은미, 권세아가 흐아아, 긴 숨을 뱉어냈다.
“……박력 장난 아니다…….”
“그러게. 다 알고 봐도 느낌이 전혀 달라.”
어두운 방에 불이 들어오고 서준과 황도윤, 그리고 미안해하는 김성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오는 황지윤 감독의 모습에 더욱 미안한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좀 더 익숙한 표정을 지었어야 했는데, 너무 놀라는 표정을 지었죠? 대사도 놓치고…….”
어느새 관객의 입장으로 서준의 연기를 보고 있었던 김성식이었다. NG의 이유를 알고 있는 김성식에 황지윤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이서준 배우 연기가 대단하니까 익숙해지려면 시간 좀 걸릴 거예요. 저도 몇 번 봤어도 엄청 놀랐는걸요.”
“하지만 연습도 했는데…… 그리고 조금 전 장면은 두 번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은 몰입도였잖습니까.”
어제도, 그제도 숙소에서 연습했었고 짧게 리허설도 했었는데 NG를 내버렸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좋은 장면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들이 깊이 몰입한 촬영이었는데, 자신의 NG 때문에 망쳐 버린 것 같아 김성식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괜찮아요. 이서준 배우라면 몇 번이고 비슷하게 몰입할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럴까.
황지윤의 말에 김성식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손은 안 아파? 소리 엄청 크던데.”
“소리만 큰 거예요. 요령이 있거든요.”
감독과 NG를 낸 배우가 대화를 할 것 같아 미리 자리를 피해준 서준과 황도윤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 사람의 시선을 느꼈는지 돌아보았다. 미안해하는 김성식의 모습에 서준이 괜찮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곧 촬영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이서준 배우는 황지윤 감독의 말대로 앞선 촬영 못지않은 몰입도를 보여주었다.
* * *
망치질이라도 하는 건가?
그런데 쿵! 쿵! 하고 들리는 소리가 망치의 딱딱함과는 전혀 달랐다. 원인 모를 긴장감에 민한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도련님!”
그렇게 외친 이씨 아저씨가 그 인영에게 달려들었다.
도련님이라고 불린 인영을 말리는 듯, 진정시키려는 듯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러나 쿵! 쿵! 소리는 조금 느려졌을 뿐, 멈추지 않았다. 도련님 쪽의 키가 더 큰 터라 이씨 아저씨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듯 보였다.
“민한아!”
“……네!”
애타는 이씨 아저씨의 표정에 상상도 못 한 광경에 넋 놓고 있던 민한이 정신을 차리고 얼른 도련님의 앞으로 달려가 탁자를 인정사정없이 내려치고 있는 도련님의 두 팔을 낚아챘다.
……그래.
그 둔탁한 소리는 망치 따위가 탁자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민한은 제 손에 잡힌 팔을 끝을 보았다. 도련님은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다.
연약한 피부와 근육만이 아무런 보호도 없이 무자비한 힘으로 탁자에 부딪히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몸뚱이의 주인으로 인해.
아프지도 않은가, 생각했지만 잡고 있는 두 팔이, 두 손이 고통으로 덜덜 떨리고 있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듯한, 지친 듯한 아니면…… 울분에 찬 듯한 거친 숨소리도 느껴졌다.
그 순간.
민한과 도련님의 눈이 마주쳤다.
짙은 어둠 속에서 도련님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건 민한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통스러운 눈빛이었다. 또한 민한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이 스며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한이 놀라는 사이, 도련님의 눈빛이 확 죽어버렸다.
거칠었던 도련님의 숨이 점점 차분해지고,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두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마치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팔뿐만 아니라 온몸의 힘이 풀려버린 듯 도련님이 비틀거렸다.
어, 어? 하고 민한이 당황하는 사이, 이씨 아저씨가 능숙하게 도련님을 부축해 침대로 옮겼다. 조금 전 마구 날뛰던 모습은 어디 가고 넋이 나간 듯 위태위태한 걸음이었다.
“……도련님. 조금 있다 붕대 갈러 다시 오겠습니다.”
한숨을 삼킨 이씨 아저씨의 다정한 목소리에도 도련님은 등을 보이고 누운 채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악)안개늪 파수꾼의 수확-상급이 발동됩니다.]
[(악)안개늪 파수꾼의 수확-상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안개늪 파수꾼의 수확(최하급)이 발동됩니다.]
[(악)안개늪 파수꾼의 수확-최하급]
진득한 죽음의 안개가 아주 희미하게 흘러나옵니다.
얕은 늪에 잠긴 것처럼 움직임이 무거워집니다.
조금 전 그 강렬했던 눈빛과 표정이 마치 꿈같이 느껴질 정도로 지금의 도련님의 모습은 아무런 생기도 없었다. 그저 죽음이 바로 앞에 있는 듯, 가만히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였다.
어떠한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어, 안타까운 얼굴로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씨 아저씨는 민한을 데리고 어둠에 잠긴 방 밖으로 나왔다.
* * *
쥐 죽은 듯 조용한 촬영장.
카메라에서 등을 돌리고,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서준이 편집점을 위해 몇 초를 센 다음 [(선) 하급천사의 부채]를 발동했다.
[(선) 하급천사의 부채를 발동합니다.]
방 안에 조금씩 쌓였던 마기가 순식간에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에 희미한 마기에 자신도 모르게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컷! 오케이!”
정신을 차린 황지윤이 목소리를 높이자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와…… 풀 샷이 이 정도인데 클로즈업 찍으면 장난 아니겠다.”
“그러게. 눈빛 장난 아니었잖아.”
“이래서 이서준 이서준 하나 봐요.”
모니터링을 위해, 문밖에 나가 있던 황지윤과 김성식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오고, 침대에 누워 있던 서준도 일어나 황지윤 감독 쪽으로 향했다.
모니터 속 서준의 연기가 강렬했다.
놀라는 황도윤의 연기도 훌륭했고 익숙해 보이는 김성식의 연기도 안정적이었다.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장면에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은 촬영팀과 황지윤, 김세연은 들뜬 듯 보였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 겨우 한 컷, 오케이가 난 것뿐이었다.
“그럼 바로 클로즈업 샷 찍죠!”
그래도 조금 욕심을 내서 바스트 샷보다 먼저 클로즈업 샷을 찍기로 했다.
“이서준 배우부터 찍을게요!”
“네!”
준비를 끝낸 배우들이 다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들이밀어 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조금 전 풀 샷과 똑같이.
어둠 속에서 울분을 터뜨리듯 탁자를 붕대가 감긴 손으로 내려치는 도련님.
익숙한 듯하면서도 안타까운 얼굴로 도련님을 말리는 이씨 아저씨.
갑자기 휘말려 얼떨떨하면서도 도련님의 눈빛에 놀라는 민한.
서준은 마치 민한과 눈이 마주쳤듯, 카메라로 시선을 주었다. 풀 샷에서는 조그맣게 보였던 ‘도련님’의 눈동자가 강렬하게 빛났다가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것이 그대로 담겼다.
“……배우들 대단하다.”
“그러게. 카메라가 저렇게 앞에 있는데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네.”
촬영 스태프인지 구경꾼인지 모를 학생들의 감탄 속에서 [화]의 촬영은 계속 이어졌다.
* * *
생각지도 못한 첫 만남에 정신이 쏙 빠져 버린 것만 같았다.
민한이 반쯤 영혼이 나간 얼굴로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자 이씨 아저씨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넌 손부터 씻고 와라. 난 도련님 붕대 갈아줘야 하니까.”
“……손이요?”
이씨 아저씨의 말에 민한이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두 손바닥이 붉었다.
피.
피였다.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도련님의 팔을 낚아챘을 때 조금 축축했던 것 같기도 했다.
설마 그게 피였다니.
민한이 조금 질린 얼굴로 두 손을 내려보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양에서 치료 다 하고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치료야 다 했지. 몸을 험하게 다뤄서 덧난 거야. 하루에도 두세 번씩 저러시니까. 어디 묶어둘 수도 없고. 하아…….”
이씨 아저씨가 내뱉는 한숨에 민한은 다시 한번 도련님이 있는 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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