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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54화 (55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54화

[화]팀 후발대를 태운 버스가 말끔하게 치워진, 그러나 아직 탄 흔적이 남아 있는 터널로 향했다.

[화]의 조감독, 김세연이 창밖으로 슬쩍 터널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른 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어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저만 그런 게 아닌지, 버스의 옆에서 이동하는 다른 차들의 움직임도 유난히 차분하고 조심스러웠다.

“조금 늦어도 되니까, 운전 조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보통 때보다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버스를, 가구와 소품, 의상, 촬영 도구 등을 실은 트럭이 뒤쫓았다.

잠시 후, 버스와 트럭은 [화]팀 선발대가 머무는 숙소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화]팀 선발대가 후발대를 반겼다.

“지윤아!”

“다들 괜찮으세요?”

버스에서 내린 후발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발대를 둘러쌌다.

다행히 사고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게 되니 울컥, 걱정이 치솟았다.

그런 친구들과 후배들의 모습에 황지윤과 선배들이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화 통화로도 느꼈지만 다들 이만저만 걱정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린 어쩌다 보니 피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되게 신기하게 피했다?”

영화과 후배들을 진정시키던 박우진이 입을 열었다.

“일단 짐부터 옮기자.”

짐을 실은 트럭은 한 달 동안 빌린 것이라 상관없었지만, 오늘 하루 빌린 버스는 이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돌아가는 날 다시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

후발대가 얼른 버스에서 짐을 내리자, 선배들이 학생들에게 배정된 방을 알려주었다.

걱정을 끝낸 학생들은 놀러 온 것처럼 들뜬 얼굴로 방으로 향했다. ‘오! 생각보다 좋은데?’ 하는 목소리에 작게 웃은 황지윤이 조금 떨어져서 멀뚱히 서 있는 두 남녀에게 다가갔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뇨. 뭘. 독립영화 찍으면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고 그러는 거죠.”

“맞아요. 저번엔 땅끝마을에 간 적도 있다니까요.”

이번에 [화]에 출연하게 된 두 중년 배우가 웃으며 말했다. 직접 오디션을 보고 연락도 꽤 주고받아 제법 친해진 황지윤이 두 중년 배우를 방으로 안내했다.

“조금 좁긴 한데 화장실도 따로 있어서 혼자서 편하게 쓰실 수 있으실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일인실은 생각도 못 했던 두 배우가 조금 밝은 표정으로 변했다.

“식사는 다 같이 식당에서 할 거니까 시간 맞춰서 오시면 되고요. 불편한 게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짐 놓고 바로 식당으로 와주세요.”

중년 배우들이 자신의 짐을 들고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갑자기 사람이 늘어나니 숙소가 시끌벅적해졌다.

“놓고 내린 짐은 없네요. 바로 출발하셔도 될 것 같아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버스에 흘린 짐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던 김세연이 버스에서 내리자, 버스는 곧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멀어지는 버스를 보던 김세연이 황지윤에게 물었다.

“근데 서준이는? 안 보이네?”

“부엌에서 오빠랑 따뜻한 차 준비하고 있어. 저녁 먹기엔 좀 이르잖아.”

“와…… 슈퍼스타를 이렇게 부려 먹네.”

“서준이가 먼저 하고 싶다고 했거든?”

목소리를 높이는 황지윤에 김세연이 킬킬 웃으며 자신의 짐을 들고 방으로 향했다.

* * *

가장 먼저 방에 짐을 놓고 식당으로 향한 건 연기과 1, 2학년들이었다.

“우리 방에 다른 짐이 있던데 그거 누구 짐일까요?”

“도윤 선배 거 아니야? 먼저 오셨잖아.”

“오…… 그러면 우리 황도윤 선배님하고 같이 지내야 하는 거네요?”

같은 방을 쓰게 된 연기과 2학년의 대답에 연기과 1학년 2명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연기과 학생회장 황도윤이 성격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일단 선배라는 점에서 조금 거리가 생겼다.

“괜찮아. 도윤 선배 엄청 재밌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식당으로 들어가자마자 황도윤과 마주쳐버렸다. 1학년들이 황도윤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밖에 춥지? 다들 따뜻한 차 한 잔씩 마실래? 코코아도 있어.”

“넵! 감사합니다!”

2학년과 황도윤이 조금 긴장한 1학년들의 모습에 웃고 말았다. 2학년이 왜 이렇게 긴장하냐며 1학년들의 어깨를 토닥이려고 할 때, 부엌 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윤이 형. 물 다 끓었……어? 안녕! 안녕하세요!”

연기과 학생들이 눈을 끔벅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주전자를 손에 든 남자가 낯익었다.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연기과 1학년이 있다는 건 들었는데, 형이랑 너였구나!”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뇌가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아니, 아니, 하고 입만 뻐끔뻐끔거리던 1학년이 힘겹게 한마디 뱉어냈다.

“……서준이 네가 왜 여기 있어?”

반쯤 넋이 나간 동기의 물음에 서준이 하하하 웃었다.

* * *

각자의 방에 짐을 놓고 나온 학생들과 두 중년 배우가 식당에 모였다.

삼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식당에 모였으니, 시끌벅적해야 하건만 진짜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조용했다.

[화]팀 팀원들의 시선이 한곳에 박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서준.

이서준이다.

이쪽에서 봐도 저쪽에서 봐도 서준 리였다.

‘……근데 이서준이 왜 여기 있지?’

사실은 지금 버스에서 잠들어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다기엔 주변 풍경이 너무 생생했고, ‘더 드실래요?’ 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건네는 서준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와……이거 진짠 것 같은데?”

영화과 4학년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선발대와 김세연이 키득키득 웃었다. 천천히 현실감이 드는 듯한 팀원들의 표정에 감독 황지윤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렇게 모두 모인 건 처음이니까,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자기소개라는 이야기에 평소라면 우우우! 야유했을 팀원들이 오늘만큼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독립영화 화의 감독, 영화과 3학년 황지윤입니다. 화는 제가 옛날부터 생각해온 소중한 작품이라 촬영 때도 조금 까다로울지도 모르지만, 완성도를 위해서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인사하는 황지윤 감독에 박수가 쏟아졌다.

“그럼 다음은……”

“서준이지. 서준이.”

조감독으로 향하려던 순서가 김세연의 적극적인 주장에 서준으로 바뀌었다. 그에 팀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준이 서른 명의 팀원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안녕하세요. 연기과 1학년 이서준입니다. 이번 영화에는 주인공 중 하나인 무명 화가 역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와아! 진짜 출연하는구나!

팀원들의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서준이 배우로 참여하는 독립영화가 자신들이 만들 영화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제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프로젝트팀에 참여한 건 학생인 이서준이니, 다른 팀원들처럼 편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커다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황지윤이 한마디 덧붙였다.

“서준이가 출연하는 건 비밀이니까 공개하기 전까지 꼭 지켜주세요.”

다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민한’ 역을 맡은 황도윤과 ‘이 씨 아저씨’ 역을 맡은 배우 김성식, 그리고 ‘고성 댁’ 역을 맡은 배우 정은미의 소개가 이어졌다. 중년 배우들의 얼굴에는 아직까지 놀람과 경악이 서려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조감독 김세연, 촬영팀, 조명팀, 음향팀, 미술팀, 소품팀의 소개가 차례로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화의 음악을 맡은 음악과 3학년 권세아라고 합니다.”

서준을 보고 놀랐던 권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서준도 권세아가 촬영장까지 올 줄은 몰랐던 터라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배우분들이 직접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 좋은 영감을 얻지 않을까 싶어 촬영장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거나 잡일을 맡길 사람이 없다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권세아의 소개를 끝으로 모든 팀원들의 소개가 끝나자, 다시 한번 서준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스타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보는 것이 처음인 학생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보통 학생처럼 대해달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황도윤도 그걸 알았는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녁 식사 준비할까요?”

관심을 돌리는 데는 밥이 최고였다.

* * *

인원이 32명이나 되다 보니, 저녁 식사는 준비하기 편한 고기를 먹기로 했다.

“역시 고기 아니면 라면……”

3, 4학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당 수돗가까지 이용해서 채소 한 상자를 씻어내고 고기도 산처럼 쌓아 준비했다.

서울에서 불판까지 챙겨온 덕분에 테이블마다 고기를 구울 수 있게 되었다.

“역시 프라이팬보다는 불판이지.”

“맞아요.”

황도윤과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앞자리에 앉은 중년 배우, 김상식과 정은미가 신기한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씨익 웃으며 볼을 매만졌다.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 아뇨. 그냥…… 작품에서만 봤던 배우가 눈앞에 있어서…… 믿어지지 않아서 말입니다.”

“진짜 팬이에요. 이서준 배우. 작품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탄하는지 몰라요. 대사 하나 움직임 하나도 섬세하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두 배우의 모습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귀를 기울였다.

무명이기는 하지만 두 배우 모두 연기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고생할 게 뻔한 독립영화를 찍으러 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황 감독님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저번에 투자받아서 아예 내용이 바뀐 작품에 출연했었거든요. 투자받을 때는 그렇게 기뻐하던 감독이 어느새 안 보이더라구요.”

“허어…….”

어느새 연기과 1, 2학년들에 영화과 학생들까지 모여 한바탕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투자는 받아야지! 소품을 만드는 재료부터가 달라지는데. 돈도 안 주고 상업영화급으로 만들어오라고 하면, 100원 주고 1,000원짜리 빵 사 오라는 거랑 뭐가 달라?”

“그래도 창작자를 무시하면 안 되죠!”

무대미술과와 미술과까지 참전했다.

불타오르는 식당의 풍경에 황지윤이 눈을 끔벅이다가 김세연에게 물었다.

“……혹시 물에 술 탔어?”

“내일이 첫 촬영인데 그럴 리가.”

자기 일에 열정적인 사람들로만 모아서 그런가, 주제 하나에 다들 열렬히 자신의 의견을 표했다.

황지윤은 더 활활 타오르기 전에 저녁 식사를 끝내기로 했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이동했으니 다들 피로가 쌓였을 거다.

열기가 가라앉으니 피곤이 몰려왔다. 설거지를 맡은 인원만 남고 다들 흐느적흐느적 방으로 돌아갔다.

연기과 1, 2학년 3명도 크게 하품을 하며 발을 옮기려던 찰나, 뒤따라오는 인영에 고개를 돌렸다. 서준이었다.

“……?”

“저도 이 방이에요.”

멍한 얼굴로 서준을 한 번, 방문을 한 번 바라보던 1, 2학년들의 입이 쩌억 벌어지자, 서준이 하하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침.

저택으로 출발하기 전, [화]팀은 간단히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

황지윤이 가져온 파인패드에서 돼지머리 이미지를 찾아 테이블에 올리고 챙겨온 음식들로 고사상을 차렸다. 나머지는 나이가 있는 김상식과 정은미가 도움을 주었다.

“제발 촬영하는 동안 아무 일 없기를……!”

“그러면 촬영 끝나고 나서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야?”

“제발 그냥 계속 아무 일 없기를……!”

촬영 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황도윤의 말에 황지윤과 [화]팀이 다시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서준이 그 기도를 들어주었다.

[(선) 신성 양의 양털-중급-]

신이 기르는 양에게서 잘라낸 양털입니다.

기도에 담긴 진심에 따라 양털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흡수한 불행의 크기에 따라 양털의 크기가 줄어듭니다.

서준은 고사상에 올려진 파인패드 옆에 몰래 놔둔 양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 능력은 서준이 직접 마나를 담아, 새하얀 뿔이 둥글게 말리고 양털이 풍성한 신성 양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데다가 제사까지 올려야 했는데, 고사상도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선) 신성 양의 양털-중급-이 발동됩니다.]

다행히 제대로 발동했다.

몽실몽실하고 새하얀 구름 같은 양털이 [화]팀 팀원들의 머리 위에 뿅뿅 생겨났다. 황지윤의 양털이 가장 큰 것을 보니 얼마나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눈도 내릴 것 같으니까.’

작게는 눈에 미끄러지는 불행을 막아줄 거고, 크게는 제법 큰 사고까지 막아줄 터였다.

서준은 자신의 머리 위에 생긴 구름 같은 양털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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