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552화 (55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52화

십 분 전.

코코아엔터.

“서준이 잘 가고 있을까요?”

배우팀 이사지만 10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보다 9층에 있는 1팀 사무실에 더 오래 머무는 안다호가 직원(전 2팀 직원)의 말에 시계를 살폈다.

서준의 이야기에 새로 입사한 1팀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도 쫑긋 귀를 세웠다.

“차가 많이 막히지 않으면 지금쯤 ○○터널 근처에 도착했겠네요.”

미리 답사를 가 본 터라 대강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착하면 연락한다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올 겁니다.”

“서준이만 촬영 보내니까 불안하시죠?”

직원의 말에 안다호는 쓰게 웃으며, 언제 전화가 올까, 하고 자신도 모르게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조금…… 그러네요. 이것도 얼른 익숙해져야 할 텐데 말입니다.”

1년 4개월 동안 군대에서 지내야 하고 제대한 후에는 새로운 매니저가 배정될 테니 앞으로는 떨어져서 지낼 날이 더 많았다.

“걱정 마세요. 별일이야 있겠어요.”

웃으며 말하는 직원의 모습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서류를 들어 올렸다.

이번 달 말에 코코아엔터로 합류할 권강민 배우의 서류였다. 전 소속사에서 흔쾌히까진 아니어도 잘 보내주는 분위기라 이후 배우 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회사에 간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흘리거나 소송을 거는 등 활동에 지장을 주는 소속사도 간혹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다호는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며 2, 3, 4팀에서 올라온 서류들을 살폈다. 배우들의 차기작이나 연기 수업 평가에 대한 것이었다.

“배승원 배우는 바로 차기작 들어간다고요?”

“네. 전에 서준이랑 연습하고 난 후에 느낌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오디션도 합격했습니다.”

“잘됐네요. 촬영에 지장이 없게-”

그때였다.

연예부 기사 모니터링을 위해, 모니터 한쪽에 띄워둔 인터넷 기사 창에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속보) 강원도 ○○터널 터널 안, 9중 충돌 사고!]

[(속보) 9중 충돌 사고 차량 중 3대는 관광버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이고……’ 하고 탄식하고 안타까워할 정도인 내용이었지만,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안다호가 그랬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봤다가 익숙한 터널의 이름에 그대로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싸아악, 하고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속보)○○터널 터널 안에서 화재 발생!]

뒤이어 올라온, 터널 안에서 시꺼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진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안다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서준에게 연락했다.

신호음이 흐르는 1초가 마치 1년 같았다.

불규칙적으로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제발…… 제발…….

두 손이 땀에 흥건히 젖을 정도로 초조해하고 있던 안다호는 끊기는 신호음에 헛숨을 들이켰다가,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네, 다-

“서준아! 괜찮아!?”

이어지는 대화에 안심한 안다호는 힘이 쭈욱 빠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속보를 보고 모여든 1팀 직원들의 표정에도 안도가 맴돌았다.

* * *

서준은 안다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통화 중인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선배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지 툭 치면 눈알이 빠질 것같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럼…… 방금 그 소방차들은…….”

서준과 선배들, 가족들에게서 전화를 받은 동네 주민들이 고개를 돌려 소방차들과 구급차들이 향한 곳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제야 저 멀리서 올라오는 새까만 연기가 보였다.

정말로 간발의 차였다.

선배들도, 터널로 향하려다 잠시 차를 멈춰 세웠던 동네 주민들도 너무 놀라 어, 어, 괜찮아만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요. 다호 형.”

괜찮다고 말해도 불안한가 보다.

서준이 얼른 사진을 찍어 안다호에게 보내주었다. 터널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내의 모습에 안심한 안다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한테는 내가 연락드릴 거지만, 서준이 너도 바로 연락해.

“네. 그럴게요.”

-너희 팀 학생들도 걱정할 테니까 꼭 연락하고.

“네. 알았어요.”

-……내가 지금 갈까?

“아뇨.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안다호를 안심시키고 있던 서준은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를 들었다. 삐뽀삐뽀, 울리는 소리가 조금 전보다 작았다. 아마 한 대만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오나 봐요.”

뜻밖에 상황에 놀라 남편과 이야기하고 있던 여자가 서준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급차 소리가 들리는데?

바짝 신경이 곤두선 안다호의 말에, 도롯가로 향하던 서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옆에 환자분이 있어서 부른 거예요. 이분 덕분에 저희가 여기서 잠시 내리게 된 거거든요.”

-……뭐?

홀로 달려오던 구급차가 팔을 흔드는 서준을 보고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멈춰 선 구급차에서 구급대원들이 내렸다.

“환자분은 어디 계시죠?”

“이쪽이요. 이쪽!”

선배들과 주민들도 하나둘 정신을 차렸는지 구급대원들을 여자에게로 안내해 주었다.

“다호 형. 잠시만요.”

여자가 구급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이동식 침대에 몸을 눕혔다. 서준이 바닥에 떨어진 여자의 휴대폰을 주워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분. 지금 구급차가 와서 아내분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할 거예요. 어느 병원으로 갈지는 구급대원분이 알려주실 거니까, 직접 운전하지 마시고 병원으로 가세요. 사고라도 나면 큰일 나니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아내에게 9중 충돌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보 기사도 살펴본 남편이 얼른 대답했다.

“아기는 건강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요. 아빠가 힘내야죠.”

-네…… 네……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 연락처라도 남겨주시면……!

“아뇨. 별일 아닌데요, 뭘.”

서준이 휴대폰을 여자의 손에 쥐여주었다.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진심이 가득 담긴 감사를 전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연락처라도 알려주시면…….”

“괜찮아요. 저희야말로 감사드려야죠. 까딱했으면 저 큰 사고에 휘말릴 뻔했잖아요.”

물론, 서준이라면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선배들도 그랬을까.

서준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분명 한두 군데는 다쳤을 터였다. 친한 사람들이 다치는 건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저희가 아기를 구한 줄 알았는데, 아기가 저희를 구했네요.”

서준이 자신에게 엄마를 구해달라고 신호를 보내던 아기를 떠올렸다.

희미하긴 하지만 밖으로 마나를 표출하다니, 아마 어떤 분야에서든(서준은 운동계라고 예상한다.)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서준의 말에 여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다. 이 사람이 고통에 잠겨 있던 자신을 발견해 주지 않았다면 아기도 자신도, 이 사람의 일행들도 위험했을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구한 건 이 정체 모를 은인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자를 쓴 은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여자를 실은 구급차가 떠나갔다.

그 뒤를 이어 터널에서 출발한 것 같은 구급차들이 나타났다. 부모님들과 [화] 팀원들에게 연락한 서준과 선배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고를 피한 건 다행이지만 다친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다고 구하러 갈 수도 없고.’

소방차가 잔뜩 갔으니. 일반인이 끼어들 수도 없을 터였다.

서준이 씁쓸한 마음으로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출발할까?”

“터널 말고 가는 길이 있어요?”

“조금 돌아서 가긴 하는데, 있어. 내비게이션에도 나와 있을걸.”

“그럼 출발하죠.”

동네 주민들의 칭찬을 받으며 서준과 선배들은 차로 향했다.

“서준이 넌 뒤에 앉아.”

“지윤이 너도. 둘 다 수고했어.”

무대미술과 4학년 두 사람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았다.

“몇 분 안 지났는데 엄청 지치네.”

“그러게요.”

박우진, 미술팀 팀원, 황도윤까지 모두 자리에 앉자 차가 출발했다. 안전벨트를 맨 서준이 멀리서 피어오르는 새까만 연기를 바라보았다. 다른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연기…… 무섭네.”

“관광버스도 3대 있다더라.”

“관광버스면…… 아까 그거지? 우리랑 같이 가던.”

“네. 맞아요.”

박우진의 물음에 황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옆에서 달리고 있던 차량들이 사고에 휩쓸렸다니, 안타까움에 저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까 휴게소에서도 본 것 같은데…….”

“아, 나도 봤어. 효도 관광 버스 같더라.”

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건 뉴스도 마찬가지였다. 실시간 속보가 올라오고 있었다. [화] 선발대의 차 스피커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출입구와 가까운 쪽의 구조는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연기가 심해서 안쪽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듯싶습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요구조자를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사망자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중상자 중 고령의 환자가 많아 언제 사망자가 생길지는…….

“우리도 서준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러게 말이야. 근데 서준이 너 그 여자분 아픈 거 어떻게 알았어?”

“맞아. 운전석에서 그게 보이나?”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주변을 연신 살피며 말하는 무대미술과 4학년들에 황도윤이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서준이 자는 것 같은데.”

“엉?”

“피곤했나 봐.”

박우진과 미술팀 팀원, 황지윤이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고 있는 아직 1학년인 서준을 보며 작게 웃다가,

“저 안 자요.”

하고 눈을 번쩍 뜨는 모습에 눈을 끔벅였다.

“……자는 줄 알았네!”

깜짝 놀라는 선배들의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또 한 명이 구조대원의 부축을 받고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서준이 조용히 왼손을 펼쳤다. 서준의 왼손 위에 나타난 불투명한 푸른빛의 작은 늑대가 신나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조금 전, 생의 도서관에서 가져온 능력이었다.

[(선) 수랑의 약비-중상급]

물의 정령, 수랑(水狼)의 힘으로 만들어진 치료와 정화의 비입니다.

범위 내의 가장 위급한 생명체들에게 효과를 발휘합니다.

아시아 쪽 문명과 비슷했던 전생의 세계에서 물을 관장하고 있던 신, 현무의 부하 중 하나인 수랑(水狼).

‘그때는 엄청 늠름했는데…….’

왼손바닥 위에서 왕왕! 하고 짖는 지금의 모습은 참 귀여웠다.

물론 전생의 자신이지만 말이다.

‘이미 병원으로 이동한 환자들도 있어서, 능력을 쓸 대상자를 하나하나를 설정하기는 힘들어.’

그래서 찾아온 것이 광범위 능력이었다.

‘뭐, 범위 내에 있는 환자라면 이번 충돌 사고와 전혀 상관없는 중환자들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되겠지만.’

가끔은 그런 기적도 괜찮지 않을까.

서준의 눈짓에 왕! 하고 짖은 수랑이 도로를 달리는 9인승 승합차 천장을 통과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가자,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대지를 달리듯 큰 원을 그리며 허공을 힘차게 내달렸다.

수랑이 내딛는 발걸음을 따라 둥그런 물결들이 일렁이더니, 그 아래로 방울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선) 수랑의 약비가 발동됩니다.]

약비(藥비).

약이 되는 비, 그리고 꼭 필요한 때에 내리는 비.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약비가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병원의 천장을 통과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의 몸에 닿고,

“……으으……으음…….”

“아버지? 아버지! 저기요! 선생님! 아버지가 깨어나셨어요!”

수술실 천장을 통과해 응급수술 중인 중환자에게 닿고,

“혈압! 떨어집니다!”

“피는!?”

“다른 곳도 수술 중이라서 지금 구하기가!……어? 혈압 다시 올라오고 있습니다!”

높은 산을 통과해 터널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아직 구조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던 한 사람에게 닿았다.

으윽……!

처음 느껴 보는 청량함이 피를 멈추게 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고 고통을 잠재우자, 아득해져 있던 정신이 천천히 들기 시작했다.

-이제 나와!

“하지만 아직 요구조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새까만 연기가 눈 앞을 가렸지만, 소방관은 안타까움에 발을 떼지 못했다.

-2차 폭발이 있을 거라고! 네가 영화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알아!?

“하지만……!”

[한 걸음]을 보고 소방관의 꿈을 가지게 된 남자가 이를 악물고 등을 돌리려던 찰나, 시야가 트였다. 터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길하고 새까만 연기가 비라도 맞은 듯 내려앉기 시작했다.

-터널 안! 무슨 일이야? 갑자기 연기가 사라졌는데?!

“여,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우개로 지운 듯 새까만 연기가 사라지고, 뭉개지고 타버린 차량들의 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다. 어쩐지 모든 불씨가 잠재워진 듯 고요했다.

그때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살려……주세요…….

그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든 소방관이 크게 외쳤다.

“지금 구하러 가겠습니다! 위치 파악을 위해 조금만 더 소리를 내주십시오!”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움직이며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요구조자 발견했습니다!”

-……기다려. 지금 들어간다.

하핫.

하고 웃은 소방관이 얼른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요구조자에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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