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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50화 (55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50화

때마침 음료수를 사 오겠다던 황도윤이 도착했다.

다들 제법 정신을 차리고 음료수를 하나씩 챙겨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여전히 서준과 황지윤을 바라보는 눈에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진짜 마테오요!?”

“네.”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테오는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영화의 주인공이 화가라는 말에 흥미를 가진 모양이었다.

우와아아, 감탄하는 미술팀 팀원들을 보며 서준이 말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니, 진짜…… 그래도 될까요?”

“네. 1학년이잖아요.”

보통 1학년이어야 말이지.

그래도 이런 기회가 언제 올까 싶어 다들 조심스럽게 말을 놓았다.

“어쩐지 촬영 날 풍경이 보이는 것 같네.”

“그러게.”

웃음기 가득한 황도윤의 말에 황지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서영이 놀라 물었다.

“잠깐. 촬영팀 아직 몰라?”

“조금 전까지 아는 사람은 나랑 오빠랑 세연이밖에 없었어.”

“이서준 배우 언제 캐스팅했는데?”

“한 달 반 전쯤?”

제법 긴 시간에 유서영이 감탄했다.

“나 같으면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을 텐데…….”

“서영아. 그거 알아? 얘 처음에 서준이 출연 거절했다?”

유서영과 미술팀 팀원들의 고개가 황지윤에게로 향했다. 물음표가 가득한 눈동자였다.

황지윤이 쓸데없는 이야길 한다며 황도윤의 등짝을 내리쳤다. 짜악- 하고 찰진 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독립영화잖아. 서준이 끼면 규모가 커질까 봐 걱정돼서 그랬지.”

“아니, 이미 이서준 배우랑 마테오가 낀 상황에서 독립영화…… 라고 하기엔 힘들지 않나?”

“그래서 나도 반쯤 포기 중이야.”

그래도 탑배우가 출연하는 독립영화도 있고 전문가가 조언을 해주는 독립영화도 있으니, 완전히 독립영화라는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 터였다.

“……이거 우리가 끼어도 되는 거예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여기서 서준이는 연기를 엄청 잘하는 연기과 1학년일 뿐이고 본인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니까.”

“네. 맞아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걱정하는 미술팀 팀원의 말에 황도윤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서준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지윤이 말했다.

“정 어려우면 이서준이 아니라 나 진이라고 생각해. 서준이 부캐 알지? 엔딩 스크롤에도 그 이름으로 올라갈 예정이야.”

“오오…….”

나 진.

그 이름을 들으니, 조금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 미술팀이었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자,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일단 프랑스 시차에 맞춰서 회의는 오후마다 해야 할 것 같아요. 보통은 영상통화로 할 거지만 마테오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으면 메일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서준의 말에 유서영과 미술팀 팀원들이 귀를 기울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감의 농도도 실험해 본 자료가 있다고 해서 오늘 오후에 보내주기로 했으니까 거기에서 가장 적당한 걸 6개 정도 준비한 다음 촬영 장소에 가서 실험해 보는 게 좋대요.”

“어? 왜?”

“한국 눈이랑 유럽 쪽 눈이랑 재질이 다를 수도 있고, 한국 눈이라도 그날 내리는 눈마다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크게 살펴보면 분설(가루눈), 습설(젖은 눈), 굳은 눈(오래된 눈), 진눈깨비 등이 있었다. 진눈깨비는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렸고 굳은 눈에서는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었다. 분설은 물감의 번짐이 덜했고 습설은 젖어 있어 물감의 번짐이 심했다.

“촬영장 눈 상태에 따라서 조절해야 한대요.”

“우리도 그게 걱정이었어.”

서준의 말에 미술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테오가 클라이맥스 부분 그림의 이미지를 그려주시는 거야?”

“아뇨. 그냥 조언만 해주겠대요. 저희 영화니까요.”

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미술팀은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천재는 어떤 시선에서 어떻게 작업하는지도 알 수 있을 거고.”

유서영의 말에 미술팀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 마테오의 도움을 받으며 마테오라는 천재 화가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앞으로의 작업에도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좋아. 그럼 오후 회의 때 마테오에게 뭘 물어볼지 정하자!”

“그림 후보들도 잘 볼 수 있게 스캔해 오죠!”

“어…… 근데 회의는 영어로 하는 거예요? 불어로 하는 거예요? 아니면…… 이탈리아어?”

활기로 가득하던 미술팀에 찬물이 휙 들이부어졌다.

유학을 생각 중이라 공부 중인 유서영과 미술팀 팀원들의 눈이 크게 요동치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영어로 해도 돼요. 오늘은 제가 통역 도와드릴게요.”

“잘 부탁합니다.”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그날 오후.

[화]팀의 사무실에 화상통화가 준비되었다.

커다란 모니터와 카메라, 미리 준비한 후보 그림들과 그 그림들에 표시할 색연필들까지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

“우리,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어느새 대본까지 준비한 유서영과 미술팀 팀원들이 그렇게 말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회의가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 황지윤과 황도윤도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 흐르고, 약속 시간이 되었다.

모니터 화면에 낯설지만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마테오였다.

-/본 조르노! 아, 한국은 오후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테오라고 합니다./

“/저희야말로! 정말 반갑습니다./”

유서영이 대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간간이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거나 대화의 의미가 충분히 통하지 않을 때만 서준이 도움을 주었다.

-/밖에서 그린다고 하셨죠? 그럼 주변 물건들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입체적인 걸 다뤄본 적이 없어서요……./”

-/꼭 입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평면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대본을 보니까 보는 시점은 정면뿐이더라고요. 그럼 거기에만 맞춰서 생각하면 되죠./

마테오가 웃으며 말했다.

-/이어서 그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연이 먼저 새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렸고, 여러분들이 그 위에 이어서 그린다고 말입니다. 그럼 정말 멋진 그림이 나올 거예요./

미술팀이 연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그림 후보를 볼까요?/

모니터 화면에 그림 후보들이 나타났다.

서준도 처음 보는 거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화] 속에서 무명 화가가 그리게 될 그림이니까 말이다.

“/이게 가장 평이 좋았던 그림입니다./”

-/으음. 괜찮네요./

마테오의 말에 미술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가 요즘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네? 네./”

-/그중에 여백이라는 단어를 연구 중이에요./

여백.

유서영과 미술팀은 서준이 번역해 준 그 단어에 다시금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여백이라고 할 것도 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그림이었다.

-/물론 어떤 의도로 그만큼 채워 넣었는지는 알 것 같아요. 분명히 작품 속 상황 때문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무명 화가가 폭주하는 느낌으로 그린 거죠?/

“/……네. 맞습니다./”

유서영과 미술팀은 폭주하는 무명 화가의 마음을 담아, 백지의 한 부분도 비우지 않고 채워 넣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이 그림에 쏟아붓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여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테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명 화가는 훌륭한 화가잖습니까. 아무리 폭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림의 완성도를 먼저 생각했겠죠./

“……맞아요. 무명 화가라면 그림을 그려가는 한 순간 한 순간에 진득한 자신의 마음을 불어넣었을 거예요. 텅 비어 있는 곳도…… 사실은 비어 있지 않은 거죠.”

그 말에 모두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무명 화가를 연기할 서준이었다.

‘주인공이 화가라서 그림 속에도 캐릭터의 성격이 담겨 있어.’

자신의 말투나 행동, 걸음걸이 같은 것만 배역에 어울리게 바꾸었던 지금까지보다 좀 더 확장된 느낌이었다. 마치 글씨체를 캐릭터에 따라 바꾸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그림도 변화하는 거다.

‘하지만 글씨체는 배우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그림은 미술팀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돼.’

배우가 연기하는 화가와 미술팀의 그림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이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서준이 유서영과 미술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이 회의에 참여해도 될까요? 제가 생각하는 무명 화가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저 그림을 그렸는지 들려드리고 싶어요.”

서준의 말에 유서영과 미술팀도 그걸 깨달았다.

물론 유서영과 미술팀도 나름 무명 화가를 분석하고 황지윤 감독에게서 캐릭터에 대해 들었지만, 매일같이 캐릭터를 분석하는 배우보다는 부족했다.

“우리야말로 부탁할게.”

유서영과 미술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마테오가 활짝 웃었다.

-/좋아요.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배우와 미술팀과 자문 화가의 모습을 보던 황도윤이 황지윤에게 속삭였다.

“……너 이 작품 촬영 잘 못 하면 욕먹겠다.”

“……그러게.”

* * *

11월 1일 오전.

한예대 앞에 한 대의 차가 멈춰 섰다. 11인승 승합차로 [화]팀의 선발대가 탈 차량이었다.

“다른 짐은 다 후발대로 올 거니까, 꼭 필요한 것만 챙겨!”

“우진아. 카메라는?”

“한 대만 챙기면 될 것 같아.”

운전석에는 황도윤이, 조수석에는 황지윤이 앉고, 뒷좌석에는 미술팀 팀원 한 명(유서영 팀장은 재료 준비로 후발대로 합류할 예정이었다.)과 촬영팀 팀장 박우진, 소품과 가구를 맡은 무대미술과 4학년 두 명이 자리를 잡았다.

“세연아. 촬영장 둘러보고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할게.”

“그래. 조심해서 가.”

선발대가 먼저 촬영장을 둘러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후발대에 연락하면, 조감독인 김세연이 후발대와 온갖 짐들과 함께 이틀 후에 출발할 계획이었다.

배웅 나와준 김세연과 팀원들을 뒤로하고 11인승 승합차가 출발했다. 몸을 쓰는 작업이 많아서 그런지 체격이 큰 무대미술과 4학년 두 명이 널찍한 차량 내부에 의아한 듯 말했다.

“차 빌리는 것도 돈들 텐데 큰 거 빌린 거 아니야?”

“아, 한 명 더 탈 사람이 있어서요.”

“? 여기서?”

황지윤의 말에 무대미술과 4학년들과 박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황지윤과 황도윤, 미술팀 팀원이 킬킬 웃었다.

한예대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가 인도 옆에 멈춰 섰다. 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백팩을 메고 모자 쓴 남자가 자연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왔다. 미술팀 팀원이 문을 열어주며 남자를 반겼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있는 남매도 반갑게 남자를 맞았다.

“어서 와!”

“오래 기다렸어?”

“아뇨. 저도 막 나왔어요.”

그 모습에 박우진과 무대미술과 4학년들이 눈을 끔벅였다. 누구지? 하는 표정에 남자가 웃으며 모자를 벗었다.

“안녕하세요.”

박우진과 4학년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연기과 1학년 이서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이야…….”

황지윤과 서준의 이야기에 감탄만 내뱉던 박우진과 4학년들은 첫 번째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고 나서야 조금 진정한 듯했다.

“뭐 먹을래?”

“휴게소 하면 역시 버터 감자지!”

“난 떡볶이!”

먹을 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차에서 우르르 내린 일행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휴게소 가까이에 와서야, 일행 중에 슈퍼스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준이 너…….”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하고 물어보려는 황도윤은 어느새 핫도그 가게 앞에서 주문하고 있는 서준을 보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선배님들은 뭐 드실래요? 여기 핫도그 맛있대요. 감자도 있고 치즈도 있어요.”

“……감자?”

“……치즈?”

“감자 하나랑 치즈 하나 더 주세요.”

당당하게 주문까지 하고 핫도그를 두 손 가득 들고 오는 서준의 모습에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왜 안 들키는 거지?”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가 봐.”

쌀쌀해진 날씨에 모자와 목도리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자를 쓴 서준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들킬 리가 없다는 듯 가장 태평한 서준보다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피는 일행들이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서준이가 여기 있었다는 거 알면 다들 엄청 놀라겠죠.”

“저기 진 나트라 상품도 팔던데…….”

여기 진 나트라 본인이 있어요!

하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다들 맛있는 휴게소 간식들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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