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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44화 (54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44화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김세연의 모습에 황지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황지윤의 장난에 어울려준 서준과 안다호도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다시 소개할게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매니저 안다호입니다.”

김세연이 떨리는 눈으로 제 친구를 바라보았다.

“이,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있지.”

황지윤이 간단하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입을 쩌억 벌리고 이야기를 듣던 김세연이 조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 근데 기사로는 차기작이 할리우드 작품이라고…… 학생 영화는 절대 아닐 거라고 하던데…….”

“아, 그건 저희 쪽에서 손을 썼습니다.”

매니저라고 소개한 남자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황 감독님이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아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렸죠. 촬영하는 동안 비밀 유지만 된다면 개봉하기 전까지는 저희가 막아드리겠습니다.”

“이서준 배우가 나 진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야.”

황지윤의 말에 김세연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학생 영화에 이서준이 출연한다는 이야기가 돈다면 일부 사람들이나 기자들이 촬영장까지 찾아올지도 몰랐다. 큰 제작사야 여러 노하우가 있어 막을 수 있겠지만, 스태프 대부분이 학생인 황지윤팀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촬영 날까지는 촬영팀한테도 숨기려고.”

멍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김세연이 정신줄을 꽉 붙잡고 정신을 차렸다.

“배, 배우들 연습은 어떻게 하려고?”

걱정된다.

독립영화 촬영하러 왔다가 탑배우 이서준과 함께 연기하게 될 배우들이.

분명 지금의 자신처럼 끊어질락 말락한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을 터였다.

김세연의 물음에 황지윤이 대답했다.

“민한 역을 맡을 배우한테만 알려줄 생각이야.”

민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화]의 관찰자로, 무명 화가를 돌보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무명 화가를 맡을 서준과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다.

김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황지윤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세연이, 앞에 서준과 안다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 인사했다.

“조감독 김세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첫 촬영은 어제쯤으로 생각하십니까?”

“11월 초쯤부터 12월 초까지, 약 한 달 동안 찍을 생각이긴 한데 기상 상황을 보고 더 늘 수도 있어요. 촬영장소는 강원도, 이곳입니다.”

황지윤이 내민 노트북과 사진들을 서준과 안다호가 자세히 바라보았다. 올해 초 서준이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갔던 스키장보다 조금 더 먼 곳이었다.

“눈이 많이 내리면 큰일이겠네요.”

“저희도 최대한 주의할 생각입니다. 강원도 출신 스태프들도 몇 명 있고 사진엔 안 찍혔지만 가까운 곳에 민가도 있고 경찰서도 있거든요.”

황지윤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번 코코아엔터 쪽에서 답사를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이외에도 안다호와 황지윤, 김세연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안다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황지윤과 김세연은 아차, 싶으면서도 얼른 메모했다.

‘조금 걱정스럽긴 한데…….’

그런 두 학생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안다호는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가 반짝이는 서준의 얼굴에 피식 웃고 말았다.

조금 실수하면서도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나가는,

그게 독립영화의 매력인가 보다.

‘그렇다고 작품까지 부족할 필요는 없지.’

안다호가 황지윤과 김세연에게 물었다.

“프로젝트팀 촬영 장비를 학교에서 빌린다고 하셨죠? 어떤 카메라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김세연이 고개를 갸웃하고 대답했다.

“다힐 3200입니다.”

“그것도 괜찮은 카메라죠. 하지만 키드 100은 어떻습니까? 다힐보다 색감도 선명하고 화면도 깔끔하죠. 색과 색의 경계선을 아주 디테일하게 영상으로 찍어낼 수 있는 카메라라서, 새하얀 눈이 쌓인 풍경을 찍어야 하는 작품에 사용하기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황지윤과 김세연이 침을 꼴깍 삼켰다.

두 사람이라고 키드 100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눈을 배경으로 생각했을 때부터 가장 먼저 떠올린 카메라가 아닌가.

‘그만큼 대여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일찌감치 포기했었지.’

그런 카메라를 눈앞의 매니저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게도 적당하고 이동도 제법 편해서 아주 좋은 카메라죠. 실제로 화면에도 많은 차이가 있고요. 확실히 다힐보다 키드 쪽이 색감이 선명하고 풍부합니다. 배경이 어두워도 색이 잘 구분되죠.”

실제로 사용해 본 듯 카메라에 대해 말하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배우의 매니저가 아니라 촬영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옆자리에 앉은 서준도 맞아요, 그렇죠,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황지윤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키드 100이 나온 건 작년이다. 작년에는 연극 [MOEB-436], 올해는 예능과 드라마 카메오밖에 촬영하지 않았던 서준과 안다호가 어떻게 키드 100에 대해 알고 있나 싶었다.

“멋진 연기를 보여줄 배우가 있으니, 그 배우의 연기가 온전히 담길 수 있는 좋은 카메라도 있다면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 말에 잠시 혹했지만, 자신들의 재정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황지윤과 김세연이 말했다.

“좋은 카메라가 있으면 더 좋지만…….”

“저희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대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요.”

안다호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황 감독님. 여전히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으십니까?”

“어, 그게…….”

이미 서준의 출연이 결정된 상황.

황지윤의 고집은 한풀 꺾여 있었다. 그런 황지윤의 상태를 알아차린 안다호가 말을 이었다.

“투자를 꼭 나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커다란 회사에서 받을 필요도 없죠. 저희 코코아엔터의 투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본론이라는 듯, 안다호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은 영업이 천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황지윤과 김세연이 홀린 듯 귀를 기울였다.

“간섭은 아예 없을 겁니다. 끼워 넣기도 없을 거고요. 정 불편하시다면, 영화 제작 중에라도 좋습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이 장비, 이 세트는 꼭 필요한데 제작비가 부족하다, 싶을 때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그 말에 김세연이 황지윤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아니, 툭툭이 아니라 툭툭툭툭!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호를 보냈다. 아파지는 허벅지에 황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안다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전 카메라 빌릴 곳 찾아볼게요! 회의 계속하세요!”

김세연이 활짝 웃으며 얼른 휴대폰으로 키드 100을 대여할 곳을 검색했다. 잘 찾아보면 싸게 빌릴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다. 제작비가 넉넉하긴 해도 언제 어디서 돈이 필요할지 모르니 아껴야 했다.

“아, 안 찾아보셔도 됩니다. 카메라, 저희 회사에 있습니다.”

“……네?”

김세연과 황지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키드 100이……여기에 있어요?”

“네.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에 황지윤과 김세연이 눈을 끔벅였다.

……그게 왜 영화제작사도 아니고 연예인소속사에 있어?

안다호가 빙그레 웃었다.

“몇 대가 필요하시죠?”

그것도 한 대가 아닌 모양이었다.

* * *

코코아엔터의 투자에 서준의 출연 계약서까지 쓴 황지윤과 김세연이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코코아엔터를 빠져나왔다.

“세상에…… 키드 100을 연습용으로 쓰다니…….”

서준의 연습실에 떡하니 있던 키드 100 세 대.

다른 연습실에도 그 비싼 카메라가 한 대씩 있다고 하니, 할리우드 (배우 소속사) 스케일에 연신 감탄만 나왔다.

“어쩐지, 매니저님 설명이 자세하다 싶었어.”

황지윤의 말에 김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사용해 봤으니, 그런 자세한 설명이 나온 것 같았다.

“키드 말고도 다른 카메라도 있더라. 봤어?”

“어. 난 무슨 카메라 매장에 온 줄 알았다니까.”

보통의 영화제작사도 저렇게 많은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와아…… 이거 진짜 꿈 아니지?”

“계약서도 썼잖아.”

“진짜 미쳤다……! 잠깐. 그러고 보니 너 한 번 거절했다며! 미친 거 아니야?!”

김세연의 말에 황지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미친 것 같더라. 일이 잘 풀려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먼 곳을 바라보는 황지윤에 김세연이 경악했다.

“진짜 안 찍을 생각이었어?!”

“안 찍는 게 아니라 못 찍는 거야! 내 상상을 완벽하게 재연해 줄 배우가 있는데 다른 배우를 쓰라고? 어림도 없는 일이지!”

“여보세요. 적당히 타협을 하라고요. 타협을!”

“독립영환데? 내 영환데?!”

“그러면서 코코아엔터 투자는 왜 받아?”

“……매니저님이 말을 너무 잘했어.”

“……그건 그래.”

작품의 완성도, 훌륭한 배우의 연기, 멋진 미장센 등등.

첫 작품 촬영을 앞두고 꿈과 희망이 가득한 감독 지망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안다호의 말들을 떠올리며, 황지윤과 김세연은 걸음을 옮겼다.

손해 본 건 하나도 없는데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서은찬이 안다호가 건넨 투자기획서를 살펴보았다.

코코아엔터의 영화 투자는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었다.

처음 시작한 계기는 서준이 출연한 영화에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흥행과는 상관없이, 아무래도 서준이 아역이었으니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말이다.

“다들 좋으신 분들이라 영향력을 발휘할 때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랬죠.”

안다호의 말에 서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서준이 조금 아쉽다고 했던 작품이 있었다. 출연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작품이었는데, 서은찬과 안다호가 이야기를 하다가 거기에 투자를 하게 되었다.

“서준이가 좋다고 했으니 괜찮은 영화겠지, 하고 투자한 게 덜컥 성공해 버릴 줄은 몰랐죠. 600만 관객 돌파, 라는 기사를 봤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이후 촬영한 게 [오버 더 레인보우]가 아니었다면 굉장히 아까워했을 거다.

웃으며 말하는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도 웃고 말았다. 그 이후로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서준이가 어렸을 때부터 작품 보는 눈이 좋았습니다.”

안다호의 말에 서은찬이 웃으며 말했다.

“2팀 직원들도 고생했죠.”

거기에 서준에게 대본을 추천하기 위해서 열심히 대본을 분석해야 했던 당시 2팀 직원들의 대본 보는 눈도 좋아졌다.

가끔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투자금 이상의 수익으로 돌아왔다.

수익을 창출하는 게 목표인 회사인만큼, 새로운 수익처가 생기는 건 환영할 일이었다.

구사옥에서는 2팀이 맡았지만, 신사옥으로 옮기면서 정식으로 투자팀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작품들 사이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찾고 있을 거다.

“그래도 독립영화는 처음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 이 투자기획서도 투자팀에서 만들어야 했지만, 서준이 출연하는 데다가 상업영화도 아니고 독립영화인만큼 이번만은 안다호가 담당하고 있었다.

“서준이도 러닝개런티고…… 좋네요. 근데 이런 거 이제 안 들고 와도 된다니까요. 배우팀 일은 전적으로 안 이사한테 맡긴다고 했잖습니까. 예산 이상으로 투자할 때야 회의 좀 하겠지만, 독립영화 투자 정도야 안 이사 재량으로도 충분하죠.”

게다가 학교 지원이 있어 그렇게 큰 투자도 아니었다.

“……영 익숙해지질 않네요.”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가 멋쩍은 듯 뒷목을 매만졌다.

“이제 익숙해져야죠. 안다호 이사님.”

킬킬 웃던 서은찬이 안다호에게 물었다.

“근데 서준이는요? 벌써 집에 갔어요? 은수가 같이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던데…….”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배우들과 인사하고 있을 겁니다. 신나서 뛰어가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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