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40화
저녁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고깃집.
코코아엔터의 사장 서은찬과 배우팀 안다호 팀장, 가수팀 김상진 팀장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다호가 건네준 황지윤의 답장을 읽은 서은찬과 김상진 팀장이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서준이가 퇴짜맞는 거는 또 처음이네.”
“그러게 말이야. 오늘 기념일로 삼을까?”
“서준이한테 한 소리 들으려고?”
코코아엔터를 인수하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서은찬과 김상진 팀장의 대화에 안다호가 작게 웃었다.
서준이한테 이르겠다고 휴대폰을 꺼내는 김상진 팀장에 서은찬이 아, 형! 농담이라고! 하고 소리를 질렀다.
“서준이가 그렇게 무서워?”
“서준이도 서준인데…….”
집안 권력 1순위인 딸내미를 떠올리는 서은찬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은수가 요새 고집이 많아져서 말릴 사람이 서준이밖에 없거든.”
오호, 기념일?
하고 눈만 웃고 입은 안 웃는 서준이 장난꾸러기 은수를 부추기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번엔 또 뭘 고장 낼지…….”
최근 박살이 난 공기청정기를 떠올린 서은찬은 영혼이 반쯤 가출한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김상진 팀장과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때가 좋을 때지, 우리 아들은 사춘기라 나랑 이야기도 안 해.”
“착하고 공부 잘하면 됐지. 어디서 사고 치는 것도 아니고…… 아참, 이게 문제가 아니지.”
자식 이야기로 흘러가려던 주제가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 학생 감독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네.”
“그러게.”
김상진 팀장의 말에 서은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고기를 굽고 있던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요? 전 서준이가 연기하면 작품이 훨씬 좋아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흥행하면 감독의 경력에 도움도 될 거고요.”
안다호의 말에 서은찬과 김상진 팀장이 웃었다.
“감독이 대학생이라며? 다호 너 데뷔도 못 한 학생이랑 작업하는 건 처음이지?”
“네. 그렇죠.”
“그럼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봐. 일단 흥행.”
김상진 팀장을 이어 서은찬이 말했다.
“네 연락받자마자 그 학생은 ‘이서준이 출연했는데 흥행 못 하면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했을걸.”
“흥행은 상관없습니다만.”
서준은 흥행 여부로 작품을 고른 적이 없었고, 안다호도 그랬다.
“다호 너랑 서준이는 그렇겠지만, 감독이 느끼기에는 다르지.”
매번 가수들의 앨범 성적을 걱정하는 김상진 팀장이 그 여유로운 대답에 부러움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서준이 출연했는데, 기자들이 알아서 빵빵하게 홍보해 주고 영화관에서는 개봉해 달라고 하고 플러스가 돈을 쥐여주며 꼭 나랑 계약하자고 하는데, 흥행을 못 했다고? 그런 감독한테 앞으로 누가 투자해 주겠냐.”
서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 1짜리한테 만렙 성검 쥐여주고 마왕 앞에 세워두는 꼴이지. 운이 좋아서 이기면 좋겠지만, 지면 진짜 세상이, 커리어가 멸망하는 거고.”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세 사람은 고기를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독립영화는 망해도 그러려니 하잖아. 자본도 적고 배우도 신인이고 스태프들도 초보니까. 근데 서준이가 출연하면 다 바뀌는 거야. 자본도 많고 배우도 경력에 스태프들도 프로야. 오직 그 모든 걸 관리해야 하는 감독만이 신인이지.”
“이야. 상상만 해도 무섭네.”
코코아엔터를 인수하고 처음 사장 자리에 앉았던 때가 떠오른 서은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니저로서는 프로였으나 사장으로서는 처음이었던 그때. 잘하고 있는 브라운블랙과 직원들에게 폐가 될까 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참 많았다.
“그러니 부담감이 얼마나 크겠어?”
김상진 팀장의 말에 서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관심도 그렇지. 기사가 우르르 나고 댓글이 우수수 달리고, 감독이 이전에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 다 알아낼 텐데 말이야.”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만났던 작가와 감독들은 언제나 흥행에 대한 걱정에 익숙한 프로들이었고, 학생들끼리 만드는 졸업 공연은 당사자인 서준이 만들어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황지윤은 아직 데뷔도 못 한 신인 감독이었다.
‘신인이라…….’
서은찬과 김상진 팀장이 계속 연습생을 받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과 달리, 자신은 서준만 케어하다 보니 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부족한 모양이었다.
‘조심해야겠네.’
새로 들어올 신인, 무명 배우들을 떠올리며 안다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흥행 부담 다음으로는 작품 문제가 있지. 장편영화로는 첫 작품이라지?”
“네.”
김성진 팀장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직 자기 생각이 강하겠네. 보통 창작예술 쪽은 첫 작품을 만들 때가 가장 자기만의 세계랄까, 생각이랄까, 그런 게 강하거든. 그 생각을 관철하려는 고집도 강하고.”
“가수도 그렇고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는 작곡가들이 꽤 있지. 나는 잘하는데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거다, 같은 느낌?”
“너무 가긴 했는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니네.”
서은찬의 말에 김상진 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보통 노래를 듣고 싶다, 부르고 싶다, 작곡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처음 이 일에 뛰어들잖아. 아닌 사람도 있지만.”
“네. 그렇죠.”
배우 쪽도 다르지 않았다.
이런 영화를,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고 싶은 게 확실한 거야. 그 감독도 그럴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각 잡고 만드는 첫 작품이 얼마나 소중하겠어. 게다가 7년 동안이나 생각해온 시나리오면 진짜 자기 자식 같겠지.”
“게다가 표절 사건까지 있었으니까 다른 때보다 예민해져 있을 거고.”
서은찬의 뒤를 이어 김상진 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소중한 작품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간섭한다고 생각해 봐. 이쪽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이 대본에 개입하는 거 서준이가 싫어하는 거 알지만, 프로에 발도 못 내민 대학생이 그걸 알 리가 없고. 알았다고 해도 과연 대학생 감독이 투자자들 말을 얼마나 무시할 수 있겠어.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도 가슴이 철렁할걸? 그런 게 싫어서 거절한 거겠지.”
확실히.
안다호는 지금껏 봤던 독립영화들을 떠올렸다.
이해할 수 없고, 불쾌하며, 어둡고 칙칙한 장면들.
충격을 주고, 계속 떠올리게 하며, 관객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면들.
흥행보다는 작품성이나 예술성, 감독의 세계관을 드러낼 수 있어, 자신이 상상한 결과물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낸 감독들의 독립영화들을.
‘상업영화였다면 그런 장면들은 불가능했겠지.’
황지윤도 자신이 상상한 것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서준의 출연을 거절한 것일 터였다.
‘……음?’
안다호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서은찬이 소주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이를 거절할 정도면 어지간해서는 마음을 바꿀 것 같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힘드려나?”
불판 위의 고기가 점점 줄어갔다. 김성진 팀장이 안다호에게 물었다.
“서준이한텐 말했어?”
“아직이요. 좀 더 감독님을 설득하고 난 후에 알려주려고요.”
“이 정도면 설득도 안 먹힐 것 같은데,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지금 막 떠오른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오. 뭔데?”
안다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김상진 팀장과 서은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되게 불확실하면서도 먹힐 것 같은 방법이네.”
“작품에 애정을 가진 감독이라면 당해낼 수가 없겠어. 역시, 안 팀장님!”
유쾌하게 웃으며 소주잔으로 손을 뻗던 김상진 팀장이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서은찬을 바라보았다.
“근데 서은찬 사장님?”
“어?”
“다호랑 나랑 언제까지 팀장이야? 밑에 팀도 엄청 생겼는데.”
“……아.”
* * *
“와아! 그럼 이제 안 이사님이네요.”
“그…… 그렇지?”
어제부로 이사가 된 안다호가 서준의 말에 민망한 듯 마른세수를 했다.
이제 각자의 팀으로 흩어진 전 2팀 직원들이 최태우 다음 타자로 안다호를 선택한 듯, 오오, 안 이사님! 하고 불러댔다. 이제 막 코코아엔터에 들어온 직원들과 매니저들은 그 거리감에 입을 쩌억 벌릴 뿐이었다.
“1팀장님은 김 이사님이고요.”
“그렇지. 홍보팀장님이나 다른 팀 팀장님들도 호칭은 그대로지만 다 승진하셨어. 회사 규모도 커졌으니까.”
새삼 코코아엔터가 많이 커졌다는 걸 느낀 서준이 감탄했다.
“근데 오늘은 무슨 일이에요, 다호 형?”
얼마 남지 않은 개강을 앞두고 [화]의 무명 화가 역할을 연습하려던 서준이 안다호에게 물었다. 서준의 손에 들린 대본을 본 안다호가 말했다.
“그게 말이야…….”
이어지는 안다호의 말에, 연기 연습을 앞두고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던 보이지 않는 서준의 꼬리가 천천히 천천히 느려지다가 이내 멈춰 버리고 말았다.
“……그럼 못하는 거네요.”
당연히 출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니.
표절 사건 때와는 달리 아쉬움이 컸다. [화]가 그만큼 마음에 들었던 탓이리라.
‘다른 이유라면 해결하려고 노력했겠지만……’
연기가 문제라면 몇 달을 고생해서라도 수정할 거고, 제작비가 문제라면 직접 투자까지 할 수 있었고, 스태프 문제라면 해외 인력까지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그게 문제라니 어쩔 수 없지.’
과한 것도 독이 된다는 말이 이런 상황인 듯했다.
“감독님이 반대하시니 어쩔 수 없죠.”
풀이 죽은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서준아.”
“네?”
“우리 오디션 보자.”
오디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 * *
9월 1일.
한예대 개강 날.
2학기에 계획한 [화]의 촬영을 위해 강의를 최대한 빼고 화요일과 수요일에 구겨 넣은 황지윤은 느지막하게 일어났다가, 배터리가 간당간당하게 남은 휴대폰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어제 충전하고 잤는데?”
휴대폰 화면에 뜬 친구들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보니, 영화과에 무슨 일이 터졌나 보다.
“우리 과…… 망했나?”
막 화면을 누르려던 찰나, 배터리가 다 닳아 휴대폰이 아예 꺼져 버렸다. 한숨을 내쉰 황지윤이 충전기와 휴대폰을 연결했다.
잠시 후, 휴대폰이 켜졌다.
>언니! 언니! 이거 봐요!
>이거 오성태 이야기 맞죠!?
>세상에! 세상에!
>지윤아! 우리 과 난리 났어!
이게 무슨 일이래?
황지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배님. 죄송합……
“차단하는 걸 깜빡했네.”
며칠 전, 오성태의 옆에 서 있던 후배의 연락처를 가벼운 손길로 차단한 황지윤이 과 친구들이 보낸 뉴스들을 살폈다.
[배우 이서준, 검토하던 대본들 중 표절작 발견.]
[코코아엔터 안다호 이사, 앞으로는 더욱더 신중히 검토할 것.]
[표절작 감독은 한예대생?]
[표절 논란이 있는 드라마들과 영화들.]
-표절작이요? 서준이 대본 중에 표절작이요!? (오! 안 팀장님. 안 이사님 됐네!)
=22 어떤 미친……! (ㅊㅎㅊㅎ)
=33 이거 찍었으면 큰일 날 뻔ㅠㅠㅠ (안 이사님은 어색하다;; 안 팀장님이 입에 딱 붙어서 좋은데.)
=??새싹들 이중인격임?? (누군진 모르지만 축하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님.(<<경! 승진 축하해요. 안 이사님! 축!>>)
=중요한 게 아니라며ㅋㅋㅋ
=제일 화려한데?ㅋㅋ
=+) 이게 더 중요함>>>‘대본 검토에 더욱더 신중할 것’ 안 보임? 건너건너 듣기로는 지금도 대본 선택 엄청 신중하게 한다던데, 더욱더 신중해지면 차기작은 언제 나온다는 거야????
=ㅠㅠ일단 올해는 글렀음.
=서준아ㅠㅠㅠ
-상반기에 활동을 많이 했으니 참고 기다리자……라고 하고 싶은데, 지금 고르던 것 중에서 표절작이 나온 거면 하반기에도 활동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거네? 근데 그게 무산됐고???
=222 도대체 잔칫상 엎은 놈이 누구야?
=듣기로는 한예대생이라던데.
=……갑자기 대학생이요???
=자기 영화에 이서준 나온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있대.
=여기 목격자썰 뜸.(링크)
=?근데 나만 이해 안 감? 원작자도 그때 막 알았다는데 코코아엔터는 어떻게 원작자보다 빨리 안 거야?
=22 게다가 표절작도 원작도 대학생 작품이라며? 어떻게 찾았대??
=충무로에 뿌려진 대본들은 다 코코아엔터에 있다는 소문이 있더니…… 대학생 작품도 있나봄ㅎㄷㄷ
-코코아엔터의 <신중히>가 너무 무섭다;;
=앞으로는 <더욱더 신중히> 작품을 고름.
-서준아ㅠㅠㅠ우리 내년에는 볼 수 있는 거지?
=그냥 고르던 것 중에서 다시 선택해 주면 안돼?ㅠㅠ
=그러게ㅠㅠ
“……헐?”
황지윤의 눈이 커졌다.
그날 이후 아무런 기사도 없길래 서준의 이름도 나오니 그냥 묻고 가나 했는데, 오늘 기사를 푼 모양이었다.
‘목격자썰은 영화과 애들인 것 같고…… 오성태. 이제 복학도 힘들 것 같네.’
흐흐흐.
황지윤이 악당처럼 웃었다.
게다가 오성태의 무리와 그들과 친한 학생들도 한동안은 기죽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영화과를 확실히 뒤집어엎어야겠다.
기사까지 났으니 교수님들도 관심을 가지겠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황지윤이 휴대폰을 보며 희희낙락할 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황도윤이었다.
>황도윤 : 서준이가 네 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줌.
“……뭐?”
황도윤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황지윤 선배님. 연기과 1학년 이서준이라고 합니다.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어, 황도윤 선배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지금 통화 괜찮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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