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38화
오성태가 전화를 받았다.
불길함을 애써 감춘 평온한 얼굴로 네네, 하고 대답을 이어간다. 학생들과 황도윤, 그리고 통화를 마친 황지윤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통화를 끝낸 듯, 오성태가 휴대폰을 내리자 누군가 물었다.
“성태야. 무슨 전화야?”
“아, 코코아엔터에서 내일 만나재. 계약서 쓰려나 봐.”
내일 만나자는 사실에 오성태는 계약서를 쓸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분명 무슨 일로 코코아엔터에 가는지 다들 추측하느라 바빴을 거다.
‘분명 표절 이야기도 나왔겠지.’
다행히도 휴대폰 건너, 코코아엔터 2팀 직원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왜 황지윤에게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표절은 걸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대본의 주인인 황지윤도 조금 전에야 알게 된 사실을 코코아엔터에서 알았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주인인 황지윤에게도 내세울 증거가 없는데, 전혀 관계가 없는 코코아엔터에 증거가 있을 리도 없었다.
“오오!”
“계약이래. 계약!”
“이서준도 직접 만나는 거 아니에요?”
애써 불안감을 잠재우려는 오성태의 귀로 학생들의 감탄이 흘러들어 왔다.
“그럼 황지윤한테는 왜 전화한 거래?”
“저 선배 독립영화 준비하고 있잖아요. 그 대본을 코코아엔터에 보낸 게 아닐까요?”
“아, 그러네. 코코아엔터에서 새로운 배우들하고 계약한다고 하더니 그 배우들 소개해 주려고 그러나?”
“2팀인 것도, 코코아엔터에는 배우팀이 거기밖에 없으니까 그런 걸 거고.”
제멋대로 추측을 이어나가던 학생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결론을 내렸다.
코코아엔터에서 연락이 온 건 부럽지만, 이서준이 아닌 이상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잘나가는 배우가 대학생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일도 없으니, 붙는 건 아마도 신인이나 무명 배우일 거다.
“맞지, 지윤아?”
비웃음이 담긴 동기의 말에 여유를 찾은 황지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알아서 뭐 하려고?”
그 삐딱한 대답에 학생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래. 내가 알 필요는 없지. 그래도 성태 선배한테는 사과해야지.”
“잘 알아보지도 않고 표절이라니. 오해받은 성태가 얼마나 놀랐겠냐!”
“맞아요. 그리고 아까 욕한 것도 사과드려요. 지금까지 표절이라고 우긴 것도 사과하고요.”
내일 계약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오성태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학생들의 말이 더욱 격해졌다.
이서준이 출연한다면 흥행작이 될 거고, 그건 아주 좋은 경력이 될 터였다. 그 김에 오성태와 함께 이서준 사단에 들어가면 더욱 좋았다.
그러니까 오성태에게 잘 보여야 했다.
시끄러운 학생들의 반응에도 황지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코웃음 칠 뿐이었다.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동생의 표정에 황도윤이 킬킬 웃었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황지윤의 말에 학생들이 피식 비웃었다.
“너 대사 공부 많이 해야겠다. 두고 보자니, 악역 엑스트라도 그런 대사는 안 쓰겠다.”
“그러게요. 요새 수업 잘 듣고 있죠? 아, 성태 선배님한테 시비 건다고 못 듣고 있겠구나.”
“알고 보면 성태 관심 끌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뭐라고, 이 새끼야?”
“이게 또 하늘 같은 선배님한테 욕을 하네?”
영화과 학생들과 황지윤의 사이에서 오가는 살벌한 눈빛.
사람 하나 죽어 나가도 모를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어…… 음…….”
이서준의 작품에 단역으로라도 출연할 수 있을까, 하고 오성태의 근처를 맴돌던 연기과 학생 몇몇이 그 살벌한 광경에 침을 꼴깍 삼켰다.
“……영화과 무섭다.”
“……그러게.”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연기과 학생들이 자신들을 향해 손짓하는 연기과 학생회장 황도윤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마치 어미 오리를 찾아가는 새끼 오리들 같았다.
* * *
다음 날.
황지윤은 눈앞에 보이는 건물에 침을 꿀꺽 삼켰다.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10층짜리 건물은 코코아엔터의 신사옥이었다. 이사가 한창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황지윤 작가님?”
“아, 네.”
황지윤이 자신의 부르는 목소리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2팀 직원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황지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박스들이 놓여 있는 로비를 지나 1층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황지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주위를 살폈다.
‘오성태도 오늘 온다고 했는데…….’
만나면 비웃어줘야지, 하고 생각하며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니,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지윤에게 인사를 했다.
“코코아엔터 2팀 팀장, 안다호입니다.”
서준과 연관된 일인 데다가 표절 문제라는 것 때문에 안다호가 직접 온 것이었다.
“황, 황지윤입니다.”
황지윤에게 앉으라고 말한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먼저,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작가님, 시나리오 파신 적 없으시다고요?”
“네. 제 작품입니다.”
팀장이라는 말에 잠시 당황한 황지윤이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럼 어디에 공개한 적도 없으시고요.”
“네.”
“으음. 그럼 대본이 어떻게 흘러나갔는지 알고 계신 건 있으십니까?”
“오성태와 같은 과라, 제 노트북에서 빼간 것 같습니다.”
한예대 영화과였군.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표절된 대본 보셨습니까?”
“아뇨. 줄거리만 봤습니다.”
“알고 계시다시피, 이 정도로 비슷하면 영화로 만들어지자마자 바로 표절 논란이 일어날 게 뻔합니다. 오성태 씨가 뻔뻔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군요.”
서준이를 그런 논란에 휩싸이게 할 뻔한 오성태에게 악감정이 생긴 안다호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황지윤이 눈을 끔벅였다.
교묘하게 표절하고는 했던 오성태가 멍청하다니.
“네? 어…… 오성태 나름대로 수정해서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을 텐데요?”
“문장을 수정하긴 했지만 흐름은 거의 비슷합니다…… 만,”
의아해하는 황지윤의 표정에 안다호는 뭔가 이야기가 엇갈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본론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안다호가 두 개의 대본을 내밀었다.
[사랑방 화가]와 [무명 화가].
“사랑방 화가와 무명 화가에서 비슷한 부분을 표시해 뒀습니다.”
황지윤이 두 대본의 첫 장을 펼쳤다.
처음, 멀리서 오는 마차와 그걸 바라보는 어린 소년, 마차 창문 사이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 기와집 앞에 멈추는 마차.
“…….??”
완전히 똑같은 도입부에 느낌표를 띄우며 놀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황지윤은 연신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감독님 작품 맞으시죠?”
그 모습에 안다호는 ‘이 황지윤이 아니라 다른 황지윤인가’, 하는 의심이 잠시 들었다.
“네네. 제 거 맞는데…….”
황지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 개의 대본을 넘겼다.
페이지마다 노란색 형광펜으로 비슷한 부분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예 아무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전부 비슷해서 아예 크게 동그라미를 쳐둔 페이지들도 있었다.
“……저도 이 대본 보는 건 거의 7년 만이라, 처음 읽는 느낌이라서요.”
모티브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서 관찰자가 아이였다는 것은 떠올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던 황지윤이었다.
게다가 7년 동안 많은 수정을 했었다.
자잘한 사건을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고 새로운 등장인물을 추가하고 누군가 빼기도 하고. 큰 틀만 바뀌지 않았지 제법 많은 부분이 변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게 ‘화’거든요.”
오호.
안다호가 눈을 번뜩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황지윤이 말을 이었다.
[화].
황지윤이 올해 촬영할 예정인 작품이며.
“오성태는 그걸 훔쳐 갔을 텐데…….”
오성태가 훔쳐 간 대본의 원본이었다.
“근데 왜 이거랑 비슷한 거지?”
* * *
두 개의 대본을 손에 든 오성태가 입술을 깨물었다.
노란 형광펜으로 물든 [사랑방 화가]와 [무명 화가]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오성태의 손을 보며 안다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에 하나, 아주 우연히 두 분이 비슷한 내용을 적게 되었다고 해도, 먼저 구상한 황지윤 감독님이 우선시됩니다.”
“…….”
“하지만 이 정도로 비슷하면, 그럴 리는 전혀 없다고 봐야겠죠.”
자신을 코코아엔터 2팀 팀장이라고 소개한 남자의 목소리는 오성태에게 들리지 않았다.
‘……씨X. 이게 뭐야?’
오성태는 자신이 훔쳤던 황지윤의 작품인 [화]를 떠올렸다.
주인공인 화가와 관찰자는 ‘성인’이었고, 배경은 ‘서양식 저택’. 화가가 타고 등장하는 건 ‘자동차’였다.
그걸 오성태는 바꾸었다.
주인공 화가는 그대로 두고 관찰자를 ‘아이’로.
서양식 저택을 ‘기와집’으로.
화가가 타고 등장하는 자동차를 ‘마차’로.
그 이외에도 부분부분 설정을 바꾸었다.
근데, 이 [사랑방 화가]라는 이상한 제목의 대본이 오성태가 수정한 [무명 화가]의 설정과 똑같았다. 관찰자 아이, 기와집, 마차부터 관찰자가 아이이기 때문에 나오는 귀여운 오해와 몇몇 상황들까지.
누가 봐도 표절이었다.
‘이게 뭐냐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표절 의심을 피하려고 수정했던 설정들이 오히려 표절의 증거가 되어버렸다.
차라리 [화]와 [무명 화가]의 분쟁이었다면 변명거리라도 있었을 거다. 오성태는 비슷한 작품들을 모아 단단히 준비까지 해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대본이 갑자기 나타나 오성태의 목을 조여버린 것이었다.
“이, 이걸 정말로 황지윤이 썼단 말입니까?”
“예. 7년 전에요.”
안다호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황 감독님이 중2 때라고 들었습니다.”
오성태는 혀를 깨물 것 같은 심정이었다.
마치 지금의 자신이 중2의 황지윤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처럼 들려왔다.
독특한 아이디어가 부족할 뿐, 같은 소재로 대본을 쓴다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 자신이 가득했던 오성태에게 그것보다 치욕스러운 일은 없었다.
* * *
“헐…… 진짜 되게 비슷하네요.”
안다호에게서 어제오늘 일어났던 일에 대해 들은 서준은 [사랑방 화가]와 [무명 화가]를 번갈아 보며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예로 들어보자.
어린 A 감독이 [오버 더 레인보우]를 구상한다.
아역 캐릭터 3명, 바이올린, 미국.
후에, 어른이 된 A 감독이 대본을 수정한다.
성인 캐릭터 3명, 피아노, 한국.
그걸 본 표절범이 표절을 피하려고 대본을 수정한다.
성인→아역, 피아노→바이올린, 한국→미국.
그 결과.
놀랍게도 A 감독이 어렸을 때 구상했던 대본과 비슷한 대본이 나와버린 것이었다.
“사람의 상상력은 되게 한계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서준은 [무명 화가]를 두고 자신이 고민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부분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살펴보며 주인공이 정신병인지, 꿈속 배경인지 고민했던 시간이 허무해졌다.
‘한 대본에 작가가 둘이었네. 그것도 공동 작가도 아니고 표절.’
하. 하. 하.
상상도 못 했다.
해탈한 듯 웃던 서준이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계약서도 안 썼으니 문제가 될 건 없어서 그냥 돌아갔지. 나머지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할 거고. 황지윤 감독님이 고소한다면 돕기로 했어.”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를 보며 부드럽게 웃고 있는 안다호의 겉과 달리, 속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감히 내 배우에게 표절작을 내밀다니.’
고소와 상관없이, 오성태가 영화계(크게는 방송계까지)에 계속 머무른다면, 아주 험난한 가시밭길을 만들어줄 생각이 만만한 안다호와 2팀이었다.
“미안하다. 서준아. 제대로 조사했어야 했는데…….”
안다호가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하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회사 이전 때문에 바빴고 대학생까지 조사한다는 건 무리잖아요. 촬영장에선 평이 좋았다면서요.”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지. 진짜 태우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러게 말이에요.”
이번 일로 2팀 직원들이 최태우를 볼 때마다 짝짝 박수를 친다는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최태우 씨를 고른 게 다호 형이라고 하던데……. 이것도 파르비타의 능력일까?’
[(선) 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이 이번 표절 사건을 알고, 횡령 문제가 있었던 최태우를 뽑게 한 걸까?
‘뭔가 확, 드러나는 능력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어쩌면 그냥 우연일지도 몰랐다.
“근데 아쉽게 됐어요. 반쯤은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는데…….”
[무명 화가]는 표절작, [사랑방 화가]는 미완성작.
안타깝게도 서준이 할 수 있는 작품은 없었다.
서준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왠지 축 가라앉은 강아지 귀와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아 안다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서준아.”
“네?”
“황지윤 감독님이 작품 하나 쓰고 있다는데 읽어볼래? 파일이 날아가서 다시 쓰고 있다는데 올해 촬영에 들어가도 될 정도로 완성됐대. 그리고 줄거리도 사랑방 화가하고 비슷해서 네 마음에 들 거야.”
오오!
역시 내 매니저!
주섬주섬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며 말하는 안다호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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