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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33화 (53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33화

“그래도 저희 회사에 지원한 걸 보면 아직 매니저로 일하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그 소문을 그대로 놔둘 생각인가요?”

김수련의 물음에 최태우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나온 후에 바로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다지 주목을 받진 않았지만요.”

안다호와 김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부족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방법은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횡령에 대한 소문이 논란이 된다면, 주목받지 못한 이 인터뷰 기사는 제법 도움이 될 터였다.

처음에는 호구 같아 보였지만 한 방이 있었고, 이후 기사를 이용해 해결 방법까지 생각하고 실행한 최태우를 보니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오늘 면접을 포기하면 앞으로는 연예계 일은 안 하실 생각입니까?”

“아뇨. 소문을 해결하고 난 후에 다시 한번 매니저로서 일할 생각입니다.”

안타깝게도 코코아엔터는 아니겠지만.

안다호의 물음에 대답한 최태우가 아쉬운 듯 뒷말을 삼켰다.

안다호와 김수련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최태우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으로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렇게 면접이 마무리되려던 찰나, 사장 서은찬이 입을 열었다.

“그 아이돌 멤버들의 계약은 완전히 끝난 건가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최태우가 조금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문제가 없게 해결했습니다.”

입사하기 전에 이루어진 계약이라 최태우는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아이들의 부모님이 사장에게 돈을 건네주던 그 날 확인해 보니 완전히 불공정한 계약서였다.

법조인이 아닌 자신이 봐도 문제가 될 만한 점들을 지적하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사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멤버들이 짐을 싸서 나온 지 몇 달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는 걸 보면 확실히 계약은 끝난 게 분명했다.

“그래도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나중에 아이들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모르니까요.”

서은찬의 말에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최태우는 코코아엔터 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탑배우 이서준의 삼촌이니만큼 사람들이 흥미로워했기 때문에 관련 기사나 자료도 꽤 많았다.

‘원래는 매니저였다가 망해가던 코코아엔터를 인수했으니, 그사이에 많은 문제가 있었겠지.’

그래서 나름 비슷한 처지의 자신에게 이런 조언도 해주는 것일 거다.

“그리고 이건 곧 알려질 이야기입니다만, 며칠 먼저 알아도 상관없겠죠.”

마치 지금 말하는 게 본론이라는 듯 서은찬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신사옥으로 옮기면서 새 연습생들을 뽑을 계획입니다.”

최태우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물론 블루문이 데뷔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나올 그룹은 걸그룹이고, 보이그룹은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와 김수련이 작게 웃고 말았다.

“그 아이들에게 아직도 도전할 마음이 있다면 지원해 보라고 하세요. 그렇다고 오디션 심사에 오늘 일이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겁니다. 심사는 냉정해야죠.”

농담처럼 진담을 내뱉는 서은찬을 최태우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브라운블랙, 화이트, 레드크라운, 블루문이 있는 코코아엔터다.

연습생 모집을 시작하면 전국 각지, 아니, 해외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새로운 얼굴들이 몰려들 거다.

“……그런 경쟁자들 사이에서 그 아이들이…… 중고 아이돌이 합격할 수 있을까요?”

최태우 눈에는 누구보다 능력 있는 아이들이었고 회사의 서포터가 있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지만,

‘망할 만하네.’

아이들에게도 최태우에게도 상처처럼 남은 그 한마디.

데뷔했다가 실패했다는 이미지가 심사위원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것 같았다.

“이전 경력은 보지 않고, 온전히 그 아이들만을 보고 심사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서은찬의 진심 어린 말에 최태우는 눈을 꾹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 애들이 합격하게 되면 최태우 씨는 가수팀으로 가는 건가요?”

김수련의 물음에 지원자들의 서류를 다시 훑어보고 있던 안다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번뜩이는 그 눈빛에 서은찬이 식은땀을 흘렸다. 안다호는 최태우가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것도 서준이 매니저로.’

김수련이 작게 웃었다.

“아니, 아니지. 보이그룹 나올 때까지 4년은 걸릴 테고. 애초에 그 애들이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최태우 씨는 예전부터 배우를 맡고 싶었다고 했잖아. 그, 그쵸? 안 팀장님.”

내가 삼촌인데, 내가 사장인데.

왠지 모르게 서준에 대한 일만큼은 매니저인 안다호의 눈치를 보게 된다. 다급해서 반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예. 본인 마음이 가장 중요한 법이죠.”

안다호가 마음에 들어도, 서준이, 최태우가 서로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 큰일이었다. 매번 붙어 다닐 배우와 매니저의 사이라서 더욱 그랬다.

“근데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잖아요.”

그 소문.

김수련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태우 씨의 이야기가 사실인지도 알아봐야 하고…… 아무래도 김 팀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물론이죠! 그런 나쁜 놈들은 없애버려야죠.”

“어쩌면 우리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 최태우 씨와 아이들 복수도 하고 말이야.”

코코아엔터 이서준 배우 전담 2팀 팀장과 홍보팀장, 사장이 서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 * *

요즘은 글만 읽는 것 같다, 고 서준은 생각했다.

자료실에서 읽고, 집에서 다음 작품 고르고, 생의 도서관에서 삶의 책을 읽고.

대본을 읽는 건 좋지만, 차기작으로 할 만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안 나타나니 조금 지루하긴 했다.

그래서 놀러 왔다.

“와아!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 얼른 들어가자!”

한국예술대학교. A관.

마중 나온 양주희가 반색하며, 서준이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봉지 중 하나를 들고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 서준도 나머지 아이스크림들이 녹지 않게 빠르게 그 뒤를 따라갔다.

“준비는 잘되고 있어?”

“응. 우리 팀도 다른 팀도 다들 엄청 열심히 하고 있지.”

연기과 학생은 많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은 다 달랐다. 그래서 연기과 학생회는 팀별로 나누어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예대 축제에는 일반인 말고도 관계자도 많이 오니까 말이야.”

축제에서 눈에 띈 연기과 학생이 몇 달 후 TV에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 팀 극본은 극작과 3학년 선배님 작품이고 지금은 무대과랑 같이 무대를 만드는 중이야. 물론 연기과는 큰 건 못 만들고 작은 것만 만들고 있지만.”

양주희가 연기과 연습실 중 하나의 문을 열었다. 양주희와 같은 팀으로 축제 연극에 참여하는 김하운과 정보람, 그리고 학생들이 서준을 반겼다.

“아이스크림!!”

아니, 아이스크림을 반겼다.

“다른 팀 분들 것까지 사 왔어요.”

“오! 어쩐지 주희가 다른 팀 인원수도 세더라. 내가 나눠주고 올게!”

3학년 학생회 선배에게 다른 팀 몫의 아이스크림까지 넘겨준 서준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여행 잘 다녀왔냐?”

“바이올린 연주 진짜 멋있더라!”

정보람과 김하운은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손을 내밀어 서준에게서 아이스크림을 받아갔다. 서준도 그 옆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나눠주고 온 양주희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자리에 앉았다.

“흐. 시원하다…….”

“여기 에어컨이 있는데도 덥더라.”

“사람이 많아서 그래.”

친구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다들 만족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서준이 친구들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커다란 나무 모형에 분홍색 색종이 조각들을 붙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건 뭐야?”

“이번 연극에 쓸 벚나무. 중요한 소품이라서 보기 좋게 꽃잎을 일일이 붙이고 있어.”

“오늘 하루종일 이것만 계속하고 있었다니까.”

탄식하는 정보람과 김하운의 말을 이어 양주희가 씨익 웃으며 서준의 손에 분홍색 색종이와 풀을 쥐여주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하기 딱 좋아.”

자신에 손에 드린 분홍색 색종이 조각과 풀, 그리고 양주희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서준이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무더운 8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고 에이컨이 나오는 곳에서 연기과 학생들은 자잘한 소품을 만들어나갔다. 서준도 친구들과 둥그렇게 모여 앉아 나무 모형에 분홍색 종잇조각을 붙여나갔다. 양주희의 말대로 아무 생각 없이 하기 좋은 일이었다.

서로 방학 동안 있었던 일에 이야기하며 꽃잎을 붙이다 보니 어느새 민숭민숭하던 나무가 꽃잎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 사이사이 빈틈을 찾아내 꽃잎을 붙이던 양주희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희 그거 봤어? 악덕 소속사 기사.”

“아, 봤어. 그런 회사가 있다는 건 알고는 있었는데 상상 이상이었지.”

정보람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데뷔한 애들 우리보다 어리던데…….”

“부모님들도 엄청 마음고생 심하셨겠지.”

서준과 김하운의 말에 근처에서 듣고 있던 학생들까지 그 이야기로 떠들어댔다. 화제의 시작이 아역 배우들인 데다가 예고를 나온 학생이 많아서 그런지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오늘 방송한다던데, 매니저 인터뷰도 나오려나?”

“맞아. 매니저도 대단하더라. 자기 돈까지 쓸 정도로 애들 케어한 것도 그렇고, 애들 때문에 참고 있다가 돈 문제 알고 폭발한 것도 그렇고.”

자신이 칭찬하고 있는 매니저가, 안다호가 자신의 매니저 후보로 점찍고 있는 매니저인지도 모르고 서준은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며 나무에 종이 꽃잎을 붙였다.

* * *

코코아엔터 면접을 포기했던 날.

최태우는 아이들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코코아엔터라는 말에, 다시 한번 해보라는 말에 아이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태우 형. 진짜로 해도 될까요?”

“또 망하면 어떻게 해요?”

“엄마도 아빠도 그만하라는데…….”

“근데 코코아엔터 오디션에서 떨어질까 봐 겁이 나요. 결국, 내가 재능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될까 봐요.”

울먹이며 말하는 아이들에 최태우도 눈물을 삼키며 물었다.

“너흰, 어떻게 하고 싶은데?”

“……해보고 싶어요.”

“그럼 해야지! 너희는 아직 어려! 계속 해도 돼!”

최태우의 말에 아이들이 울면서 웃었다.

그래도 될까. 한 번 더 해봐도. 계속 해도 될까.

“형은요? 태우 형은 배우 매니저 하고 싶다면서요.”

“코코아엔터 매니저 면접 떨어졌어요?”

왜 같이 한번 해보자, 가 아니라 한번 해봐라, 인 거지.

의아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최태우가 쓴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이틀 후.

어쩐지 인터넷이 심상치 않았다.

첫 시작은 아역 배우 문제였다.

예전 아역 배우에 대한 대우, 힘든 촬영, 불공정 계약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역배우 이서준의 등장 이후 줄어들었던 그러한 행태들이, 이서준이 성인이 된 이후 다시금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나 관계자인데 확실히 이서준 배우 나타난 후로 아역 배우 대우가 좋아진 거 맞음.

=22 사람들이 이서준 때문에 아역 배우한테 관심을 많이 줘서, 잘 못 하면 기사 남.

언제부터 조사하고 있었는지 관련된 자료가 상당했다.

머지않은 미래, 최태우는 그것이 배우 이서준 전담 2팀의 블랙리스트 자료라는 걸 알게 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배우 쪽도 심각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사는 ‘배우 이서준’의 이름과 함께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직 데뷔도 못 한 아역 배우 지망생들과 아역 배우만큼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에 소속되어 있는 아이돌 연습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데뷔만 할 수 있다면!

어떠한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더욱 심각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불공정 계약 때문에 오랜 기간 다른 회사에도 가지 못하고 계속 묶여 있는 무명 아이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무려 10년이라는 계약 기간이 모두 끝내고 나서야, 다른 회사에서 데뷔해 유명해진 가수의 일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최태우는 자신이 맡았던 아이들도 이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 계약서와는 반대로 공정한 계약서라는 예시로 어떤 소속사의 계약서도 일부 공개되었다. 그게 코코아엔터의 계약서라는 것도 최태우는 머지않은 미래에 알게 되었다.

자신이 했던 인터뷰도 있었다.

댓글 하나도 없이 잠잠했던 예전과는 달리, 대단한 매니저라며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도 계속 들어왔다. 그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최태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면접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

한 방송의 짧은 코너에서 최태우의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역의 등이 보이고 변형된 최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에 나온 거 우리 회사랑 사장님 맞죠, 형?!

>사장님(X) 사장놈(O) 여튼! 횡령이라니! 태우 형이 횡령이라니!

>소문 때문에 형은 매니저 못하는 거였구나ㅠㅠ

>그래도 이제 다 밝혀졌으니까ㅠ 코코아엔터에 다시 연락해 보면 안 돼요? 형?

쏟아지는 아이들의 메시지 속에서, 낯설고도 낯익은 발신자가 보였다.

>코코아엔터 : 안녕하세요. 코코아엔터입니다. 최태우 씨의 배우 매니저팀 최종 합격을 축하드리며 입사 안내 드립니다.

“……어?”

최태우는 저도 모르게 TV와 휴대폰을 번갈아 보았다.

코코아엔터 면접 이후 나온 방송과 지금 막 도착한 합격 메시지가 과연 우연일까?

어쩐지 최태우는 코코아엔터의 힘을 제대로 느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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