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32화
“저도 궁금하긴 했어요. 안 팀장님이 왜 이 사람, 최태우 씨를 통과시켰는지.”
김수련이 최태우의 이력서를 살펴보며 말했다.
“물론 이것만 빼면, 무명 아이돌이지만 케어한 경력도 있고 안전요원으로 일한 적도 있어서 응급조치를 할 수 있고 위급한 상황에도 먼저 움직일 것 같아서 좋긴 해요. 자기소개서도 마음에 들지만 뭐, 괜히 자소설이라고 불리는 것도 아니니 넘어가고요. 근데 이게, 횡령이 너무 큰 결점이네요.”
김수련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긴 하죠.”
안다호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해서 그냥 탈락시키려고 했지만, 어쩐지 계속 기억에 남은 지원자였다.
“조사 중에 최태우 씨를 기억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좀 있었습니다. 스태프 일도 잘 도와주고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평이 있어서 따로 알아보니,”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얼마나 성실하고 착했다고’ 하고 범죄자의 평소 모습을 증언하는 이웃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서은찬과 김수련이 이어지는 안다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태우 씨가 있던 소속사의 소문이 그다지 안 좋더군요.”
평이 좋은 매니저와 소문이 안 좋은 소속사.
이 둘도 연예계에서 일하면서 온갖 일들을 보고 들었다. 여기는 상상 이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소속사 소문이 안 좋다면…… 조금 의심해 볼 만도 하네요.”
“네. 그래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사장님과 김 팀장님 마음에 안 드시면 합격시킬 생각은 없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웃으며 말하는 안다호의 모습에 서은찬과 김수련이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여기가 코코아엔터.”
멀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최태우가 5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이력서를 내긴 했는데 진짜로 면접까지 올 줄은 몰랐다.
‘너 이 새끼! 이제 여기 발도 못 붙일 줄 알아!!’
하고 외치던 전 사장의 으름장은 역시 허세에 불과했나 보다.
하긴, 무명 아이돌 하나 있는 소형 기획사의 사장이 ‘그’ 코코아엔터에 힘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소문은 좀 퍼진 것 같던데…….”
그 소문 때문에, 아는 사람을 통해 한 기획사에 들어갔다가 하루 만에 잘린 일을 떠올린 최태우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코코아엔터는 모르는 걸까? 그렇다면 미리 말하는 게 좋을까? 만약 합격해서 배우를 맡게 된 후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면 배우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가지 않을까?
‘이제라도 돌아가는 편이 좋으려나.’
근데 막상 돌아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코코아엔터다.
월급도 많이 주고 복지도 좋은 코코아엔터.
“그리고…….”
할리우드 배우, 이서준이 있는 곳.
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떠올리며 최태우는 코코아엔터를 바라보았다.
그때, 회사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최태우를 보고 경비원이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최태우가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거렸다.
아직 면접 볼지 안 볼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그러다가 점점 날카로워지는 경비원의 눈초리에 얼른 입을 열었다.
“오, 오늘 매니저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최태우라고 합니다!”
그 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확인한 경비원이 빙그레 웃으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코코아엔터라서 그런가, 경비원도 다른 경비원들과 뭔가 달라 보였다.
경비원을 따라 들어간 코코아엔터의 로비는 이서준 배우의 포스터와 네 아이돌그룹의 포스터로 꾸며져 있었다.
가수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역시 시선이 가는 건 이서준 배우의 포스터들이었다.
몇 번이고 봤던 작품들이고 포스터지만, 걸려 있는 곳이 코코아엔터라서 그런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 네! 네!”
어느새 팬의 마음으로 넋 놓고 구경하고 있던 최태우는 벌어질 것 같은 입을 꾹 다물고 안내받은 면접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다음이네요.”
서은찬의 말에 김수련도 안다호도 팔랑, 이력서를 넘겼다. 많은 면접자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문제의 면접자, 최태우의 차례였다.
면접실의 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세 사람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남자의 모습을 살폈다.
뚫어질 듯 면접관들의 시선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지만, 최태우는 티 내지 않고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매니저에 지원한 최태우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안다호의 말에 최태우가 조금 뻣뻣한 움직임으로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면접이 시작되었다.
“매니저라면 배우와 자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을 텐데, 영화나 드라마는 자주 보십니까?”
“네.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있습니다.”
“배우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나요?”
“네. 인상 깊은 연기를 하는 배우라면 다음 영화까지 찾아보기도 합니다.”
정말로 횡령에 대한 소문은 모르는 걸까?
이어지는 질문들은 보통의 면접 질문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럼 지금 하고 있는 KBC 주말드라마의 막내아들 역에 배우를 추천한다면 어떤 배우가 좋을 것 같습니까?”
“아, 그건…….”
“이서준 배우 빼고요.”
아니, 조금 어려웠다.
안다호의 질문에 최태우는 지금 가장 화제인 KBC 주말드라마와 그 드라마에 나오는 막내아들을 떠올렸다. 사고뭉치의 막내아들 역. 지금 배우도 잘하지만, 더욱 어울리는 배우가 있었다.
“저는 한지호 배우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최태우는 한지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이야기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그 침착한 모습에 서은찬과 김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 매니저 면접이니만큼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한다고, 배우들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말하는 면접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에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취향이 아니라서 안 봤다는 사람도 있었지.’
안다호는 친절하게 다른 작품에 나오는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물었지만, 그 면접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럼 만약에 최태우 씨가 강재한 배우의 매니저인데, 강재한 배우가 그 역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회사에서는 반대하는 상황입니다.”
한지호와 강재한.
실제 성격은 모르지만, 이미지만 보면 전혀 반대의 두 배우였다. 거기다 회사에서 반대한다고 하니, 최태우는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정말 하고 싶은 배역이라면, 배우와 함께 노력할 것 같습니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새로운 캐릭터를 멋지게 해낸다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회사’를 대표하는 면접관 앞에서 이래도 되나 싶지만, 최태우는 ‘회사를 설득해 보겠다’고 최대한 돌려서 말했다.
그런 최태우의 모습에 세 면접관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보통의 소속사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배우에게 많은 자유를 줄 예정인 코코아엔터에서는 좋은 대답이었다.
어떻게 배우를 서포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질수록 최태우의 생각은 깊어졌다.
배우가 빛날 수 있도록 서포터 해야 하는 게 매니저였다.
자신이 문제가 된다는 걸 알고도 입사할 만큼 최태우는 뻔뻔하지 못했다.
질문이 잦아들 무렵, 최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마침 마지막 질문을 하려던 안다호가 고개를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제가…… 저한테 안 좋은 소문이 붙어 있습니다. 아마 그게 나중에 배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면접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최태우의 말에 세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다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최태우에게 물었다.
“어떤 소문입니까?”
“횡, 령입니다. 제가 한 건 아닙니다만…… 전 회사와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소문이 퍼졌습니다.”
면접실이 조용해졌다.
최태우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서은찬과 김수련이 눈을 마주쳤다가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저희도 알고 있었습니다.”
“네?! 아, 네…… 알고 계셨군요. 근데 왜 저를 면접에……?”
최태우가 깜짝 놀랐다가 의아한 듯 눈을 끔벅였다.
“먼저 조사를 한 것부터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배우랑 계속 같이 있는 직업이다 보니 여러모로 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몇몇 스태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때문에 최태우 씨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안다호가 빙그레 웃었다.
“현장에서 스태프들도 도와주고 담당 아이돌 모니터링도 성실히 하고 담당 아이돌 멤버들과 사이도 좋은, 좋은 매니저라고 하더군요.”
“아…….”
최태우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소문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마음이 술렁였다.
그런 최태우를 보며 안다호가 말을 이었다.
“전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희는 최태우 씨가 참 마음에 듭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게…….”
마음에 들었다는 말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최태우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전에 있던 소속사는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아 애들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회사 카드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막히는 바람에…… 그렇다고 저보다 어린 애들을 굶게 할 수는 없어서 제 카드로 계산했습니다.”
애들 밥을 안 줬어?!
은수 밥 먹이는 데에 진심인 서은찬과 김수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준의 식사를 챙기는데 진심인 안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점심 먹고 있으려나?’
블루문에게 부탁했는데 잘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최태우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스타일리스트는커녕 의상비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화려한 건 아니더라도 단정해야 할 것 같아서 깨끗한 옷으로 사서 입히고…….”
의상도 없고?!
“방송에 나가야 하니까 피디들에게 돌릴 음료수도 제 돈으로 사고, 애들 행사 뛰려면 차도 필요하니까 제 차를 이용했습니다.”
차도?!
“처음에는 영수증을 내면 월말쯤 돈을 줬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돈을 받는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가끔 월급도 제대로 안 나왔고요.”
안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서준을 케어하기에는 순한 성격이 좋긴 했지만, 약육강식의 연예계에서는 호구 같은 성격은 독이 되기 쉬웠다.
서준을 출연시키려고 하는 피디들을 막아설 배짱도,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결단력도 필요했다.
그런 안다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태우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활동을 하던 때…….”
최태우가 무겁게 내뱉었다.
“아이들의 부모님이 사장에게 돈을 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한 모양이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넉넉한 살림도 아니신데…….”
최태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에 준 금액은 적어서 겨우 케이블밖에 못 나갔습니다. 보셨죠? 방송? 아, 지상파요? 지상파에 나가고 싶으면 더 많이 주셔야죠. 투자입니다. 투자! 지상파에만 나가면 애들은 금방 유명해질 겁니다! 애들이 능력은 있는데 기회를 못 잡아서 그래요! 기회만 잡으면, 그 뭐냐, 블루문? 블루문 아시죠? 블루문은 그냥 이깁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이 가격으로 출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도 몰랐던 모양인지 많이 충격받았고요.”
최태우의 이야기에 서은찬과 김수련이 이마를 짚었다.
케이블 방송에도 나갔으니 조금만 더하면 될지도 모른다고, 태우 형이 내준 비용의 따따블로 갚겠다며 말하며 눈을 반짝이던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순식간에 죽어버린 눈에, 아이들만 생각하며 참고 있었던 최태우가 폭발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못 참고 한바탕하고 나왔죠. 애들 부모님에게 돈 돌려주고 비용으로 나간 돈이랑 밀린 월급도 받고.”
“그걸 순순히 줬어요?”
“뭐…… 순순히 주진 않았습니다.”
최태우가 눈을 데굴 굴리자 서은찬과 김수련이 허어, 탄성을 흘렸다. 순할 줄 알았더니 한 방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애들 때문에 참은 거군.’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안다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횡령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거군요.”
“네. 아니라고 말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전 사장이 저보다는 인맥이 넓으니까 당해내질 못하겠더라고요.”
최태우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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