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31화
“안녕하세요. 영화객입니다!”
-영하!
-하영!
“네. 모두 반갑습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보시는 분들이 많네요. 새벽 12시 55분. 이제 5분 뒤면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의 연주회 영상이 공개됩니다. 왜 영화가 아니라 연주회 영상을 보냐고요? 그레이 바이니가 나오니까요!”
-월드투어 시작한 게 영화객이잖아ㅋㅋㅋ
-그레이 바이니가 나오는데 빠질 수가 없지ㅋ
“오케스트라 단원 중 하나라서 잘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레이 바이니의 팬으로서 꼭 봐야죠! 근데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꼭 생존자들 감독판 기다릴 때 같은 기분이네요.”
-ㅋㅋㅋ그땐 진짜ㅋㅋㅋ
-한 치 앞도 모르던 과거의 나ㅋㅋㅋ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점점 썩어들어 갔지…….
“그래도 이번 건 연주회라서 마음의 각오는 안 하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진짜 실황 녹화라는 게 충격적이긴 했지만요.”
-이쯤 되니 객관적으로 알고 싶다. 이서준 바이올린 실력.
-222 이 정도면 대회 나가도 되지 않음?
-막상 상 타도 안 믿길 듯ㅋㅋㅋ
-갑자기 뉴스에서 ‘배우 이서준 콩쿠르 수상’ 기사 뜰지도ㅋㅋㅋ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화제가 되는 이서준 배우라면 진짜 그럴 것 같네요.”
하하 웃던 영화객이 한 댓글을 발견했다.
-난 클래식 1도 모르는데 보다가 잘 것 같음ㅠㅠ
“저도 그렇습니다. 클래식은 전혀 몰라요. 오버 더 레인보우를 좋아하는 팬일 뿐이죠. 그래도 뭐,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영화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니터에 [새싹부터]에 새롭게 올라온 공지를 띄웠다.
“오버 더 레인보우 팬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이벤트가 있습니다. 이서준 배우의 팬카페인 새싹부터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로, 아마 한 달 뒤쯤 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이벤트에요?
“모두 플러스 어떻게 보시나요? 휴대폰, 노트북, TV 등으로 보시죠? 이렇게 보시는 분 중에 소리가 나오는 스피커와 작은 화면이 마음에 안 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영화객이 [공지 :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 연주회 상영 예정] 게시글을 시청자들에게 천천히 보여주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새싹부터에서 준비했답니다. 영화관을 빌려 플러스에 업로드될 실황 영상을 상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코코아엔터와 협력해서 열리는 이벤트로, 여러 가지 기념품들도 판매하고요.”
공지에는 기념품들의 이미지 컷도 올라와 있었다.
제이슨 무어의 포스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단체 사진 포스터, 코코아엔터가 다시 제작한 G.B.의 이름이 포함된 팸플릿, 무대에서의 그레이 바이니의 사진 등이 있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가 보면 좋겠네요.”
-ㅠㅠ 기념 티켓은 없어요? 저 그땐 관심 없어서 못 샀는데ㅠㅠ
-22 나도 늦게 영화 봤는데 되게 갖고 싶더라ㅜㅜ
-이래서 입덕은 빠를수록 좋은 것.
-빨리 입덕하면 뭐해ㅠ 나 기념 티켓 이사하다가 잃어버림ㅠㅠ
-ㅠㅠㅠㅠ
-새 기념 티켓도 나오면 좋을 듯.
영화객도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기념 티켓은 웨일 스튜디오에서 관리하는 거라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이번 연주회는 그레이 바이니의 연주회가 아니라 제이슨 무어의 연주회니까요.”
-ㅠㅠ 오버 더 레인보우 2 내주라ㅠ
-아님 재상영해서 기념 티켓 팔든가ㅠ
-돈을 준다는데 왜 안 팔아……
“그러니까요.”
잠깐 시청자들과 함께 웨일 스튜디오의 뒷담화를 하던 영화객이 시계를 보고 입을 열었다.
“벌써 1시가 넘었네요. 그럼 이제 연주회를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작권 때문에 화면이랑 소리는 안 나가고 제 모습만 나옵니다. 리액션 영상처럼요. 그리고 1부에는 제이슨 무어의 독주만 나오고 2부에만 그레이 바이니, 이서준 배우가 나온다고 하니, 이서준 배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2부부터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영화객이 거실로 나가 미리 세팅해 둔 TV 앞에 앉았다. 플러스+에 들어가 보니 벌써 실황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청 시작하겠습니다.”
-나도 보긴 할 건데…… 보다가 잠들지만 않았으면…….
-222 나도 잘 것 같다ㅋㅋㅋ
-2부 시작하면 깨워줘요!
영화객은 사실 자신도 그렇다는 말을 삼키고 소파에 앉았다. 영화라면 지루한 영화도 제법 잘 보지만.
‘클래식 연주는 영…….’
[오버 더 레인보우]의 스핀오프라고 생각하면 덜 졸릴까, 생각하며 영화객은 재생버튼을 눌렀다.
곧 최신형 스피커에서 실황임을 증명하는 듯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무대 위로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가 걸어 나와, 바이올린에 턱을 괬다.
‘저게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그레이 바이니가 연주했던 스트라디바리우스. 편집 영상에 설명 넣어야겠다.’
적막 속.
영화객이 편집 영상의 자막을 생각하고 있을 때,
----!
강렬한 첫 음이 터져 나왔다.
느긋하게 감상하려고 조금 늘어져 있던 영화객의 상체가 반사적으로 바짝 섰다. 늦은 시간, 찌뿌둥한 몸을 움직이며 하품을 하던 시청자들도 몸을 움찔 떨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폭풍이 몰아쳤다.
단 하나의 바이올린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선율이 천둥처럼 영화객과 시청자들의 귀를 파고들어 온몸을 울렸다.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이 제이슨 무어.’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의 이름이 클래식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의 뇌리를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숨통을 조이는 듯한 1부가 지나가고 잠깐의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영화객과 시청자들은 겨우겨우 숨을 내쉬었다.
와아, 감탄하던 영화객이 얼른 소리를 켰다. 댓글들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와씨……이게 뭐야…….
-클래식이라며……클래식이라며……!
-내가 알던 클래식이 아닌데요?!
“어, 저도 클래식은 잘 모르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솔직히 2부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연주회를 본 사람들이 극찬을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근데 이거 실황보다는 못함.
-헐. 보셨어요? 실황?
-ㅇㅇ이것도 대단하긴 한데, 실황은 진짜…… 계속 박수만 치게 됨.
-와…… 이것보다 더? 상상도 안 됨;;;
-이건 진짜 영화관 가서 봐야겠다…….
-2부도 기대하셈.
“네! 이제 2부 시작하네요.”
무대 위, 의자에 앉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보였다.
영화객은 제1 바이올린들 사이에서 이서준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낯선 외국인들 사이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싶을 때,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르고 오케스트라의 묵직한 첫 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순간 모든 생각을 빼앗긴 것만 같았다.
딴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오케스트라가 몰아치고 제이슨 무어가 숨이 막힐 것 같은 연주를 이어나가고, 다시 오케스트라가 둥둥, 심장 소리처럼 낮은음을 흘려보내고 바이올린 소리가 날카로운 검처럼 파고들었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듣고 있으려니,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새 화면 속 연주자들이 꾸벅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영상 속 관객들이 그렇듯 제이슨 무어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영화객이 정신을 차렸다.
“진짜 미쳤다……!”
하고 감탄하면서 연주자들에게는 닿지 않을, 열렬한 박수를 보내던 영화객은 문득 든 생각에 저도 모르게 허어, 입을 벌렸다.
“……근데 여기에 이서준 배우가 있다고?”
* * *
“서준이 진짜 콩쿠르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 기사도 엄청 떴잖아!”
“그러게.”
자료실로 향하는 박이든과 정은성이 오늘 새벽, 플러스+에 업로드된 [제이슨 무어의 연주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넷도 그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이서준이라면 잘하겠지!’ 하던 사람들마저도,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무대에 ‘진짜 여기 이서준이 있다고?’ 하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의심하기에는 영상에 확실하게 나오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진짜 콩쿠르 가야 할 것 같은데(진지)
-적당히 잘하나 싶었는데…… 프로급이야;;;
-몇 번을 들어도 저 오케스트라에 현직 배우가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음.
-22 그것도 이제 20살.
-제이슨 무어도 진짜 잘함.
“외국 반응도 비슷하더라. 다들 왜 극찬했는지 알 것 같다고 그러고. 연주하던 사람 중에 일반인이 있었냐고 놀라던데.”
“일반인은 아니지!”
정은성의 말에 박이든이 킬킬 웃으며 자료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 열고 들어가니 많은 책장들 사이, 철제의자에 앉아 대본을 읽고 있는 서준이 보였다.
서준은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후, 매일같이 코코아엔터에 출석하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어도 자료실에 꿀이라도 발라놨는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은 안다호가 연락하거나 데리러 왔는데, 오늘은 면접을 봐야 해서 박이든과 정은성에게 부탁했다.
서준의 앞에는 두 개의 박스가 있었는데, 하나는 신사옥으로 가져갈 대본을 넣는 박스였고 하나는 버리는 대본을 넣는 박스였다.
“묘하게 가져갈 대본 박스만 가득 차 있는 건 내 기분 탓이야?”
“아니.”
박이든의 속삭임에 정은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소리가 조용한 자료실을 울렸다.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어? 너희가 여긴 왜 왔어?”
“2팀장님이 부탁하셨어. 밥 먹으러 가자.”
“오늘 LA갈비래!”
“아, 그래. 잠시만.”
서준이 옆에 쌓아 두었던 대본을 정리했다. 이미 읽은 모양인지 세 권을 빼놓고는 모조리 ‘가져갈 박스’ 안에 넣었다. 박이든이 두 박스를 번갈아 보다 말했다.
“너 진짜 중요한 것만 가져가는 거 맞아?”
“으응. 그렇지?”
“……왜 시선을 피해?”
시선을 피하는 서준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박이든의 모습에 정은성이 웃으며 말했다.
“꼭 그거 같다. 나중에 입어야지 하고 놓아두고 안 입는 옷들.”
“그래! 어차피 자료실에 두고 읽지도 않을 거 정리해!”
“아아니, 그래도.”
서준이 눈을 데굴 굴리며 변명했다.
“아까운 걸 어떻게 해.”
“아깝다고 생각하다가 신사옥 자료실 터지는 거 아니야?”
“다호 형이 모자라면 자료실 하나 더 만들어준대.”
서준의 말에 박이든과 정은성이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이게 사장님 조카의 힘이었다. 아니, 2팀장님이 만들어준다고 하니까 잘나가는 배우의 힘인가.
“그럼 뭐 다 챙겨가도 되겠네.”
“은성아. 우리도 연습실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할까? 녹음실이나.”
“오. 개인연습 더 하려고? 성실하네, 박이든.”
“……아니! 없어도 괜찮은 것 같아.”
질색하며 고개를 젓는 박이든의 모습에 서준과 정은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새로 들어오는 분들도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어?”
“그분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다시 검토해야 할 것 같더라. 다호 형이나 2팀 형누나들이라면 믿을 수 있지만,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은 조금 불안해서 말이야.”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은성이 자료실을 둘러보았다.
“어쩐지 이 자료실 그대로 신사옥으로 갈 것 같은 예감이 드네.”
서준도 그런 기분이 들어 하하, 웃고 말았다.
* * *
코코아엔터 면접실.
매니저 면접을 앞두고 코코아엔터 서은찬과 2팀 팀장 안다호, 홍보팀장 김수련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뽑는 매니저는 전부 배우팀 소속이 될 예정이라 가수팀 팀장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배우들 반응은 어때요?”
“대부분 승낙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남은 분들도 기간이 끝나면 오기로 했고요.”
“대부분이라면 안 오시는 배우들도 있다는 거네요.”
김수련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배우팀의 능력이 의심하는 모양입니다.”
“능력을요? 서준이가 있는데요?”
“그래서 더 그렇죠.”
의아해하는 서은찬에 김수련이 대답했다.
“서준이는 뭐랄까. 코코아엔터의 서포터를 받고 컸다기보다는 알아서 큰 거니까요. 쉐도우맨2까지도 혼자서 잘했고, 그 이후에도 저희가 뭘 하기도 전에 먼저 작품들이 들어왔잖아요.”
“네. 그래서 조금 의심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슈퍼스타를 서포터하는 능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신인은? 무명배우는? 중견급 배우는?
이서준 배우를 빼면, 코코아엔터 배우팀은 배우를 키우는 것이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지 않나, 하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안다호의 설명에 서은찬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온다면 할 수 없는 일이죠. 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배우팀이 12년을 그냥 보낸 건 아니잖아요? 우리를 믿어준 배우분들을 열심히 키워서 후회하게 해줍시다.”
서은찬의 말에 김수련과 안다호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코코아엔터 소속이 될 배우들과 배우가 데리고 올 매니저, 스타일리스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이 면접 시간이 점점 가까워졌다.
면접자들의 이력서와 2팀이 조사한 내용을 팔랑팔랑 넘겨보던 서은찬이 입을 열었다.
“으음. 안 팀장님.”
“예. 사장님.”
“이력서 받았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진짜 이 사람 뽑았어요?”
“예.”
“진짜로?”
“예.”
“왜요?”
끈질긴 질문에 아내 김수련이 ‘안 팀장님도 다 생각이 있겠지!’하고 속삭이며 남편 서은찬의 옆구리를 찔렀다. 옆구리를 잡고 윽, 신음을 뱉는 서은찬을 보며 안다호가 쓰게 웃으며 2팀이 조사한 내용을 바라보았다.
-횡령으로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함.
서은찬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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