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28화
귀국 이틀 전.
서준과 아이들은 마지막 여행지인 영국 런던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런던 템즈강변에 위치한 거대한 관람차, 런던아이에 올라 런던 시내를 둘러보기도 하고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끝에 있는 시계탑 빅벤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다음으로는 세인트 제임스 공원을 거쳐 영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
황금색 동상,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를 지나면 버킹엄 궁전이 나온다.
“와! 저거 로열 스탠더드지?”
미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서준과 아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버킹엄 궁전 맨 꼭대기, 깃발 대에 깃발이 하나 펄럭이고 있었다.
왕의 깃발이라고 하는 로열 스탠더드.
여왕이 버킹엄 궁전에 머무르고 있을 때 게양하는 깃발이었다.
여왕이 머무르지 않을 때는 국기인 유니언 잭을 게양한다고 한다.
“지금 여왕님이 저기 계신다는 거네…… 완전 신기하다.”
“그러게.”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봤던 영국 왕실의 사람들이 지금 저 건물 안에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서준과 아이들 주변에 있던 관광객들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신기해하며 버킹엄 궁전 꼭대기에 달린 로열 스탠더드를 카메라로 찍어댔다.
잠시 후.
버킹엄 궁전의 또 하나의 볼거리인 근위병 교대식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왔다. 버킹엄 궁전 마당에 열을 맞춰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준과 아이들에게 익숙한, 검은 모자를 쓰고 붉은색 상의를 입고 검은 바지를 입은 근위병들이었다.
서준과 아이들은 버킹엄 궁전 입구 근처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황금색 왕가의 문양이 달린 검은색 정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일단의 근위병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열을 맞추어 걸음을 옮겼다.
규모가 커서 그런지, 그 뒤로도 새로운 악기들을 든 근위병들의 걸음이 이어졌다.
“마지막인가 봐.”
지후의 말대로, 총을 든 근위병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밖으로 나오자 검은색 정문이 천천히 닫혔다. 멀어지는 근위병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말을 탄 경찰들이 그 뒤를 쫓았다.
근위병들이 보이지 않자, 하나둘 자리를 뜨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우리도 갈까?”
“그래!”
서준과 아이들도 들뜬 얼굴로 다음 관광지로 출발했다.
* * *
그날 밤.
평소와 다름없이 생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서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들고 있던 책을 덮었다.
[황금 인어]
3월부터 읽기 시작해 오늘로 5개월째.
드디어 인어 왕국의 둘째 왕자로 태어나, 대륙을 살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상회를 이끌었고, 끝내 신의 자리에 올랐던 요리와 상업의 신, 파르비타의 책을 모두 읽었다.
“간간이 다른 삶의 책을 읽기도 했지만, 확실히 다른 책들에 비해 오래 걸렸어.”
서준이 눈앞에 나타난 구슬을 손에 쥐었다. 나침반 무늬가 새겨진 구슬이었다.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최상급-]
요리와 상업의 신, 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입니다.
소유자가 가장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게 해줍니다.
설명은 단순하지만 최상급인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여기 파르비타의 나침반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오늘도 열심히 일한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까워지는 버스정류장을 바라본다. 다행히도 거세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버스정류장에 내린 그는 오늘 집으로 가야 할 길을 결정해야 했다. 오른쪽으로 가도, 왼쪽으로 가도 거리는 비슷하다. 그는 ‘왠지 오늘은 오른쪽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잘못된 선택일까.
도로와 인도가 만나는 곳, 큰 웅덩이가 있었다.
그걸 모르고 걷고 있던 그의 옆으로 커다란 트럭이 지나갔다. 빠른 속도에 트럭의 바퀴가 웅덩이를 빠르게 휩쓸고 지나간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비와 흙이 섞인 흙탕물이 허공으로 튄다.
촤아아악!
그는 갑자기 들이닥친 흙탕물 세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진창이 된 그의 모습에 인도를 걷고 있던 사람들이 조금 멀어졌다.
‘……왼쪽으로 갈걸.’
역시 운이 쥐똥만큼도 없구나, 생각하며 물티슈라도 사기 위해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놀라는 알바의 모습에 미안한 듯 웃으며 물티슈 좀 가져와 달라는 그. 바닥청소를 하기 싫은 알바생이 얼른 물티슈를 가지고 왔다. 주머니에 있던 현금으로 계산하는데 돈이 조금 남았다.
그의 눈에 계산대에서 광고하고 있던 복권으로 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동으로 복권도 하나 산 그가 물티슈를 꺼내 여기저기 닦아본다. 하지만 티도 나지 않는다.
‘……집에나 가자.’
지친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한 그는 다시는 오른쪽 길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샤워를 한다.
며칠 후.
별생각 없이 산 복권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당첨 번호를 맞춰보는 그.
<1등 당첨>
‘……엑?!’
그렇게 그는, 그의 일생일대의 소원대로 부자가 되었다.
여기서 ‘왠지 오늘은 오른쪽으로 가고 싶다’가 [(선)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의 능력이었다.
만약 오른쪽으로 가지 않았다면, 흙탕물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편의점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복권을 사지 못했으리라.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더 큰 기회로.
[(선)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은 그렇게 미래를 내다보고, 소유자의 선택에 무의식적으로 간섭하며, 위기나 불운이라고 생각하던 것도 지나고 보면 다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주는 능력을 가졌다.
마치, 절벽에서 떨어져도 기연을 얻는 소설 속 주인공 같은.
그 소원이 세계 평화든, 세계정복이든. 신이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소원이라도 [(선)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은 기꺼이 이루어줄 것이었다.
“물론, 선의 능력이니만큼 좋은 쪽이어야겠지만.”
세계 평화, 세계 정복이라니. 어마어마하다.
평범한(?) 서준은 엄두도 못 낼 규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큼의 결과라면 항상 기회만 있지는 않을 거다. 어떤 무시무시한 시련과 고난이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서준이 나침반 무늬가 새겨진 구슬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유자의 소원을 지정하지 못한다라…….”
소유자가 바라는 것.
서준의 소원이라면 슈퍼스타.
지윤의 소원이라면 베스트셀러 작가, 미나의 소원이라면 유명한 요리사, 지후의 소원이라면 훌륭한 의사, 지오의 소원이라면 세계적인 축구선수.
‘그럼 다호 형은?’
매니저의 소원이라면 보통,
“……독립?”
서준은 저도 모르게 시무룩해졌다.
세계평화나 세계정복 같은 소원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최상급의 능력이니, 독립 정도야 식은 죽 먹기일 터였다.
“……아니면 의외로 무병장수 같은 걸까?”
[(선)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은 소유자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마음속 깊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능력이니 의외로 그런 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상급치고는 되게 애매모호하네.”
소원을 설정할 수도 없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알 수도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선의 능력인 데다가 최상급이니까, 괜찮겠지.”
다호 형은 과연 어떤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을까.
의외로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서준은 눈을 떴다.
* * *
서준과 아이들은 관광도 하고 기념품도 사며 런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거 예쁘다!”
“가격도 괜찮아.”
그동안에도 이 나라 저 나라를 구경하며 자잘한 기념품을 사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동할 나라가 있다 보니 짐이 많아질 것 같아 조금 자제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한국 가니까 많이 사도 돼!”
지윤이 눈을 빛냈다. 서준과 미나, 지후도 들뜬 얼굴로 한국에 있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바쁘게 이 가게 저 가게 둘러보았다.
“우리 벼룩시장에도 가 볼까?”
“그러자!”
런던의 벼룩시장이라는 카부트 세일.
옷, 가방, 장신구, 장난감 등 온갖 앤티크한 물건들이 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들리는 곳이었다.
서준과 아이들이 가장 규모가 큰 카부트 세일 장소에 도착했다. 사려는 사람들과 팔려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서준과 아이들도 얼른 그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영화 보면 이런 물건에 귀신들이 붙어 있던데…….”
조금 무섭게 생긴 창백한 도자기 인형를 보며 지후가 말하자, 지윤과 미나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인형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서준이 웃으며 테이블 위를 살펴보았다. 이 테이블은 앤티크 장식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마침 서준에게 필요했던 물건이기도 했다.
“/실례합니다. 이거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그래./”
서준이 그것을 손에 들었다.
은색의 뚜껑이 열려 있는 나침반이었다. 서준은 나침반을 들어 뚜껑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이런 뚜껑이 달린 건 회중시계가 보통일 텐데, 나침반이라니 신기했다.
읽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은 노인이 안경을 바로 쓰며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만든 거야. 시계 만들 실력은 안 돼서 나침반이나 겨우 만들었지./”
“/와. 직접 만드신 거구나. 멋져요! 이건 무슨 꽃이에요?/”
은색 뚜껑 위에 양각으로 새겨진 꽃무늬가 있었다. 볼록 튀어나온 꽃문양은 풍성한 꽃잎과 안의 수술과 암술도 섬세했다.
“/겹작약이야. 영국에서 옛날부터 약재나 식용으로 많이 쓰였지./”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또 목걸이에 엮어서 수호 부적으로도 썼단다./”
오.
의미도 좋은 것 같다.
나침반이 마음에 든 서준이 가격을 묻자, 취미 삼아 매주 벼룩시장에 나오는 노인은 웃으며 적당한 가격을 불렀다.
“뭐 샀어?”
근처에서 다른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 서준이 물건을 산 것 같자, 다가와 물었다.
“응. 다호 형 선물.”
“예쁘네. 시계야?”
“아니. 나침반이야. 너희는 뭐 샀어?”
“난 이거! 손수건! 직접 만드셨대.”
서준과 아이들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 * *
내일이면 귀국한다는 아쉬움에 늦게까지 깨어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잠들었다.
가장 늦게까지 깨어 있던 서준이 조용히 움직였다.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을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필요한 재료는 최상급에 걸맞은 막대한 마나와 능력을 새길 물건, 나침반.
지후가 깨지 않도록, 테이블에 앉아 작은 조명을 켠 서준은 오늘 벼룩시장에서 산 겹작약 무늬가 새겨진 나침반을 꺼내 작업을 시작했다.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을 제작합니다.]
서준의 몸에서 빠져나온 새하얀 선기가 물결처럼 일렁이며 나침반에 스며들었다. 계속, 계속 스며들었다.
‘……언제까지 들어가는 거지?’
자그마한 나침반에 들어가는 선기의 양은, 실체가 없는 에너지인데도 터질까 봐 약간 걱정이 될 정도였다.
서준이 사용해 본 최상급 능력은 [(선)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선)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은 예외적인 능력이라 아기였던 서준도 쓸 수 있었지만, 제대로 얻게 된 최상급의 능력에 필요한 마나의 양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려나?’
만약 서준이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이 부족하다면, 앞으로 최상급 능력을 쓰는 건 조금 힘들어질지도 몰랐다. 제작 같은 경우에는 며칠이고 마나를 모을 수 있지만, 단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능력일 경우에는 마나가 부족할 테니까 말이다.
‘뭐,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도 늘어나겠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서준도 몰랐다.
다행히도, 그런 서준의 예상과 달리, 서준이 가지고 있던 선기를 다 쏟아붓고 나자 제작을 완료했다는 알림이 떴다.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을 제작을 완료했습니다.]
뚜껑에 새겨진 밋밋한 은색의 겹작약꽃이 묘하게 푸른빛과 금빛의 빛이 도는 듯했다. 마치 파르비타의 책처럼.
서준이 신기한 얼굴로 능력을 발동시켜 봤다.
자신의 소원인 ‘슈퍼스타’에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선/제작)황금 인어 파르비타의 나침반이 방향을 가리킵니다.]
북쪽과 남쪽을 가리키고 있던 나침반의 바늘이 빙그르르 돌다가, 천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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