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27화
폭풍 같은 1부가 지나갔다.
제이슨 무어와 피아니스트가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 위를 떠나고, 막이 내려와서야 관객석에서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커다란 박수 소리가 제1 연주홀을 뒤덮었다.
“대단하다! 진짜 숨소리도 못 내고 들었어!”
“나도! 막 소름이 돋더라!”
초대석에 앉은 서준의 친구들도 두근두근 뛰는 심장 고동을 느끼며 열심히 손뼉을 쳤다.
지후의 초대를 받은 알베르 교수도, 찰리 아버지도, 사라 웰튼도 열렬히 박수를 보냈고,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잡은 벤자민 교수도 흐뭇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다른 관객들도 예상보다 더 대단한 연주에 자신의 벅찬 마음을 일행과 나누고 있어 관객석은 박수 소리와 말소리로 제법 웅성거리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다! 나 클래식은 잘 모르는데 제이슨 무어는 진짜 천재인 것 같아. 아쉽네. 나도 너처럼 앞 회차 연주회도 볼걸.”
한 번만 보기엔 아쉬운 공연이야, 하고 한 관객이 옆자리에 앉은 제이슨 무어의 팬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야.”
“응?”
“……나도 이런 연주는 처음 들어.”
그제서야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환희와 감격이 뒤섞여 상기된 얼굴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그렁그렁한 상태였다.
다른 제이슨 무어의 팬들도 비슷한 모습이었고, 그중에는 조금 전 연주로 팬이 된 일반 관객들도 있었다.
마냥 감격해하며 오늘로 유럽 투어가 끝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제이슨 무어의 팬들과 일반 관객들과는 달리, 음악계 관계자들은 넋을 놓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자세를 바꾸고 있었다.
“크흠. 제이슨 무어의 독주는 들어줄 만하지.”
“뭐, 뭐…… 예상대로구만.”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모습과 달리, 긴장과 흥분으로 꽉 잡고 있던 두 손이 땀에 젖어 있었다.
조그마한 흠만 보여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려고 했던 기자들도 그저 자신이 느낀 감상을 그대로 메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연주였다.
“벤자민 교수가 괴물을 키웠구만.”
바이에른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가 긴장과 흥분으로 굳어 있던 몸을 풀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악장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탄과 함께 조금의 질투도 스며든 얼굴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악장이니 그럴 만도 했다.
“2부는 오케스트라 협연이라고?”
“네. 단원들과 지휘자는 오디션으로 뽑았다고 합니다. 인원은 40명쯤, 챔버 오케스트라네요.”
연주자가 50명이 훌쩍 넘는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와 달리, 30~40명쯤 되는 작은 오케스트라를 챔버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다.
악장이 팸플릿을 살펴보았다.
“지휘자는 데릭 로츠, 저번에 한 번 봤었죠. 팸플릿에는 없지만,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리 바실리예프도 제1 바이올린으로 참여한다고 합니다.”
“오케스트라 바이올린치고는 호화롭군.”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유성 최와 나탈리…….”
악장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제이슨 무어와 벤자민 교수가 고르고 고른 만큼 악장과 마에스트로도 한 번쯤 들어본 이름들이었다.
아직 자신의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받아들이기엔 부족하지만.
“G.B.? 처음 듣는 이름인데…….”
낯선 이름을 발견한 악장이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떠올려 봤다. 딱히 생각나는 인물은 없었다.
“독주는 잘했지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좀 다르지. 오디션으로 모은 오케스트라가 제이슨 무어의 실력에 맞춰서 연주할 수 있을지…….”
“오케스트라의 실력에 맞추기 위해 제이슨 무어가 힘을 빼고 연주할 수도 있죠.”
그렇게 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 전 그 화려한 연주를 듣지 못하게 됐으니 말이다.
“제이슨 무어의 바이올린만 들어보면 되네. 오케스트라 단원은 신경 쓰지 말자고.”
마에스트로의 말에 악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팸플릿을 접었다.
바이에른 오케스트라가 다음 협연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후보 중 하나가 제이슨 무어였다. 후보 중 하나라고 해도 이미 마에스트로와 악장은 90% 넘어간 상태였지만.
“네. 우리 오케스트라라면 제이슨 무어의 연주에 잘 맞출 수 있을 겁니다.”
자부심이 가득한 악장의 말에 마에스트로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삐----
알림과 함께 무대의 막이 올라갔다.
쉬는 시간 동안 옮겨놓은 의자에 앉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보였다.
아이들이 서준을 발견했다. 정장을 입고 바이올린을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정말 오케스트라 단원다워 작게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무대의 주인공이 서준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알고 있는 서준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항상 반짝였으니까 말이다.
곧이어 지휘자 데릭 로츠와 오늘의 주인공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가 무대 옆에서 걸어 나왔다.
관객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각자의 위치로 간 두 사람.
지휘자 데릭 로츠가 단원들을 한 번 둘러보고 제이슨 무어에게도 시선을 던졌다. 제이슨 무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휘자가 들고 있던 지휘봉이 힘차게 위에서 아래로 그어졌다.
[(선)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됩니다.]
15명의 머리 위에서 숫자가 반짝였다.
그중 하나인 서준은 관객석의 분위기를 느끼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조연에게는 조연의 역할이 있지!’
오늘의 주인공, 제이슨 무어를 더욱 반짝이게 하기 위해,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연주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서준은 조연을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다른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음 한 음 정성을 담고 심혈을 기울여 연주했다.
이어, 제이슨 무어의 솔로가 이어졌다.
제 손으로 보조 바퀴를 부수고 더 훌륭해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제이슨 무어의 연주는 관객들이 저절로 나오려는 탄성을 막으려고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훌륭했다. 1부에 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음색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정도로 폭주해도 되나 싶을 때,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오늘 연주회에서 무시했던 오케스트라가 화려하진 않지만 든든한 선율로 강약을 조절했고, 거기에 맞춰 관객들의 심장도 한껏 조였다가 천천히 풀어졌다.
이어,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합주.
풍성한 하모니가 제1 연주홀을 휘감았다. 든든하고 나지막한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화려한 제이슨 무어의 연주를 빛냈고, 묵직한 오케스트라를 발받침 삼아 바이올린 선율은 더 높이 뻗어 나갔다.
----!
……세상에.
온몸을 가득 채우다 못해 터져 나갈 듯 울리는 악기들의 선율에 관객들의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다.
깜빡이던 눈이 움직임을 멈추고 목이 바싹 마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점점 더 빨라졌다. 숨을 쉬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멈춘 것 같기도 했다.
현기증이 날 것처럼 아찔한 상황에서도 고개는, 시선은, 귀는 무대만 향하고 있었다.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뛰어난 미술작품을 보았을 때 느끼는 정신적 충격이 이런 상태일까.
영혼을 반쯤 빼앗긴 듯한 관객들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케스트라와 제이슨 무어는 마지막까지 힘차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
지휘자 데릭 로츠가 거센 숨을 몰아쉬며 격렬히 움직이던 두 팔을 멈추었다. 그에 맞춰 악기들도 동시에 소리를 빼앗긴 듯 조용해졌다.
무거운 적막 속.
조금 지친 모습의 제이슨 무어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어깨에서 천천히 내려놓았다. 서준도, 드미트리도, 다른 연주자들도 악기를 잡고 있던 손의 힘을 조금 풀고 어느 순간부터 가쁘게 쉬고 있던 숨을 가다듬었다.
다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했고 그 끝을 맞이했다.
연주는 끝났다.
제1 연주홀은 여전히 숨소리 하나 없이 적막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있던 모두가 그게 실패나 실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입을 열고 소리를 냈다가는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벅찬 마음을, 이 황홀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오래 만끽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듯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제이슨 무어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 제이슨 무어조차도 벅찬 듯, 조금 거칠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관객들이 하나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큰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제1 연주홀을 가득 채웠다.
와아아아!!
클래식 연주회에서는 보기 힘든 아주 커다란 환호성이었다.
* * *
유럽 투어를 성공리에 끝낸 후 열린 뒤풀이 파티는 시끌벅적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그의 지인들도 모두 참석했다. 서준의 친구들도 참석해 서준에게 열렬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흥분한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 바이에른 오케스트라에서 연락 왔다!”
최유성이 휴대폰을 잡고 흔들어댔다. 나탈리도, 다른 단원들도 여기저기서 오는 연락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개인 휴대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끊임없이 오는 연락에 제이슨 무어와 드미트리 바실리예프는 이미 휴대폰을 꺼놓은 상태였다.
“오! G.B.가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하긴 다 연락이 되는데 G.B.만 연락이 안 되니까 궁금하긴 하겠지.”
단원들이 킬킬 웃었다.
G.B. 그 이름에 서준도 친구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기사도 떴어!”
“벌써?”
인터넷에 제이슨 무어와 오케스트라에 대한 찬사가 가득한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 좋은 기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관객들이 쓴 후기들도 가득했다.
-진짜 오늘로 끝이야?!
-여기 돈 있어요! 돈!! 공연 한 번만 더 해줘요!
-제이슨 무어 다음 연주회 어디서 해?
=나도 찾고 있어. 근데 아직 계획 없대 :(
=이 구성원 그대로 유럽 투어 한 번만 더 돌아줬으면…… 그럼 다 따라다닐 텐데……!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 몇 회차 공연 봤어?
=나? 2회차.
=오. 불쌍한…… 오늘 공연에 왔었어야지…….
파티장에 마련된 음식을 먹으며 서준이 제이슨에게 물었다.
“실황 녹화본은 언제 나와요?”
“원래는 우리끼리만 나눠 가질 생각이었는데…….”
“안 됩니다! 이건, 이건 공개해야 해요!”
어디서 듣고 있었는지 총괄팀장이 끼어들어 말했다. 제이슨 무어가 어깨를 으쓱였다. 연주회 이외의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그렇대. 그래서 계약도 다시 해야 하고 이래저래 복잡해져서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
“제발……!”
총괄팀장이 애절한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다른 연주자들에게서는 모두 오케이를 받아낸 상황이었다. 서준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당연히 괜찮죠. 아, 계약서는 회사로 보내주세요.”
“지금 당장 보내겠습니다!”
달려가는 총괄팀장을 보며 서준이 눈을 끔벅이자, 제이슨 무어가 작게 웃었다.
“팀장이 클래식 엄청 좋아하거든. 다른 사람들이 많이 들어줬으면 하는 거지. 그것보다 정체는 언제 밝힐 생각이야? VOD 나올 때쯤 기사로?”
“VOD 나오기 전에 무대에 오르기 전 찍었던 사진 올리려고요. 팬분들한테 먼저 알리고 싶거든요. 그전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요.”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무리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실황 녹화라서 크게 손댈 부분은 없을 거야. CD가 아니라 VOD이기도 하고. 네가 한국 들어갈 때쯤 나올 것 같은데?”
제이슨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호 형한테 미리 말해둬야겠다.
“그럼 그전에 연락해 주세요, 제이슨.”
“그래. 아, 너 내일 파리 떠나지?”
“네. 이탈리아에 가요. 그다음엔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영국에 갈 예정이에요.”
“2주 동안?”
“네!”
신난 서준의 얼굴에 제이슨 무어가 턱을 긁적였다.
“2주 동안 다섯 나라라니…… 꽤 바쁘겠는데.”
“이젠 진짜 여행만 하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 말에 서준과 그 친구들이 파리에서 2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아는 제이슨은 물론이고 말한 서준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이 2주간은 여행이라고 하긴 힘들었다.
“다음에 한국에 한번 놀러 와요, 제이슨. 교수님이랑 같이요. 수빈이랑도 만나고요.”
“그래.”
제이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첼로와 플루트 소리가 들려왔다. 단원들이 흥이 난 모양인지 악기를 가져와 연주를 시작한 것이었다.
감미로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들, 유쾌한 사람들.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 * *
다음 날.
그레이스와 사라 웰튼은 미국으로, 서준과 아이들은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잘 가. 그레이스. 사라도요.”
“나중에 연락할게!”
“너희도 여행 즐겁게 해!”
비행기 시간이 빠른 그레이스와 사라 웰튼이 먼저 떠나고 서준과 아이들은 찰리, 찰리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조심해서 가렴.”
“아저씨도 건강하세요. 찰리 너도!”
“잘 가!”
손을 휘휘 저으며 인사를 한 서준과 아이들은 검색대를 지나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서준과 아이들이 탈 비행기가 도착했다.
비행기와 연결된 통로를 걸어가며 서준과 아이들이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나 걸린대?”
“2시간 정도 걸린대.”
“가면 뭐 볼까?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도!”
이탈리아, 로마.
아이들의 다음 여행지였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여기가 런던!”
“영국 음식은 맛없다고 하던데…….”
서준과 친구들의 유럽 여행도 끝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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