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525화 (52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25화

“안녕하세요. 준입니다.”

아르노 교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옆에 서 있던 학생을 소개했다.

“반갑구나. 이쪽은 내 제자야.”

“반갑습니다. 마테오라고 합니다.”

아르노 교수는 아직 학생이지만 미술계에 차츰 이름을 알리고 있는 유망한 화가라고 자랑하며, 오늘 전시회에도 참가했다고 말했다. 마테오는 조금 쑥스러운 듯 보였다.

“그럼 전시회부터 둘러볼까?”

아르노 교수와 점심을 같이 먹자고 이야기한 벤자민 교수가 걸음을 옮겼다. 서준도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가 담긴 팸플릿을 가져와 그 옆에 섰다. 두 사람은 천천히 학생들의 작품을 둘러보았다.

딱 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것 같은 그림도 있었고,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추상화도 있었다. 그래도 그 안에 들어 있는 학생들의 열정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림만 있는 게 아니네요.”

전시회에는 그림뿐만이 아니라 조각, 설치미술 등의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실물은 마구잡이로 얽혀 있지만 그림자를 보면 사람의 옆모습이 보이는 작품도 있었고, 가까이서 보면 무언인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면 풍경화 같은 작품도 있었다.

“재미있는 작품이 많구나.”

서준과 벤자민 교수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갤러리에서 분리된 작은 공간.

아슬아슬하게 손에 닿지 않는 높이에, 여러 가지 색상들의 유리들이 반짝이며 매달려 있었다. 빛에 반사되는 유리공예품들의 모양도 다양했다.

“저 유리 공예품들도 마테오가 직접 만들었대요. 교수님.”

작품의 제목은 [후회].

아까 만났던 마테오의 작품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후회를 하는 이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이 이제는 닿지 못할, 반짝이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걸 선택할걸, 하고 말이다.”

벤자민 교수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장에 매달려 반짝이는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기회이면서 후회인 것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미래는 왠지 더 찬란하고 성공할 것처럼 생각되고는 하니까 말이다.

마테오의 [후회]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조금 걸어가 보니 관람객들의 손에 닿는 높이에 색색의 유리 조각들이 매달려 있었다. 관객 참여 작품인지 만져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후회]라는 작품의 이름 때문인지 안내문 때문인지, 사람들은 신중하게 수많은 ‘기회’ 중 하나를 골랐다. 서준과 벤자민 교수도 많은 조각들 중 하나씩 선택해 손으로 만졌다.

“아…….”

장치가 되어 있는 모양인지 유리 공예품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신중히 선택한 ‘기회’는 더는 반짝이지 않았다. 관객들의 입에서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놀라는 아이의 목소리에 시선이 쏠렸다. 아이의 손에 잡힌 작은 새 모양 유리 공예품이 찬란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순간,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이 스쳤다.

‘저걸 고를걸.’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떠올렸다.

[후회]

이 순간만큼 작품의 제목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때도 없으리라.

반짝이는 새 모양 유리 공예품과 사진을 찍은 아이가 활짝 웃으며 가족과 함께 이동하자,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그 유리 공예품에 손을 댔다.

거기에 있던 모두가 그 새 모양 유리공예품이 조금 전처럼 찬란하게 빛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의 손에서 반짝이고 있던 유리 공예품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면서도 다시 한번 탄성이 나오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에게 좋은 결과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후회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봐요.”

“그렇구나.”

아마 반짝이는 ‘성공’은 다시금 이 수많은 유리공예품들 사이에 숨어들어,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모두 같은 생각인 듯 천장에 매달린, 선택받지 못한 ‘기회이면서 후회’의 조각들을 감탄한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 * *

두 교수와 두 제자가 점심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프라이빗룸이 있는 곳이었다. 프라이빗룸을 빌릴 필요가 있나, 의아해하는 아르노 교수와 마테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준?!”

식사를 하기 위해 서준이 모자를 벗으니 마테오가 금세 알아보았다. 그 또래 아이들 중 마린사의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었다. 너무 놀라 숨도 쉬지 못하는 마테오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다시금 자기소개를 했다.

“배우 서준 리입니다. 죄송해요. 아깐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인사 못 드렸어요.”

아르노 교수의 입에서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로 한 건가, 리?”

놀라는 포인트가 거긴가 보다.

벤자민 교수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네. 그냥 내가 농담한 거야.”

“그렇군! 하마터면 벤자민이 리의 팬들에게 원망을 들을 뻔했어. 다행이야.”

웃음소리가 프라이빗룸을 가득 채웠다.

편안한 분위기에 긴장을 풀던 마테오가 다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후회’를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관객이 참여하던 부분도 인상 깊었고요. 저도 모르게 저걸 고를걸, 하고 후회했어요.”

영화 속에서만 보던 슈퍼스타가 자신의 작품을 칭찬하니, 마테오는 어찌할 줄을 몰라 하며 두 손을 꼬옥 마주 잡았다.

“이번 작품도 좋지만, 예전에 전시했던 유화도 좋았어. 금세 팔려 버렸지! 마테오의 작품을 사 간 컬렉터가 아주 보는 눈이 좋거든. 아, 수채화 작품도 있단다. 눈 위에 그린 그림도 있었지. 사진으로 남겨뒀는데 보겠나, 준?”

서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아르노 교수는 그런 제자의 마음도 모르고 연신 팔불출처럼 자랑을 해댔다.

“저번엔 게임 배경 컨셉아트 의뢰도 들어왔었지! 마테오는 못하는 분야가 없어! 으하하하!”

제발요. 교수님.

마테오는 조금만 건드려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번에 기사 난 거 못 봤나, 아르노?”

거기에 제자 사랑이라면 만만치 않은 벤자민 교수가 참전했다. 제이슨에 대한 이야기만 나올 줄 알았는데, 자신은 물론이고 수빈이에 대한 이야기까지 있어 동생 사랑, 서준도 참전했다.

“수빈이는 어렸을 때부터 잘했어요. 재능도 있는 데다가 아주 열심히 연습하고 있죠. 아, 녹음한 거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들뜬 팔불출 세 명을 바라보는 마테오만 괴로운 점심식사였다.

떠들썩한 점심식사가 끝나고 후식을 먹으며 아르노 교수와 벤자민 교수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서준이 넋이 반쯤 나간 듯한 마테오를 불렀다.

“마테오.”

“네, 네?”

슈퍼스타의 부름에 당황하는 마테오를 바라보며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친구들이 이 미소를 봤다면 이마를 짚으며 이렇게 말했을 거다.

“영화미술에는 관심 없어요?”

역시, 기승전 영화.

“무대미술도 있어요.”

아니, 기승전 작품이라고.

슈퍼스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눈을 끔벅이던 마테오는 조금 흥미를 가지고 있던 분야였기 때문에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마테오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 * *

목요일 저녁.

파리에서의 세 번째 연주회가 끝났다.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박수 소리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들떠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무대 위에서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드미트리와 데릭 로츠도 상기된 얼굴이었다.

연주자들이 무대 뒤로 이동하고 나서도 박수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 정도로 성공적인 연주회였다.

내일은 또 얼마나 많은 기사들이 쏟아질지.

그 기사에 자신의 이름이 실릴 거라고 생각하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제안이 올지도 몰랐다.

“모두 들뜬 건 알겠지만, 모레면 마지막 공연입니다. 그때까지만 최대한 집중해 주세요. 내일 연습 있는 거 잊지 마시고요.”

데릭 로츠가 들뜬 단원들에게 말했다. 괜히 기분이 좋아 사고라도 치면 큰일이었다. 단원들도 그걸 알고 있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챙긴 단원들이 하나둘 숙소로 떠났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챙긴 제이슨 무어가 드미트리 바실리예프에게로 향했다. 드미트리가 연주회에 참여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고맙다.”

갑작스러운 연주회를 기꺼이 도와준 친구에게 제이슨이 말했다. 드미트리가 작게 웃었다.

“아니, 내가 얻어가는 게 더 많은 것 같군.”

무대 위에서의 느낌을 떠올리는 듯, 두 손을 쥐었다 펴는 드미트리 바실리예프의 머리 위에서 서준 말고는 볼 수 없는 숫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마지막 공연까지 참가하고 싶은데 말이야.”

드미트리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제이슨 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 때도 서준과 드미트리가 함께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그러든가.”

시원스러운 대답에 드미트리가 웃었다. 두 사람도 연주홀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다만, 목적지가 달랐다.

“어디 가?”

“연습하러.”

제이슨 무어의 말에 숙소로 향하려던 드미트리가 쓰게 웃고는 제이슨과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러니 투어 중간에도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할 건데?”

“내일 연습도 있으니까, 오래 하진 않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드미트리가 제이슨 무어 팀이 빌린 두 개의 연습실 중 한 곳에 들어갔다.

제이슨은 나머지 연습실로 들어갔다.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벤자민 : 준의 친구들이 요리를 잘하는구나.

>벤자민 : 갈 때 조금 가져가마.

<예. 조심해서 오세요.

제이슨 무어가 작게 웃었다.

유럽 투어 내내, 한차례도 제이슨의 연주회에 빠지지 않았던 스승님이었지만 파리에서는 준과 노느라 바쁘셨다.

낯선 기분에 제이슨 무어가 뒷목을 매만졌다.

“이게 동생에게 부모님을 빼앗긴 형의 기분인가.”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이런 기분이 든다는 게 민망하기도 했고, 고아인 자신이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기껍기도 했다.

작게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은 제이슨 무어는 가볍게 목과 어깨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한 후, 테이블 위에 놓아둔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손을 뻗었다.

스승님께 물려받은 스트라디바리우스에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기다란 활을 쥐었다. 턱과 어깨에 닿는 느낌과 손에 쥔 활의 감촉이 한몸처럼 익숙했다.

가볍게 숨을 내쉰 제이슨 무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만 올라가는 1부의 연주곡이었다.

[(선)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됩니다.]

기본적인 실력에 능력의 힘까지 더해져, 연주는 여전히 훌륭했다.

그러나 연주를 하고 있는 제이슨 무어의 미간은 그 훌륭한 연주에 만족하지 못한 듯 찌푸려져 있었다.

* * *

“드디어 내일 공연이네요, 준.”

“그러게요. 형.”

최유성이 실실 웃었다. 이서준 배우에게 형이라고 불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최유성의 머리 위에 반짝이는 숫자가 떠 있었다.

서준이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제이슨과 함께 1부, 2부 공연에 모두 참여하게 될 피아니스트, 그리고 지휘자 데릭 로츠와 제1 바이올린에서 함께 연주할 드미트리 바실리예프, 첼리스트, 플루티스트 등, 자신을 포함하여 총 10명의 머리 위에서 숫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숫자로 표시된 유대감을 보니, 정말로 내일 공연에서 등급이 상승할 것 같았다.

“연습 시작합시다!”

금요일 연습이 시작되었다.

물론 연주회 당일인 내일 오전에도 연습을 조금하고 무대 위에서 리허설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연주자들은 다른 때보다 집중해서 연습에 참여했다.

[(선)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됩니다.]

그 마음이 유대감으로 나타났다. 조금씩 오르는 숫자들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설마…… 오늘 오르려나?’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간질간질, 등급이 올라갈 듯 말 듯한 느낌을 받으며 연습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그럼 한 번만 더 하고 오늘 연습은 이만 끝내겠습니다.”

데릭 로츠가 지휘봉을 휘둘렀다. 그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다. 강렬했다가 잦아들었다가 다시 강렬해진 연주를 뒤이어 제이슨 무어의 솔로가 이어졌다. 잠시 손을 멈춘 서준이 감탄했다.

훌륭하다.

제이슨 무어는 더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감탄하는 게 서준뿐만이 아닌 듯, 제이슨 무어의 머리 위에 있던 숫자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역시 오늘 등급이 오를지도 모르겠네.’

제이슨 무어의 연주를 뒤이어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솔로와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이지.’

합주였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숫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지휘자의 지휘봉이 허공을 휘저었다.

제이슨 무어의 바이올린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제이슨 무어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어라?’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느낌이 조금 달랐다. 그러나 어디가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능력이 상승하기 전이라서 그런가?’

서준은 100을 향해 달려가는 숫자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오케스트라-솔로가 지나가고 합주.

서준은 다시 한번 이상한 느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드미트리 바실리예프와 데릭 로츠도 이상을 눈치채고 제이슨 무어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제이슨 무어의 연주에 오케스트라가 끌려가고 있었다.

‘아니…… 끌려간다기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제이슨 무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무시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처럼, 관객들과 음악계 관계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던 무대 위에서의 연주처럼 오케스트라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저, 그 연주에 강렬하고 개성적인 자신의 느낌을 넣은 것뿐이었다.

그래.

개성.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되는 동안에는 절대 느껴지지 않을 그것.

그걸 지금 제이슨 무어가 연주하고 있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선율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그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멈추었다. 서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연결자 중 하나가 자신의 의지로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에서 벗어납니다!]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알림이 뜬 동시에,

“하하!”

하고 처음 듣는 듯한, 유쾌한 제이슨 무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이 떨리는 눈으로 제이슨 무어를 바라보았다.

일견 시원하고 통쾌하게까지 보이는 표정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제이슨의 머리 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짝이고 있던 숫자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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