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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24화 (52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24화

그러고 보면 제이슨 무어 정도 되는 실력가에게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브블 형들은 막 데뷔했던 신인이었고 블루문도 데뷔한 지 겨우 1년 지났으니까 신인이나 마찬가지였지.’

자신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때부터 능력이 스며들어 있었으니 그저 이게 보통이겠거니, 하고 생활했을 거다.

‘마치 자전거에 달린 보조바퀴처럼.’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지금은 든든하게 받쳐주던 보조바퀴를 뺄 때처럼 조금 비틀비틀하겠지만, 두발자전거에 익숙해지면 그보다 자유로울 수가 없을 터였다.

‘근데 제이슨은 다르지.’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

십 대 때 벤자민 모튼 교수의 제자가 되어 수많은 콩쿠르에서 상을 타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독주회를 열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미 두발자전거로 열심히 달리는 연주자였다는 거다. 아마 자전거 묘기도 부릴 수 있는 경지이지 않을까.

‘거기에 보조바퀴를 달았으니, 위화감을 느낄 만도 해.’

물론 능력이 진짜 보조바퀴는 아닌 데다가 음악 실력을 몇 배로 올려주는 기능까지 있으니, 상황은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서준이 제이슨 무어를 바라보았다.

제이슨 무어는 뭔가 이상하긴 한데 이유를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분 탓인가…….”

중얼거리는 제이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답답하긴 한데, 실력은 더 좋아졌으니 이상할 만도 할 거다.

그런 제이슨 무어를 의아한 듯 바라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서준의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전에 좋지 않았어?”

“그러게. 오늘따라 딱딱 맞는 느낌이던데…….”

“그쵸! 우리 투어 중에서 제일 잘한 것 같지 않아요?”

그들로서는, 특히 능력에 등록된 지휘자 데릭 로츠와 8명의 연주자들로서는 오전 연습보다 좋았던 연주를 이상하게 여기는 제이슨 무어가 더 이상하게 느껴질 터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는 자전거의 보조바퀴가 아니라, 이인삼각 경기를 돕는 줄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지휘자를 포함해 9명이 함께 목적지를 향해 발을 맞추어서 뛰어야 하는데, 아무런 도구도 없이 서로의 발만 보고 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와주는 것이 바로 능력, 양옆 사람의 발과 자신의 발을 함께 묶은 ‘줄’이었다.

능력이 없을 때라면 양옆을 바쁘게 살피며 발을 맞췄겠지만, 든든하게 줄(능력)이 묶인 상태라면 양옆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 움직일지 알 수 있었고 자신도 움직이는 줄에 맞추어 달려가면 되는 일이었다.

‘한결 움직이기도 쉬워지고 속도도 빨라지겠지.’

입장의 차이였다.

솔로와 오케스트라의.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서준은 고민에 빠졌다.

능력 덕분에 연주는 전체적으로 향상되었으나, 제이슨 무어가 위화감을 느꼈다.

아직은 겨우 미세한 위화감을 느끼는 정도지만 연습이 이어지면 어떻게 될지. 능력의 사용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연습 시작하죠.”

미세한 위화감을 기분 탓으로 넘긴 제이슨 무어가 말했다. 지휘자 데릭 로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바이올린에 턱을 괬다. 드미트리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도, 다른 연주자들도 다시 연습을 위해 악기로 손을 뻗었다.

데릭 로츠가 지휘봉을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내리그었다.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됩니다.]

오전 연습 때보다 훌륭한 협주가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 * *

다음 날, 토요일.

원래 다른 친구들의 일정이 없는 주말은 다 같이 파리의 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했으나, 서준의 일정이 생겨 버렸다.

“그럼 서준이 넌 언제 쉬어?”

지윤의 물음에 파리 음악당으로 향할 준비를 하던 서준이 대답했다.

“연주회가 있는 날에만 쉴 것 같아. 내일하고 화요일, 목요일.”

드미트리 바실리예프가 참여하는 3회 공연이 하루 텀으로 일요일, 화요일, 목요일에 진행될 예정이었고, 순조로운 연습에 그날 연습은 드미트리만 참여하게 되었다.

“그럼 내일은 같이 다니면 되겠네.”

“오늘은 나한테 맡기고.”

오늘 아이들을 안내해 주기로 한 찰리가 듬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재미있게 놀다 와.”

“서준이 너도!”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준은 파리 음악당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서준은 반갑게 인사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어제와 다른 연주자들을 능력에 등록시켰다.

“제이슨 저 왔어요!”

“그래.”

제이슨과도 잊지 않고 악수를 했다.

못 본 사이에 악수가 버릇이 됐나, 하고 묻고 싶은 듯한 제이슨 무어의 얼굴에 서준이 헤헤 웃었다.

“다호 형이 그러던데 G.B. 써도 된대요.”

“그래?”

서준의 말에 제이슨 무어는 곧바로 휴대폰으로 총괄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곧 있으면 마지막 연주회의 팸플릿이 만들어질 것이다.

“연습 시작합시다!”

데릭 로츠의 말에 연주자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서준도 드미트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제이슨 무어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연습을 준비했다.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됩니다.]

지휘자가 휘두르는 지휘봉에 맞춰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강렬한 선율이 터져 나오다가 느릿하게 잦아들고 다시 한번 폭발할 듯 음들이 터져 나왔다.

어제 능력에 등록되어 있던 연주자들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느낌에 ‘어제 컨디션이 좋았구나……’ 하고 아쉬워하고, 오늘 능력에 등록된 연주자들은 ‘오늘 컨디션 왜 이렇게 좋지?’ 하고 놀라워하면서도 상기된 얼굴로 지휘에 맞춰 연주를 이어나갔다.

직접 지휘하고 있는 데릭 로츠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에 잠시 들떴었지만, 이내 마음을 억누르고 침착하게 지휘를 이어나갔다.

그때, 타이밍 좋게 제이슨 무어의 연주가 끼어들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잦아들고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웅장한 선율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우와아…….

소리 없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기본 실력도 대단한데,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 덕분에 상승한 제이슨 무어의 연주 실력은 서준과 단원들을 연주자가 아닌 관객으로 만들었다.

‘왠지 어제보다 더 잘하는 것 같은데?’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되지?’

어제 오후 연습에서 딱 한 번, 연습을 멈췄던 때를 빼놓고는 제이슨 무어는 더 이상의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듯, 평소처럼 연주했다. 거기에 능력의 힘까지 더해져 오후 연습은 벤자민 교수가 오호, 감탄을 할 정도로 훌륭하게 끝났다.

오늘은 그 연주보다 더 나아져 있었다.

‘능력을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넋 놓고 듣는 사이에도 곡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서준과 데릭 로츠, 그리고 등록된 연주자들을 자극했다.

이제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였다.

정신을 차린 데릭 로츠가 타이밍에 맞춰 지휘봉을 휘둘렀지만, 타이밍이 늦은 연주자들이 있어 연습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고 말았다.

“다시 처음부터 가겠습니다. 모두 집중해 주십시오.”

그렇게 평소보다 훌륭한 연주를 하는 제이슨 무어에게 휩쓸렸던 오전, 오후 연습이 모두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아…….”

영혼이 빼앗긴 듯, 다른 때보다 지친 단원들과 인사를 하고 짐을 챙긴 서준은 고민 끝에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에 계속 제이슨 무어를 등록하기로 했다.

‘위화감을 느끼긴 하겠지만…… 오늘 연주가 너무 좋았어.’

게다가 타이밍이 좋았다. 서준의 예상일 뿐이지만, 며칠 내로 [(선)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의 등급이 상승할 수도 있었다. 이대로 무대에 오른다면 제이슨도 얻는 게 많을 것 같았다.

“내일 연주회 잘해요! 제이슨!”

“그래.”

서준의 응원에 제이슨 무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 * *

친구들과 신나게 파리를 돌아다녔던 일요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고 월요일, 연습 날이 되었다.

“기사 봤어요, 준?”

“네! 봤어요!”

최유성이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클래식계는 어제부터 한 주제에 대한 기사로 들썩이고 있었다.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그 끝은 어디인가! 다음 투어가 기다려진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회에 관한 기사들이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는 제이슨 무어였다.

“어제 연주회는 진짜 최고였어. 내 손으로 연주하는 게 아닌 것 같더라.”

“두 번은 못 할 듯.”

오케스트라 단원들마저 꿈을 꾼 것 같은 표정으로 어제의 공연에 대해 떠들었다. 능력에 등록되지 않은 단원들까지 휩쓸려 버릴 정도로 연습도, 공연도 대단했다고 했다.

“제이슨 어땠어요, 드미트리?”

“정말 대단했지.”

친구이긴 하지만, 라이벌이기도 했다.

언제나 제이슨 무어 다음으로 손에 꼽히는 드미트리 바실리예프는 무대 위에서의 제이슨 무어를 떠올렸다.

“솔직히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할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거든. 근데 제이슨의 대단함만 알게 된 것 같다.”

오.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듬직하던 드미트리의 어깨가 조금 처진 것 같아, 서준이 작게 웃으며 드미트리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드미트리가 의아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사용합니다. (10/10)]

‘악수…… 버릇될 것 같네.’

서준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다른 연주자들도 돌아가면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들 좋은 경험을 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지휘자인 데릭 로츠와 제이슨 무어만 계속 등록하고 있으면 괜찮을 터였다.

“근데 제이슨은요? 아직 안 왔어요?”

“저쪽에 있어. 뭐 생각할 게 있는 모양이던데?”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드미트리의 말대로 제이슨 무어는 조금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 * *

화요일인 오늘은 두 번째 연주회가 있어서 연습에는 드미트리 바실리예프만 참여하기 때문에 서준은 쉬는 날이었다. 친구들도 각자 일정이 있어 뭘 할까, 고민하던 때.

“그럼 나랑 놀까?”

“좋아요!”

벤자민 교수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미술 좋아하니, 준?”

“어…… 조금요?”

무대미술이나 영화미술, 작품 속 배경이 되는 것들은 아주 좋아하지만, 미술관에 붙어 있는 그림들은 그냥저냥 보는 서준이었다.

서준의 대답에 벤자민 교수가 빙그레 웃었다.

“내 지인의 제자들이 전시회를 하는데 같이 보러 가는 건 어떠니?”

벤자민 모튼 교수의 지인은 파리 미대에서 교수로 있었는데, 학생들의 작품으로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고 했다.

“네! 좋아요. 그런데 미술 쪽에도 아는 분들이 계세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거든. 그리고 그림이나 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을 때도 있단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도 틈틈이 박지오의 경기를 보고 벅찼던 마음을 오선지에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았다.

벤자민 교수을 따라 전시회장으로 향한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수님. 작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게. 생각보다 큰 곳이었구나.”

대학생들의 전시회라고 해서 작을 줄 알았는데, 큰 갤러리 하나를 통째로 빌린 듯했고 관람객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모자를 눌러쓴 서준이 벤자민 교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관계자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교수가 벤자민 교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네. 벤자민!”

“여전히 스케일이 크군. 아르노.”

벤자민 교수도 활짝 웃으며 내밀어 진 손을 마주 잡았다.

“제이슨은? 그쪽은 새 제자인가?”

“제이슨은 오늘 연주회 준비로 바빠서 못 왔네. 맞아. 지금까지 숨겨둔 두 번째 제자지.”

벤자민 교수가 눈을 찡긋거렸다. 서준이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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