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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19화 (51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19화

[황금 인어]의 책을 내려놓은 서준은 근처 책장에 꽂아두었던 [미식가 오크]의 책을 꺼내 들었다. [(선)미식가 오크의 초대]는 알림대로 중하급의 능력이 중급으로 상승되어 있었다.

“으음.”

서준은 다른 점은 변한 게 없나 책을 살펴보았다.

등급 상승의 영향인지 [미식가 오크]의 책 맨 끝 페이지에 새로운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 * *

이런 시골 마을에서는 본 적도 없는 마법이 쏟아졌다. 날카로운 검날이 빛에 반사되어 번쩍 빛났다.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익숙한 옷을 입고 달려가고 있었다. 인간과 다른 녹색 피가 새하얀 눈 위로 튀었다. 다정했던 목소리가 고통에 괴로워하는 소리로 변하여 숲을 울렸다.

남매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로브를 쓴 마법사가 커다란 불을 만들어내 몬스터를 완전히 태워 버리고 기사들과 함께 사라질 때까지도, 눈이 쌓인 그 추운 날씨에 남매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천천히 멈춰 있던 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숨과 함께 정신이 들기 시작한 남매가 얼른 뛰어갔다. 아저씨에게 주기 위해 가져온 남매의 선물은 눈밭을 나뒹굴고 있었다.

아저씨가 몬스터였어…… 오크가 아저씨였어…….

그의 정체에 대해 머릿속이 복잡했으나 새하얀 눈밭 위, 잔인하게 남아 있는 녹색의 피와 완전히 타버려 새까만 재와 자국밖에 남지 않은 모습을 보니, 그저 눈물만 나왔다.

여동생이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부르며 울었다. 오빠도 재밖에 남지 않은 흔적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손을 덜덜 떨었다. 함부로 만졌다가는 연약한 재마저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누군가에겐 몬스터일지 모르나, 이 고아 남매에게는 생애 유일하게 온기를 나눠준 존재였다. 어쩌면 마을을 떠날 때 데려가 주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아저씨와 함께 다른 마을에 간다면 누가 보더라도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빠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불행은 가까웠다. 남매의 기대와 꿈은 새까맣게 불태워져 버렸다.

꿈같은 나날이 정말로 꿈처럼 사라지려는 듯, 재가 바람에 흩날렸다. 남매는 엉엉 울며 얼어붙은 손으로 그 재를 조심스럽게 모았다.

눈물범벅이 된 남매는 선물 상자를 열었다. 남매가 직접 재료를 구해서 만든 조각천 장갑과 거친 빵이 들어있었다. 보통 어른의 손보다 큰 장갑을 보고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장갑 위로 조심스럽게 재를 올려둔 남매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 완전히 불타버려 기둥 하나 남지 않은 아저씨의 오두막에 남매는 하늘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다.

서준이 페이지를 넘겼다.

훗날, 남매의 모습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복수심에 불타오를 만도 한데, 오빠는 훌륭한 요리사가, 여동생은 솜씨 좋은 재봉사가 되어 있었다.

“몬스터라서 그런가…….”

마법사와 기사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

처음에는 원망을 했을지도 모르나, 남매는 이곳저곳에서 전해지는 몬스터 피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미식가 오크만이 특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터였다.

“게다가 일반인이기도 하고.”

남매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마법사나 기사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지.”

시대 상황만 보자면 의지할 곳 없는 고아 남매가 요리사와 재봉사가 된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남매는 미식가 오크를 잊지 않은 것 같았다.

주위 아이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오빠와 매년 누가 쓸지 궁금할 정도로 커다란 장갑을 정성 들여 만드는 여동생의 모습은 미식가 오크에게도 꽤 좋은 결말이 아닐까, 싶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던 서준의 시선이 그 아래 문단으로 향했다.

[이름도 없는 떠돌이 미식가 오크는 새로운 세계에서 많은 존재들과 다양한 요리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려움이나 미움, 경계심 한 점도 없이 감사와 행복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

“……아하.”

이게 등급 상승의 이유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게 블루드래곤 해츨링이었지?”

십 년 전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등급 상승’이 아니라 ‘능력 변형’이었지만. 서준이 두 개의 책을 찾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선)블루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와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의 능력이 나온 [블루드래곤 해츨링]과 [어린 사자왕]의 책. 어린이 연극 [봄]의 청룡님과 [내의원]의 성녕대군을 연기할 때 사용했던 능력들이었다.

“이건 변형만 됐었지.”

[(선)블루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는 능력을 쓸 때, 신체의 일부가 드래곤화했었는데, 변형되고 난 후에는 그게 사라졌었다.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은 사용자에게 위엄만 더해줬었는데, 변형되고 난 후에는 사용자의 무리에 있는 존재(박도훈)의 능력까지 상승시켜줬었다.

서준이 기억을 더듬었다.

블루드래곤 해츨링은 꿈이었던 ‘드래곤의 수호’를 무대 위에서나마 실현할 수 있어서 능력이 변형됐었고, 어린 사자왕은 허세만 잔뜩 부렸는데 진정한 무리(박도훈)를 갖게 되면서 능력이 변형되었었다.

“……꿈인가.”

인생의 목표, 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의 책에 담긴 능력으로 그 삶의 꿈을 이루면 능력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았다.

서준은 조금 전 알림을 떠올렸다.

[(선)미식가 오크의 초대를 받은 존재가 최대치에 다다랐습니다.]

미식가 오크도 그가 꿈꿨던 행복하고 즐거운 식사를 충분히 즐겼던 모양이었다.

작게 웃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미식가 오크는 등급 상승이고 해츨링은 능력 변형일까?

“연극 무대는 가짜라서 그런가?”

설마 [(선)블루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의 등급을 상승시키려면 진짜로 나라 하나를 수호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서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책상 위를 내려다보자, 왠지 파란색 블루드래곤 해츨링의 책이 ‘헤헤. 나라는 너무 크고 영지 하나 정도?’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도 무리를 하나 이끌면 등급이 상승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마 미식가 오크도 원래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었을 거다.

“영상의 힘이 이렇게 크네.”

서준은 예전에 확인했던, 너튜브에 업로드된 [먹방2]의 조회수를 떠올려보았다. 그 조회수만큼 실제로 만나 식사를 했다면 아마 다다음번 생이 지나서도 등급이 상승하는 건 힘들었을 터였다.

거기에 생각나는 원인이 두 가지 더 있었다.

확실히는 이 두 가지의 요소가 등급 상승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서준의 추측이었다.

첫 번째는 [(선)미식가 오크의 초대]가 최상급 도서관이 열리고 나서 사용한 능력이라는 것.

“하긴, 가장 열기 힘든 최상급 도서관의 문을 열었는데 달랑 침대 하나만 주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일시적인 등급 하락도 중급 생의 도서관의 문을 열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영 관련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많든지 적든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게 서준의 예상이었다.

앞으로도 등급이 상승하는 능력이 나온다면 최상급 도서관이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추측은,

“……전생이지.”

[황금 인어]와 [미식가 오크].

서준이 나란히 놓인 두 책을 바라보았다.

[황금 인어]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파르비타의 음식과 즐거운 식사에 대한 집착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던 서준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삶의 책이 떠오른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식가 오크의 전생이 황금 인어였겠지.”

최상급의 삶과 중하급의 삶이 이어지면, 최상급의 삶이 중하급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건 당연한 일일 터. 악 선향의 오크를 선 선향으로 바꿔버리며 보통의 오크들과 다른 삶을 살게 만들었던 전생. 그게 바로 황금 인어, 파르비타였다.

“내 전생은 평범해서 다행이네.”

바로 직전의 생을 떠올린 서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르비타가 자신의 전생이었다면 아마 연기는 뒷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떠올라 오싹해졌다.

선 성향이든 악 성향이든, 강렬한 전생이 후생까지 영향을 주는 건 문제인 것 같았다.

여튼, 자신이 [황금 인어]의 책을 읽는 것이 [(선)미식가 오크의 초대]의 등급 상승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게 서준의 추측이었다. 확률이 낮긴 하지만 말이다.

책들을 내려다보던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높은 등급의 능력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상관없지.”

촬영을 할 때도 일시적으로 능력의 등급을 낮춰서 사용하는 서준이었다. 이제 와서 높은 등급의 능력이 필요할 리도 없었다.

“근데…….”

서준은 책장 한 칸을 홀로 차지하고 있는 새까맣고 낡은 책을 바라보았다. 너무 낡아서 부스러질 것 같은 삶의 책이었다.

“첫 생의 꿈은 아직 안 이루어진 건가?”

생의 도서관을 가득 채운 생들의 시작일 ‘첫 생’의 능력이라면, 아마도 무한환생.

그 능력으로 환생한 서준이 주인공이, 아니, 슈퍼스타가 됐는데도 첫 생의 책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최상급의 능력이라 등급 상승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능력 변형으로 [엑스트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정도의 문장은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서준이었다.

다른 능력들과 조금 다른 건가?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눈을 반짝이며 씨익 웃었다.

“아직 만족을 못 한 모양이네.”

기쁘게도 서준도 그랬다.

여기서 만족하기에는 찍고 싶은 작품들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예정이었다.

“그럼 더 열심히 해볼까!”

어느새 같은 꿈을 가진 첫 생과 내적 친분을 쌓은 서준은 언젠가 첫 생의 끝 페이지에 새로운 문장이 적히길 기대하며 환하게 웃었다.

“아, 일단 책부터 읽고.”

[황금 인어]의 책.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 * *

오늘따라 화창한 파리.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서준만이 홀로 남았다.

<오전엔 공연을 안 하더라ㅠㅠ

<티켓 예매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ㅠㅠ

>지오 : ㅋㅋㅋ 그래서 지금 뭐 함?

잠에서 깨어나 의욕 넘치게 공연을 보러 갈 생각이었던 서준은 뜻밖의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평일에는 오전부터 공연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노천카페에서 케이크 먹으면서 구경 중.

<여기 케이크 맛있어ㅎㅎ

그래서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페인에서 훈련하고 있을 지오와 놀고 있었다.

>지오 : 뭐 구경할 거 있음?

<ㅇㅇ

<여기 바로 앞에서 피아노 4중주 연주 중이야.

<근처 음대 학생들인 것 같은데 실력이 좋아.

>지오 : 피아노 4중주?

>지오 : 피아노 4대임?

<……지오 너 음악 시간 때 수업 안 들었어?

>지오 : 나 축구부ㅎ

부드러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던 서준이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답장을 보냈다.

<보통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연주함.

>지오 : 오. 바이올린.

>지오 : 서준이 너도 바이올린 연주 잘하잖아ㅋㅋ

>지오 : 끼워달라고 하면 안 됨?ㅋㅋㅋ

잠시 혹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은 서준이 휴대폰을 두드렸다.

<나 유럽에 왔다는 거 다 아는데 영상으로 퍼지면 금방 들킬걸.

>지오 : 아. 그렇겠네.

물론, 만약 서준이 버스킹을 하게 된다면 알아차리지 못하게 얼굴도 가리고 연기도 하겠지만, 이미 [오버 더 레인보우] 때 버스킹했던 전적이 있으니 ‘혹시……’ 하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혼자라면 보디가드분들도 있어서 하겠지만…….’

친구들도 함께하는 여행이니 이것저것 생각해 두는 편이 나았다.

>지오 : 아직 파리 일정이 많이 남아서 들키면 힘들겠다.

<ㅇㅇ 그렇지 뭐.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파리 떠나기 전날 정도는 버스킹해도 괜찮을 것 같앜ㅋㅋ

>지오 : 얼른 하고 해외로 튀어라ㅋㅋㅋ

<말이 이상한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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