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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17화 (51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17화

“/알…… 아니, 모흐 교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지후 박이라고 합니다!/”

놀란 표정으로 굳어 있던 지후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인사했다.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알베르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알베르 교수라고 불러주세요. 박./”

“/교수님도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알베르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갑단다. 지후./”

“/저야말로!/”

지후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알베르 교수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쪽은 친구들?/”

“/네. 한국에서 같이 여행 온 친구들이에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서준과 지윤이 꾸벅 인사를 하자 알베르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도 특강에 관심이 있니?/”

관심이 있다고 하면 당장에라도 자리를 만들어줄 것만 같은 알베르 교수의 눈빛에 서준과 지윤이 식은땀을 흘리며 거절했다.

“/저희는 그쪽으로는 하나도 몰라서요./”

“/죄, 죄송합니다!/”

알베르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란다. 지후가 특별한 거라는 건 나도 잘 알지. 그래도 조금 구경하고 가는 건 어떠니? 파리 대학은 처음이지?/”

알베르 교수의 말에 서준과 지윤이 눈을 마주쳤다. 국제도서전은 조금 늦게 가도 책들이 어디 도망가는 건 아니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잠깐만 구경해도 될까요?/”

“/물론이란다./”

알베르 교수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지후와 서준, 지윤이 쫄래쫄래 그 뒤를 따라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파리 5대학의 정문이 있었다.

고대 신전에나 있을 법한 기둥들이 양옆으로 세워져 있어 멋있어 보이는 파리 5대학은 크긴 했지만, 넓은 캠퍼스와 여러 개의 건물들이 있는 한국의 대학교들과는 달리 건물 하나가 전부인 것 같았다.

“여기선 강의 끝나도 안 뛰어가도 되겠다.”

“그러게.”

현역 대학생, 서준의 말에 지윤과 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문을 통과하니 파리 5대학 건물로 ‘ㅁ’ 모양으로 둘러싸인 작은 뜰이 나왔다. 서준과 아이들을 알베르 교수와 함께 뜰을 지나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천장과 벽, 기둥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 같았다. 게다가 아마도 이 대학을 졸업한 위인들을 조각한 것 같은 인물 석상과 장식품 같은 조각품들이 복도와 계단 곳곳에 놓여 있어 더 멋지게 보였다.

“/파리의 대학교들이 왜 숫자로 불리는지 아니?/”

정신없이 구경하는 아이들을 보던 알베르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평준화 때문이라고 알고 있어요./”

지후의 대답에 알베르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파리 대학교에서 전부 분리가 된 거지. 파리 대학구 내에 1대학부터 9대학까지가 있고, 베르사유 대학구 내에 10대학부터 11대학이, 크레테유 대학구에는 파리 12 대학과 13대학이 있단다./”

수업시간인지, 다른 행사라도 있는지 파리 5대학의 복도는 한산했다. 알베르 교수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파리의 대학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단다. 대학이 모였다가 흩어지고를 반복했지. 파리 5대학의 전신인 파리 대학교는 12세기에 설립되었단다. 11세기에 강의를 했다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보다야 늦지만 오래된 대학이지./”

12세기면 1100년 경이고, 11세기면 1000년 경이다.

“……고려 때네.”

“……와…….”

서준의 말에 지후와 지윤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물론 아주 옛날의 일이라 지금 같은 대학교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오래된 것은 사실이었다.

알베르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이어지던 파리 대학교는 1793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폐쇄가 되었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처형당했던 프랑스 대혁명.

역사책으로만 봤던 그 사건들이 지금 서준과 친구들이 서 있는 이 대학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리고 십여 년쯤 뒤에 나폴레옹 1세에 의해 파리 대학교가 다시 부활한단다./”

심지어 나폴레옹까지 등장했다.

‘아, 생각해 보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까 당연한 일일지도.’

그래도 신기한 건 사실이라 서준과 아이들은 알베르 교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1968년 프랑스 전역에서 68운동이 일어난단다. 5월 혁명이라고도 부르는데 프랑스 대학교를 전면 개편하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있었지. 그 때문에 같은 해 11월 파리 대학교를 13개의 대학교로 나눈다는 개편 방안이 채택되었고, 대학교 간의 서열도 없애버리자는 의견으로 숫자를 붙여서 부르게 되었지./”

알베르 교수가 말했다.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각 대학마다 또 다른 이름이 붙었단다. 여기는 알다시피 파리 5대학인데 데카르트 대학이라고도 부르지. 데카르트가 누군지 아니?/”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언을 남긴 철학자예요./”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것저것 잡다하게 알고 있는 지윤의 대답에 알베르 교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대학교도 팡테옹-소르본, 팡테옹-아사스 등 다른 이름이 붙었지. 그리고 각 대학마다 분위기도 차이가 난단다. 특히 8대학은 급진적인 분위기라서 거의 학기마다 학교를 점거하고 시위가 열리지. 수업 시간에 밥 먹는 건 좀 참아줬으면 하지만 말이야./”

알베르 교수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 안을 둘러본 서준과 아이들을 알베르 교수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번 특강 동안 사용하는 사무실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넓었다.

서준과 아이들을 소파에 앉힌 알베르 교수가 음료수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쪽에 놓아두었던 종이가방을 지후에게 건네주었다. 지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종이가방 안을 보았다. 지후의 사진이 붙여진 목걸이형 출입증과 영어로 된 책이 가득했다.

“/이건 특강에 나오는 내용과 관련된 책들이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읽어보다가 어려운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렴./”

“/감사합니다!/”

책을 하나 꺼내 살펴보던 지후가 눈을 반짝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기뻐하는 친구를 보며 서준과 지윤이 빙그레 웃었다. 알베르 교수님은 생각보다 더 좋으신 분 같아 마음이 놓였다.

* * *

국제도서전에 가기 위해 파리 5대학을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서준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왠지 그거 생각나지 않아?”

“그거?”

지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대학원 이야기 말이야. 교수님 수업을 듣다가 의아한 점이 있어서 질문했다가 토론까지 해서 이후에 대학원생이 되어버렸다거나, 교수님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대학원생이 되어 있었다거나, 하는 이야기.”

“아. 나도 알아.”

“마중도 나오시고 책도 준비해 놓으신 걸 보면 알베르 교수님, 지후가 엄청 마음에 드셨나 봐.”

“그러게. 이러다 지후도 대학원 가는 거 아니야?”

물론, 외국 대학인 데다가 의대라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알베르 모흐 교수는 지후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만약에 한국 대학이었고 다른 전공이었다면 지후가 보낸 메일은 100% 대학원으로 향하는 직행버스 티켓이었겠지.”

서준의 말에 지윤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테러 집단 때문에 고립된 대학원생 제자를 용병 고용해서 구출한 교수님 이야기도 있잖아.”

“그거 진짜 대단하더라.”

그것 말고도 ‘박사 논문(복사본 없음)을 훔치려는 강도를 막은 대학원생’이라든가 ‘학교에 노숙자가 있다고 신고했더니 대학원생’이었다든가, 하는 인터넷에서 봤던 대학원생에 관한 썰들을 이야기하며 서준과 지윤은 국제도서전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 * *

국제도서전이 열리는 행사장에 서준과 지윤이 도착했다.

파리 5대학에 다녀오느라 예상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행사는 한창이었다. 앞으로 열흘 동안 이어지는 행사니 천천히 둘러볼 시간도 많았다.

“사람들 많네.”

“그러게. 관광객도 많은 것 같아.”

존재감을 줄인 서준과 들뜬 표정의 지윤이 꽂혀 있는 팸플릿을 챙겼다. 저번에 지윤이 챙겨온 팸플릿이 홍보용이었다면 이 팸플릿들은 행사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파리 국제도서전은 야외 행사장과 실내 행사장 두 군데서 열렸는데, 팸플릿도 거기에 맞춰 두 종류가 있었다.

지윤은 먼저 야외 행사장의 팸플릿을 펼쳤다.

공원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는 야외 행사장은 어린아이들과 그 가족들, 책에 조금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놀기 좋은 놀이 공간(인기 동화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과 동화책과 관련된 캐릭터 상품을 파는 곳, 간식과 음료를 파는 부스도 있었고 간단히 읽기 좋은 단편 소설책들을 파는 부스와 구매한 책을 바로 읽을 수 있는 자리도 있었다. 그 이외에도 문화예술과 관련된 부스들이 많았다.

“야외 쪽엔 음식 부스도 있대. 여기서 점심 먹으면 되겠다.”

그리고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는 푸드존도 바로 옆에 있었다.

“책만 있는 게 아니라 축제처럼 기획했나 보네.”

실내 행사장은 전 세계의 출판사들과 관계자들이 모여 영업을 하거나 글쓰기나 유명 작가의 강의 같은 좀 더 차분한 분위기의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곳이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라별로 나누어진 출판사 부스도 4일째부터 개방할 예정이었다.

“그럼 야외 행사장부터 구경할까?”

“그래!”

서준과 지윤은 먼저 야외 행사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상기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지윤이 아, 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스도 오늘 온다고 하던데 언제 올까? 같이 돌아다니기로 했는데…….”

“연락해 볼까?”

지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이 휴대폰을 꺼냈다.

<그레이스.

<우리 도서전인데 도착했어?

그레이스에게 답장이 오면 움직이려고 서준과 지윤은 길옆에 서서, 팸플릿을 보고 참가한 한국 출판사들 중 [거울]을 출판한 영웅 출판사를 발견하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야외 푸드존에서 어떤 걸 먹을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그레이스가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사라 작가님 돕는다고 바쁜 걸까?”

“음. 그럼 일단 우리끼리 둘러볼까?”

“응. 그러자.”

서준의 말에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먼저 간 곳은 도서전의 중심이 되는 책 부스였다.

책이라면 동화책도 좋아하는 지윤에게는 다행히도, 동화책들이 전시된 부스에는 불어뿐만 아니라 영어로 번역된 책들도 있었다. 국제 행사니 당연한 일이었다.

“유럽 쪽 동화책은 아이용 같지 않은 책들도 있지만 그래서 더 이야기가 다양한 것 같아.”

“그러게.”

보통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책과는 달리, 비극적으로 끝나는 내용에 서준과 지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준?/”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게 서준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일반인인 척하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주의를 기울였다.

“/사라?/”

제법 귀에 익은 목소리에 옆을 본 서준이 활짝 웃었다. 아는 사람인 것 같은 서준의 반응에 보디가드들의 경계가 낮춰졌다.

“/이렇게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가끔 영상통화로만 봤는데./”

서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여성을 보며 지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준의 친구인 그레이스 웰튼의 언니, [이클립스]의 작가 사라 웰튼이었다.

“/이쪽은 제 친구예요./”

“/바, 반갑습니다! 웰튼 작가님!/”

“/준의 친구라고? 나도 정말 반가워! 그리고 사라라고 불러줘!/”

“/네!/”

간단히 인사를 나눈 세 사람이 걸음을 옮겼다.

동생의 친구들을 만난 사라 웰튼이 책 부스 사이, 드문드문 있는 간식 부스에서 쿠키를 사주었다. 초코쿠키를 먹으며 서준이 물었다.

“/그런데 그레이스는요? 같이 안 왔어요? 연락도 안 되던데……./”

“/걔 또 길 잃어버린 것 같아. 휴대폰은 아마 배터리가 떨어져서 그럴걸? 위치 찾기도 못 하니 헤매고 있겠지./”

“/아……./”

그레이스 웰튼이 길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레이스는 미아였지.’

핼러윈이라 사람이 많아서 길을 잃은 줄 알았는데 그냥 원래 길치였던 것뿐이었다. 그 이후로 종종 길을 잃었다는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찰리랑 같이 영상통화를 하면서 길을 찾아준 적도 있었고.’

그러면 항상 뉴욕에 사는 그레이스보다 찰리와 서준이 길을 더 잘 찾고는 했다.

그레이스가 헤매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에 지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럼 얼른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제 열아홉인데 알아서 하겠지. 행사장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을 거고 돈도 가지고 있으니까 점심도 알아서 잘 먹을 거야. 걘 불어도 조금 하니까 나중에 미아 센터에 가면 찾을 수 있을걸./”

“/되게 익숙해 보이네요. 사라./”

서준의 말에 사라 웰튼이 아련하게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은 그 모습에 서준과 지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벤치에 앉은 그레이스 웰튼이 진저쿠키를 베어 물었다.

열아홉 살이나 돼서 창피하지만, 미아센터로 가기 위해 프랑스인 가족에게 길을 물어본 다음 그대로 걸어갔더니,

“/……짜잔. 제자리였습니다./”

어이가 없다.

10분 전 앉았던 벤치에 그대로 앉은 그레이스가 주머니에서 먹통이 된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생각보다 빨리 닳아버려 지도를 볼 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그냥 데려다 달라고 하자./”

미아센터에.

열아홉 살 미아를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볼 사람들과 언니가 올 때까지 꼬꼬마들과 함께 앉아 있을 걸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준이랑 지윤이랑 만나기로 했으니까./”

오랜만에 볼 서준도, 메시지로만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야기가 잘 통하던 지윤도 얼른 만나고 싶었다.

진저쿠키를 모두 먹은 그레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왠지 오른쪽으로 가면 관광객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레이스는 오른쪽 길로 향했다. 서준과 찰리가 봤다면 이마를 짚으며 말했을 거다. ‘느낌대로 가지 마!’ 하고.

안타깝게도 오른쪽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일단 행사장을 벗어나면 길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걸 아는 그레이스가 한숨을 푸욱 내쉬고 왔던 길을 그대로(라고 그레이스는 생각했지만 중간에 다른 쪽으로 빠졌다) 돌아갔다.

그렇게 걸어가던 그때,

“/여기 있었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레이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10년 전, 길을 잃어버린 어린 마녀를 두 꼬마 늑대인간이 찾았던 그 날처럼.

그레이스의 친구들이 찾으러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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