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14화
서은혜와 이민준, 서은찬 부부와 김희상 부부가 경기를 보기 위해 서준의 집에 모였다.
박지오가 서준의 소꿉친구인 만큼 두 부부와도 제법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수빈이와 은수는 서준의 방에서 자고 있었다.
치킨과 맥주가 테이블 위에 세팅되었다.
“누나. 서준이도 시합 보고 있대?”
“응. 친구들이랑 직관하고 있다고 연락 왔어.”
서은찬의 물음에 서은혜가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서준이 보내준 사진들이 바톡창에 가득했다. 유니폼까지 입고 다른 친구들과 사진을 찍은 서준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 경기 시작한다.”
김희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경기 시작 휘슬 소리와 함께 선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프로는 힘들구나.”
“그러게. 학생 시합하고는 전혀 다르네.”
이민준과 서은혜는 좀처럼 골을 넣지 못하는 박지오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시원하게 골을 넣던 박지오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겨우 전반전이잖아. 후반전까지는 기다려 봐야지.”
최수희의 말에 김희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찰떡궁합인 부부의 모습에 모두 작게 웃으며 TV를 바라보았다. 마침 주장이 박지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김수련이 문득 입을 열었다.
“지금 이 경기 보는 사람이 많을까요? 홍보는 엄청 하던데.”
그것도 서준의 이름으로.
코코아엔터 홍보팀장으로서 계속 체크하고 있었던 터라 궁금해졌다.
“글쎄. 2군 경기에다가 3부 리그라서 별로 안 볼 것 같은데…… 서준이 팬들만 좀 보지 않을까?”
서은찬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듯했다. 자신들이야 아는 사이니 챙겨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이유도 없었다.
“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박지오가 공을 잡았다. 오늘 전반전에 몇 번이고 나왔던 모습이지만 다들 눈을 빛내며 박지오를 응원했다.
그리고,
[박지오오!!!]
[경기 44분 12초 만에 첫 골이 터졌습니다! 바르셀로나 FC B! 11번 박지오 선수의 고올!!]
첫 골이 터졌다.
서은혜와 이민준, 김희상 부부와 서은찬 부부가 환호성을 지르려던 찰나, 먼저 환호성이 들리는 곳이 있었다. 아랫집이었다.
와아아아! 하고 터져 나오는 함성에 서로 눈이 마주친 서은혜와 이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랫집 분들도 보고 있나 봐.”
“그러게. 아. 쌍둥이네 축하문자 보내줘야지!”
그렇게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박지오의 발에서 또 한 번 골이 터졌다. 와아아아! 이번엔 윗집의 환호성까지 들려왔다.
“생각보다 많이 보고 있는 모양인데요?”
“그러게.”
김수련이 흥미로운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물론 윗집 상황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인터넷 반응을 살폈다. 첫 골이 터지고 기사가 떠서 그런지 반응이 더 많아져 있었다.
그리고,
[후반 41분! 박지오 선수!! 2부 리그 승격과 동시에, 프로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아!!]
마지막 골이 터졌다.
해트트릭!
세리모니를 하러 관중석으로 뛰어가는 박지오가 보이고 관중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와아아악!!”
서준의 집에서도 근처 집들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뭐해, 엄마?”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비비적거리며 밖으로 나온 수빈이가 시끌벅적한 거실에 눈을 끔벅였다. 어른들은 벅찬 나머지 수빈이가 나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수빈이의 시선이 저절로 TV 화면으로 향했다.
“어, 서준이 형이다.”
감이 좋은 수빈이는 단번에 많고 많은 관중들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형을 발견했다.
* * *
우아아아아!!
친구들이 있는 관중석 앞에서 골 세리모니를 하며 기뻐하던 박지오가 주장에게 끌려가 다시 경기장에 섰다. 아직 경기 시간이 조금 남았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이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가자 미친 듯이 날뛰던 관중석도 천천히 차분해졌다. 물론, 들썩이는 엉덩이는 그대로였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으려던 서준은 바닥에 떨어진 이어폰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너무 흥분했던 모양이었다.
떨어진 이어폰을 주워 귀에 꽂으니, 다시보기로 돌려보고 있는 듯 해트트릭!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시간이 조금 남았으나 3-0이라는 점수 차이에 분위기는 완전히 돌아선 상태였다. 상대 팀도 바르샤 B도 무리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 종료를 알리는 긴 휘슬이 미니 에스타디에 울려 퍼졌다.
[바르셀로나 FC B! 8년 만에 2부 리그! 라리가 2로 돌아갑니다!]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벤치에 있던 바르셀로나 FC B의 코치, 스태프들도 두 팔을 번쩍 들며 함성을 질렀고 감독도 기쁜 표정으로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2부 리그으!!/”
“/지오! 오늘 수고했어!/”
오늘의 주인공, 박지오에게 과격한 축하가 이어졌다. 다음 시즌부터 2부 리그에서 뛰게 된 동료 선수들의 축하에 박지오가 환하게 웃었다.
* * *
“하아. 재밌었다.”
“그러게.”
얼마나 정신을 놓고 환호성을 질렀는지 친구들은 기진맥진한 얼굴로, 하지만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서준도 물론 비슷하게 날뛰었지만, 능력 덕분에 기본 체력이 다른 터라 금세 컨디션을 회복했다.
“형. 지오는 언제 온대요?”
지후의 물음에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 김태주가 반쯤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좀 있으면 올 거야.”
“승격 축하파티 같은 건 안 해요?”
“오늘은 힘들어서 못 해. 아마 조금 후에 날짜를 잡을걸.”
미나의 질문에 김태주가 웃으며 대답하는 사이, 서준은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꺼냈다. 한국에서의 연락이었다.
“……오.”
“왜 그래, 서준아?”
지윤이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서준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나 중계 화면에 잡혔나 봐.”
서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번 경기가 한국에 중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서준과 친구들이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일코를 잘하는 서준이라도 그건 그냥 스쳐 지나갈 때의 이야기지, 영상 기록으로 남는다면 언젠가 ‘어, 이거 이서준 아니야?’ 하고 사람들이 알아차릴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중계 화면에 덜 잡히도록 골을 넣더라도 세리모니는 다른 관중석에서 하자, 응원 눈에 띄지 않게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다 잊어버린 서준과 친구들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봤대? 기사도 나고?”
“아니. 수빈이가 먼저 발견했대.”
선기에 민감한 수빈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서준도 너무 열심히 즐긴 나머지 능력 조절을 잘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들키는 건 시간문제겠지.”
수빈이의 말을 듣고 찾아본 중계 화면에서 서준을 발견한 코코아엔터 사장과 홍보팀장은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손톱만 한 서준을 찾은 수빈이가 신기할 뿐이었다.
>서은찬 : 사람들은 아직 못 찾은 것 같아.
>서은찬 : 필요하면 연락하고.
서은찬에게 답장을 보낸 서준과 지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대부분 나가고 없었다. 다들 오늘 경기에 푹 빠진 터라 서준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금방 들킬 것 같지는 않지?”
지윤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프랑스 갈 때까지만 안 들키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게.”
여러 나라가 붙어 있는 유럽이니, 바르셀로나를 떠나면 어디에 있는지 못 찾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방송에 나갈 일도 없고.’
평범한 여행이니까 말이다.
“서준아. 지윤아. 지오 슬슬 나온대.”
“그래? 우리도 가자.”
미나의 말에 서준과 지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준과 아이들, 김태주가 관중석 계단을 지나 입구로 향했다.
입구로 향하는 길에는 유니폼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는데 오늘 경기가 꽤 인상 깊게 남았는지 11번 유니폼은 진열대에 진열되지도 못하고 계산대에서 계속 팔려나가고 있었다.
“어, 저 사람들?”
서준의 눈에 두 남자가 들어왔다. 서준의 말에 고개를 돌렸던 지후와 지윤, 미나가 눈을 번뜩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김태주는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캄프 누에서 봤던 두 남자가 기념품을 사려는 듯 줄을 서 있었다.
“……오.”
이어지는 장면에 쌍심지를 켜고 있던 아이들이 눈을 끔벅이다가 이내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렇지!
“/11번이요! 11번!/”
일찌감치 11번 유니폼을 사서 입고 있던 남자의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이 11번을 외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박지오에게 1군은 무리라고 말하던 남자가 채 3시간도 지나지 않아 말을 바꾼 모습에 서준과 아이들이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개운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 * *
경기장 밖으로 나오니, 경기가 끝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유니폼을 꼭 잡고 출입구만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 몇몇 어른도 눈에 띄었다.
“11번이네.”
“그러게.”
사람들이 사인을 받으러 온다는 박지오의 말이 영 허풍은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후, 바르셀로나 FC B 선수들이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선수들에게로 향했다. 2군이라 1군만큼의 팬들이 많지 않았지만, 열정만은 충분했다.
“/오늘 해트트릭 멋졌어요! 지오!/”
“/응원해 줘서 고마워!/”
박지오가 웃는 얼굴로 아이들의 유니폼에 사인을 해주었다.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연스러운 발음에 영어인가, 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스페인어였다.
“지오가 스페인어도 했었어?”
“스페인어?”
서준의 물음에 아이들이 눈을 깜빡였다. 박지오가 스페인어라니, 처음 듣는 말이었다. 대답은 김태주에게서 들려왔다.
“여기 와서 배우고 있어. 아무래도 어린 팬들에게는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익숙하니까 말이야.”
그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감탄했다.
“지오가 철 들었네.”
“그러게. 서준이 못지않은 팬 사랑이야.”
서준의 말에 미나와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렸을 때부터 서준이가 하는 걸 봤으니까.”
“조기 교육인가.”
지후의 말에 아이들과 김태주가 빵 터지고 말았다.
“/지오! 오늘 대단했어요!/”
“/저도 지오처럼 해트트릭할래요!/”
아이들 먼저 사인을 받고 어른들이 사인을 받았다. 한국인들도 있었는데, 그 두 남자도 끼어 있어 서준과 친구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데뷔전부터 봤습니다. 박지오 선수! 오늘 정말 멋졌습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당당한 표정으로 사인을 받는 친구와 달리, 서준과 친구들의 눈총을 받았던 남자는 조금 민망한 표정이었다. 캄프 누에서의 자신의 발언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친구가 헹, 하고 비웃었다.
우물쭈물 대는 남자의 모습에 의아해하던 박지오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11번. 자신의 유니폼이었다.
박지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1군으로 승격할 때까지, 아니, 1군이 돼서도 다치지 말고 좋은 경기 보여주세요!”
“? 네! 알겠습니다!”
묘하게 각오가 서린 남자의 말에 눈을 깜박이던 박지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과 아이들이 통쾌한 미소를 지었다.
* * *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렇다니까.”
미나가 고른 맛집에서 이루어진 저녁 식사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안티……까지는 아닌가. 여튼 그런 사람까지 팬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오늘 지오가 대단하긴 했지.”
김태주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본의 아니게 멋지게 복수해 버린 박지오가 유쾌하게 웃었다. 어쩐지. 꼭 이기라고 말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전반전은 왜 그런 거야? 평소랑 많이 다르던데?”
박지후의 물음에 김태주도 아이들도 박지오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너무 신이 나서 힘 조절을 못 했다는 박지오의 이야기에 서준과 아이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걱정한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아니, 무슨. 달리기만 하면 웃는 애들도 아니고…….”
서준이 아역 시절, 감독님에게 들었던 아역 달리기 씬이 제일 찍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들과 김태주가 빵 터지고 말았다.
“어른한테 쫓기는 무서운 장면인데 달리는 게 재미있는지 아이들이 다들 웃는 얼굴로 달려와서 촬영하기 힘드셨대.”
“아하하하. 하긴. 그때는 뭐든지 재미있지.”
“박지오 정신연령이 그 정도라니…….”
지후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경기에 대해 실컷 이야기한 아이들의 수다는 멈추지 않았다.
* * *
-미친ㅋㅋ 해트트릭ㅋㅋ
=아니, 이렇게 갑자기 나오기 있음?
-옆집도 이거 보고 있나 보다ㅋㅋ 같이 소리 지름ㅋㅋ
=22 우리 아랫집도ㅋㅋ
-전반전은 좀 답답해서 껐다가 첫 골 넣었다는 거 듣고 보기 시작했는데 시원시원해서 좋더라ㅋ
-바르샤b 주장이 뭐라고 했는지 되게 궁금하네.
=22 주장이랑 이야기하고 바로 첫 골 넣었지. 어떤 조언이었을까?
-근데 누가 자기가 직접 하는 게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ㅋㅋ 해트트릭해보실?ㅋㅋ
-데뷔전부터 봤지만 박지오 오늘 폼 장난 아니네.
=22 이대로만 가면 금세 1군 가겠는데.
=33 2부 리그도 봐야겠지만……기대감 상승!!
=그럼 월드컵 때 부르려나?
=최시혁이랑 같이 뛰면 장난 아니겠다!
-서준이 친구라서 잠시 볼까 하다가 끝까지 본 1인.
=22 서준이 친구가 골 넣었다길래 틀었다가 후반전 해트트릭까지 본 1인.
-다시보기 돌려본다고 잠 못 자고 있음ㅋㅋ
=나도ㅋㅋㅋ 이제 자야 하는데ㅠㅠ
* * *
이틀 후.
코코아엔터 2팀 사무실.
안다호가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바르셀로나 FC B, 8년 만에 2부 리그 승격!]
[박지오, 승격전에서 해트트릭!]
[박지오, 다음 월드컵 합류 가능성은?]
경기 날로부터 벌써 이틀이 흘렀지만, 아직 박지오와 관련된 기사들이 종종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배우 이서준 전담 2팀은 그사이에서 서준의 소식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안 들켰나?”
바르셀로나를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서준의 사진들을 보면, 그쪽에서도 소문은 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박지오와 서준이 친구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건 시간문제였다.
“팀장님! 떴습니다!”
안다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직원의 자리로 향했다. 커뮤니티의 게시글이었다.
[제목 : 근데 이거 이서준 아님? (사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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