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11화
“그럼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함께 여행 온 네 명 중 세 명이 2주간 프랑스 파리에 머물게 된 상황에 지오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너 혼자 다니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보디가드들과 함께였지만.
지금 파리에서 진행 중일 영화제(서준 일행이 파리에 도착하기 전날 끝난다)를 떠올리며 아쉬워하던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니. 나도 파리에서 2주 동안 머무르려고. 얘들 일정 끝날 때쯤에 제이슨의 연주회가 있어서 그거 기다릴 생각이야.”
원래는 다른 나라들을 열심히 구경하고 프랑스에서 제이슨 무어의 연주회를 본 다음 영국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2주 동안 안 심심하겠어? 서준이 너만 여기 있다가 가는 건 어때?”
지오가 2주간 바쁜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지루한 시간을 보낼 서준에게 말했다.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프랑스에 친구도 있고 연주회는 2주 뒤이긴 한데 제이슨 팀은 더 일찍 오거든.”
정확히 말하자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제이슨 무어의 연주회는 총 4회로, 서준과 친구들이 볼 예정이었던 공연은 유럽 투어의 맨 마지막 회차였다. 나머지 3회의 공연은 그보다 더 일찍 하니, 연주홀을 살피고 간단히 연습하기 위해서라도 제이슨 무어와 그 팀은 며칠 일찍 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파리에 도착하고 나흘 뒤쯤? 제이슨이 파리에 도착한대.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더 오래 보면 좋지.”
서준도 제이슨도 일 때문에 바쁜지라 못 본 지 꽤 되었다.
‘연락은 자주 하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는 건 느낌이 다르니까.’
한국에서 선물도 가져왔다.
“공연 전에는 연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만날 시간이 있어?”
지오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 열흘 정도 같은 도시에 있긴 하겠지만, 투어의 막바지인 만큼 제이슨 무어도 준비에 소홀하지 않을 테니, 서준이 한가하다는 건 여전했다.
“괜찮아. 벤자민 교수님도 계시니까. 벤자민 교수님한테 연락드렸더니 좋다고 하시더라.”
세 아이와 김태주가 찜닭을 먹으며 서준과 지오의 대화를 들었다. 지후와 미나, 지윤은 한국에서 서준의 일정에 대해 들었던 터라 대화에 끼지 않았다.
지오가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가 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괜찮다면야 상관없지만…….”
다른 애들은 들뜬 얼굴로 돌아다니는데 홀로 한가하게 있을 서준의 모습이 떠올라, 괜히 신경이 쓰였다. 지후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도 다 이야기해 봤는데 서준인 그게 편하대. 한 달 살기처럼 여유롭게 여행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고 하더라.”
현지인이 된 것처럼 관광지에서 일상을 보내는 한 달 살기.
“서준이 쟨 진짜 현지인처럼 살 수 있을걸.”
따뜻한 햇볕 아래, 파리의 한 카페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즐길 서준의 모습을 떠올린 미나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지윤이 덧붙였다.
“그리고 나랑 국제 도서전 같이 가기도 할 거라서,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맞아. 내가 애도 아니고.”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잠시 후.
설거지까지 끝낸 아이들이 거실에 모였다. 에이전트 김태주는 서준의 사인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럼 내일은 뭐 할 거야?”
지오의 물음에 서준과 아이들은 공항에서 가져온 팸플릿과 한국에서 알아온 정보들을 주섬주섬 꺼내 바르셀로나 여행 일정을 이야기했다.
“먼저 카탈루냐 광장에 갔다가 구엘 저택이랑 성당들 구경하려고.”
“저녁엔 리세우 대극장에서 오페라도 볼 거야.”
“그건 누구 생각인지 말 안 해도 알겠다.”
지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하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서준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후가 지오에게 물었다.
“그다음 날은 네 경기인데……경기 몇 시부터 해?”
“4시.”
“그럼 그전까지는 조금 돌아다녀도 되겠네.”
서준과 아이들은 바르셀로나 관광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지오도 한마디씩 보탰다.
“하아암.”
내일 갈 곳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지윤이 하품을 했다.
한국이었다면 자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1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데다가 7시간 시차가 있었던 탓에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인 것이었다.
서준이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잘까?”
“그래. 그러자.”
미나와 지후도 조금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보자.”
“잘자.”
미나와 지윤이 방으로 향하고 서준과 쌍둥이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층 침대 하나와 일반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오 넌 저기.”
“그래. 박지오는 저기.”
서준과 지후는 일 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일반 침대를 가리켰다.
좁은 이층 침대는 모레 중요한 시합이 있는 박지오에겐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박지오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침대에 누웠다.
“지후 넌 어디서 잘래?”
“어디든 괜찮아.”
“그럼 내가 2층에서 잘게.”
“그래.”
서준의 말에 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침대에 누웠다. 잘 관리가 되고 있는지 이불도 깨끗하고 푹신했다. 포근한 잠자리에 지후는 금세 잠에 빠졌고, 시차 적응에 익숙한 서준과 여기서 살고 있는 지오만 생생한 얼굴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조명 삼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잘못 사버렸지, 뭐. 글자가 비슷해서 샀는데 전혀 다른 거더라.”
“하하. 진짜? 앞으로는 잘 보고 사야겠다.”
“근데 며칠 전에 또 그랬음.”
메시지로는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던 일상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지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준이 작게 웃었다.
* * *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일찍 잠든 덕분인지 아이들의 컨디션은 좋았다. 오늘 관광을 위해 간단히 짐을 챙긴 아이들은 보디가드들과 인사를 나누고 훈련하러 떠나는 박지오를 배웅한 다음 걸음을 옮겼다.
첫 장소인 카탈루냐 광장으로 향하는 길.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고딕 양식들의 건물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져 있었는데 마치 영화 속의 거리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진 찍자!”
미나가 카메라를 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서준과 아이들은 서로를 찍어주기도 하고 지나가던 한국인 관광객에게 부탁해서 다 같이 찍기도 했다. 그 관광객분이 아주 열정적으로 찍어주셔서 간식으로 가져왔던 스페인 과자(추천: 박지오)를 나눠 드렸다.
“엄청 잘 나왔네.”
“이거 엄마 아빠한테 보내주면 좋아하겠다. 그치?”
그렇게 서준과 아이들은 바르셀로나 여행을 시작했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서 있는 성당들과 벽돌로 쌓은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과 거리, 한국 시장과 닮았으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의 스페인 시장, 벽과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진 음악당, 나폴레옹 황제가 세운 개선문까지.
“와아…….”
“엄청 크다.”
사진으로만 봤던 장소들에 서 있는 느낌은 굉장히 이상하고도 들뜨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계속 감탄하며 맛집 지도(바르셀로나 편)와 지오, 김태주가 추천한 간식들을 사 먹으며 즐겁게 바르셀로나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물론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찍어드릴게요!”
많은 관광객 중 가끔 만나는 한국인들과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감독 지망은 아니지만, 카메라 구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빠삭한 서준이 카메라를 들었다.
“세상에……! 사진 전공이세요?”
“완전 인생 샷이네. 인생 샷. 고마워요!”
그런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사진들이었다. 놀라는 관광객들의 모습에 서준과 아이들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벌써 저녁이네.”
한국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받은 간식들을 챙기고 오늘 마지막 일정인 리세우 대극장으로 향하던 아이들이 미나의 말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밝았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게.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아. 가로등 켜진다.”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들과 관광지에 설치되어 있던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려앉는 어둠과 그 어둠을 밝히는 조명들이 거리와 풍경을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바꿔놓았다.
“멋지네.”
“응.”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까지 더해지자 정말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렇게 잠시 어두워지던 하늘과 주변 풍경을 구경하던 서준과 아이들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녁은 리세우 대극장 근처 맛집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지오 먹을 거 포장해 갈까?”
식탁 위에 하나둘 올라오는 음식들에 지윤이 말하자 지후가 고개를 저었다.
“경기 전에는 갑자기 자극적인 음식 들어가도 안 좋아. 경기 날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평소대로 먹어야 하거든.”
“아, 그랬지.”
그래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보니, 내일 경기에 긴장하고 있을 박지오가 떠올랐다. 서준과 미나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끝나고 이틀 더 있다 가니까 그때 같이 먹자.”
서준의 말에 미나와 지윤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지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기면 파티고 지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나와 지윤이 지후의 등을 찰싹 때렸다. 자기 형에게는 유난히 냉정해지는 지후의 모습에 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서준과 아이들은 무대와 중앙이 뻥 뚫린 리세우 대극장에서 오페라를 보고 숙소로 향했다.
“재미있었냐?”
편한 복장의 박지오가 아이들을 맞았다. 서준과 지윤, 미나가 활짝 웃었다. 지후는 왠지 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지오 너 발은?”
“완벽!”
서준의 물음에 박지오가 붕대를 푼 오른발을 까딱거렸다.
“오늘 훈련도 괜찮았어. 평소보다 잘해서 코치님도 칭찬함. 그보다 너흰 어땠어? 재미있었어?”
옷을 갈아입은 서준과 아이들이 오늘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박지오도 휴일이면 둘러보았던 거리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극장, 엄청 넓고 높이도 엄청 높았어.”
“꼭 영화에 나오는 극장 같네.”
지윤과 미나가 잔뜩 찍어온 사진 속 리세우 대극장은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했다.
“6층까지 있는데 오페라 끝나고 6층에도 가 봤거든. 밑에 내려다보니까 눈앞이 저절로 아찔해지더라.”
“너흰 몇 층에서 봤는데?”
“4층! 정중앙 자리라 좋았어.”
다섯 아이가 거실에 둘러앉아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 일찍 잠들어 이야기하지 못했던 분까지 모두 채울 기세로 간식을 먹으며 즐겁게 떠들었다.
띠링.
서준이 들려주는 [숲속의 병아리반] 에피소드에 으하하하, 웃던 박지오가 울리는 휴대폰에 손을 뻗었다.
>김태주 : 낼 시합인 거 알지?
>김태주 : 일찍 자라.
“아……깜빡했다.”
너무 편하고 익숙해서 한국인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한 서준과 아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차, 하고 놀라는 표정들이 아무래도 다들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 * *
[배우 이서준 친구, 축구 선수 박지오 오늘 출전!]
[박지오, 바르셀로나 FC B 오늘 오후 4시(현지 시각) 승격전 선발!]
[오늘 오후 11시(한국 시각) 승격전 방송 예정!]
[3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승격할 수 있을 것인가!]
-오오. 방송해 주나? 지금까지 박지오 경기는 인터넷 중계로만 봤는데.
=22 보통 안 해주는데 신기하네.
=박지오+승격전이라서 해주는 듯. 기사 보면 알잖아. 화제성은 충분함.
=여기에 이서준이…….
=궁금해서라도 볼 듯ㅋㅋ
-이기면 3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올라간다는 거지?
=ㅇㅇㅇ 박지오는 3부 선수로 들어가서 2부 무대에서 뛰는 거지.
=2부 리그라고 얕보면 안 됨. 1부 리그에서 떨어진 팀이랑 붙는 거니까. 2부 리그 애들이 승격하면 1부 리그 팀 되는 거고.
=그럼 B팀이 2부 리그에서 승격하면 바르셀로나 1군이랑 붙음? 그러면 완전 재밌겠다.
=ㄴㄴ 못 올라감.
=1위 해도?
=ㅇㅇ 1위 해도. 같은 구단이라서 아예 못 올라감.
=그 정도 되면 선수들을 데려가겠지. 1군으로.
-박지오 1군 가겠냐?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잠재력은 있음.
=글쎄. 박지오가 잠재력이 있다기엔 지금 너무 잘해서…… 그냥 지금 실력이 전부인 것 같음.
=22 딱 2부, 3부 리그 실력.
=아직 어리잖아. 이제 겨우 20살임. 만으로는 19세고. 아직 더 실력이 늘어날 수도 있음.
=박지오 한국에서 20년이나 살았고 유럽 축구는 이제 반년 겪음. 초중학생 때 유럽 간 애들도 그냥 돌아오는데 박지오는 어떻겠냐?
=그건 모르는 일이지. 전문가들이 다 판단해서 데려간 거 아님?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전부 알 수는 없지. 그렇게 데려가서 망하는 유망주가 얼마나 많은데. 박지오도 그게 될지 누가 앎.
-11시라서 좋다. 해외축구는 새벽 시간 때라 보기 힘든데.
=22 치킨 먹으면서 봐야지.
=33 울 가족 늦게까지 TV 보는 거 싫어하는데 이서준 친구라고 하면 같이 앉아서 볼 듯.
=44 ㅋㅋ진짜ㅋㅋ 누가 이서준 친구라고? 하면서 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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