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06화
서준은 권세아의 말에 눈을 끔벅이다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작곡 쪽이야, 연주 쪽이야? 연주라면 지금도 잘할 것 같아. 영화 음악을 제작하는 회사는 잘 모르지만, 영화제작사는 좀 아니까 물어봐 줄게. 네가 연주에 관심 있다고 하면 의뢰도 엄청 들어올걸.”
“연주보다는 작곡 쪽이…….”
영화라는 이야기에 반색하며 급발진하는 서준의 모습에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던 권세아가 정신을 차렸다.
“작곡이라. 그래도 처음엔 연주해 보면서 분위기를 익히는 게…….”
“아니! 잠깐만요, 서준 오빠!”
“좋지 않을…… 응?”
휴대폰으로 현재 촬영 중이거나 영화 제작을 기획하고 있는 제작사들(상대방이 학생이라고 낮잡아보지 않을, 코코아엔터 2팀이 엄선한 괜찮은 제작사들이었다)을 살펴보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어…… 안 이상해요?”
“이상해? 뭐가?”
“그러니까…….”
권세아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입을 열었다.
“클래식 하던 애가 갑자기 영화 음악 작곡하고 싶다고 해서요.”
“……?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서준이 이상할 게 뭐 있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말하자, 권세아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
그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클래식계에서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권세아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침울해진 권세아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게 고민이었어?”
“하아. 네.”
차분해진 분위기에 권세아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제가 영화 중에 오버 더 레인보우를 제일 좋아하는 거 아시죠?”
“응. 알지.”
조별 수업을 시작하고 오늘로 5번째 만남이었다. 1시간이나 같은 연습실에서 서로의 연주를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라도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두 사람이 공통 화제가 있다면 더욱 편하게 오고 갈 수 있었는데, 서준과 권세아에게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서준의 작품을 안 본 사람은 거의 없었고, 둘 다 바이올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작품들과 바이올린, 그리고 벤자민 모튼 교수님과 제이슨 무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제가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오버 더 레인보우거든요.”
“음. 내 사촌 동생도 그래.”
혈연으로 이어진 사촌 동생은 아니지만, 진짜 사촌 동생 같은 김수빈을 떠올리며 서준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버 더 레인보우가 개봉하고 몇 년쯤은 바이올린 붐이어서 많은 아이들이 바이올린 학원에 다녔었지.’
그 때문에 현재 비슷한 나이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 중에 [오버 더 레인보우]가 계기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도 그렇고.’
[오버 더 레인보우]의 VOD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서준의 말에 권세아가 물었다.
“동생은 몇 살인데요? 바이올린 잘해요?”
“지금은 11살. 초등학교 4학년이야. 6살 때부터 배워서 잘해.”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권세아가 감탄했다.
“그렇구나. 서준 오빠가 잘한다고 하면 되게 잘하겠네요. 아, 그러고 보니 오빠가 오버 더 레인보우에 출연한 것도 초등학생 때였잖아요.”
“응. 5학년 때 촬영했지. 바이올린 연습은 4학년 때부터였지만.”
“와아…….”
지금 들어도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인데 그걸 5학년 때 연주했다니 감탄만 나왔다.
이야기하던 서준도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수빈이가 벌써 그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지금도 되게 아기 같은데 말이야.’
아마 영화 촬영한다고 신난 꼬마 서준을 보던 엄마 아빠와 다호 형의 마음이 이랬을 것 같았다.
“근데 그렇게 바이올린을 잘했는데 클래식 하라는 말은 안 들었어요?”
“들었지. 제이슨한테.”
오. 제이슨 무어.
현재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언급되자 권세아가 눈을 반짝였다.
“근데 왜 안 하셨어요? 하셨으면 엄청 잘했을 것 같은데! 오빠라면 해외 콩쿠르에서 상도 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바이올린도 좋아하지만, 연기가 더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상이라면…… 그때 아카데미 상을 받았지.”
아앗.
권세아는 새삼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인 한국인 최초,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빠는 진짜 어릴 때부터 대단했네요. 난 5학년 때 뭐 했지?”
“바이올린 연습하던 중이지 않았을까?”
“아. 맞아요. 엄청 열심히 했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권세아를 보며 작게 웃은 서준은 다시 이야기를 원래 방향으로 돌렸다. 어쩌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버 더 레인보우가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아, 네.”
권세아도 지금이 고민 상담 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 사촌 언니가 놀러 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오버 더 레인보우를 처음 봤었어요.”
권세아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영화를 몇 번이나 보냐고 사촌 언니를 타박하는 이모, 리모컨을 사수하는 사촌 언니, 영화관에서 재미있게 봤다는 엄마. 그사이에 [오버 더 레인보우]를 처음 보는 어린 권세아가 끼어 있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엄청 어수선했거든요. 근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거실이 조용해졌어요.”
모두 영화에 집중한 것이 어린 권세아에게도 느껴졌고, 그건 어린 권세아에게 묘한 기대감을 갖게 해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공연처럼 삐, 하는 소리가 울리고 레베카가 일어났죠. 근데 영어로 말해서 자막을 읽는다고 힘들었어요.”
“하하.”
권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서준이 작게 웃었다. 수빈이나 은수처럼 서준이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사용해 놀아준 덕분에 영어를 제법 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럴 터였다.
“그런데도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진짜 눈도 깜빡하지 않고 봤어요. 자막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에요.”
그렇게 어린 권세아는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어린 권세아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행복과 절망, 그리고 미약한 희망의 선율이 이어졌다. 곧 폭발할 것처럼 마음을 간지럽히던 연주가 잦아들더니 배경이 바뀌었다. 다시 행복과 절망, 그리고 끈질기게 남아 있던 조그마한 희망이 드디어 폭발했다.
온몸을 짜릿하게 만드는 찬란함이었다.
“공원에서 연주하고 있던 그레이의 모습이,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그레이의 모습으로 변하는 연출과 음악은 진짜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꿈을 꾸는 듯 몽롱한 권세아의 모습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 장면은 기념 티켓과 더불어 대중들이 손꼽은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고, 서준도 좋아하는 장면이었다.
“VOD로 봐서 기념 티켓의 감동까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저한텐 엄청 인상 깊게 남았어요. 영화가 끝나자마자 엄마한테 나 저거 하고 싶어! 하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어린 권세아의 말에 엄마와 이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사촌 언니를 바라보았다. 사촌 언니도 어린 권세아처럼 바이올린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다른 점이라면 사촌 언니는 흥미가 떨어져서 3개월 만에 그만두었지만, 저는 흥미도 가득했고…… 제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재능도 넘쳐났죠.”
동네 음악 학원에서 배우다가 어린 권세아의 재능에 놀란 학원 선생님의 소개로 더 유명한 선생님에게 배우게 되고, 국내외 콩쿠르에도 나가고 연주회도 하게 되고, 결국 한예대에 조기입학까지 하게 되었다.
해외 유명대학도 추천받았지만, 아직 어려서 일단 한국에 있기로 한 것이었다.
“그게 문제였어요.”
권세아가 고개를 휘휘 젓더니 말을 고쳤다.
“아니, 문제가 아니라…… 가지고 있던 위화감의 원인을 알게 된 거예요.”
음악을 좋아한다. 바이올린을 좋아한다. 연주하는 것도 즐겁고 듣는 것도 즐겁다. 연습도 힘들지만, 보람이 있어서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가 권세아의 마음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다른 길은 전혀 안 봤거든요. 부모님도 선생님도 교수님도 전부 이 길이, 바이올린이 제 길이라고 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한국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고 기사도 엄청 났고 클래식계의 관심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만한 재능에 다른 길을 보는 건 쓸데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벤자민 교수님도 심사를 맡았던 해외 콩쿠르에서 본 권세아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그럴 만도 했다.
“2학년 때, 친한 언니가 영화 음악을 맡게 됐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학교 영화과 학생이 감독이었고 연기과 학생들이 배우로 나오는 작은 독립영화였어요. 오빠도 알죠? 프로젝트팀.”
“알지. 나도 흥미가 있어서 찾아보는 중이야.”
한예대 학생은 물론이고 외부인까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팀.
서준도 관심이 있어 공고를 찾아보는 중이었다.
“저도 궁금해서 그 언니랑 같이 가봤거든요.”
하아.
권세아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심 어린 표정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지만, 눈만큼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또한 권세아는 평생 잊지 못할 터였다.
“그 프로젝트팀이 찍은 영상은 상업 영화나 다른 독립영화에 비해서 확실히 부족해서 전 조금 실망하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배경음악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근데 그때 딱 언니가 작곡하고 연주한 음악이 들어간 거예요.”
음악이 흐르고 화면 속 인물들이 움직였다. 인물들의 감정과 분위기에 따라 음악이 변했고, 음악이 변함에 따라 인물들의 감정과 분위기가 변했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마치 흑백이던 화면이 총 천연의 색으로 바뀐 것 같았다.
그제야 권세아는 깨달았다.
저거 하고 싶어.
어린 권세아가 가리키는 ‘저거’와 어른들이 생각한 ‘저거’는 달랐다는 것을.
이야기하던 권세아는 자신도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어린 애가 음악 감독이라는 직업을 알 리가 없잖아요. 어른들도 설마 그 어린 애가 눈에 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음악 감독을 하고 싶다고는 생각 못 했을 테고요.”
“그거야 그렇겠지.”
세상에.
바이올리니스트도 아니고 영화감독도 아니고, 음악 감독이라니.
서준이라도 분명 착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누구의 잘못이라기엔…….”
서준의 말에 권세아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는 일이기도 하고, 저도 바이올린을 좋아해서 괜찮아요. 그냥…… 이제 진짜 하고 싶은 걸 알았으니까 그걸 하고 싶은데…….”
권세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기가 막막해요.”
“그래?”
“……서준 오빠. 그 ‘하고 싶으면 하면 되잖아’라는 표정 좀 그만 지어줄래요?”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자, 권세아가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작곡 수업도 듣고 있어요. 재능도 좀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바이올린이랑 작곡을 병행하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저한테 그 정도의 능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분명 하나에 빠지면 하나는 소홀히 하게 될 텐데…….”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홀로 오랜 시간을 고민해온 권세아가 서준에게 물었다.
“오빠라면 어떨 것 같아요? 배우가 아니라 다른 걸 하고 싶으면 말이에요.”
권세아는 [바이올린에 대하여(심화)] 강의실에서 서준을 처음 봤을 때부터 묻고 싶었다.
자신만큼이나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으며 자라온 서준이라면 주변의 기대와 반대되는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자신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고 바랐다.
“배우가 아니라 다른 일이라…….”
서준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아주아주 깊은 고민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생후 7개월 때부터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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