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04화
[바벨탑]의 종방연이 있을 고깃집 앞.
[바벨탑] 촬영진 측에서는 배우들도 편하게 종방연을 즐길 수 있게끔 가게 하나를 통째로 대여했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것부터가 고난이었다. 종방연을 촬영하러 온 기자들 때문이었다.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이쪽도요!”
권강민과 배우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자 기자들의 셔터 누르는 소리와 함께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이런 기자들의 모습만으로도 이번 드라마가 얼마나 화제가 되었고 흥행이 됐는지 아는 배우들은 웃으며 자세를 잡았고, 그렇게 찍힌 사진들은 곧바로 기사로 인터넷에 올라가 [바벨탑]의 마지막 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SBC 바벨탑, 오늘 종방연!]
-오. 종방연! 시청률 잘 나와서 완전 파티 분위기일 듯.
=22 평일 드라마 중에 바벨탑이 제일 잘나감.
-이서준도 오려나?
=카메오라서 안 올 것 같은데?
=카메오라고 말하기엔 이번 드라마 흥행 지분율이 엄청 크지 않음? 출연만 카메오일 뿐이지 홍보력만 보면 거의 주연임ㅋㅋ
=ㅇㅇㅇ워킹맨하고 병아리반도 화제성 장난 아니었잖아. 보통 이 정도 홍보는 못 하지.
=22 나도 이서준 카메오 궁금해서 본 거라…… SBC는 진짜 이서준한테 절해도 모자랄 판.
“기승전 서준이네.”
고깃집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권강민이 웃으며 인터넷을 둘러보았다. 도배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연예부 기사 대부분이 오늘 [바벨탑]에 대한 것들뿐이었다.
“저 출연했던 작품이 이 정도로 화제가 되는 건 처음이에요.”
“나도. 진짜 바벨탑밖에 안 보이네.”
다른 배우들도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준보다는 못하지만 [바벨탑]의 흥행으로 이후 차기작 활동이 제법 편안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게 먼 훗날의 일도 아니었다.
“내가 광고를 찍다니……!”
벌써 [바벨탑]의 이미지에 맞게 광고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있었다. 권강민도 소속사 쪽으로 들어온 광고 제안서들을 떠올리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스태프분들도 되게 분위기 좋지 않아요, 형?”
“아까 카메라 감독님한테 들었는데 보너스 받는다더라고.”
권강민이 보너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떠들썩하던 스태프들이 높게 잔을 들고 건배사를 외치고 있었다.
“보너스!!”
아직 시작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종방연을 즐기고 있는 스태프들의 모습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신지혜 감독 대신 종방연을 관리하고 있던 조연출은 이마를 짚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첫째도 시청률, 둘째도 시청률인 방송계를 잘 아는 터라, 언제 이런 날이 또 올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누가 왔나 본데?”
“신 감독님하고 김 작가님이신가?”
다들 궁금해하는데, 권강민이 휴대폰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배우 이서준, SBC 바벨탑 종방연 참석!]
[이서준, 최소영과 함께 바벨탑 종방연 참석!]
라는 제목과 함께 사진 하나가 달랑 붙은 기사들이 순식간에 업로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준이랑 소영이네.”
“아하하. 기사로 먼저 알게 되다니 재미있네요.”
권강민이 보여주는 기사에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웃고 말았다.
잠시 후.
기자들이 얼마나 불러댔는지, 참석했다는 기사가 뜨고 나서도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서준과 최소영이 고깃집 안으로 들어왔다.
“와. 앞에 기자 진짜 많네요.”
“안녕하세요.”
최소영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서준도 웃으며 인사하고 배우 테이블에 자리에 잡았다. 권강민과 배우들이 반갑게 두 사람을 맞았다.
“어떻게 둘이 같이 온 거야?”
권강민의 물음에 최소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진이랑…… 그러니까 이다진 배우랑 있다가 오는 길이에요.”
“오. 그래?”
이서준, 최소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배우 이다진의 등장에 배우들이 호오, 탄성을 흘렸다.
“이다진 배우는 요새 뭐 해?”
“다진이 누나는 연극 준비하고 있어요. 이제 곧 공연이라 엄청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이다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배우들이 서로의 근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는 광고를 찍고 누구는 차기작으로 들어온 작품들을 살펴보고. 서준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선약이라는 게 하랑이를 만나러 가는 건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아, 하랑이한테 받은 손수건은 어떻게 했어?”
“그건 쓰기 아까워서 청룡님 인형에 묶어뒀어요. 이렇게요.”
서준은 배우들에게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청룡님 인형의 목에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든 손수건이 삼각형 모양으로 둘려 있었다.
“귀엽네!”
“그쵸? 잘 어울리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가, 신지혜 피디와 작가가 고깃집에 나타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국장님이 도통 놓아주실 생각을 안 해서요. 이제 촬영 끝났는데 벌써 차기작 들어가시자고 하시더라고요.”
신지혜 피디의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작품의 흥행은 종방연의 분위기로 알 수 있다던데, 그렇다면 [바벨탑]은 대흥행이 아닐까 싶었다. 어둠 한 점 없이 떠들썩한 고깃집 안을 둘러보던 신지혜 피디가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들 벌써 종방연을 즐기고 계시니 길게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배우 여러분들과 스태프 여러분 덕분에 사고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쳤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이 될 줄 알았지만 이렇게 큰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건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신지혜 피디가 배우들 사이에 앉은 서준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카메오로 출연해 주셔서 누구보다 강력한 홍보력을 보여주신 이서준 배우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모두! 드시고 싶으신 거 마음껏 드시고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와아아, 함성과 박수가 쏟아지며 본격적으로 [바벨탑] 종방연이 시작되었다.
[바벨탑]의 신지혜 피디와 작가가 싱글벙글 웃으며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른 사람들도 본격적으로 부어라 마셔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서준이 너 종방연은 오랜만이지?”
“네. 봄이 돌아왔다도 벌써 3년 전이니까요.”
최소영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미성년자라서 오래 못 있었는데, 오늘은 늦게까지 있어도 돼요.”
“……왠지 일찍 들여보내야 할 것 같은데?”
새삼 서준의 나이를 실감한 권강민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 * *
잠시 후.
떠들썩한 분위기가 조금 잦아들고 [바벨탑] 마지막 회가 시작되었다.
촬영은 했지만 어떻게 편집됐는지 모르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관심 어린 눈빛으로 고깃집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TV를 바라보았다. 지난 화의 마지막 부분부터 방송이 흘러나왔다.
반사전제작으로 만들어진 덕분인지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아, 작가, 조연출과 함께 앉은 신지혜 피디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배우들도 다 좋고 스태프도 다 좋아서 진짜 편한 촬영이었지.”
“그쵸. 진짜 환경이 너무 좋아서 촬영할 때도 다른 걱정은 안 하고 제발 시청률만 잘 나와줘라, 하고 빌었잖아요, 우리. 작품도 좋지, 배경도 좋지, 배우도 연기 잘하지. 근데 그렇게 좋은 작품이라도 흥행은 항상 걱정해야 했는데…….”
조연출의 말을 벌써 반쯤 취한 작가가 이어받았다.
“갑자기 이서준 배우가 나타난 덕분에 시청률 걱정도 안 했잖아요. 진짜 무슨 복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 인생 운빨을 다 쓴 같아요. 어떻게 그때 우리 배우님들 워킹맨에 나가서! 워킹맨은 또 하필 그 스키장에 가서! 어떻게 딱 그 게임들을 하게 된 건지!”
조연출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진짜 현실은 소설보다 더한 것 같다니까요.”
“진짜 그게 일이 아니었으면 이서준 배우가 우리 작품에 나올 리도 없었겠고, 이렇게 흥행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그것도 그렇지만 이 배우는 김 작가님 대본 보고 결정한 거잖아요. 다 작가님이 글을 잘 쓴 덕분이죠!”
“흐흐흐. 고마워요. 신 피디님. 우리 차기작도 같이 하는 거 어때요?”
“와! 그럴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바벨탑] 마지막 회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서준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화면 속, 반짝이는 이서준을 보고 얼빠져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본 권강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 저때 진짜 놀랐다니까. 뭔가 연예인의 연예인을 보는 느낌? 워킹맨 때처럼 뭔가 느낌이 달라서 깜짝 놀랐어.”
“나도. 조금 전까지는 같은 세계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져서 넋 놓고 봤다니까.”
배우들의 말에 ‘슈퍼스타 이서준’ 역을 연기하느라 아우라를 뿜뿜했던 서준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전 진짜 이서준 배우를 보는 느낌이라서 엄청 좋았어요. 아니, 서준이도 이서준이긴 한데…… 뭐랄까. 항상 TV로만 보던…… 아! 칸 영화제 시상식에 있던 이서준 배우 같은! 그런 느낌이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서준이 친근감이 든다고 한다면, 촬영 중에 봤던 이서준은 동경심이 저절로 드는 그런 모습이었다.
TV 화면에 서준이 연설대에 올라서 연설하는 모습과 함께 LIVE라고 적힌 글자와 뉴스 자막이 떴다. 정말로 실제 뉴스 같은 모습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저 촬영분 진짜 뉴스팀 데려왔다더라. 카메라부터 자막까지 싹 다.”
“정말요?”
권강민의 말에 서준은 물론이고 다른 배우들까지 놀란 눈으로 으히히 웃고 있는 신지혜 피디를 한 번, TV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뉴스랑 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더니, 진짜 뉴스 제작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 감독님 작품, 디테일 걱정은 없겠어요.”
“그러게 말이야.”
서준과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 연설 장면이 지나가고 최소영의 내래이션이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고깃집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침내 적막과 함께, 자막이 떴다.
[특별 출연해 주신 이서준 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바벨탑을 시청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기다렸다는 듯 신지혜 피디가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아!!”
와아아아!
가게 안이 [바벨탑]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 * *
[SBC 바벨탑, 마지막 회 방송! 결말은?]
[배우 이서준, 바벨탑에서 000으로 출연!]
[이건 뉴스인가, 드라마인가. 진짜 뉴스팀까지 불러온 SBC 드라마 바벨탑!]
-진짜 재미있었음ㅠㅠ 이제 뭘 보고 사냐ㅠ
=22 병아리반도 끝났고 바벨탑도 끝났고ㅠ
=일주일의 낙이 이렇게 끝났네ㅠㅠㅠ
-000 이번엔 맞힘. 이서준임.
=거기서 이서준이 나올 줄이야ㅋㅋ 상상도 못 했음ㅋㅋ
=나도. 팀장이 배우 이서준이라길래 잘못 들은 줄ㅋㅋ 거기서부터 제 4의 벽을 넘은 느낌이었다.
=22 내가 보고 있는 게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였나…… 했음ㅋㅋ
-때깔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ㅋㅋ뉴스팀ㅋㅋ
=뉴스팀을 왜 불러와요ㅋㅋ 피디님ㅋㅋ
=SBC 뭐야ㅋㅋ 왜 이렇게 바벨탑에 진심이야 ㅋㅋ
=근데 시청률 보면 그 정도 할 만함.
=22 아예 뉴스룸까지 내어주고 싶었을 듯.
-너무 멋졌다. UN 연설 장면ㅠㅠ
=ㅇㅇ진짜 숨 죽이고 봤다. 뉴스 같아서 되게 생방송 같고 현실성 있어서 더 그랬음.
=서준이 정장 너무 멋있더라ㅠㅠ 화장도 연해서 더 단정하고 말끔하달까ㅠㅠ
=그거 찾아보니까 친환경 소재 정장이라더라. 제작할 때도 최대한 환경오염 안 되게 만들었다고 함.
=……디테일 보소;;;
-나 저기서 엑스트라 알바 했는데 진짜 말하고 싶어 죽는 줄ㅋㅋ 이서준이 이서준 했다!!
=오. 한국인은 별로 없던데 어떤 역임? 이서준 매니저역이야? 아님 경호원?
=러시아 대사
=……예?
=러시아 대사ㅎㅎ
=아닠ㅋㅋㅋ 한국인인 줄 알았잖아ㅋㅋ왜 이렇게 한국어를 잘해ㅋㅋ
=22 나보다 한국어 잘하는 거 아니냐ㅋㅋ
-제작진 생각보다 UN회의 장면에 진심인 것 같더라.
=왜?
=UN회의 장면에서 나오는 외국인 엑스트라들 최대한 그 나라 사람들로 모았더라고. 다들 어떻게 모았냐고 이야기함.
=오…… 어떻게 앎?
=엑스트라로 출연함ㅎㅎ
=……어느 나라 대사시죠?
=ㅋㅋ영국입니다ㅋㅋ
=……이젠 무섭다;;; 다들 왜 이렇게 한국어를 잘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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