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93화
해가 진, 어두운 저녁.
훌쩍이는 막내, 하랑이를 안은 박이든이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았다.
서준이 떠났다.
2팀장님과 운전석 쪽에서 조금 다투는가 싶더니, 2팀장님이 이기신 듯 2팀장님이 운전대를 잡았고 서준이 아쉬운 얼굴로 조수석에 앉았다. 2팀장님이 그렇게 흡족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떤땐님…… 가써…….”
유난히 서준을 좋아하던 하랑이를 토닥이던 박이든이 부러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무거워! 밥 잘 먹으니까 이렇게 무겁네!”
“으히……히히히!”
박이든이 얼굴을 비비자, 훌쩍이던 하랑이가 간지러운 듯 웃기 시작했다.
서준의 빈자리는 아이들의 활기로 채워졌다. 밥 잘 먹은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쳐, 제작진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실내 체육수업을 했다. 그렇게 신나게 체력을 쓴 아이들은 9시가 되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식탁에 약한 조명 하나를 켠 채 악당 무리, 아니, [병아리반] 선생님들이 모였다.
“내일은 어쩌죠?”
“글쎄…….”
이서준이라는 치트키까지 사용해 버려 내일이 두려워진 출연자들이었다. 오늘 저녁을 먹이는 데만 날다람쥐 피포 이야기와 서준의 캐릭터 성대모사, 서준의 먹방까지 이용했다.
하나하나 손을 꼽아보던 김자영이 이마를 짚었다.
“진짜 내일은 어떻게 하지?”
한밤중의 회의에는 새로운 악당, 아니, 인물 강수정 피디와 메인 작가도 참석했다. 어쩌면 이제 아이들을 교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출연자들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밥을 안 먹어서 골치긴 했으나, 이미 정이 들어버렸다. 출연자들은 이 아이들 그대로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서준이 먹방 보여주면 어떨까요?”
박이든의 말에 다들 떠오른 기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 첫날에 보여줬다가 실패했잖아.”
“20개월까지라니…… 생각도 못 했지.”
출연자들과 제작진이 생각한 ‘온갖 방법’에는 당연히 서준의 먹방도 들어 있었다.
부정적인 반응에 박이든이 다시 말했다. 마치 마지막 방법을 이야기했던 일주일 전처럼 조명 아래 박이든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게 아니라 오늘 애들이 홀린 듯 밥 먹었잖아요. 서준이 먹방이 아무래도 효과가 있는 게 아닐까요?”
세 출연자가 서준이 먹던 모습을 떠올렸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던 모습. 아이들처럼 신나게 먹지는 않았지만, 그 홈파티 같은 식사자리에 어울렸다.
“……근데 그건 미인계 아닐까?”
정나희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반짝반짝하던 서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미인계든 먹방이든, 한번 해보는 건 괜찮을 것 같아.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고 내일 아침은 먹여야 하니까.”
“아니면 다른 선생님이 함께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애들끼리만 먹어서 잘 못 먹는 걸 수도 있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
아이들이 밥을 잘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착한 악당들의 회의가 이어졌다.
* *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침부터 일어나 신나게 놀던 아이들을 출연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식탁에 앉혔다. 이번 식탁에는 정나희가 함께 앉아 밥을 먹기로 했다.
“그래도 명진이는 먹네.”
“그러게요.”
정나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명진이가 다시 밥을 잘 먹기 시작했다.
“근데 명진이는 원래 잘 먹던 애라서…….”
김자영과 박이든, 허운성이 마당을 뛰어노는 네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제저녁, 잘 먹던 모습이 마치 꿈 같았다.
꺄꺄 웃으며 형누나들을 뒤쫓아 다니던 막내, 하랑이가 박이든에게 다가왔다. 익숙하게 두 팔을 뻗는 모습에 박이든이 웃으며 읏샤, 하고 하랑이를 안아 들었다.
“하랑이는 밥 안 먹어?”
“떤땐님하고 머글래.”
“나랑?”
“아니! 주니 떤땐님!”
“……하랑이 너. 너무 단호한 거 아니야? 내가 아니라 서준이 선생님이랑 먹고 싶다고?”
“응!!”
단호박 같은 하랑이는 상기된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귀여워 키득키득 웃던 박이든의 시선이 제작진 쪽으로 향했다. 제작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제 서준이 앉았던 식탁 상석에 커다란 모니터를 설치했다. 최후의 수단이자, 거의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준비한 것들이었다.
“그럼 주니 선생님하고 같이 먹을까?”
“응! 응!”
박이든은 모니터를 켜서 영상을 틀고 하랑이를 자리에 앉혔다.
최대한 맛있는 표정으로 먹고 있던 정나희와 아이들을 보고 있던 김자영과 허운성, 제작진들은 그다지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박이든만이 조금 떨리는 심정이었다.
앞과 뒤를 자른 정도의 편집을 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주니 떤땐님!”
“선생님이다!”
하랑이와 식탁에 앉아있던 세 아이가 화면에 나오는 서준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화면 속 서준도 환하게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선)미식가 오크의 초대가 발동됩니다.]
화면 속 서준이 정갈하면서도 맛있게 밥을 먹었다. 정나희가 말했던 미인계라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애들 오는데?”
허운성의 말에 세 출연자가 고개를 돌렸다.
신기하게도 놀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식탁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제작진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촬영했다.
달래지도 혼내지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식탁으로 온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정말로 마법 같은 일이었다.
“밥 주세요!”
“난 밥 다섯 개 먹을 거야!”
“다섯 그릇이야!”
“나도 다섯 그릇 먹을 거야!”
식탁의 분위기는 어제처럼 신나고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덩달아 표정이 밝아진 출연자들이 아이들의 손을 닦아주고 아침 식사를 도와주는 사이, 강수정 피디와 메인 작가, 스태프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효과가 있네요? 강 피디님. 이러면 교체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메인 작가의 말에 강수정 피디는 고민에 잠겼다.
서준의 먹방이 효과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아예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효과가 널리 알려진 아기 먹방도 있었고.
‘아무래도 이서준 배우니까.’
훌륭한 연기력과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 뛰어난 외모가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하고 분석하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신기하긴 했다.
일단 그런 자세한 분석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강수정은 프로그램을 먼저 생각했다.
“영상 복사할 수 있지?”
“이서준 배우 먹방이요? 네.”
조연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복사해서 애들 부모님들한테 주자. 애들 밥 먹일 때 써보라고.”
“……좋은 방법이네요!”
메인 작가는 강수정 피디의 생각을 단번에 이해했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우연이 겹치고 겹치면 원인에 따른 당연한 결과인 거야. 먹방이 효과가 있으면 애들 교체 안 해도 될 거고.”
“맞아요! 아기 먹방도 있는데 하나 더 나타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죠!”
“그렇다고 너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후보에서 떨어진 애들 좀 살펴보자.”
강수정 피디의 말에 메인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근데 방송국에 이서준 배우 출연한다는 거 알렸어요?”
“어제 매니저님이랑 이야기 끝나자마자 알렸지. 진짜냐고 계속 묻더라. 국장님 전화까지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SBC [워킹맨]도 이 정도로 난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휴대폰 건너 방송국이 떠들썩했다.
CP에게 먼저 알리니, CP가 놀라 ‘이서준이 왔다고?!’ 하고 외쳤다. 그 이야기를 들은 피디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뭐!? 이서준?! 진짜야?!’, ‘지금! 지금 가면 인터뷰할 수 있어?!’ 등등 귀청이 떨어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란에 예능국 국장까지 나타나 ‘고정! 고정으로 섭외…… 못 하겠지?’, 하고 물었다.
“고정은 안 될 것 같으니까 이서준 배우의 분량을 어떻게든 늘려보겠다고 했지.”
“어느 정도 늘릴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4화까지가 한계가 아닐까 싶어. 아 참. 2화 내용을 조금 바꾸고 싶은데.”
“2화요?”
메인 작가가 눈을 끔벅였다. 강수정 피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에 이서준 배우의 먹방2가 진짜 효과가 있으면 말이야.”
“하하. 먹방 투는 뭐예요.”
메인 작가가 웃음을 터뜨리고는 강수정 피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 *
그날 저녁 9시.
KBC에서 [숲 속의 병아리반]이 방송되었다.
먼저 [병아리반]의 선생님이 될 네 출연자가 모여 인사를 하는 모습이 나오고 개인 캠으로 책과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공부하는 모습도 나왔다.
촬영장은 조금 오르막길이 있는 언덕 위의 집이었다. 앞마당은 초록빛 잔디가 잔뜩 깔려 있고, 뒤편은 나무들이 울창했다. 오른쪽에는 동물들이 사는 곳, 왼쪽에는 아이들이 놀만 한 기구들이 있었다.
다음은 [병아리반] 원생이 될 일곱 아이가 하나둘씩 등원을 하면서 소개되었다. 6살 맏이부터 3살 막내까지. 나이도 다양했다.
-애기들 귀엽네!
-허운성 빼고 다 애들이랑 안 놀아본 것 같은 분위기ㅋㅋ
-부모님들 가니까 애들 다 울어ㅋㅋㅋ
바이바이, 하라는 소리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안쓰럽고 귀여웠다.
-그러고는 바로 자기들끼리 놀아ㅋㅋ
-애들 기분 전환 참 빠르지ㅋㅋㅋ
언제 울었냐는 듯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다칠까 봐 허둥지둥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딸이 있는 허운성을 빼면 다들 나름 공부를 하고 왔지만, 아이들을 다루는 모습이 서툴러 보였다.
-박이든은 거의 같은 수준으로 노는 것 같은데ㅋㅋ 나이 차이가 10년이 넘는데ㅋㅋ
-이든이 되게 애들이랑 잘 놀아준다ㅋㅋ
=22 놀아주기만 함ㅋㅋ
=33 울면 같이 울려고 하고ㅋㅋㅋ
즐거운 놀이시간이 지나고, 음악수업에서 김자영이 수업을 맡고 박이든이 풍금 연주를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왔다.
-김자영 : 여기서 배로 숨을 쉬는 거야.
아이들 : 후우! 후우! 후우! (배 뽈록)
김자영 : …….
=ㅋㅋㅋㅋ애들 열심히 하넼ㅋ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ㅋㅋ귀여워ㅋㅋ
-박이든은 한 번에 하나밖에 못하나 봐ㅋ 건반에 집중하면 페달을 못 밟고 페달에 집중하면 건반 박자가 이상해ㅋㅋ
=손이랑 발이 따로 열심히 움직여야 할 텐데ㅋㅋ
=익숙해지면 잘하겠지…… 하는 순간 둘이 자리를 바꾸네ㅋㅋㅋ
김자영이 풍금을 연주하고 박이든이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제법 나아진 음악수업에 시청자들이 만족했다.
다음은 허운성과 정나희의 구연동화였다.
-배우가 구연동화를 한다고? 재능 낭비 쩐다ㅎㄷㄷ
=저런 퀄리티 있는 유치원이 어디 있어ㅋㅋ
-나도 모르게 동화에 빠져듦;;;
-따로 편집해서 애들 보여주면 좋아하겠다ㅋㅋ
평화롭고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이 나오는 보통 예능과 다를 바 없는 방송이었다.
-애들 밥 먹는 모습이 제일 귀여워ㅠㅠ
=222 진짜 잘 먹네.
-볼 통통한 거 봐ㅠㅠ
-저게 한입에 다 들어가네!
=애들 생각보다 많이 먹음ㅋㅋ
KBC 모니터링실.
휴대폰으로 시청자 반응을 살피고 있던 강수정 피디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밥 먹는 장면을 아예 안 넣을 수는 없어 잘 먹는 세 명의 분량만 편집해 내보냈다. 편집만 보면 나머지 아이들은 다 먹고 신나게 노는 것처럼 보였다. 편집의 힘이었다.
“그래서 강 피디. 이서준 배우 분량은 몇 화까지 넣을 생각이야?”
“촬영 분량이 몇 시간 안 돼서 끝까지 넣는 건 무리일 거예요. 많이 늘려 봤자 4화까지 넣는 게 최선이에요.”
조금이라도 많은 분량을 넣고 싶었던 국장이 입맛을 다셨다.
이서준이 출연했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광고를 하고 싶다고 연락 온 기업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 1화가 끝났으니 앞으로 이서준의 효과가 통하는 방송은 2, 3, 4화밖에 남지 않았다.
국장의 아쉬운 표정에 강수정 피디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최대한 넣어볼게요. 좋은 소스도 생길 것 같고요.”
강수정 피디는 다음 주 안으로 결과가 나올 먹방2를 떠올렸다. 그게 정말 효과가 있다면 생각해 두었던 구상을 뒤엎을 생각이었다.
“그래! 그럼 되지! 그러고 보니 이서준 배우는 언제 처음 나오는 거야? 이번 편 예고편에 나와야 하지 않아?”
“그게…… 아, 나오네요.”
막 입을 열려던 강수정 피디와 국장의 고개가 스크린으로 향했다. 마침 다음 화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다.
[숲 속의 병아리반]
[다음 화 예고]
어두운 조명 아래.
네 출연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치 만화 속 악당 무리의 회의처럼 무슨 일인지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였다. 소리가 뭉개져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열심히 의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야ㅋㅋ 갑자기 분위기 악당이야?ㅋㅋ
-꼭 나쁜 놈들은 저렇게 회의하더라ㅋㅋㅋ
-이거 힐링 예능 아니었어?ㅋㅋ
-깜짝 파티라도 하는 거 아냐?
=오! 이거인 듯.
그늘진 얼굴의 박이든이 입을 열었다.
[그럼……이제 마지막 방법을 쓰죠.]
세 사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이든이 휴대폰을 들었다. 톡톡! 톡톡!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더니 얼마 안 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진지한 표정으로 굳어 있던 박이든이 얼굴이 일순, 눈물이 그렁그렁할 것처럼 풀어졌다.
[서준아!!]
박이든의 목소리가 모니터링실을 울렸다.
[다음 주!]
[숲 속의 병아리반에 000이 왔다!]
-……예??
-……뭐라고요???
-ㅋㅋ그냥 박이든 목소리만 들려줬으면 스준아, 서즌아 정도로 알아들었을지도 모르는데ㅋㅋ 자막으로 <<서준아!!>>라고 확실하게 적어뒀어ㅋㅋ
=이름이ㅋㅋ스준ㅋㅋ서즌ㅋㅋ
-이 정도면 그냥 000>>>이서준 아님?ㅋㅋㅋ
=22 지나가면서 봐도 이서준이네.
=33 초딩 1학년 받아쓰기 급.
=44 답 : 이서즌
=55 너 틀림ㅋㅋ ㅡX ㅜO
-헐. 그럼 다음 주에 서준이 나옴? 꼭 봐야지!!
-……아……역시. 제작진 이러려고 박이든 섭외한 듯. 박이든이 지상파 고정급은 아니라서 우리 서준이 끼워 넣은 것 같은데…… 재개약했다고 소속사 마음대로 하는 거임? 우리 서준이 바벨탑 찍어야 해서 바쁠 텐데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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