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92화 (49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92화

“서준아. 사람은 왜 하루에 세 번이나 밥을 먹는 걸까?”

“건강하라고?”

“그 건강, 하루 한 끼만 먹어도 챙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서준과 박이든은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 앉아 채소와 나물을 씻고 있는 중이었다. 가끔 아이들이 ‘선생님!’ 하며 목에 매달려오는 걸 빼면 괜찮은 장소였다.

아이들의 저녁 식사는 원래 6시였지만 아무래도 점심을 적게 먹은 탓에 조금 빨리 먹이기로 했다. 메뉴는 계란볶음밥과 된장국, 소시지야채볶음과 미니 돈가스, 두부조림과 나물 무침, 계란말이와 김치, 깍두기였다.

아이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많이 준비할 예정이었다.

“채소 다 씻었어요.”

서준과 박이든은 물기를 탈탈 턴 채소들을 가지고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서는 김자영이 이것저것 꺼내놓으며 요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허운성과 정나희는 요리엔 영 재능이 없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래? 그럼 메뉴 중에 잘할 수 있는 거 있어? 나물 무치는 건 내가 할게.”

김자영의 말에 박이든은 계란말이를 맡기로 했다.

“그럼 전 소시지야채볶음하고 계란볶음밥, 두부조림을 할게요.”

“세 개 다 할 수 있겠어?”

서준의 말에 김자영이 영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다른 반찬은 안 먹어도 탄수화물인 계란볶음밥만이라도 아이들이 먹어줬으면 해서, 최대한 맛있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맡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달걀을 커다란 그릇에 깨고 있던 박이든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서준이 요리 잘해요. 한식 자격증도 있어요!”

그 말에 김자영과 제작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서준이 요리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하긴,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할 곳도 없었다.

“그럼 부탁할게. 서준 선생님.”

“네!”

서준은 도마 앞에 서서 단단한 두부와 소시지 야채볶음용 채소들을 썰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입 크기에 맞춰 작게. 탁탁탁, 식칼이 도마와 부딪혀서 나는 소리에 맞춰 박이든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나물을 먹기 좋게 다듬은 후 부드럽게 데치던 김자영이 물었다.

“근데 요리는 왜 배웠어?”

메인 작가가 그 앞에서 ‘요리 배운 이유, 질문!’이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자영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한식 먹고 싶어지면 직접 만들어 먹거든요. 먹고 싶은 게 다양하니까 체계적으로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배웠어요.”

“미국에도 한식당 있지 않아?”

“있긴 있는데 매번 가서 먹기는 좀 그래서요. 배달도 되긴 하는데 메뉴도 적고 좀 오래 걸리더라고요.”

“배달은 한국이 최고지.”

박이든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촬영도 스케줄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들쑥날쑥하고 장소도 스튜디오가 아니면 매번 바뀌니까 그냥 제가 해 먹는 게 제일 편하고 좋아요. 매니저 형도 요리 잘해서 번갈아 가면서 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를 해나갔다.

각 음식들의 양념장을 만든 서준은 먼저 두부조림을 준비했다. 프라이팬에 두부를 노릇노릇하게 굽고 그 위에 간장 양념장을 부어 천천히 졸였다.

‘다음은 계란볶음밥.’

서준은 둥그런 프라이팬에 식용유에 잘게 자른 대파를 볶아 파기름을 내고 잘 섞은 계란물을 프라이팬에 넣었다. 달군 프라이팬에서 노란 계란물이 빠르게 익어갔다. 서준은 곧바로 밥을 넣고 주걱으로 잘 섞었다. 그리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바로 옆에 있는 프라이팬에 반으로 자른 소시지를 굽고 작게 자른 채소를 넣어 볶았다. 양념은 케첩을 넣어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달달하게 만들었다.

“먹어볼래?”

“응!”

계란을 돌돌 말고 있던 박이든이 서준의 말에 반색하며 젓가락 하나를 가져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소시지를 쿡 찔러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엄지를 척 들었다.

그사이 김자영은 된장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미니 돈가스를 튀길 준비했다.

“선배, 아니 선생님! 김치랑 깍두기 작게 자를까요?”

“그래 주면 고맙지.”

계란말이를 끝낸 박이든은 냉장고에서 김치와 깍두기를 꺼내 잘게 썰었다. 두 번의 촬영 경험으로 몇 그릇은 빨간 양념을 물에 씻어 준비했다.

“애들이 빨간색이면 안 먹어.”

“케첩은 먹지 않아?”

“그러니까. 케첩의 빨간색이랑은 느낌이 다른가 봐. 신기해.”

박이든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계란볶음밥을 그릇에 예쁘게 담았다. 다른 음식들도 하나둘 식탁 위에 올라갔다. 아이들의 손에 맞는 수저까지 놓인 식탁 위는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맛있어 보여요. 애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요?”

“정말 그럴까?”

서준의 말에도 박이든과 김자영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촬영 내내 잘 먹지를 않으니 자신감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난 것을 본 허운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얘들아! 밥 먹자!”

더 놀고 싶다고, 밥 먹기 싫다고 칭얼거리던 아이들은 날다람쥐 피포를 이야기하자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그것도 얌전히 앉지는 않았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박이든이 속삭였다.

“일단 앉히는 것부터가 고생이야.”

“그러네. 하랑아. 밥 먹어야지.”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아달라고 팔을 뻗는 막내, 하랑이를 의자에 앉혔다. 서준과 눈이 마주친 막내가 에헤헤헤 웃자, 서준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자리에 앉는 건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앞에 있는 계란볶음밥을 숟가락을 쿡쿡 찌르기도 하고 물을 홀짝홀짝 마시거나 아예 몸을 돌려 해가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명진이 넌 왜 안 먹어……?”

살살 달래봐도 두 명 빼고는 입도 대지 않았다. 잘 먹던 명진이마저 다른 친구들과 노는 것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세 출연자가 한 명 한 명 붙잡고 밥을 먹이려는 사이, 속닥거리던 서준과 박이든이 장난감 방에서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장난감 두 개를 가지고 왔다. 하나는 버스 모양 인형, 하나는 폭신폭신한 펭귄 인형이었다.

박이든이 두 인형을 식탁 위에 올려놓자 아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출연자들과 제작진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아이들의 시야에서 존재감을 죽인 서준이 입을 열었다.

“안녕. 얘들아!”

“반가워!”

박이든이 두 인형을 잡고 흔들었다. 아이들의 눈과 입이 쩌억 벌어졌다. 서준이 오른쪽으로 손가락질하자 박이든이 버스 모양 인형을 흔들었다.

“우와! 너희 밥 먹는 중이었구나!”

이번엔 왼쪽. 펭귄 인형을 흔들었다.

“맛있겠다! 나도 소시지 좋아해!”

만화와 똑같은 목소리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 * *

“그래도 한 입 먹긴 했네.”

서준과 박이든의 노력에도 반의반밖에 줄지 않은 계란볶음밥과 반찬을 보며 머리를 벅벅 긁던 허운성이 입을 열었다. 잘 먹는 두 아이를 뺀 나머지 아이들은 다시 우르르 놀러 갔다. 박이든과 정나희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일단 서준 쌤부터 먹는 건 어때?”

“네?”

“갑자기 촬영하게 됐잖아. 배고플 테니까 먼저 먹어.”

“그래. 슬슬 출발해야 늦지 않게 집에 도착할 테고.”

좀 있으면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서준을 생각한 허운성과 김자영의 말에 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저 먼저 먹을게요.”

언제 아이들이 밥 먹으러 올지 몰라, 아이들의 자리는 비워두고 식탁 상석에 서준의 식사 자리가 만들어졌다. 계란볶음밥과 된장국을 들고 온 서준이 자리에 앉자 냠냠 밥을 먹고 있던 두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선생님도 먹어요?”

“응. 맛있어?”

“네!”

“네에!”

입에 밥풀이 묻은 것도 모르고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가져다줄게.”

“네. 감사합니다.”

김자영의 말에 서준이 빙그레 웃고는 카메라를 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잘 먹겠습니다.”

[(선)미식가 오크의 초대가 발동됩니다.]

화아악!

서준의 눈에만 보이는 초대장처럼 생긴 문양을 중심으로 능력이 넓게 퍼져나갔다.

[(선)미식가 오크의 초대-중급]

정신력이 약한 이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합니다.

음식들이 맛있게 보이게 만듭니다.

대상의 취향에 따라 식사 자리의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미식가 오크.

그 생은 지휘봉의 요정처럼 전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생이었다.

지휘봉의 요정이 ‘마왕(악)’의 영향의 받아 파괴적인 삶을 살았다면, 미식가 오크는 ‘??(선)’의 영향을 받아 나름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미식가 오크의 전생은 책에 없었지.’

하지만 그 ‘의문의 전생’이 오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미식가 오크는 아무거나 먹어대는 보통의 오크들과 달랐다.

‘미식가’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로 음식을 좋아하고 파티를 열 정도로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기를 원했던 삶이었다. 몬스터인 오크로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행복했을지도 몰랐다.

음식을 여러 방법으로 조리해서 먹던 미식가 오크는 돌연변이 취급을 받으며 무리에서 추방당했다. 적당한 숲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던 오크는 홀로 먹는 식사가 쓸쓸했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었다.

일단 ‘미식’이라는 개념이 있는 존재였으면 했다. 하지만 이 대륙에 그만한 지식을 가진 건 인간과 엘프, 드워프 같은 이종족뿐이었다.

미식가 오크는 ‘나름’ 평화롭게 해결하기로 했다.

자신의 주술과 생의 도서관의 능력을 사용해 숲을 떠도는 이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환상마법으로 오크라는 걸 숨기고 정신력이 약한 존재들을 홀리고 맛있는 음식의 향을 멀리멀리 퍼뜨렸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떠돌이 여행객, 다친 사냥꾼, 며칠을 굶어 나무껍질이라도 먹어보려고 숲에 들어온 주민들, 도적 떼에게 당한 상인 등. 수많은 이들이 정체를 숨긴 미식가 오크의 식사에 초대되었다.

미식가 오크는 오랜만에 대화가 통하는 존재들과 함께 웃고 마시고 먹고 떠들었다. 어떨 때는 차분한 분위기를 즐기기도 했고 어떤 때는 집이 떠나가라 웃기도 했다.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도 길지 않았다. 숲속에서 누군가의 초대를 받고 멋진 식사를 하고 왔다는 동화 같은 소문을 파헤치려는 인간들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는 두렵게 마련이었다.

그때부터 미식가 오크는 대륙을 떠돌기 시작했다.

각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요리를 준비하고 주술과 능력을 사용해서 정신력이 약한 이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남매를 만난 것은 추운 북쪽 지역에서였다.

다른 불쌍한 아이들을 만났던 적도 많은데 유난히 시선이 가던 인간 남매.

부모를 잃고 삐쩍 마른 남매는 최대 두 달만 머무르겠다고 정해놓았던 미식가 오크가 반년이나 머무르게 만들었다. 남매의 볼이 통통해질수록 오크의 미소도 진해졌다.

하지만 너무 오래 머문 모양이었다. 정체불명의 존재를 찾아온 뛰어난 인간 마법사가 오크라는 걸 알아채고야 말았다.

감히 인간들을 유인해 밥을 먹인(?) 몬스터를 물리치기 위해 마법이 쏟아졌다. 마침 사냥꾼 아저씨(라고 둘러댄 오크)에게 선물을 주러 왔던 남매마저 정체를 알아버렸다.

몬스터는 도망갔다. 마법이 쏟아졌다. 기사들도 나타났다. 뜨거운 불덩이가 몬스터의 등을 강타했다. 날카로운 칼날들이 몬스터의 팔과 다리를 쑤셨다. 몬스터의 녹색 피가 새하얀 눈밭에 번져 나갔다.

‘그대로 죽어버렸지.’

그런 삶이었다.

그렇게 죽은 적이 많아, 이젠 별생각도 들지 않는 서준이었다. 오히려 다른 쪽에 신경이 쓰였다.

‘근데 그거 납치 아니야?’

오크로써는 그게 최선이었겠지만 지금 세계의 윤리로 보자면 여러모로 범죄였다. 생각해 보니 그 세계 윤리로 봐도 범죄였다.

오크는 오크인가 보다.

전생의 삶은 둘째 치고.

정신력이 약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중급 능력이니 꽤 쓸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능력이 발동되자, 정신력이 약한 아이들의 시선이 서준이 앉아 있는 식탁 쪽으로 향했다.

뭔가…….

뭔가 저기서 엄청 신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마치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것 같은 기분에 아이들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고 볼이 붉게 상기되었다.

서준이 숟가락을 들고 된장국을 한 모금 먹었다. 뜨끈한 된장국의 국물이 몸속을 데워주듯 퍼져 나갔다. 다음에는 직접 만든 계란볶음밥을 한입 먹었다. 고슬고슬한 밥과 적당히 간이 밴 달걀이 입에 딱 맞았다. 다음은 아삭한 김치를 먹고 계란말이로 젓가락을 뻗었다. 부드러운 계란말이와 달달한 케첩이 잘 어우러졌다.

서준은 깔끔하면서도 맛나게 먹었다.

“……진짜 맛있게 먹네.”

“그러게.”

반짝반짝 빛나는 서준의 표정부터가 맛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저렇게 맛있나? 하고 입맛을 다시며 감탄할 때, 아이들을 살펴보고 있던 허운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뭔가에 홀린 것처럼 식탁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희 쌤!”

“옙!”

그걸 알아차린 정나희가 얼른 물수건을 가져와 아이들의 손을 닦아주었다. 박이든과 김자영도 얼른 음식들을 다시 데워왔다. 박이든이 김자영에게 속삭였다.

“서준인 내버려 둘까요?”

“그게 났겠지. 애들이 다 서준 선생님 보는 것 같으니까.”

식탁에 앉은 아이들이 서준을 한 번 보고 숟가락을 들었다.

어쩐지 평소에 밥 먹던 느낌과는 달랐다. 식탁 위에 놓인 밥과 반찬들이 되게 맛있게 보였다. 엄청나게 신나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놀이공원에 온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기분 좋은 분위기가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까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아이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이런 식사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계란볶음밥을 입안 가득 넣고 꼭꼭 씹어먹었다. 가장 골치를 썩이던 예린이마저 냠! 하고 계란볶음밥을 먹자, 박이든은 눈물을 글썽였다. 신나게 밥을 먹는 아이들을 보고 덩달아 신난 어른들은 수저질이 서툰 아이들을 도왔다.

“선생님! 더 주세요!”

“저도요!”

아이들의 아우성에 촬영장이 전에 없이 시끌벅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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