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90화
몇 시간 전.
금요일인 오늘은 서준은 오전 전필 강의만 있었다.
“너 오후에 교양 하나 있잖아?”
“교양 교수님이 갑자기 연주회 잡히셨대. 저번 주에 알려주셨어.”
전필 강의가 끝나고 주섬주섬 일어나며 오늘 일정을 묻던 아이들이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뭐 할 건데?”
서준이 친구들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드라이브!”
* * *
“어, 음. 괜찮겠어요? 안 팀장님?”
2팀 직원들이 겉옷을 챙겨 입는 안다호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뉴스로 볼 때는 그냥 보는 것뿐이라서 잘한다, 잘한다 했는데…… 실제로 타신다니까 조금 걱정되네요.”
이제 막 나온 따끈따끈한 면허증을 가진 초보운전자의 차를 타고 1시간 넘게 이동한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가 없으면 안 될 일이었다.
“하하. 그렇죠. 그래도 교외니까 차가 적어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녀올게요.”
직원들의 걱정에 안다호가 웃으며 차 키와 ‘초보운전’이라고 큰 글씨로 프린트된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걸 보는 직원들의 눈이 지진이 일어난 것마냥 떨렸다.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팀장님.”
왠지 모르게 아련한 2팀이었다.
* * *
한국예대 앞.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친구들에게 인사한 서준이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다호 형. 우리 이거 타고 가요?”
항상 타던 밴이 아니라 아주 가끔 타는 승용차를 둘러본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밴은 조금 느낌이 다르니까 일반적으로 타고 다니는 차가 좋지 않나 싶어서. 그리고 네가 밴을 운전할 일이 얼마나 있겠어?”
“그건 그래요.”
서준이 직접 운전한다는 소리는 개인적인 일로 돌아다닌다는 건데, 그런 개인적인 일에 연예인 차라고 불리는 커다란 밴을 타고 다닐 일은 드물 것이었다.
“점심은 먹었어?”
“아뇨. 가는 길에 어디 들러서 먹어요. 길 찾아봤는데 중간에 맛있는 가게가 있대요. 오리고기 어때요?”
“괜찮지. 맛있겠는데?”
“근데 다호 형. 우리 언제 자리 바꿔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는 눈동자를 데굴 굴리며 잡고 있던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묘하게 초조함이 깃든 움직임이었지만, 운전한다는 사실에 들뜬 서준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2팀 직원들에게는 제법 여유롭게 말했지만, 안다호로서도 나흘 전에 운전면허가 나온 초보운전자의 차에 타는 건 조금 머뭇거리게 되는 일이었다. 2팀 직원의 말대로 뉴스로 볼 때는 운전 잘하는구나, 생각했지만 직접 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서준이 스포츠 만능에 배우는 것도 빠르다고 하지만 운전은 좀 다르지 않나.
어마어마할 뒤처리는 둘째치고, 사고라도 나서 서준이 다치면 정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연습을 안 시킬 수도 없고.’
기껏 딴 면허를 장롱면허로 놔둘 서준이 아니었다. 부모님이든, 지인이든, 혼자서든 운전을 하고야 말 거다. 그러니 어차피 운전 연습을 할 거면 자신과 함께하는 편이 나았다.
“……좀 더 빠져나가서?”
그래도 조금 미뤄도 괜찮지 않을까.
안다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운전대를 꽉 잡았다.
“에이. 알았어요.”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아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밴을 탈 때는 매번 뒷좌석에 앉아서 몰랐는데 조수석에 앉으니 도로 상황이 눈에 훤히 보였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부터 급정지하는 차량까지.
발을 까딱이며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서준의 들뜸과 새삼 도로 상황이 위험천만하다는 것을 깨달은 안다호의 초조함이 차 안을 맴돌았다.
얼마 안 가 도로를 다니는 차량이 조금 줄어들었다.
서준의 반짝반짝한 눈빛이 안다호의 오른쪽 뺨에 와닿았다. 물리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 같은 간절함에 안다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도로 옆에 차를 대었다.
그렇게 안다호와 서준이 자리를 바꾸었다.
서준이 운전석에서 꼼지락대는 사이 안다호는 미리 준비해 온 ‘초보운전’이라는 표시를 차 뒤에 붙였다. 마음 같아서는 창문 빼고 뒷부분을 전부 도배해 버리고 싶었다.
“얼른 타요. 형!”
“……그래.”
안다호에게 맞춰져 있던 운전석을 자신의 몸에 맞게 고친 서준이 콧노래를 부르며 안전벨트를 맸다. 조수석에 앉은 안다호는 침을 삼키며 안전벨트를 맸다. 동상이몽이라는 사자성어를 이럴 때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럼 출발할게요! 다호 형!”
서준은 운전학원에서 배운 대로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켰다. 그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지만 안다호는 그걸 알아차릴 정신이 없었다. 차에 시동이 걸려 진동이 느껴지는지, 자신의 몸이 떨려 진동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 그래. 너무 빨리 가지는 말고.”
“걱정 마세요!”
……서준아. 너무 신난 것 같은데?
안다호가 왼손으로는 휴대폰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꽉 잡았다.
일단 누르기 쉽게 1번 단축기에 119를 설정해 놔서 곧바로 전화를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밖을 보며 위치가 어딘지 기억해 두어야겠다고 안다호는 생각했다.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리고 기어를 P에서 D로 바꾼 서준이 주위를 살핀 후, 액셀을 밟았다.
흡! 하고 잠깐 안다호가 숨을 멈춘 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차가 움직인다.
부드럽게.
생각지도 못한 편안함에 안다호는 눈을 데굴데굴 굴려 차 안 상황과 차 밖 상황을 살펴보았다. 일단 뒤쪽은 ‘초보운전’이라고 적힌 종이를 봤는지 조금 멀어지는 것 같았고, 양옆은 평화로웠다.
‘서준이도…… 잘하고.’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서준은 운전을 잘했다.
겁을 먹어서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는 등의 덜컹거림도 없었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두 손도 긴장감 없이 여유로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안다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국이 남을 정도로 꽉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걸 눈치챈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걱정했어요? 다호 형?”
“아니, 뭐…… 너도 수빈이나 은수가 처음 운전하는 차에 타면 이렇지 않을까?”
민망한 듯 변명하는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을 하면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서준은 여유가 넘쳤다.
“그건 그래요. 그 쪼그만 애들이 운전을 하다니…….”
“내 심정이 딱 그 심정이야.”
서준과 안다호가 작게 웃었다.
긴장이 풀린 안다호는 점심을 먹을 오리고깃집에 도착할 때까지 서준이 운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끼어들기가 두 번 정도 있었지만 서준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운전했다.
어? 어!? 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것 같은 추임새도 없이, 안다호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서준은 평화롭게 교외로 나와 오리고깃집 주차장에 주차까지 완벽하게 끝냈다.
“엄청 잘하네.”
안다호의 감탄에 기어를 D에서 P로 변경하고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린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쵸? 앞으로 형이 피곤하면 제가 운전할게요.”
“그건 안되지.”
단호한 매니저의 말에 배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식당 안에 자리를 잡았다. 서준이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 안다호도 2팀에서 온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안 팀장님. 살아 있어요?
<네. 멀쩡합니다.
<서준이가 운전을 정말 잘하네요.
>정말요?
안다호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초보운전’이라고 써 붙인 종이를 떼도 될 것 같았다.
* * *
점심을 먹은 서준과 안다호는 다시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숲 속의 병아리반] 촬영장으로 향했다. 뒷좌석에는 중간에 잠시 들른 마트에서 산 시원한 음료수들과 간식들이 든 아이스박스가 있었다.
“저기 주차장 있네.”
“네.”
서준이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빈자리에 차를 댔다. 여러 번 움직이지도 않고 한 번에 주차하는 모습이 진짜 몇 년은 운전한 것 같았다.
“어디서 연습이라도 한 거야?”
“아뇨. 제 스케줄은 다호 형이 제일 잘 알잖아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으며 조수석에서 내렸다.
마침 블루문의 막내 매니저가 달려오고 있었다. 촬영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선임이 같이 왔지만, 박이든도 적응했고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은 없으니 막내 매니저만 보낸 듯했다.
안다호가 웃으며 막내 매니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다시 한번 기어와 사이드브레이크를 확인한 서준이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었다.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것 같았다.
“매니저 형. 이든이 지금 촬영 중이에요?”
[블루문] 촬영으로 블루문 매니저들과도 안면을 튼 서준의 물음에 막내 매니저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응. 저기서 찍고 있어.”
서준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경사가 진 조금 위쪽, 카메라와 사람들이 보였다. 서준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블루문 매니저와 함께 간식 박스를 들고 온 서준과 안다호는 제작진, 출연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제작진은 들뜬 모습이었고 출연자들도 반가운 표정으로 서준을 반겼다.
“어떻게 온 거야!”
반가움이 넘쳐 거의 달려드는 박이든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이 나서.”
“보통 시간이 난다고 여기까지 오진 않아.”
박이든의 말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갑자기 나타난 서준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허운성과 정나희, 김자영에게 달라붙었다.
“선생님. 선생님! 누구예요?”
“엄청 잘생겼어요! 멋져요!”
“멋져!”
“뭐? 선생님보다 잘생겼어?”
“응! 응!”
“하늘만큼! 땅만큼!”
머뭇거림 없는 아이들의 대답에 허운성이 크윽, 하고 쓰러졌다. 아이들이 꺄르르 웃어댔다.
그 모습을 보던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꼭 은수랑 수빈이를 보는 것 같았다.
“촬영하러 온 거야?
“촬영하러 왔으면 미리 연락을 했겠지.”
서준의 말에 박이든이 그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서준이 촬영한다고 했으면, 연예란은 이미 홍보기사로 가득 찼을 거고 광고며 PPL이며 제작비며 몇 배로 늘어 여러모로 시끌벅적했을 거다.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니고…… 아직 생각 중이야.”
“생각 중?”
“애들이 밥 잘 먹었으면 그냥 인사만 하고 돌아가고, 못 먹었으면 조금 도와줄까 고민하고 있어. 애들은 밥 잘 먹었어? 점심시간 지났잖아.”
서준의 말에 박이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청룡님 효과도 떨어졌나 봐. 인터넷 찾아보니까 부모님들이랑 유치원에서 청룡님 방법을 많이 써서 애들이 금세 익숙해진다고 하더라고.”
“나도 그거 알고 걱정돼서 왔어.”
오랜만에 먹방에 대해 찾아봤는데, 그렇게 사연이 많고 다양할 줄은 서준도 몰랐다. 꽤 많은 아이들이 밥을 안 먹고 있었다.
그래도 [병아리반] 아이들은 청룡님과 직접 통화했으니까, 효과가 꽤 오래가지 않을까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박이든의 표정을 보니 영 아닌 듯싶었다.
‘해결 방법이 있긴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몇 살까지 통할지 모르겠어.’
[(선)요정의 반짝이]가 20개월까지 통한다는 것도 서준은 몰랐다. 능력의 설명이 그렇게 자세하게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요정의 반짝이-최하급]
요정의 날개에서 생산되는 반짝이입니다.
반짝이를 반짝이면 요정을 볼 수 있는 이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습니다.
반짝이를 흔들고 행동을 하면 요정을 볼 수 있는 이들 중 일부가 따라 합니다.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처럼 몇 배 상승이라고 정확하게 적혀있는 능력이 있는 반면에 [(선)요정의 반짝이]의 ‘요정을 볼 수 있는 이들’이나 [(선)아낌없이 주는 아기 천사의 날갯깃]의 ‘소소한 축복’처럼 애매모호하게 쓰여 있는 능력도 있었다.
이번에 찾은 능력도 어쩌면 생각보다 어린아이들에게만 효과가 있을 수도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고학년부터는 제법 말귀를 알아들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서준은 오늘, 만약 [병아리반]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못했다면, 밥을 먹이면서 겸사겸사 능력 범위를 테스트해 볼까, 하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에 대한 테스트는 일요일에 만날 은수와 수빈이에게 해보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밥은 잘 먹었으면 했는데…….’
아이들이 밥을 잘 못 먹었다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능력 범위 테스트보다 아이들의 건강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는 바람에 서준의 능력이 필요 없어졌으면, 능력의 범위를 알아내긴 조금 힘들어졌겠지만 서준의 마음은 훨씬 편했을 거다.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고, 오늘 여기까지 시간 내서 온 것도 그냥 드라이브 삼아 놀러 온 거라고 생각하면 됐는데 말이지.’
서준이 쓰게 웃자, 박이든도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조금만 도와줘. 새로운 사람이 왔으니까 애들이 더 잘 먹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잘 먹었으면 좋겠네.”
안다호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제작진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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