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87화
모자를 쓴 서준이 고개를 들어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새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파아란 하늘이 보였다. 날씨가 좋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좋은 날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 온다더니, 날씨만 좋네.”
“그러게. 비 오면 어떻게 하나 했어.”
날씨가 좋아도 긴장되고 떨리는데 비까지 오면 정신이 없을 것 같았다.
안심한 사람들은 손에 쥔 지도를 살펴보았다. 휴대폰으로 너튜브 영상을 보기도 했다. 한쪽에 자리를 잡은 서준도 A, B, C, D로 나누어진 지도를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바로 어제의 기억을 되새겼다.
그런 사람들을 둘러보던 강사가 시계를 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도로주행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 * *
생일이 지나자마자 서준은 운전면허증을 따기로 했다.
“빨리 따 놓으면 좋지.”
엄마아빠도, 안다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은 하면 할수록 느니 일찍 면허를 따서 천천히 몸에 익히는 편이 좋았다.
서준은 곧바로 집 근처 운전면허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했다.
자동차와 신호, 도로체계 등에 대한 필기시험인 학과시험과 자동차 운전장치 등 기본 조작 능력을 시험하는 기능시험, 그리고 실제로 도로에서 운전하게 되는 도로주행시험까지 모두 통과해야 운전면허증이 발급되었다.
“필기시험은 쉬워.”
“앱도 있고. 답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걸 찾으면 돼.”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면허를 딴 전성민과 박시영의 말이었다.
그렇게 앱과 문제지, 학원의 도움을 받아 학과 시험을 백 점으로 통과하고 기능시험도 감점 하나 없이 통과해 연습면허가 발급된 게 며칠 전이었다.
연습면허를 가지고 도로주행 수업을 6시간 동안 듣고 나니 오늘.
오늘은 서준의 도로주행 시험날이었다.
“1번분부터 하겠습니다. 2번분은 뒷자리에 앉아주세요.”
강사의 말에 1번인 것 같은 서준 또래의 남자와 2번인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란색 도로주행 차로 향했다. 긴장한 것 같은 1번이 운전석에, 강사가 조수석에, 그리고 서준이 뒷자리에 앉았다.
“이름이 김태윤 씨? 맞으시죠?”
“네, 네. 맞아요.”
1번, 김태윤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한 강사가 패드를 이것저것 터치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긴장 푸시고 도로주행시험 시작하겠습니다. 보자. C코스네요. 준비되면 출발하세요.”
“자, 잠시만 코스 좀 봐도 될까요?”
“네. 편하게 시작하세요.”
C코스가 어디였더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 김태윤이 주섬주섬 지도를 꺼내 C코스를 살폈다. 가장 쉬운 코스는 A코스였지만 C코스도 무난무난했다. 김태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운전석 의자를 자신에게 맞추고 백미러를 살피고 안전벨트를 맸다.
뒷자리에 앉은 서준이 작게 웃었다. 긴장한 것치고는 잘하고 있었다.
‘……그래도 안전벨트는 매야지.’
서준도 안전벨트를 맸다.
위험한 상황이 오면 강사가 바로 옆에서 브레이크를 밟겠지만, 역시 면허증도 안 딴 초보자의 차량에 타는 건 조금 긴장되는 일이었다.
시동이 걸린 노란색 차가 덜컹거리더니 천천히 출발했다.
운전학원을 나가 본격적으로 도로 위를 달렸다. 큰길로 나가 직진하던 차가 신호를 받고 잠시 멈췄다. 김태윤이 긴장한 듯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강사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잘하고 있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네, 넵!”
“2번분도 잘 보고 계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비도 오지 않는 좋은 날씨에 도로 상황도 좋았다. 중간에 끼어드는 차들도 없고 급정지하는 차량도 없었지만, 중간에 조금 헤매는 바람에 김태윤은 아슬아슬한 점수로 시험을 통과했다.
“조수석 쪽 사이드미러를 자주 확인해 주세요. 아까 잘 안 보시더라고요.”
강사가 감점된 곳들을 알려주고는 축하한다고 말하자, 탈락인가 하고 시무룩해 있던 김태윤이 활짝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2번분, 운전석에 앉으세요.”
“네.”
서준이 운전석에 앉고 김태윤이 뒷좌석에 앉았다. 긴장이 풀리니 마음도 가벼워졌다. 대부분 한 번에 붙는데 두 번이나 시험을 볼 줄은 몰랐다.
‘근데 그건 코스가 어려웠어.’
학원 내에서도 극악이라고 불리는 D코스가 걸릴 줄은 누가 알았겠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김태윤이 강사의 목소리에 놀란 얼굴로 앞좌석을 바라보았다.
“이서준씨? ……이……서준? 이서준?”
“하하. 네. 이서준. 맞아요.”
시험 절차상,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니 더 숨길 수도 없었다.
배우 이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강사와 김태윤이 입을 쩌억 벌렸다.
“와아! 반갑습니다. 연예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인데……진짜 잘생기셨네요. 근데 왜 아깐 몰랐지?”
의아해하는 강사의 모습에 서준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김태윤은 놀란 얼굴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서준. 바로 앞에 배우 이서준이 있었다.
‘다행이다……!’
지금 알아서!
도로주행 시험 전에 알았으면 분명히 넋 놓고 있다가 탈락했을 거다. 아니, 바로 뒤에 이서준이 타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사고라도 낼까 봐 팔이며 다리며 덜덜 떨려서 출발도 못 했을 터였다.
‘사고라도 났으면…… 전 세계에 기사가 나갔으려나?’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날 뻔했다.
폭풍이 몰아치는 초보운전자 김태윤과는 달리 강사와 서준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스는 D코스네요. 아, 이거 제일 어려운 코슨데…… 지도 한번 보고 가실래요?”
“네. 그럴게요.”
강사의 말에 서준이 마지막으로 지도를 살펴보았다. 그 이야기에 김태윤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D코스 어려울 텐데.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출발은 평범했다.
그 평범함에 강사와 김태윤이 눈을 끔벅였다. 방금 전, 조금 덜컹거리며 움직였던 김태윤의 출발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몇 년은 운전한 것 같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운전 잘하시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강사가 저도 모르게 말을 걸 정도였다. 말을 걸고 아차 싶었지만, 서준은 평온하게 대답하면서도 주위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강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산점을 줄 수 있다면 주고 싶을 정도였다.
D코스는 차선 변경도 많고 길이 넓어 다른 코스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차들이 많았다. 우회전, 좌회전이 골고루 있었고 직선코스가 짧았다.
“이야…….”
안정감 있는 코너링에 김태윤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는 여기서 우물쭈물거리다가 탈락했었다.
“어디서 시험 치고 오셨어요?”
“아뇨. 처음이에요.”
강사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처음이라는 말에 다시 감탄이 흘러나왔다. 운전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서준이 웃었다. 운전은 처음이지만 다호 형이 운전하는 걸 자주 봤다.
“좀 막히네요. D코스가 이래서 힘들죠.”
강사가 감점 하나 없는 태블릿을 보다가 창밖을 둘러보며 말했다. 차들이 움직이긴 하는데 조금 느렸다. 그래도 다음 신호에서 쭉 빠질 것 같았다.
“시간은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운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웃음기 살짝 서린 대답에 여유가 있어 강사와 김태윤이 탄성을 흘렸다.
그때였다.
삐용-삐용-!
급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 안에 타고 있던 세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뒤를 살폈다.
저 멀리 새하얀 구급차 한 대와 새빨간 소방차 두 대가 보였다. 다른 차들도 알아차린 듯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차를 옆으로 움직여 길을 비켜주었다. 그 덕분인지 소방차와 구급차의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았다.
점점 다가오는 소방차와 구급차에 김태윤이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어, 비, 비켜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 그렇네요!”
무채색의 차들 중에 유난히 노란색의 차가 눈에 띄었다. 본의 아니게 중앙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강사가 운전대로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돌릴 테니까 액셀만 살짝 밟…….”
“괜찮아요.”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강사의 손이 운전대에 닿기도 전에 운전대가 빙그르르 돌았다. 중앙을 막고 있던 노란색 도로주행 차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다른 자동차들처럼 사선으로 움직여 도로 중앙에 길을 만들었다.
그 넓은 도로를 새하얀 구급차가 먼저 통과하고 두 대의 빨간 소방차가 그 뒤를 따랐다.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걸 보니, 제시간 안에 도착할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점점 줄어드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무채색의 차들은 언제 멈췄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와 서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노란색 차를 운전하던 서준도 자연스럽게 원래의 도로로 돌아와 D코스를 달렸다.
와아…….
김태윤이 쩌억 입을 벌렸다. 자신 같았으면 당황해서 꼼짝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을 것 같은데 이서준은 이것까지도 연습이나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운전했다.
그 모든 움직임에 감점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강사도 감탄했다.
“진짜 어디서 연습하고 오신 거 아니세요? 아니면 뭐 촬영 중이에요? 깜짝 카메라 같은 거? 차 안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하하하. 아니에요.”
차 안 여기저기 살펴보는 강사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D코스를 완주한 서준의 운전은 마지막까지도 완벽했다. 운전면허학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김태윤과 강사가 연신 감탄했다. 물론 서준이 혼자 조용히 온 것 같으니 큰 소리는 내지 않았다.
“감점 하나도 없으시고요. 추가점이 있으면 백 점 드리고 싶네요. 백 점 만점에 이백 점입니다.”
“감사합니다.”
“면허증은 학원에서 발급받을 수도 있고 시험장에 가서 발급받을 수도 있어요.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채점지를 서준과 김태윤에게 건네준 강사가 짧게 설명하고는 조금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어, 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네. 괜찮아요.”
“저, 저도…….”
김태윤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색 차를 배경으로 서준과 강사, 김태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다른 차량에서 도로주행 시험을 끝내고 하차하던 사람들은 눈을 깜빡이다가 조수석에서 내리는 강사에게 물었다. 블로그나 후기에서는 못 봤지만 그새 새로운 절차가 생겼는지도 몰랐다.
“저렇게 사진도 찍어야 하나요?”
“아뇨. 안 찍어도 됩니다.”
다른 강사들도 의아한 시선으로 세 사람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 * *
[제목 : 프로 운전학원 차 봤다.]
다들 노란색 운전학원 차량 알 거임.
내가 자주 다니는 길이 근처 운전학원(나도 여기 다녔음) 도로주행 코스 (D코스: 엄청 어려운 코스. 진짜 극악. 거기만 안 걸리길 기도했다.)랑 겹침. 그래서 자주 봄ㅋㅋ
여튼 오늘도 노란색 차를 발견함.
오늘은 얼마나 잘할까, 생각하며 멀리 떨어짐. 초보 운전 무섭;;;
근데 그때 뒤에서 소방차가 오는 거임. 엄청 삐용삐용하면서.
이야…… 반사적으로 한 걸음 생각나더라. (그거 진짜 매년 보여주던데 볼 때마다 넋 놓고 봄ㅋㅋ)
그래서 비켜줬지. 내가 홍해 갈라지듯 차들이 갈라지던 그 장면을 엄청 좋아함ㅋㅋ 혼자서 두근두근 뿌듯해 하면서 비켜줬음.
그때 딱 운전학원 차가 생각나는 거임.
헐. 저 차 큰일이다 싶더라. 도로 딱 한가운데 있어서 안 비키면 소방차 움직이기도 힘듦. 근데 초보 운전이 얼마나 잘 비키겠어. 진짜 내가 다 초조해지더라.
ㅋㅋ근데ㅋㅋ 이 차가 갑자기 다른 차들이랑 맞춰서 옆으로 움직임ㅋㅋ
진짜 잘 비켜줌ㅋㅋ 그때 좀 막혀 있어서 간격도 되게 좁았는데ㅋㅋ 진짜 어디 안 부딪히고 잘 피함ㅋㅋ
그리고 소방차 지나가고 다시 다들 원래 차선으로 돌아가는데ㅋㅋ 운전학원 차도 원래 차선으로 돌아감ㅋㅋ 보니까 다시 D코스로 가는 것 같던데ㅋㅋ
진짜 쿨하더라ㅋㅋ 운전자ㅋㅋ
-초보 운전 무섭ㅋㅋㅋ
=그 운전학원 차 옆에 있던 차량들은 식겁했을 듯ㅋㅋ
-근데 그 운전자도 엄청 당황했겠다;; 운전대 잡은 거 10시간도 안 됐는데 갑자기 소방차 등장! (보통 도로 주행 연습 6시간 함.)
=22 나였음 진짜 멘붕.
=33 미안해서 울었다. 진짜.
=44 ???: 저도 진짜ㅠㅠ 얼른 비켜주고 싶은데ㅠㅠ 운전은 처음이라서요ㅠㅠ
-소방관도 운전학원 차 보고 식겁했을 듯.
-그거 운전학원 강사 아님? 막 시범 보여줄 때는 운전학원 강사가 운전하잖아.
=오오. 그런 듯.
=ㄱㅆ)그런가?
-ㄴㄴ 아님. 그거 초보 맞음.
=? 어떻게 알아?
=나 그때 운전학원 차에 타고 있었던 시험생임.
=오오오! 본인?
=ㄴㄴㄴ 난 시험 끝났고 다른 사람이 운전함. 완전 초보 맞음. 이번에 운전면허 처음 따는 거. 근데 엄청 운전 잘함. 사진도 찍음.
=오오! 썰 좀 풀어봐. 얼마나 잘했음?
=진짜 강사가 한 거 아니고?
=ㅇㅇㅇ 썰 푼다. 좀 늦을지도.
=근데 사진은 왜 찍어ㅋㅋㅋ
=그러게ㅋㅋ 소방차 길 비켜준 기념인가?ㅋㅋ
=22 운전면허 시험 칠 때 저런 일은 거의 없으니 신기하긴 할 듯ㅋㅋ
=33 내가 그런 일 겪었으면 동네방네 이야기하고 다닌다ㅋㅋ
=다 썼음!
=(제목: 배우 이서준이랑 같이 운전학원 시험 본 썰 품. 링크)
=……네?
=……예??
=……뭐라고요??
=……갑자기 이서준이 왜 나와??
=(똑똑) 여기 성지순례 해요?
=ㄱㅆ)……이제부터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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