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84화
너튜브 라이브를 배경음 삼아 틀어놓은 서준은 자정이 지나자마자 도착한 지인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미국에서 촬영 중인 김종호와 이지석부터 할리우드 배우들, 한국 지인들과 친구들까지. 서준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서준은 간간이 너튜브 라이브를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15분이 지나고 너튜브 라이브 영상에 나오던 영화관이 바뀌었다. 넓었던 관객석이 조금 좁아졌지만 열기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는 대한민국, 부산입니다!]
부산의 한 영화관이었다.
이곳의 담당자는 관객석에 앉은 새싹들에게 라이브 방송 중인 걸 알리고 [48시간]의 상영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짧게 서준을 향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새싹들은 떼창이라도 하듯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서준아! 생일 축하해!]
앞으로 이렇게 15분 간격으로 영화관 장소가 바뀔 예정이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면 한국을 떠나 일본, 미국 등을 거쳐 지구 한 바퀴를 빙 돌 계획이었다.
새로운 팬들의 모습에 서준이 끄응 앓았다.
“못 잘 것 같은데…….”
체력은 받쳐주니 하루쯤은 안 자도 되지 않을까?
서준이 잠시 고민할 때, 바톡, 하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다호: 아예 안 잘 생각은 아니지?
>안다호: 1시 안에는 자.
“귀신같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작게 웃던 서준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내일은 평일이라 학교에 가야 한다. 수업도 들어야 하고 일상생활도 해야 하니, 라이브 영상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마음 편하게 라이브 영상을 볼 수 있는 건 지금과 저녁 시간밖에 없을 것 같았다.
‘죄송해요, 다호 형!’
마음속으로 사과한 서준은 안다호에게-
<네! 얼른 잘게요!
하고 답장을 보내고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게 전등을 끈 뒤 책상 위 스탠드를 켰다.
그러고는 빠르게 능력들 중에 적당한 것이 없나, 고민했다.
미래의 체력을 당겨서 쓰는 에너지 음료 같은 능력부터 짧은 시간을 자도 푹 잔 것처럼 효과가 있는 능력에, 잠을 자지 않아도 체력과 정신이 회복되는 능력까지.
“여기서 쓸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원래는 어른이 되고 밤샘 촬영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기억해 둔 것들이었다.
서준은 능력들을 떠올리며 계획을 세웠다.
영상 속 영화관이 바뀌고 팬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들은 다음, 곧바로 잠들었다가 능력만 가지고 깨어나면 10분 안에는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준이 파인패드 속 팬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영상을 보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어롱 상영관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소음은 허용되는 터라 모두 자신의 리액션을 참지 않았다. 보는 사람도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라이브 영상 속 영화관이 바뀌었다. 서준은 팬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듣자마자 눈을 감고 생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두 개의 문이 보였다.
일반적인 크기의 문과 고개를 들고 봐야 할 정도로 커다란 문.
작은 문은 최하급부터 상급까지의 책들이 모두 모인, 서준이 평상시에 드나드는 도서관의 문이었고, 아주 커다란 문은 아직 열리지 않은 최상급의 책들이 있는 생의 도서관의 문이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들고 최상급의 문을 바라보던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안 열릴 테니까. 내일 해보자.”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생의 도서관 안으로 들어간 서준은 얼른 생각해 두었던 능력을 가져와 잠에서 깨어났다.
영화관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서준이 능력을 발동시켰다.
[(선)백야 파수꾼의 밤-중하급-이 발동됩니다.]
[(선)백야 파수꾼의 밤-중하급]
해가 지지 않은 땅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일정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아도 사용자의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시킵니다.
최대 시간: 240시간
* * *
아침이 밝았다.
3월 10일이 되는 자정부터 제법 기사가 나오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깨어나 움직일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다.
전 세계의 팬들이 참여하는 유례없는 이벤트라서 그런지 연예부 기사를 꽉 채우고 아침 뉴스에도 언급되었고, 6시간 제한을 꽉 채우는 새벽 6시부터는 새싹들(국내외)의 후기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해는 역대급! 배우 이서준 생일 이벤트!]
[지금 세계는 배우 이서준 작품 상영 중!]
[24시간 내내! 이것이 슈퍼스타의 클래스!]
[SNS에서도 생일 축하 메시지가 쏟아져!]
-……진짜 역대급이네.
-이거 준비 엄청 했겠다. 영화, 드라마 협상도 해야 하고 영화관 대관도 해야 하고. 관리할 사람도 필요하고.
=22 정성이 대단함.
=333 기획력도. 보통이라면 이런 스케일은 생각도 못 하지;;;
-이거 이서준 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무료라던데. 나도 보고 싶음.
=ㅇㅇ only 새싹만.
-24시간 내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 게임으로 24시간 보낼 수 있음.
=벼락치기 할 때. 밤새고 시험 치러 감ㅋㅋㅋ
=22 근데 집에 오면 바로 기절.
=잠 안 자기 기네스 기록 11일 1분이라더라. 버틸 수는 있겠지만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겠지.
-누구 하나 쓰러지는 거 아님?
=ㄴㄴㄴ 명부 작성해서 6시간 지나면 바로 내보냄. 그리고 다른 지역에도 곧바로 알려줘서 다른 영화관에도 못 감.
=진짜 철저하네;;;
=서준이 생일인데 안 좋은 기사가 뜨게 할 수는 없지! 새싹들도 다 같은 생각임.
-나 새벽 6시까지 보고 방금 들어옴. 좀 있다가 잘 거임.
=오오. 뭐 봤음?
=내의원. 쪼그마한 TV로 보다가 영화관 스크린으로 보니까 진짜 좋더라. 근데 6시간 제한이 걸려서ㅠㅠ다 못 보고 나옴. 마지막 부분, 치료 장면하고 상위복 장면은 진짜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는데ㅠㅠ
=상위복ㅠㅠ
-영화관마다 휴지도 나눠줬다며?
=서준이 영화 보는데 휴지는 필참이지.
-생존자들 상영관 난리 났었음.
=??왜??
=???뭔데???
=개봉판을 틀어줘야 하는데 감독판을 틀어줌. 원래 개봉판-쉬는 시간-감독판이었거든. 근데 감독판이 먼저 나옴.
=처음엔 똑같으니까 아무도 눈치 못챘는데ㅋㅋ어…… 어…… 어?? 하다가 이안 위버 죽음.(정색)
=……헐ㅋㅋㅋㅋ
=이야…… 그건 좀 심한데?ㅋㅋㅋ
=……관객석이 충격과 공포로 물들었지. 진짜 그 적막함이란……. (그 영화관에서 본 새싹)
=난 개봉판만 보고 쉬는 시간에 나오려고 했는데…….(그 영화관에서 본 새싹2)
=……근데 끝까지 보게 되더라.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해. 눈을 뗄 수가 없어ㅠㅠ(새싹3)
=이후 개봉판으로 치유함. 이안 위시ㅠㅠ 현우야ㅠㅠ (새싹4)
-영화관 비상구 안내 영상도 참 재미있었음.
=나도 보고 웃었어ㅋㅋ한걸음ㅋㅋ
=222 이것은 비상구 안내 영상인가, 작품 관람인가ㅋㅋ
=그래도 머릿속에 확실하게 남긴 했어.
-쉬는 시간에 서준이가 아기 천사님으로 나왔던 크리스마스 음방도 틀어줬음ㅋㅋ
=블루문 뮤비랑 음방도ㅋㅋ다 같이 응원봉 흔들면서 노래 부름ㅋㅋ
=22 무슨 아이돌 콘서트 온 줄ㅋㅋㅋ
=다들 이서준 팬이잖아ㅋㅋ 왜 블루문 노래를 외우고 있어ㅋㅋ
-햇빛빛님 팬 뮤비도 보여주더라ㅋㅋ
=큰 화면으로 보니까 박력 장난 아님. 그래서 영화과 나오자마자 빔프로젝터 결제함.
=ㅋㅋㅋㅋㅋ
* * *
띠링. 띠링.
휴대폰이 울렸다.
그 소리에 암막 커튼으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두 개의 물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침대 위, 하나는 바닥.
침대 위의 물체가 이불 밖으로 쏙, 하고 손을 내밀더니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이불 위를 헛짚었다.
“으어어……. 뭐야…… 몇 시야?”
“빨리…… 꺼…….”
이어지는 벨 소리에 잠기운이 가득한 임예나와 송유정이 꿈틀거렸다. 너무 시끄럽다. 누구야, 이 시간에 전화하는 게.
근데 몇 시지? 우리가 새벽 6시에 들어왔으니까…… 어…… 왜 6시에 들어왔더라……. 아, 서준이 생일……. 재미있었는데……. 근데 오늘 할 일이 또 있었던 것 같은…….
순간 이불속에서 꿈틀거리던 두 사람의 움직임을 멈췄다. 반쯤 꿈나라로 가 있던 머릿속이 목캔디를 먹은 목구멍처럼 화하게 시원해졌다.
“택배!”
송유정과 임예나가 크게 외치며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잠 기운은 어디론가 다 날아가 버린 듯 반짝이는 눈동자였다.
임예나가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네! 문 앞에 놔두시면 돼요!”
예상대로 택배기사였다. 자다 일어나 엉망이 된 머리의 송유정이 들뜬 얼굴로 임예나를 바라보았다.
“1층이래!”
“와아아!!”
짝짝. 기쁨의 박수를 치던 송유정이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근데 왜 내 건 연락이 없지?”
“동네마다 다르겠지. 예약 같이 했으니까 금방 올 거야.”
“그렇겠지? 으. 얼른 왔으면 좋겠다.”
송유정의 말에 임예나가 웃으며 방의 불을 켰다.
“근데 우리 얼마나 잔 거야?”
“배 고픈 거 보면 꽤 오래 잔 것 같은데? 뭐 먹을래?”
송유정이 배달을 시키기 위해 휴대폰을 손에 들었고 임예나가 암막 커튼을 걷었다.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풍경을 감상하던 임예나가 잠시 멈칫했다.
“근데 해가 저쪽이면…….”
“……벌써 4시야?!”
벌써 오후 4시. 10시간이나 자버렸다.
“하루가 그냥 지난 것 같네. 밤낮 맞추려면 힘들겠다.”
임예나의 탄식 섞인 말에 송유정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제 주말이니까 조금씩 맞추면 되지, 뭐. 그래서 뭐 먹을래?”
“치킨?”
“일어나자마자 치킨이라니……. 좋은 선택이야!”
신난 송유정이 배달앱으로 주문을 하는 동안 임예나는 집 앞에 도착한 택배를 들고 들어왔다.
“오오오……!”
“그냥 종이박슨데?”
송유정과 임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설레는 마음에 작은 것 하나, 농담 하나만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칼로 조심스럽게 종이박스를 열어보니 완충재 사이에 3개의 포토북 박스와 2개의 응원봉 모형 박스가 들어 있었다.
재판매가 정해지지 않은 포토북과 달리 응원봉 모형은 계속 판매할 예정이라 일단 2개만 사둔 임예나였다.
임예나는 포토북 박스를 하나 꺼냈다. 마치 몽실몽실한 구름처럼 파스텔 톤의 연두색과 하얀색이 그러데이션을 이루고 있는 박스였다.
“열어봐! 열어봐!”
“잠깐만…….”
임예나는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조심스러운 손길로 포토북 박스의 비닐을 뜯었다. 송유정이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포토북의 표지는 하얀색이었는데, 그 중앙에 연두색으로 서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서준]
[SEOJUN LEE]
딱딱한 글씨체가 아니라, 마치 붓펜으로 손으로 직접 쓴 것 같은 유려한 글씨체에 송유정이 눈을 빛냈다.
“이거 서준이가 직접 쓴 거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근데 이거 커버 하나 씌워야겠다. 하얘서 예쁘기는 한데 흠집 나기 쉽겠어.”
“뭐, 기다리면 금손님들이 멋진 커버 올려주지 않을까? 투명 포토카드처럼. 서준이 이름은 잘 보이게.”
……오오!
임예나가 척, 엄지를 들어 올렸다.
송유정이 웃음을 터뜨리려던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
“치킨인가? 되게 빨리 오네!”
“이 시간에 누가 치킨을 시켜 먹겠어.”
“그건 그래.”
현관으로 간 송유정이 치킨을 들고 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고민했다.
치킨이냐, 포토북이냐.
“포토북 보면 감상하느라 치킨 다 식을 것 같은데?”
“일단 먹고 보자.”
아련하게 포토북을 바라보던 송유정과 임예나가 빠르게 먹을 준비를 했다. 눈과 귀가 심심하니 지금도 열심히 라이브 중일 너튜브 채널 [새싹부터]에 들어갔다.
“저긴 어디야?”
“유럽 쪽 아니야?”
영화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새싹들을 보며 두 새싹이 감탄했다.
서준이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라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새싹들의 모습을 보니 실감이 됐다.
“뭐 보고 있으려나?”
“반응으로 봐서는…… 오버 더 레인보우?”
송유정의 물음에 임예나가 감격한 듯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추측했다.
때마침 스피커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치킨을 먹고 테이블을 치우고 손을 깨끗이 닦은 임예나와 송유정의 앞에 응원봉 모형 상자가 놓여 있었다. 포토북은 또 뒤로 밀려났다.
“뭐랄까…… 보고 싶지만 미뤄두고 싶은 기분?”
“괜히 긴장되고 설레서 나중에 봤으면 싶긴 하지.”
보기 직전의 그 마음이 너무 벅차고 떨려서 조금 미뤄두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포토북은 몇 시간이고 계속 볼 것 같으니까.”
임예나의 말에 송유정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단 응원봉 모형을 개봉해 보기로 했다. 응원봉 모형의 디자인은 [새싹부터]에 올라와 있어 어떤 모습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었다.
“박스는 포토북이랑 똑같네.”
몽글몽글한 파스텔 톤의 연두색 솜사탕이 상자에 그려져 있었다.
임예나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응원봉 손잡이와 연결할 수 있는 동그란 반원의 모형이 나왔다.
스노우볼 같은 반원의 안, 바닥은 들판처럼 푸르렀고 그 중앙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자그맣던 새싹에서 무럭무럭 자란 나무였다.
송유정과 임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성인이 된 기념이라더니. 딱 맞네.”
“그러게. 우리도 나무로 이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새싹부터, 나무까지.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갈색의 나무기둥은 짧았지만 나뭇잎은 풍성했다. 그 사이사이로 색색의 동그란 열매들이 보였다. 그 동그란 열매들에 작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쉐도우맨인가 봐. 1, 2, 3 다 있네.”
송유정이 곰인형과 신발 한 짝이 그려진 열매를 가리켰다. 그 옆으로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 일렁이는 그림자가 그려진 열매와 두 개의 곰 인형이 그려진 열매가 있었다.
“이건 우리는 지금 바다에 있다, 고.”
임예나가 고래가 그려진 열매를 가리켰다.
그 이외에도 나무에 달린 열매에는 서준의 작품을 봤다면 알 수 있는 작품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가방은…… 생존자들인가? 감독판?”
“그런 것 같은데? 현우가 이안이로 착각하고 들고 다니잖아. 아, 또 눈물 난다.”
“그럼 이 종이랑 펜은 개봉판인가 봐. 마지막에 편지 썼잖아.”
“엄청 감동적인 장면이었지.”
응원봉 모형은 금방 볼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30분을 날려버린 송유정과 임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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