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82화
“새 매니저랑 문제가 생기면 다호 형한테 말하면 되니까.”
현실의 서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나도 배우잖아. 그럼 배우팀에 들어갈 거고. 배우팀이면 다호 형이 계속 내 서포터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물론 지금까지처럼 작은 일 하나하나 돌보기는 힘들겠지만, 안다호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터였다.
“그래. 언제든지 말해. 서준아.”
안다호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새 매니저가 문제라도 일으킨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깔끔하게 처리할 것 같은, 믿음직스럽지만 왠지 등골이 오싹한 미소였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 제일 먼저 와줘요. 다호 형.”
“당연하지. 언제든 불러. 난 네 매니저잖아.”
서준과 안다호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마주 보며 생글생글 웃는 서준과 안다호의 훈훈한 분위기에 상석에 앉은 서은찬이 시선을 가리듯 휘휘 손을 내저었다.
“아직 새 매니저 뽑을 때까지는 한참 남았다니까! 벌써부터 그렇게 아련해할 필요 없어! 안 팀장님도요. 새 매니저 교육까지 진행하려면 몇 달은 걸릴 것 아니에요? 그때까지는 안 팀장님이 계속 서준이 케어해야죠.”
“몇 달이요?”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은찬도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럼 더 짧나요?”
하긴 처음에는 로드매니저부터 시작할 테니 교육 시간은 더 짧을지도 모른다. 어디서는 출근하고 며칠 만에 혼자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듣긴 했다.
그래도 한 달은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서은찬이 생각하는데, 안다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사람은 1년은 겪어봐야 알죠. 사장님.”
“……1년이요?”
그렇게 오래?
사실은 서준이 매니저를 계속하고 싶다는 핑계인가? 하고 서은찬은 생각했지만 안다호는 진심이었다.
“가르칠 것도 많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영어 실력도 좋아야 하고 서준이 지인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들도 기본 사항은 기억해야죠. 블랙리스트는 기본으로 암기하고 영화제작사와 배급사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아야겠죠. 한국 미국은 기본이고, 다른 나라 상황도 좀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은찬은 벌어지려는 입을 막지 못했다.
“경호원이 없을 때도 있으니 호신술도 배워야 하고 응급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응급처치 자격증도 있으면 좋겠네요. 요리까지는 무리라도 영양학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서준이가 체중 조절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이외에도 줄줄줄 나오는 안다호의 ‘교육 내용’에 서은찬은 잠시 세워두었던 계획을 엎을까, 생각했다. 저걸 다 해낼 매니저가 있을까 싶었다.
더 무서운 점은,
“물론 저도 다 배워뒀으니 가르치는 건 쉬울 것 같습니다.”
안다호는 다 해냈다는 점이다.
“그…… 안 팀장님은 12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게 아닐까요? 게다가 처음에는 로드매니저일 텐데…….”
“네. 그래서 우선순위부터 가르칠 계획입니다. 서준이의 안전에 관한 것이나 촬영 때 일어날 문제 대처법 같은 것 말입니다. 작품 고를 때 서준이의 의견에 관한 간섭을 하지 않도록 주의도 해야 하겠죠.”
……기운을 차리니,
너무 완벽하다. 이 매니저.
서은찬은 새 매니저가 될 직원을 위해 기도했고, 서준은 멋진 자신의 매니저를 향해 짝짝 박수를 쳤다.
* * *
그날 저녁.
저녁 식사를 하며 서준의 이야기를 듣던 서은혜와 이민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매니저라…… 그런 일이라면 충분히 고민할 만하지.”
“나도 걱정이네. 새로운 분이 잘하실까?”
“다호 씨가 잘 가르쳐 주겠지. 거기다 곧바로 서준이 일을 다 맡는 것도 아니잖아?”
엄마 아빠의 말에 서준이 대답했다.
“맞아. 지금까지는 다호 형이 내 스케줄 관리부터 촬영, 홍보, 작품 고르는 것까지 다 했었잖아. 현장도 직접 다니고.”
사무실에서 전체적으로 스케줄을 조율하고 일하는 다른 팀장들과 달리, 안다호는 로드매니저처럼 항상 서준이 촬영하는 곳을 다니고 서준의 컨디션을 일일이 살피고, 서준이 이동할 일이 있을 때는 직접 데려다주기도 했다.
2팀에서 관리할 연예인이 서준밖에 없기도 했지만, 확실히 특이한 일이었다.
“응. 그랬지.”
“그걸 바꿀 계획이래. 배우팀으로 가지 않는 2팀 형 누나들 중에 한 명한테 2팀 팀장 자리를 맡기고 새 매니저는 로드매니저로서 따라다니는 거지.”
현장까지 가는 로드매니저와 스케줄을 조율하고 전체적이 그림을 잡는 팀장.
보통 기획사는 이런 구조였고 코코아엔터 가수팀들도 이러한 구조였다. 그리고 이제 2팀도 이렇게 바뀔 예정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익숙해지다가 잘하면 나중에는 다호 형처럼 다 맡게 될 수도 있고.”
안다호의 방대한 교육 내용을 들으면 그게 최종 목표인 것 같긴 했다.
“지금까지는 현장에서 문제가 생겨도, 같은 장소에 있던 다호 형이 곧바로 해결할 수 있었잖아. 팀장이니까. 근데 이제는 현장에 있는 로드매니저가 사무실에 있는 팀장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니까 조금 복잡해질지도 모른대.”
“그러네. 현장 분위기는 거기 있는 사람들밖에 모르니까.”
로드매니저가 분위기를 잘못 파악하고 엉뚱한 정보를 전달한다면 사무실에서도 잘못된 결정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들이 서준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부부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걱정 없이 안다호에게 서준을 맡겼던 12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호 씨가 참 대단했구나.”
“그러게. 12년 동안이나 잘해줬어.”
그런 안다호를 대신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걱정 어린 엄마 아빠의 얼굴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호 형이 열심히 교육할 거래.”
“그래?”
“응. 최소 1년 정도.”
서은혜와 이민준이 멍한 얼굴로 눈만 끔벅였다.
“……그건 너무 긴 거 아니야?”
서준이 아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치? 근데 그 정도도 최소래. 다호 형이. 마음 같아서는 몇 년은 가르치고 싶다고 했더니, 은찬이 삼촌이 아무도 안 올 것 같대. 1년으로 참아주래.”
“다호 씨도 참…….”
팔불출 같은 안다호의 모습에 서은혜와 이민준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배우 이서준, 포토북 응원봉 예약 오늘 밤까지!]
[할리우드에서 전합니다! 배우 김종호, 이지석 촬영 중!]
[다음 주 수요일, 바벨탑 첫 방송!]
[블루문 박이든, KBC 새 예능 출연!]
[한국예술대학교의 행사에 대해 알아보자!]
-포토북 예약 오늘 마감!
=12시 아님! 11시 59분임!!
=난 첫날 했는데ㅋㅋㅋ
=나도 첫날에 했는데…… 지금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는지 모르겠다.
=22 확인 문자가 와도 믿을 수가 없어. 내 손이 잘못 클릭한 것 같고 뭔가 분명히 실수했을 것 같고. 불안해서 몇 번이나 본다.
=333 내가 한 건데도 믿음이……아니, 내가 한 거라서 더 믿음이 안 감.
=난 수정하고 옴.
=??왜??
=주소 이사 오기 전 집으로 해놓음;;; 하필 최근 이사를 해서;;;
=그럴 때가 있지ㅋㅋ 203호를 302호로 해놓고.
=다시 불안해졌다;;; 확인하러 갔다 옴.
-김종호 배우랑 이지석 배우 촬영 중이었네. 저 영화는 언제 개봉한대?
=내년쯤?
=보러 가야지! 한국인이라면 꼭 봅시다!
=ㅋㅋㅋㅋ
-바벨탑!! 드디어!!
=저거 홍보 영상ㅋㅋ 가끔 보면 마지막에 서준이 사진 나옴ㅋㅋ
=서준이 사진 하나 가지고 진짜 뽕을 뽑는 듯.
=그래도 가끔 TV에서 보면 좋더라.
=22 얼른 서준이 보고 싶다!
-블루문 박이든! 첫 예능 고정! 축하해!
-한예대 행사 일정 기사는 왜 떠?
=서준이가 연극&영화&행사 참여할 수도 있어서. 지금부터 대기 중.
=22 축제 때 나올지도 모르고!
=ㅋㅋ정성ㅋㅋ
* * *
추웠던 입학식 날로부터 겨우 며칠 지났는데 날씨가 풀려가고 있었다.
차유나는 점점 다가오는 봄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눈에 띄는 1학년 무리가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길 한쪽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 어디서 삐약삐약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 함박웃음을 지었다.
“안녕! 애들아!”
“안녕하세요!”
차유나의 인사에 1학년들도 반갑게 인사했다. 서준과 친구들이었다.
“유나 언니. 어디 가세요?”
김주경의 물음에 차유나가 빙그레 웃었다.
“과방에. 너희는?”
“저흰 수업 듣고 점심 먹으려고 메뉴 정하고 있어요.”
“그래? 다양하게 먹고 싶으면 학식도 괜찮아. 우리 학교 학식 싸고 양도 많고 맛있어.”
차유나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아하,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학식은 생각도 못 했네!”
“나 대학 학식 먹어보고 싶었어.”
“나도. 맛있는 대학 학식 하면 한예대가 3위 안에 들잖아.”
“고등학교 급식이랑은 많이 다르겠지?”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차유나가 하하 웃었다.
“수요일은 특식도 나오니까 오늘 가 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쪼르르 학생식당으로 향하는 1학년들을 보던 차유나가 콧노래를 부르며 과방으로 향했다.
배우 이서준과 황금 세대.
아역 배우들 중 가장 유명한 아이들.
그 정도의 유명세라면 주변에서 떠받들어주는 바람에 성격 한 군데쯤 모가 나 있을 법도 한데, 다들 순하고 착했다.
“언제 한번 같은 작품에서 연기했으면 좋겠네!”
귀여운 후배들이 생겨서 너무 좋은 차유나는 들뜬 걸음으로 복도를 걷다, 과방의 문을 열고 나오는 선배들의 모습에 밝게 웃던 표정을 싹 지우고 최대한 무난한 표정을 지었다.
“아, 차유나.”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들이 있다면 절대로 함께 연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법.
황도윤에게 바나나톡으로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냐며 막말을 보내던 선배들이었다. 배우라고 말하기도 싫었다.
“안녕하세요.”
“너 이서준 어디 있는지 알아?”
“아뇨?”
엑.
저도 모르게 나올 뻔한 속마음을 쑤셔 넣은 차유나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지만 절대 안 가르쳐 준다!’
학생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있을 서준과 아이들을 위해, 차유나는 자신의 연기력을 최대치로 발휘했다. 수업 시간에 이 정도의 집중력과 연기력을 발휘했다면 당연히 A+이었을 거다.
“그래?”
미심쩍게 보는 선배들에 차유나가 태평한 얼굴로 말했다.
“1학년이니까 1학년 수업 듣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도 알고. 아, 알았어. 가봐.”
차유나는 꾸벅 인사하고 선배들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과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고, 참았던 만큼 얼굴을 인정사정없이 찌푸렸다.
“알았어 가 봐, 는 무슨. 저 선배들은 왜 온 거래요? 작년에 한바탕하고 과방 근처에도 안 왔잖아요.”
차유나의 표정을 보고 바로 앞에서 세 사람과 만났다는 사실을 알아챈 황도윤과 임원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서준이 찾으러 왔대.”
“서준이를 왜 과방에서 찾아요? 그리고 자기들이 서준이를 왜 찾는데요? 만나서 뭐 하려고요?”
“뭐긴 뭐겠어. 선배라면서 이것저것 하려고 하겠지. 사진이라도 같이 찍으려나?”
“사진 찍는 거면 다행이지. 유명한 감독 소개해 달라거나 서준이가 출연하는 작품에 넣어달라는 거 아니야? 걔들 전적이 있잖아.”
“으으. 진짜 싫다.”
어쩐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에 차유나와 다른 학생들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 정도로 세 사람에 대한 인식은 바닥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래요?”
“좀 있지.”
저 세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서준과 인맥을 쌓으려는 학생들은 많았다.
단톡방에서 개인 간의 대화는 금지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만나 친분을 쌓고 연락하는 건 과대도 간섭할 수는 없었다.
‘그 ‘개인적으로 만나 친분을 쌓는’ 데에 선배로서의 강압이 들어갈 것 같으니까 문제지.’
선배라는 거 하나만으로, 전화번호를 알아내거나 매번 답장을 요구하거나, 지인과의 만남에 억지로 끼어들거나 인맥을 자랑할 겸 부르거나.
‘서준이 착하던데…… 거절 못 하는 거 아니야?’
언제나 웃고 있는 서준을 떠올린 황도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이 알았다면 ‘제가요?’ 하고 눈을 끔벅였을 터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배달 앱을 살펴보고 있던 김민우가 의아한 듯 말했다.
“근데 서준이를 왜 못 만났지? 1학년이 듣는 수업은 거기서 거기 아니야?”
아직 정정 기간이라 강의계획서도 있을 테니, 강의실 찾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그러게요. 연기과 강의실이 대부분 A관이라서 거기에만 있어도 지나가면서 봤을 텐데…….”
“나 월요일에 A관에서 서준이 봤는데.”
“저도 어제 봤어요.”
다들 한 번씩 서준을 만났는데,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저 세 사람이 못 찾는 것은 영 이상했다.
“서준이가 입학한 것치고는 소란도 별로 없고.”
“입학식 때 너무 놀라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라이언 감독님은 그럴 만하지.”
이야기를 듣던 과대 황도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서준이가 편하게 학교 다닐 수 있으니까.”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회 임원들의 바로 옆, 새하얀 벽에 새겨진 문양이 반짝 빛났지만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 * *
“여기도 하나 새겨둘까?”
“엉?”
오늘의 특식, 큐브 스테이크를 먹고 있던 한지호가 서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친구들의 시선이 쏠리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아냐, 아무것도.”
어깨를 으쓱인 친구들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생각 이상으로 맛있는 학식에 감탄하고 있었다.
“학식 맛있다.”
“그러게. 밖에 못 나갈 때는 여기 와서 먹어도 되겠어.”
“특히 수요일은 꼭 와야 할 듯. 큐브 스테이크가 나올 줄이야.”
한지호의 말에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도 자주 올 것 같은 학생식당을 둘러보다가 오른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선/제작)미어랑의 미로-중상급이 발동됩니다.]
학생식당에 서준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커다란 문양이 새겨졌다. 마치 미로처럼 보이는 문양이었다.
[(선/제작)미어랑의 지하미로-중상급]
땅 속 깊은 곳에서 생활하는 미어랑족의 거대한 지하미로입니다.
악의를 가진 천적들의 신체적, 지능적 능력을 저하시켜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듭니다.
지하미로 안에서 사용자의 존재감이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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