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81화
‘비슷한 건가.’
삼촌과 다호 형이 싸우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결론은 비슷하게 나버렸다.
코코아엔터의 개편은 사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일 터였다.
현재 코코아엔터의 상황에서는 블루문까지가 수용범위였다. 블루문의 데뷔로 모든 투자를 마무리하고 이대로 끝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더 넓은 장소에서 더 많은 직원들을 데리고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계획을 세우던 중에 2팀에 눈길이 갔겠지.’
2팀 직원들 중에 반만 데려가 새로운 팀을 만들어도 어지간한 배우 매니지먼트보다 훌륭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테고, 배우팀을 만들면 사장인 자신 대신 총괄할 사람이 필요하니 자연스럽게 그 2팀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안다호에게로 눈이 간 것일 터였다.
‘다호 형에, 2팀 형 누나들까지 데려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이게 그 잡힌 물고기 먹이 안 준다는 상황인 건가.
무어라 변명을 하면서 쩔쩔매며 설명하고 있는 서은찬을 보며 서준이 속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표정은 일부러 굳은 척하고 있었다. 안다호까지 속을 수 있도록 보통 때보다 성심성의껏 연기했다.
‘이 정도 심술은 봐줘야지.’
삼촌이 말하는 이유가 너무 납득이 가서, 다호 형과 2팀 직원들을 보내줘야겠다는 결심은 이미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개인적인 감정을 빼놓고 말하자면 안다호의 능력은, 2팀 직원들의 능력은 한 배우에게만 쏟기에는 아까웠다.
‘대본 잘 찾지, 감독 작가 잘 걸러내지, 다른 문제 안 생기게 서포터 잘하지. 팬들도 나보다 먼저 생각해 주고, 촬영 때도 항상 같이 있어 주고…….’
으음.
부족함이 하나도 없었던 순간들을 떠올리자, 다시 아까워졌다.
‘내 매니저인데…… 내 팀인데…….’
서준이 앞을 바라보았다. 안다호가 조금 핼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옆에서 삼촌이 뭐라고 떠들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호 형도 엄청 고민한 모양이네.’
다호 형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면 듣자마자 거절했을 테고 이 자리에서는 2팀 직원들 이야기만 나왔을 것이었다. 고민했다는 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있다는 걸 테고.
그게 또 서준의 마음을 조금 서운하게 만들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호 형이 하고 싶은 거…….’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서준을 서포터하는 게 꿈이었다는 안다호에게, 항상 서준이 먼저였던 안다호에게, 새로운 꿈이 생긴 것이다.
‘그 꿈이 너무 갑작스럽게 생긴 데다가 크기도 아주 작아서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점점 신경이 쓰이게 되겠지.’
꿈은 변화하고 커지고 자라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로운 일을 욕심내서 열심히 하는 만큼 다호 형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서준이었다.
서준은 앞에 앉은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안해하고 있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한 안다호의 표정에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분명히 지금까지처럼 서준을 서포터하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나 같았으면, 미안하지만 이게 꼭 하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말이야.’
언제나 자신을 먼저 생각해 주는 다호 형이라, 자신이 먼저 두 손 들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준은 조금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새로운 매니저.”
서은찬과 안다호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은 평소처럼 하하 웃음소리가 나올 것 같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이야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거고. 다호 형도 관심이 있어서 고민하는 거잖아요. 나야 다호 형이 계속해 주는 게 좋지만…….”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평생 연기를 할 텐데, 다호 형이 그때까지 계속 붙어 다닐 수도 없는 일이니까. 다호 형이 할아버지가 되면 제 매니저 하기는 힘들잖아요?”
서준의 농담에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나이 차이가 있으니 적당한 때에 새로운 매니저가 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데는 로드 매니저도 있다는데 우리는 없고 다호 형도 자리에 비해 너무 작은 일까지 하는 것 같아서 계속 마음에 걸리기는 했어. 그냥…… 언젠가 바뀌겠구나 생각했던 그때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라서 조금 당황한 것뿐이야.”
게다가 어제 하루 종일 신경 쓰게 한 일과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심술을 조금 부려보았다. 너무 잘 먹혀 버린 것 같지만.
“아…… 그랬어?”
웃으면서 말하는 서준에 서은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수명이 몇 년 줄어들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화가 난 서준을 보는 줄 알았다.
안다호는 서준의 말에도 영 개운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표정만 봐도 얼마나 고민했을지 알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시원하게 등을 밀어줘야 했다. 좀 더 욕심낼 수 있게.
“다호 형.”
“……그래.”
“형이라면 분명히 잘할 거예요.”
빙그레 웃는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전생에 수많은 이별을 했던 서준이라고 해도, 12년 동안 함께 지냈던 친형 같은 매니저를 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조금 싫기도 했다.
하지만 안다호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더 싫어서 서준은 더욱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호 형. 저한테 하는 거 반만 해도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좋은 배우를 찾아서, 아직 자신의 재능을 빛내지 못하는 배우를 찾아서 키워주세요.”
문득 첫 생에게 다호 형 같은 매니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에게 어울리는 작품을, 캐릭터를 찾아주고 촬영에 문제가 없게 정리해 주고 연습도 도와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그렇게 해주세요. 무럭무럭 자라서 멋진 배우가 될 수 있게.”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길을 몰라서 힘들어하는 배우들에게, 몇 년이고 제자리에서 고민하는 배우들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아마, 분명 멋진 주인공이 됐을 것 같다.
그래서 서준은 첫 생과 비슷한 상황일 배우들에게 안다호를, 2팀을 보내주기로 했다.
“다호 형. 저보다 형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세요.”
빙그레 웃는 서준을 보며 마주 웃은 안다호는 마음을 다잡았다. 안다호의 결심을 느낀 서준이 아주 밝은,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진짜 힘들거나 배우들이나 직원분들이 말 안 들으면 2팀 형 누나들이랑 언제든 돌아오세요!”
한번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을 다호 형이라는 걸 알아 더욱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언제든 돌아오라고.
“뒷일은 삼촌이 알아서 하겠죠, 뭐.”
“서준아?!”
삼촌이야 알아서 잘할 거다.
* * *
어찌저찌 일단락된 이야기에 서은찬은 기운 없이 일어나 시원한 물 두 병을 가져왔다 안다호의 앞에 하나 두고 나머지 한 병을 벌컥벌컥 마셨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목이 바짝 마른 것도 몰랐다.
서은찬이 한 번에 들이켜 텅 빈 물병을 내려두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새 매니저가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거야. 아무래도 서준이 네 매니저는 믿을 만한 사람으로 뽑아야 하는 데다가 이것저것 가르쳐 줘야 하니까.”
“매니저는 어떻게 뽑을 거야?”
이서준 매니저를 뽑는다고 동네방네 알리지는 않을 테고.
‘지원서로 메일함이 폭발하지 않을까?’
서준이 작게 웃었다.
서은찬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몸을 떨었다. 회사의 슈퍼스타며, 조카인 서준의 매니저를 뽑는 일이니만큼 다른 사람에게만 맡길 수는 없으니 그게 다 자신의 일이었다.
“일단 이전할 건물을 구하면서 배우팀을 만들었다고 이야기를 할 거야. 한두 명한테만 말해도 금세 퍼질 테니까 우리 회사에 관심 있는 배우들이 나타나겠지. 기성이든 신인이든. 그리고 안 팀장님이랑 2팀 직원들이 그 안에서 고를 거고.”
새로운 배우들.
천천히 실감이 난 안다호가 작게 떨리는 손을 마주 잡고 마른침을 삼켰다.
“좋은 배우가 있다면 먼저 제안을 보내도 괜찮습니다. 안 팀장님.”
“……네. 찾아보겠습니다.”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는 목이 바짝 말라 앞에 있는 물병을 열어 목을 축였다. 직접 물까지 가져다주는 사장님이니, 앞으로도 함께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배우들을 서포터한다는 이유로 매니저를 뽑을 거야. 마음에 차는 후보들이 나올 때까지 모집 기간도 넉넉히 잡을 예정이고. 후보가 한 다섯 명쯤 되면 그 안에서 서준이 네 매니저를 뽑을 계획이야. 그때까지는 안 팀장님이 평소처럼 서준이 매니저로서 붙어 다녀야겠지.”
“그러면 내 매니저 뽑는다는 소문은 안 나겠네.”
“그래.”
서준의 말에 서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어중이떠중이들이 장난삼아 지원하면 일만 많아진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사람을 파악할 거야. 구체적인 계획은 이제부터 안 팀장님이랑 같이 세워야겠지만…… 2팀에서도 좋은 의견 있으면 말해달라고 전해주세요. 안 팀장님.”
“네. 알겠습니다.”
서은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이라는 산을 넘으니 새 매니저 모집이라는 또 하나의 산이 등장했다.
“최대한 안 팀장님이랑 비슷한 사람이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다호 형은 어떻게 뽑았는데?”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도 귀를 기울였다. 서은찬이 기억을 더듬었다.
“직원들 중에서 후보 몇 명을 뽑아 이런저런 일을 시켜봤었지. 안 팀장님이 합격했고.”
서은찬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안다호는 당시를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이 좋을지 한가득 감상문을 써왔는데, 서준이 연극을 하고 싶다고 했던 날이었다. 그날 처음 서준을 만났다.
“기준이 뭐였는데?”
“연예계 경력이 오래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순해 보이고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
“? 반대 아니야? 연예계 경력이 많으면 일 잘해서 좋잖아.”
서준의 물음에 서은찬이 쓰게 웃었다.
“그때 서준이 네가 8살이었어. 너랑 항상 붙어 다닐 매니저인데 연예계를 잘 아는, 일 잘하는 사람이 붙으면 백 퍼센트 휘둘렸겠지. 서준이 너든, 배우계는 하나도 모르는 우리든.”
서은찬은 아역 배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이돌은 잘 안다.
아이돌 중에서도 나이가 적거나 소심한 아이들은 매니저를 무서워한다. 그걸 파악한 매니저는 아이돌을 얕잡아보고 함부로 대한다. 네가 문제다, 네가 못하는 거다, 막말은 기본이고 스케줄을 조정해 이 행사 저 행사 마구 굴리기도 한다.
청소년인 아이돌이 그럴진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 아역 배우는 어떻겠나.
그래서 그런 기준과 테스트가 꼭 필요했고, 합격한 것이 바로 안다호였다.
“그랬군요.”
안다호는 자신이 뽑힌 이유를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 경력을 쌓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땐 이렇게 오래 함께 일할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배우긴 해도 아이니까…… 일하다 보면 매니저 일에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죠.”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생각은 한 적 없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네. 그런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데려오기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배우와 친해지면 긴장이 풀려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할 법도 한데, 안다호는 처음처럼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은찬은 변하지 않는 안다호가 더욱 믿음이 갔고 후에 코코아엔터의 두 기둥 중 하나가 되어줄 ‘배우팀 총괄’이라는 자리를 맡기고 싶었다.
“근데 삼촌. 지금은 괜찮지 않아? 경력 많아도.”
“확실히 이젠 서준이 널 휘둘리는 매니저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쉽게 당할 것 같지도 않고.”
어쩌면 8살 때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쉐도우맨2를 찍을 때도 도통 포기할 줄을 몰랐으니…….’
그게 7살 때였다.
다른 건 별로 고집이 없는데 연기나 작품에 대해서는 욕심이 대단한 서준이었다.
안다호가 아닌 매니저가 이거 해, 하고 대본을 내밀고 강요하면 읽어보고 ‘싫어요!’ 하고 외치고는 서은찬에게 왕왕 불만을 토했을 것 같았다.
귀여우면서도 박력 있는 모습으로.
‘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거야! 삼촌!’ 하고.
잠깐의 상상일 뿐이지만, 대본이니 일단 읽어본다는 점이 묘하게 현실성이 있어 웃음이 나오는 서은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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