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80화 (48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80화

“……응?”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동작이 무척 느리게 보였다. 한눈에 봐도 ‘얘가 전혀 못 알아들었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서은찬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설명하자면…… 코코아엔터를 새롭게 바꿀 생각이야.”

“……코코아엔터를?”

서준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그래. 회사도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고 직원들도 꽤 뽑으려고.”

“새로운 건물…….”

서준은 서은찬의 말을 따라 하며 잠시 사장실 안을 둘러보았다.

어릴 적, 처음 구경하러 왔을 때보다 덜 반짝거리긴 했지만, 관리를 잘한 덕분인지 그다지 흠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곳도 비슷할 터였다. 지하 연습실, 회의실, 사무실 등. 모든 장소가 눈에 선했다.

“물론 투자자인 네가 반대한다면, 뭐, 어느 정도 합의를 봐야겠지만.”

서준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난 그런 거 잘 모르니까.”

관심도 거의 없고, 관련된 일은 엄마 아빠가 하고 있었다.

그저 브라운블랙과 서은찬을 위해서 코코아엔터에 투자한 것일 뿐, 딱히 코코아엔터를 운영하려고 투자를 한 건 아니었다.

‘물론 엉망진창으로 운영하면 말리긴 하겠지만.’

코코아엔터를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가게 만들었던 예전 사장을 기억하는 서은찬이라면 그럴 일은 거의 없을 터였다.

회사를 이전한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가수도 4팀으로 늘어났고 블루문이 데뷔한 지도 꽤 됐으니 좀 있으면 새로운 그룹도 나올 터였다. 그러면 늘어난 가수만큼 케어할 직원들도 늘려야 하니, 회사가 좁아질지도 몰랐다. 지금도 조금 복작복작하기는 했다.

“그리고 회사 조직도 개편할 생각이야.”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는 마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있는 모습이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서준은 그런 안다호를 잠시 바라보았다. 조직 개편이라면 인사이동도 있을 터였다.

‘새로운 매니저…… 그럼 다호 형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건가? 로드 매니저를 구하고?’

그럼 지금까지와 뭐가 달라지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서준은 서은찬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바꾸려고?”

“가수팀하고 배우팀을 확실히 나눌 거야. 지금은 섞여 있으니까.”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코코아엔터는 총 4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브라운블랙과 처음부터 함께해온 가수 1팀.

서준의 합류로 만들어진 배우 이서준 전담 2팀.

브라운블랙과 화이트의 케어만으로 벅차, 레드크라운의 데뷔로 새롭게 만들어진 가수 3팀.

차기 아이돌이 될 연습생들을 뽑고 데뷔할 때까지 케어하는 연습생 팀까지.

A&R팀과 홍보팀, 경영지원팀 등을 포함해도 회사의 이름값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 게다가 연예인이 생길 때마다 일이 너무 바쁠 때마다 만들어진 팀들이라 확실히 체계가 없긴 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던 서준이 멈칫했다. 한 단어가 걸렸다. 전담팀이 아니라,

“……배우팀?”

“……그래.”

묘하게 긴장되는 상황에 서은찬이 침을 꿀꺽 삼켰다. 본격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에 안다호도 숨을 들이마셨다.

“신사옥으로 옮기게 되면…… 배우팀도 만들 생각이야. 괜찮은 신인 배우들도 뽑고 기존에 있는 좋은 배우들도 모아서.”

“……배우팀…….”

눈을 깜빡이며 되새기듯, 다시 한번 말하는 서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테이블을 보며 생각에 잠긴 서준의 모습을 살피던 서은찬에게 어제저녁,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배우팀이 생기면 갑자기 동생이 생긴 기분이지 않을까?”

“동생? 수빈이랑 은수랑은 잘 지내잖아?”

남편, 서은찬의 물음에 김수련이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조금 다른가? 애들은 어리고 나이 차이도 꽤 있으니까 서준이의 마음에 여유가 있지만…… 새 배우들이 들어온다는 건 그동안 관심과 케어가 나누어진다는 소리잖아. 경쟁자이기도 하고.”

“경쟁……이 되려나? 우리 서준이인데?”

서은찬의 팔불출 같은 모습에 김수련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어디서 불쑥 연기 천재가 나올 수도 있고. 서준이 같은 배우가 등장할 줄은 아무도 몰랐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연예인들은 묘하게 주변 사람들한테 집착하는 게 있다더라고.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나 소속사 직원들 같은 사람들한테.”

“그래?”

“브라운블랙 애들도 당신이랑 1팀장님 엄청 좋아하잖아. 코코아엔터 원년멤버들도 그렇고.”

“그거야…… 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소속사에서 나랑 브블 애들만 믿고 함께해 준 직원들이니까. 나도 의지하고 있어.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뭘 믿고 회사에 남았나 궁금하긴 해.”

코코아엔터 원년 멤버 중 한 사람인 홍보팀 팀장, 김수련이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젊어서 그랬지. 지금처럼 가족이 있었다면 그렇게는 못했을 거야.”

“그건 그래.”

그 당시 아내와 딸이 있었다면 서은찬도 코코아엔터를 인수하겠다는 생각은 못 했을 거다.

“하여튼, 몇몇 연예인들은 그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거야. 매니저나 다른 직원들까지 데리고 소속사 옮기는 경우도 종종 있을 만큼.”

“……서준이도 그러려나?”

“서준이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와서 더 그럴 것 같은데? 당신보다 안 팀장님하고 더 오래 붙어 있었잖아.”

서은찬에게 아내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서준을 살폈다.

‘무슨 표정인지 못 읽겠네. 이런 건 안 팀장님이 잘하는데…….’

그 정도로 서준과 붙어 있던 안다호였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달은 서은찬이 뒷목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오늘 만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수팀 총괄은 1팀 팀장님께 맡기고…… 배우팀 총괄은 안 팀장님에게 맡길 계획이야.”

“……다호 형한테?”

서준의 시선이 안다호에게로 향했다. 안다호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물론! 서준이 네가 괜찮다면…… 아니, 아니야. 사장님. 그냥 다른 분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 계속 서준이랑 일할게요.”

“아니, 그럼 안 팀장님 실력이 너무 아깝잖아요. 물론 서준이한테 안 팀장님이 붙어 있는 것도 좋지만……좀 더 안 팀장님의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 주셨으면 합니다.”

12년 동안 서준을 케어하면서 감독, 작가, 방송국 등에 인맥도 가득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대본을 읽으면서 작품 보는 눈도 좋아졌다.

배우 일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으며 서준을 돌보면서 눈여겨봤던 것들로 배우들의 연습에 약간의 조언도 할 수 있었고, 할리우드에 인맥이 있으니 좋은 대본을 구해와서 오디션을 보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한 능력이 다른 배우들에게도 전해진다면 코코아엔터에서 새로 만들어진 배우팀도 크게 성장할 게 분명했다.

코코아엔터의 성장을 바라는 사장인 서은찬에게 안다호는 너무 아까운 인재였다.

“하지만…….”

안다호는 깍지낀 두 손에 힘을 주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안다호가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바로 서준이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가는 인생이었는데, [쉐도우맨1]의 윌리엄을 보고 엉엉 울며 저런 연기를 하는 배우를 서포터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었다.

그 이루어질 리가 없는 막연한 꿈 하나로 이런저런 회사를 떠돌아다녔는데, 정말로 배우 이서준의 매니저가 되어버렸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대본 보는 눈이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어서 좋은 작품을 골라내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할리우드까지 함께 가고 싶어서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 이젠 현지인들과의 대화도 쉬울 정도였다.

서준의 촬영에 방해가 되는 장해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것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기 위해 홍보하는 것도 보람이 있었다.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추어진 촬영장에서 자신의 배우가 다른 걱정 없이 캐릭터에 푹 빠져 연기하는 모습은 언제나 안다호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대중들 앞에서 환하게 빛나는 자신의 배우를 보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 배우가 내 배우다.’

서준을 서포터하는 일은 안다호를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서준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렇게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계속 함께 지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은찬이 회사 개편 이야기를 꺼냈다. 이후 만들어질 배우팀을 총괄해 보지 않겠냐는 물음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혹했다. 그리고 죄책감도 들었다.

‘다른 데 가더라도 다호 형이랑 2팀, 모두 같이 가야죠. 삼촌한텐 미안하지만.’

저번 재계약 당시, 서준의 말이 떠올랐다. 혹했다는 그 한순간의 마음이 마치 서준을 배신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가끔 서은찬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서준을 케어할 때는 오로지 서준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 정작 서준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서준이 없을 때는 금세 끄물끄물 잡생각이 올라오는 바람에 티가 나고는 했다.

‘서준이 부모님도 그래서 아셨겠지.’

안다호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자신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서은찬에게서 처음 제안을 듣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안다호는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서준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서은찬에게 어차피 서준의 의견도 들어봐야 했다며 승낙했고 이 자리가 만들어졌다. 여기서도 안다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새로운 배우들…….’

물론 배우팀을 총괄하는 자리라, 배우 하나하나를 돌보기보다 전체적으로 지휘하는 역할이 될 테지만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신이 다른 배우를 서포터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준이는 이제 시작인데…….’

서준은 이제 막 성인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였다. 더 많은 역할이 들어올 테고 더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할 수 있었다.

다음 작품과 대본을 찾기에도 바쁜데 이런 일로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역시.’

자신이 서준을 케어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결심한 안다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서준이 입을 열었다.

“2팀은?”

“……어? 어?!”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하는 서준에 정곡이 찔린 듯 서은찬과 안다호가 몸을 들썩였다. 서준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배우팀이 생기면 중심을 잡고 이끌어줄 경력자가 필요할 텐데…… 외부에서 새로 영입하는 것보다는 2팀 직원들을 활용하는 편이 빠르고 좋잖아. 다호 형을 데려갈 생각이었으면 2팀도 생각해 둔 거 아니야?”

‘……이야. 우리 서준이 머리도 좋지.’

그 짧은 시간 동안 거기까지 생각한 모양이었다.

서준의 말에 서은찬이 슬쩍 눈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호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2팀 직원들도 일당백의 소중한 능력자들이었다. 배우팀이 만들어진다면 2팀 직원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아직 2팀에는 말 안 했는데…… 만약에 네가 괜찮다면 이야기를 나눠보고 2팀에 남을 사람들이랑 팀을 옮길 사람들이랑 정하려고.”

말없이 바라보는 서준의 모습에 괜스레 찔린 서은찬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니. 그게…… 서준이 네가 괜찮다면 말이야. 괜찮다면 옮긴다는 소리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 안 하고 너한테 제일 먼저 하는 거야! 개편 이야기는 너랑 나랑 안 팀장님이랑 1팀장님이랑 수련이밖에 몰라!”

“안 괜찮으면?”

“그으, 러면 2팀은 그대로 유지하고 외부에서 영입하는 수밖에…….”

처음 듣는 딱딱한 서준의 목소리에 당황한 서은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서은찬에게 진짜 계획만 세워둔 상태로 천천히 의논해 나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지! 이러면 배우팀 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겠네. 스카웃 해야 하나? 어디서 데려오지?’

안다호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자신을 보내고 싶지 않아 하는 서준이 좋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잠시 혹했던 자신이 바보 같기도 했다.

‘앞으로는 서준이 케어에만 집중하자.’

그렇게 두 사람 모두 마음을 다잡을 때였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뭐.”

가벼운 한숨과 함께 들린 목소리에 서은찬과 안다호가 고개를 들었다.

“……뭐?”

“……서준아?”

조금 전의 굳어 있던 표정은 어디로 가고, 서준은 조금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괜찮아. 새로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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