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78화 (47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78화

케이블 예능 촬영장.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들과 그나마 잘나가는 개그맨 MC로 이루어진 예능 프로그램은 낮은 시청률에 조용히 종영만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한 연예인들이 촬영하는 사이, 가지각색의 소속사에서 온 매니저들이 밖에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제는 당연히 이번에 공고가 올라온 코코아엔터.

워낙 이직이 잦은 연예계이고, 코코아엔터에서도 가끔 직원을 모집해서 특별할 것 없는 구인공고였지만 회사가 회사인 만큼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코코아엔터 복지가 좋다던데…….”

현재 복지라고는 점심값 5천 원밖에 주지 않는 아주 작은 기획사에 다니는 매니저가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5천 원도 작년 4,500원에서 오른 가격이었다.

“소속 연예인들도 다들 성격이 좋대.”

촬영 중인 예능에서 그래도 가장 유명한 개그맨을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 예능 프로그램의 단독 MC로 섭외됐지만, 시청률이 애국가보다 못하다 보니, 개그맨은 제 성질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이제 종영도 얼마 안 남았는데 하차한다는 게 말이 돼? 그거 말리느라고…… 진짜……!”

담배를 뻑뻑 피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단독 MC인데 방영 중 하차하면, 앞으로 활동하면서 분명 책임감 없다는 소문이 붙어 일거리가 줄어들 게 뻔했지만, 자신이 담당한 개그맨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행동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냥 제 성질머리대로 하느라 주변 사람들만 고생하고 있었다.

‘특히 나!’

프로그램 종영 때까지 얼마나 시달릴지, 매니저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돈만 아니면 관두고 싶다. 진짜.”

“성격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인기만 있으면 잘나가는걸.”

“우린 인기라도 있었으면 좋겠네. 인기도 없는 놈들이 성격도 더러워.”

담당하고 있는 연예인들에 대한 뒷담화가 이어졌다.

“회사 네임벨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맞아요. 저희 회사는 유명한 연예인이 없어서 설명을 해도 거기 사기꾼 아니냐 정말 있는 곳이냐 소리 듣는데, 코코아엔터는 그냥 이서준 소속사다, 하고 말하면 게임 끝나잖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잠시 조용해졌다.

“그래서. 다들 지원할 거지?”

“이력서 내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래도 내가 얘들보다는 낫지.’ 하고 생각하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유명 연예인을 담당해 본 적은 없지만, 이 거친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견뎌온 자신이었다.

‘나한테 딱 이서준만 붙여주면……!’

이제 스무 살이 된 배우라서 다루기도 쉬울 테고, 지금까지 갑질하던 방송국 직원들에게 두 배, 세 배로 갚아줄 수 있을 텐데! 그러다가 할리우드에 인맥이라도 생기면……!

하고 여기 있는 모든 매니저들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촬영 끝났어요!”

촬영장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스태프에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던 매니저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느릿느릿 걸어 촬영장 안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스태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예인들도 연예인인데 매니저들도 되게 건성이다.”

“그러게. 어떻게 모니터링하는 매니저가 한 명도 없어.”

망한 프로그램이라도 해당 담당자인 피디와 작가가 방송국에 소속된 이상, 좋은 인상을 남겨놓으면 다음 프로그램을 만들 때 도움이 될 텐데, 촬영이 시작하면 우르르 밖으로 나가 촬영이 끝나면 우르르 돌아오는 매니저들이었다.

“그래도 전에 한 명 있지 않았나? 매번 모니터링하고 쉬는 시간마다 담당 아이돌 케어하던…….”

다들 대충대충 하는 사이에서, 유난히 성실했던 모습의 남자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잘렸대. 회삿돈 훔쳤다더라. 소문 쫙 남.”

스태프 일도 도와주고 좋은 사람이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스태프가 그 말에 놀라 입을 쩌억 벌렸다.

“……헐. 그럴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근데 그게 가능해? 회사에 계속 붙어 있는 사무직도 아니고 밖에 돌아다니는 매니저인데?”

“소 기획사잖아.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곳이니까 가능하겠지.”

“하긴. 여기가 온갖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긴 하지.”

동업자가 투자금을 들고 튀는 일도 가끔 있는데, 매니저가 회삿돈을 횡령하는 정도는 찾아보면 더 있을 터였다. 아마 안줏거리도 되지 않는 흔한 이야기일 터였다.

“근데 좋은 사람 같던데…….”

그 매니저가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사이 조금 친해져 버린 모양인지, 스태프는 약간의 의아함과 함께 배신감이 들었다.

“겉만 멀쩡한 사람이 여기 한둘이냐? 이만 들어가서 정리나 하자.”

“그래.”

동료의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짓던 스태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불쑥 나타났다가 눈 깜빡하는 사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은 연예계라서 그런지, 익숙하게 자그마한 친분과 배신감을 훌훌 털어버린 스태프는 얼른 동료를 뒤쫓아갔다.

* * *

입학식 다음 날인 금요일부터 1학기가 시작되었다.

금요일 첫 수업은 연기과 전필로,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되는 강의였다.

연기과 신입생이 모두 한 강의를 듣는 건 아니고, 같은 강의명으로 A, B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준과 친구들은 A반이었고, 김하운과 정보람 등 나머지 미리내 예고 출신 아이들은 B반이었다.

“근데 1학년들밖에 안 보이네?”

한지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의실 안에는 OT날에 봤던 1학년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강의 계획서 안 읽어봤어?”

“읽었지. 수강신청 하자마자 까먹었지만.”

당당한 한지호의 태도에 양주희가 그럼 그렇지, 하고 웃으며 설명했다. 다른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이 수업이 1학년 대상으로 진행하는 거래. 대학 적응을 위한 기초 수업 같은 거랄까? 그래서 재수강도 못 하고 성적도 패스, 패일로 매겨진대. 거의 대부분 패스하지만.”

“아하.”

“교수님들도 몇 주마다 바뀌어서 연기과 교수님들이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대. 나중에 자기한테 맞는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변경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양주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석하고 지각은 안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네.”

“근데 수업시간이 10시라서 지각은 안 할 것 같아.”

“맞아. 오늘 아침에 엄청 느긋하게 일어났는데도 시간이 남더라.”

강재한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1시 강의에도 지각하는 대학생들이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말이었다.

“나 1교시 교양이었는데, 힘들어 죽을 뻔.”

김주경이 의자에 늘어지자 아이들이 웃었다.

“선배님들이 1교시 안 하는 게 좋다고 하셨잖아.”

서준의 말에 김주경이 반쯤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듣고 싶은 교양이 1교시더라. 근데 바꿔야 하나 싶어. 다음 주까지 수강신청 정정 기간이라서 오늘 수업도 안 했는데 완전 지쳤거든.”

또 한 사람, 오늘 1교시가 있었던 전성민도 의자에 늘어졌다.

“왤까? 고등학교 때는 1교시 수업도 잘 들었는데 이상하게 힘들어…….”

“맞아. 신기한 일이야.”

1교시의 효과는 대단했다. 김주경과 전성민이 지친 얼굴로 하하하 웃었다.

“근데 이 강의도 수업 안 하려나?”

“출석만 부르고 끝날 것 같지 않아?”

“그럼 좀 놀다가 점심 먹으면 되겠다. 오후 수업 있는 애들은 수업 듣고 없는 애들은 계속 놀고. 어차피 오늘 저녁에 모이기로 했으니까.”

1학년들만 모이는 동기 모임.

친화력 만렙인 양주희의 힘이었다. 장소도 벌써 구해놨다고 하는데, 어제가 입학식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추진력이 장난 아니었다.

“요 앞에 방탈출 카페 있더라.”

“그럼 거기 가자!”

한지호가 신나게 말했다.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강의실 문이 열리고 첫 강의를 맡은 교수가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강의실에 앉은 19명의 연기과 1학년들을 둘러보며 부드럽게 웃던 교수가 말했다.

“이 강의는 1학년 1학기 전필이라서 수강신청을 정정할 이유도 없으니, 오늘부터 수업 진행하겠습니다. B반도 박 교수님께서 수업할 예정이니까 억울할 일은 없을 거예요.”

교수의 말에 인사만 하고 끝날 줄 알았던 한지호와 1학년들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에 서준과 친구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진짜 2시간 꽉 채우셨네…….”

정확히 말하면 50분, 50분이니까 1시간 40분이었지만 2시간처럼 느껴지는 1시간 40분이었다. 묘하게 고등학교 수업보다 진이 빠지는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이 흐느적흐느적 움직여 강의실을 나왔다.

“점심 먹으러 가자. 너희 오후 수업 몇 시에 있어?”

“나 1시에 있어.”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빨리 가야겠네. 뭐 먹을까?”

“라이언 감독님이 들렀다는 가게는 어때?”

“거기 아침부터 사람 엄청 많대. 기자들도 있고.”

“그럼 안 되겠네.”

먹는 것에는 언제나 진심인 아이들이 먹고 싶은 메뉴를 늘어놓았다. 입맛도 다양하고 대학 근처라서 그런지 교문 밖만 나서도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어서, 나오는 메뉴들도 다양했다.

그때, 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한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은찬. 은찬이 삼촌이었다.

“여보세요? 삼촌?”

‘삼촌이 전화할 만한 일은 별로 없을 텐데…….’

회사 일이라면 다호 형이, 은수 일이라면 작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휴대폰(아주 튼튼한 키즈폰이다)을 가지게 된 은수가 직접 전화했을 터였다. ‘서준이 오빠! 내일 우리 집에 놀러 와! 꼭 와!’ 하고 말이다.

서은찬이 보내준 사진 속, 새벽같이 일어나 현관문 앞에서 앉아서 서준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은수의 모습을 떠올린 서준이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서준아. 지금 통화돼?

“응. 지금 친구들이랑 밥 먹으러 가는 중이야.”

서준의 통화에 친구들이 잠시 떨어져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점심으로 먹을 메뉴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도 지지 않을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오늘 수업 끝나고 시간 있어?

“오늘?”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오늘은 동기들끼리 모이기로 했는데…… 바쁜 일이면 갈게. 오후 수업은 교양 하나뿐이라서 빨리 끝날 것 같거든.”

동기 모임은 저녁에 있으니, 그 사이에 여유 시간이 꽤 있었다.

‘……교양인데 정정 기간부터 수업하지 않겠지?’

만약 수업을 한다면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긴 했다.

-아니야. 그렇게 바쁜 일은 아니고…….

서은찬이 으음, 하고 말을 끌었다.

-그럼 내일은?

“내일은 괜찮아.”

활동 중이 아니니 스케줄이 없는 건 사장인 서은찬도 알 테고 다른 약속도 없었다.

‘어차피 다음 주에 회사에 갈 생각이기도 했고.’

어제저녁 다호 형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는 엄마 아빠의 말이 마음에 걸려, 2팀 직원들에게 다호 형의 일에 대해 은근슬쩍 물어볼 생각이었다.

서준의 흔쾌한 대답에 휴대폰 건너에서 제법 묵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묘하게 서은찬이 긴장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싶었다.

-그럼 내일 회사에서 보자.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아니, 뭐,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고…… 아니다. 오래 걸리려나?

오락가락하는 서은찬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응. 알았어. 내일 갈게.”

-그래. 서준아. 점심 맛있게 먹어.

“삼촌도.”

통화가 끝나고 서준이 휴대폰을 내리자 한지호가 물었다.

“뭐라셔? 스케줄 생김?”

“아니,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근데 별일이네.’

일이 주에 한 번씩 회사에 들르는 서준의 패턴을 알고 있는 서은찬이 그 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를 하는 걸 보면 제법 급한 일인 것 같았다.

‘근데 약속을 내일로 미룬 걸 보면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음. 급한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이럴 때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은 바로 매니저, 안다호였다.

“얘들아. 잠깐만 문자 좀 할게.”

“천천히 해. 천천히.”

“이쪽도 지금 찜닭이랑 닭갈비랑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

“난 찜닭에 한 표.”

“주희야. 서준이는 찜닭이래.”

강재한의 말에 찜닭 파 양주희가 히히 웃으며 닭갈비 파와 맞서 싸웠다.

<다ㅎ_

메시지를 적던 서준이 손을 멈칫했다.

문득, 엄마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준아. 다호 씨 무슨 일 있어? 평소랑 조금 다르던데?’

그리고 조금 전.

묘하게 긴장한 것 같은 서은찬의 목소리.

안다호를 통해 전달하던 평소와는 달리 직접 했던 통화.

거기에 하루빨리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좀 미뤘으면 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오락가락하던 서은찬의 태도까지.

“서준아. 성민이가 닭갈비랑 찜닭이랑 같이 하는 곳 찾았어. 거기 맛집이래.”

“완전 솔로몬이라니까.”

“……서준아? 이서준?”

“저기요? 이서준 배우님?”

친구들이 바로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서준은 멍하니 휴대폰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두 사람……싸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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