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77화
<아직 사람들이 많습니까?
>아뇨.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예대 대극장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상황을 살펴보고 있던 2팀 직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무래도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서준 일행이 금방 나올 것 같지도 않고(아직 대극장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입학식이다 보니 아쉬워하면서도 자리를 뜨는 모양이었다.
한예대 이곳저곳에 볼거리가 많다는 것도 한몫했다. 자녀가 다닐 학교가 어떤 곳인지, 오늘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요?
>기자들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 기자님이 먼저 떠나신 게 크게 작용한 모양입니다.
입학식이 열리는 한예대 대극장에는 기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물론 몰래 들어오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한예대 대극장 앞에서 서준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목격담이 거의 없는 서준을 알고 있는 기자들은 이번에도 놓칠까 봐 눈에 불을 켜고 학생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 들어갔는지 이서준이 나타났다며 건물 안에서 난리가 났다. 게다가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감독까지 있단다. 기자들이 더 몰려들 상황이었다.
자녀들의 입학식을 위해 오전 근무만 쉰 거라 곧바로 일터로 돌아가야 하거나 몇 시간이나 기다릴 생각까지는 없는 일반인들과 달리, 기자들은 이게 바로 일이었다.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릴 수 있었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잠복근무는 기본인 곳이니까.
‘특종은 아니지만.’
벌써 SNS에 목격담과 사진이 가득한 상태라서 특종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기자들을 하루 종일 대극장 앞에서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었다. 쌀쌀한 날씨에 건물 밖에서 계속 기다렸는데 허탕을 쳤다고 생각하면 괜한 미움만 사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전혀 근거 없는, 악의적인 기사들이 나타날지도 몰랐다.
‘서준이한테는 큰 타격이 없을 것 같지만…….’
안다호는 고소나 팬들의 힘을 빌리는 등 최대한 합법적인 방법으로 타격이 아예 없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그 미움이 코코아엔터나 서준의 친구들에게로 이어진다면, 안다호도 어쩔 수 없을 테고 서준도 제법 상처를 받을 것이었다.
‘적당한 게 제일 좋지.’
기사에 쓰일 단어 하나만으로도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기자들과는 아주 좋은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사이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안다호는 2팀 직원을 통해, 대극장의 앞에 있는 기자들 중 코코아엔터와 친한 기자들에게 서준이 이미 대극장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누가 어떤 소속사와 친한지 알고 있는 터라, 정 기자 등 코코아엔터와 친한 기자들이 미련 없이 자리를 뜨자, 글렀다는 것을 깨닫고는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그럼 대충 끝났나?’
안다호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들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서은혜와 이민준이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안다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눈을 데굴 굴렸다.
“아, 죄송합니다. 일이 조금 남아서…….”
“괜찮아요. 서준이 일이죠?”
“다호 씨 덕분에 저희가 마음 편히 지내고 있어요. 앞으로도 우리 서준이 잘 부탁할게요.”
자신이 일에 정신이 팔린 동안,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부부의 모습에 허둥지둥 젓가락을 들던 안다호가 서은혜와 이민준의 말에 손을 조금 떨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잠깐, 머뭇거리다 평소처럼 웃는 안다호의 모습에, 무려 12년 동안이나 안다호를 봐왔던 부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제유? 제육? /어렵네./”
“/그래도 맛있었죠?/”
서준의 물음에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장 양념과 고추장 양념의 제육볶음은 서준의 입맛에도 충분히 맛있는 요리들이었다.
“저…… 괜찮으시면 사인해 주실 수 있으세요?”
식사가 끝나는 걸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왔다. 그 모습에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연기과 학생들이 마치 용자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네. 괜찮아요. 맛있었어요. 사장님께도 전해주세요!”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와 펜을 받았다. 직원이 빠르게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릇들을 싹 치웠다.
“다음에도 또 와요!”
주방에 있던 사장님이 들으셨는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했다. 서준은 하하 웃으며 ‘꼭 올게요!’ 하고 대답했다.
서준이 넉넉한 종이를 보고 작게 웃고는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에게 물었다.
“/감독님이랑 조나단도 하실래요?/”
“/그럴까?/”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라이언 감독이 종이 하나를 앞으로 가져와 펜을 들자, 직원과 연기과 학생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해도 돼?/”
“/당연하죠./”
작품에 비해 너무 유명인 행세를 하는 것 같아서 많이 민망하긴 했지만, 조나단은 신나게 사인했다. 다음엔 준이나 삼촌의 이름 덕분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실력으로 유명해져서 와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감사합니다! 제일 좋은 곳에 붙여둘게요.”
슈퍼스타와 할리우드 감독의 사인을 받게 된 직원은 사인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며 신나게 계산대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던 서준의 눈에 연기과 선배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식사는 일찌감치 끝났는데도 나가지 않고 온 신경을 라이언 감독님에게 쏟고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마디라도 나눠봤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 이해한다.
서준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님들을 볼 때 그랬으니까.
서준이 웃으며 라이언 감독에게 속삭였다.
“/감독님. 괜찮으시면 선배님들한테 사인해 주실 수 있어요?/”
“/그래. 연극도 잘 봤고. 원한다면야./”
라이언 감독의 흔쾌한 승낙에 서준이 웃으며 선배들에게로 향했다. 연기과 학생들이 다가오는 서준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도윤과 차유나, 김민우가 활짝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잘 먹었어? 맛있었지?”
“네. 감독님도 맛있었대요.”
“그래?”
이곳을 추천해준 황도윤이 환하게 웃었다.
과거의 나! 진짜 잘했어!
“혹시 감독님 사인받고 싶은 분…….”
서준의 말에 끝나기도 전에 열세 명 전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평소에 연습이라도 하는지, 연극의 한 장면처럼 동시에 올라가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게다가 말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눈을 반짝이고 있는 모습이 선배들의 진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부부와 안다호,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이 작게 웃고 말았다.
어느새 식당은 미니 사인회로 변했다. 연기과 학생들과 가게 직원들까지 한 줄로 서서 라이언 감독의 사인을 받았다.
황도윤과 차유나, 김민우와 임원들의 순서가 지나가고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차례가 되었다. 황도윤이 ‘라이언 감독님이 연극 보러 옴.’이라고 말했던 게 조금 전인데, 이렇게 다시 만나 사인까지 받게 되다니……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아까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았었죠? 잘 봤습니다./”
“……네……?”
최대한 쉬운 영어로 말해주는 라이언 감독이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떨려서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아까 연극에서 주인공 맡으셨죠? 잘 보셨대요.”
“아. 감사, 감사합니다!”
서준의 통역에 선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근데 감정표현에서 조금 어려워하는 것 같던데……./”
“근데 감정표현에서 조금 어려워하는 것 같던데…….”
서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라이언 감독의 코멘트를 통역했다.
라이언 감독이 어려운 단어를 쓰더라도 서준은 잘도 찰떡같이 영어 단어에 어울리는 한국어 단어를 찾아내 설명해 주었다. 전부 연기과 관련되어 자주 쓰는 한국어와 영어라 통역하기 쉬워, 라이언 감독의 뜻은 한 치의 오역도 없이 그대로 선배에게 전해졌다.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라이언 감독의 코멘트가 이어지자, 처음에는 너무 놀라 크게 요동치던 선배의 눈동자가 이내 집중하는 듯 빛을 반짝였다.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그런 선배의 모습에 뒤에 줄을 서 있던 다른 학생들도 하나둘 긴장하기 시작했다. 연극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두려움에 숨이 조금 가빠져 왔다. 모든 연기가 어색했던 것 같았고 모든 대사를 실수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과 함께, 기대도 새록새록 피어났다.
할리우드 감독의 코멘트라니……!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그저 기억에만 남겨두기 아쉬웠던 누군가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준비하자 다들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따라 했다. 다음 차례인 학생은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코멘트를 듣고 있는 친구를 위해 기꺼이 중간부터 녹음해 주었다.
“진짜 부럽네.”
“그러게요. 연극, 내가 할걸.”
학생회 일이 바빠, 이번 연극에 참가하지 못했던 황도윤과 차유나 등 학생회 임원들은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을 위한 코멘트도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는 하니까. 그래서 연극에 참가하지 못했던 다섯 명도 라이언 감독과 서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짧은 코멘트와 함께 미니사인회가 끝나고 2팀 직원이 차를 끌고 식당 앞에 도착했다. 서준은 공항까지 마중 갈 겸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과 함께 가기로 했고, 엄마 아빠는 따로 집으로 가기로 했다.
“/다음에 봬요. 라이언 감독님. 조나단./”
“/잘 지내다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부부와 인사를 나눈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이 차에 올랐다. 안다호가 운전석에 앉았다. 차에 오르던 서준에게 부부가 말을 걸었다.
“호텔 갔다 공항 가는 거지?”
“응. 공항에서 곧바로 집으로 갈 거야.”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근데 서준아. 다호 씨…….”
“응?”
“아니, 집에서 이야기하자.”
“? 알았어.”
머뭇거리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던 서준이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 차에 올랐다. 문이 닫히고 떠나가는 차를 부부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금세 평소대로 돌아왔지만 잠깐 스쳐 지나갔던 안다호의 힘없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걱정하던 서은혜와 이민준도 이내 집으로 향했다. 그사이 식당 안은 어수선해졌다.
“누나! 사인 이쪽에 붙여요!”
“이서준 사단! 이서준 사단끼리 모아서!”
“와아……! 사진 찍고 가도 되죠?!”
세 사람의 사인을 붙이는 사이, 식당의 문에 벌컥 열렸다.
있는 힘껏 달려온 듯 땀을 흘리고 헉헉거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친분이 있는 연기과, 영화과의 학생들이었다.
“라이언 감독님이 오셨다고요!?”
“진작 연락해야지! 바로 옆옆 가게에 있었는데!”
“연락하면 순식간에 이렇게 변하니까 못했지. 식사하러 오셨는데.”
“그건 그렇지만……!”
맞는 말이지만, 안타까움이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소식을 들은 다른 학생들까지 몰려와 식당은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 * *
[배우 이서준, 한예대 입학생 대표로 선서!]
[라이언 감독, 조나단 감독 오늘 오후 출국!]
[한예대 한 가게에 할리우드 감독 사인이?!]
[사인으로 모인 이서준 사단!]
-입학 축하해! 서준아!
=입학생 대표라니! 멋있다!
=근데 서준이 중, 고등학교 모두 입학생 대표ㅋㅋㅋ
-벌써 대학생이라니……. 왠지 내가 키운 것 같구요ㅋㅋ
=22 거의 1년마다 작품활동을 해서 그런 듯.
=초딩 때 빼고는 휴식기가 몇 개월 안 넘기는 했지. 휴식기에도 학교 갔을 테고.
-라이언 감독님 가셨네.
=그대로 눌러앉으셔도 됐는데…… 아쉽.
=ㅋㅋㅋㅋㅋ
-누구 안 데리고 가셨음?
=데리고 가진 않았는데 코멘트는 해줬다고 함. [436]팀한테.
=오오. 미리내 예고 애들은 에반, 리첼한테도 특강 들었잖아.
=나중에 보면 다 할리우드 가는 거 아님?
=설레발 ㄴㄴ
-입학식 때 한예대 연기과 연극도 봤다던데. 그거 코멘트도 함.
=그거 누가 글 써놨는데 웃기더라. 우연히 연극 봄(경악) 우연히 식당에서 만남(놀람)
=ㅋㅋ우연이 두 번이낰ㅋㅋ
=진짜 심장 내려 앉았겠다ㅋㅋ
-사인 너무 웃김ㅋㅋ 이서준 사단만 모아뒀어ㅋㅋㅋ
=(이서준, 라이언 윌, 조나단 윌, 최소영, 이다진, 박도훈, 이지석, 김종호 사인 모음)
=이지석, 김종호는 한예대 출신 아닌데…… 박도훈이나 이다진이랑 같이 왔었나 보네.
=그럼 이제 강태영이랑 감독님들, 작가님들도 오시고.
=플러스 지사장님도 오시고…… 마린사도 오려나??
=마린사가 왜 여기 와ㅋㅋㅋ
=에반 블록, 리첼 힐은 백퍼 올 것 같지 않아?
=22 저 가게 죽치고 앉아 있으면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도 볼 수 있는 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준이는 자주 보지 않을까? 바로 옆이 한예대니까.
=진짜 그럴 것 같으니까…… 직원으로 취직한다!
=ㅋㅋ이것도 덕업일치인가?ㅋㅋ
-그럼 이쪽이 더 낫지 않음? (링크)
=코코아엔터 직원 모집 중.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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