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76화
어제저녁.
이민준이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윌을 호텔에 데려다주는 사이, 서준은 안다호에게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의 입학식 참석 소식을 알렸고, 안다호는 다음 날 아침 곧바로 한예대에 연락했다.
라이언 감독의 정체가 알려지고 소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한예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한예대는 두 감독의 입학식 참석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서준 배우의 효과가 입학식부터 있을 줄은 몰랐네.”
입학식을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한 직원들이 연신 감탄했다.
이서준 배우의 입학으로 한예대의 네임벨도 올라가고 외국에서도 꽤 관심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입학식부터 할리우드 감독이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직원들은 감탄하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이 모든 게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 바빴다. 오늘 입학식의 진행 순서를 점검하고 무대를 꾸미고 귀빈 소개에 라이언 감독의 이름을 추가했다.
“조나단 윌 감독님은요?”
“본인이 사양하시더라고.”
라이언 감독의 조카라는 것과 서준의 실기 시험의 원작으로 최근 유명해진 조나단 윌은 그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언 감독님 이름만으로도 충분하죠.”
“근데 이제 곧 입학식 시작인데 언제 오시…….”
와아아아!
“……오셨네.”
사무실까지 전해지는 들썩임이었다.
* * *
“헐! 이서준도 있어!”
외국인인 라이언 감독을 보고 놀랐다가 그 옆에 있는 서준을 발견하고는 경악이 터져 나왔다. 서준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차분해지긴 했지만 떠들썩함을 조금 남아 있어, 사람들의 말과 휴대폰으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서준과 라이언 감독, 조나단 윌은 어느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던 서준이 슬쩍 옆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일반인인 양, ‘우린 다른 신입생 부모입니다.’ 하고 사람들의 틈 사이에 서서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엄마 아빠가 보였다. 웃고 있는 표정이 이 상황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의외로 내 연기력은 유전인가?’
그 태연한 엄마아빠의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팬입니다! 감독님!/”
“/차기작이 뭔지 물어도 될까요!?/”
“서준아!”
“진짜 우리 학교네!”
“/조나단 감독님! 첫 상업 영화는……!/”
기자 못지않게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래도 다들 일정 거리 안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아까 만났던 황지윤도, 황도윤에게서 ‘관객석에 라이언 감독님하고 조나단 감독님 있었음.’이라는 말을 듣고 뛰쳐나온 연기과 학생들도 눈을 반짝이며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비켜주세요!”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안다호와 경호원들, 한예대 직원들이 달려왔다. 그러고는 서준과 라이언 감독, 조나단 윌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물결에 밀리듯 미리 준비해 두었던 사무실로 이동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생했어. 고생하셨어요./”
“/아니에요. 다호 형. 엄청 빨리 왔는데요./”
안다호가 세 사람에게 생수를 건넸다. 목을 축이고 한숨을 돌릴 때, 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 엄마랑 아빠는 먼저 들어가 있을게.
<응. 알았어!
>엄마 : 우리 서준이가 입학생 대표라니!
올해 입학생 대표인 서준은 입학생 대표 선서를 하기 위해 무대에 설 예정이었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은 귀빈석에 앉을 예정이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오늘 무대에 오를 입학생들(성적우수상, 장학금, 총장상 등)의 부모님에게 배정된 특별석에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기사 났네./”
안다호의 말에 서준과 두 감독이 관심을 가졌다.
[라이언 감독, 조나단 감독, 이서준 입학식 참석!]
[할리우드 감독, 한예대 입학식 참석!]
비슷한 제목으로 기사들이 우르르 뜨고 SNS에 목격담과 사진도 올라오고 있었다. 그걸 봤는지 친구들에게서도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조나단이 휴대폰을 보고 흠짓 몸을 떨었다.
“/……리첼이랑 에반도 보냈는데?/”
“/……저도요./”
……어떻게 벌써 미국까지 알려졌지?
서준과 조나단이 한국인들과 비슷한 속도로 소식을 접한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모습에 놀랐다가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답장을 보내는 사이, 안다호가 종이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서준아. 옷 갈아입자. 시간 다 됐어./”
“/아, 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예대를 구경하기 편하도록 편한 옷을 입고 왔는데, 선서를 할 때는 좀 더 차분한 정장이 어울릴 것 같아서 준비한 옷이었다.
“/라이언 감독님과 조나단 감독님은 저희 직원 따라서 먼저 들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지금 말씀해 주세요./”
착착착, 진행하는 프로 매니저의 모습에 한 손 거들러 왔던 한예대 직원들은 감탄과 함께 소리 없는 박수를 보냈다.
* * *
10시 정각.
한국예술대학교의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감독 때문인지, 평소의 입학식보다 열기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며,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한국 예술 대학교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좌석이 많아서 그런지 맨 앞의 귀빈석은 잘 보이지 않았다. 목을 쭉 빼고 살펴보던 입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이내 무대에 집중했다.
개식사가 끝나고 귀빈 소개가 있었다.
[라이언 윌 감독님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짝짝짝!
라이언 감독이 일어나 인사를 하자, 커다란 박수 소리가 들렸다. 특히, 연기과와 영화과 학생들이 열성적인 박수를 보냈다. 무대 뒤에 있던 서준도, 라이언 감독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조나단도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 이후로 국민의례, 입학 허가 선언이 이어졌다.
[다음 순서는 입학생 대표의 선서가 있겠습니다.]
대부분 누구일지는 예상하고 있었다.
수능을 잘 쳤다는 기사도 났었고 실기는 당연히 만점일 테니까.
[입학생 대표, 연기과 이서준.]
짝짝짝!!
커다란 박수 소리와 함께 무대 옆에서 깔끔한 정장을 입은 서준이 걸어 나왔다.
……와아……!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무대 위의 서준은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다 못해,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런 장치가 없는데도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켠 것처럼, 그저 등장만으로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서준이 서 있는 곳만 다른 세상인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땐 진짜 스타라니까요./”
“/그러게 말이다./”
짝짝!!
박수를 치며 속삭이는 조나단에 라이언 감독도 빙그레 웃으며 박수를 쳤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배우의 이런 일상적인 모습은 라이언 감독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
“선서.”
마이크 앞에 선 서준이 선서문을 펼치고 입을 열었다. 부드럽지만 강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자막이 없는데도 단어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발음이 좋았다.
“엄숙히 선서합니다.”
빛처럼 짧은 선서가 끝났다.
선서문을 덮은 서준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무대 옆으로 걸어갔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서준의 모습에 아쉬움의 박수가 대극장을 가득 채웠다.
[다음으로 상장 수여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곧 성적우수자로 서준이 다시 한번 나와 상을 받으면서 사람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후, 총장의 축사와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바이올린, 꽤 어려 보이지 않아?”
서은혜의 말에 이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현대무용 공연과 두 번째 발레 공연을 지나고, 세 번째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피아노 삼중주의 연주가 무대 위에서 이루어졌는데, 그중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여학생은 옆에 있는 두 학생보다 작고 어려 보였다.
“조기입학으로 일찍 들어왔나 보네.”
“아. 그게 있었지.”
부부도 여러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조기입학. 정확히는 서준의 미래를 위해 월반, 조기졸업, 유학, 검정고시 등 학업과 관련해 고려하지 않았던 것들이 없었다.
그건 서준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의 고민이었다.
부부는 수많은 경험담을 읽고 성공담을 읽고 실패담을 읽었다. 서준의 배우 지인들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달라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라 많이 고민했다.
“뭐, 결국 서준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지만.”
카메라를 들고 입학식을 촬영하던 서은혜가 웃고 말았다. 이렇게 입학식을 찍는 것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벌써 대학교가 되었다.
“잘됐지.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경험도 쌓고. 졸업 공연 같은 건 학교에서밖에 못해보잖아.”
졸업공연 준비에 들어가면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즐거워 보였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촬영하는 동안에도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면 종종 조금 덜 열심히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물론, 연기가 아니라 공부를.
“서준이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지.”
“그건 그래.”
부부가 빙그레 웃으며 아름다운 공연을 보여준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 * *
입학식이 끝났다.
사람들이 쉽게 대극장을 떠나지 않아, 서준 일행은 최대한 사람이 적은 쪽으로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여기서 점심 먹을 수 있을까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들 대극장에 몰려 있어서요. 점심을 먹으러 갔다고 해도 개인실이 있는 곳으로 갔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조나단의 물음에 안다호가 대답했다.
“/그래도 개방감이 있는 음식점보다는 조금 구석에 있는 곳이 좋겠네요. 어때, 서준아?/”
“/여기로 가면 될 것 같아요./”
서준이 가게 이름과 주소를 불러주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학교와 가까운 곳이었다. 찾아보니 가게 인테리어도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가시죠./”
안다호와 부부가 앞장서고 서준과 두 감독이 그 뒤를 따랐다. 이번에는 얼굴을 가리는 모자와 목도리를 잊지 않았는데 그 모양과 색이 바뀌어있었다.
“/목도리하고 모자까지 챙겨올 줄은 몰랐네요. 겉옷도요./”
“/사진이 많이 찍혔으니까요./”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서준과 두 감독이 입고 있던 옷은 코트였지만 지금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아마 금방 알아보지는 못할 겁니다. 직원들하고 경호원들도 따라오고 있으니 큰일도 없을 테고요./”
“/역시 준의 매니저네요./”
조나단이 감탄했다. 안다호가 잠시 멈칫했다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 왔습니다. 여기네요./”
빈자리가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다호가 먼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안다호가 묘하게 웃으며 말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헐! 라이언 감독님!”
“서준아!”
“왜 여기 있어!?”
제1 소극장에서 영화과의 행사가 진행되는 짧은 점심시간 동안 배를 채우기 위해 가게에 온 연기과 학생들이 거기에 있었다. 기념품을 모두 나눠준 황도윤과 임원 둘, 다음 타자에게 과방 안내 자리를 넘겨준 차유나와 김민우도 있었다.
열세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밥을 먹다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여덟 명은 연극 당시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감독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사색이 되어 있었다.
‘하긴 선배님이 소개해 주신 가게이니까, 선배님들도 자주 들르는 곳이겠네.’
눈을 끔벅이던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저희 여기서 점심 먹으려구요. 괜찮을까요?”
“당, 당연히 괜찮지!”
“저쪽에 자리 비었어!”
“여기 추천 메뉴는 이거야. 여기 아침에 재료 받아서 써서 엄청 신선해!”
서준 일행이 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직원도 놀란 얼굴로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향했다. 서준이 벽을 둘러보는데 맛집인 게 사실인 모양인지 연예인들의 사인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네가 가 봐! 과대잖아!”
“식사할 때 방해하면 안 되지!”
“이럴 때만 제정신이지!”
그 소란을 서준은 모른 척해주었다.
“/감독님. 이거 도훈이 형 사인이에요./”
“/그래?/”
서준의 말에 라이언 감독도, 조나단도 흥미로운 얼굴로 사인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이건 다진이 누나 사인이네. 소영이 누나도 있고./”
역시 연기과 맛집.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런 재미가 있었다.
숨은 그림을 찾듯, 사인들을 살펴보는 서준의 눈이 흥미로 반짝반짝 빛났다. 지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가 여기뿐만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벌써?/”
“저흰 속도가 생명이거든요.”
놀라는 조나단에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
연예인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직원은 두 감독의 모습에 금세 익숙해진 것 같았다.
‘저기서 벌벌 떨고 있는 연기과 학생들도 연예인은 꽤 봤을 텐데…….’
아무래도 연기와 전혀 관계없는 직원과 연기에 인생을 건 학생들의 차이인 것 같았다.
안다호는 작게 웃으며 휴대폰으로 바깥 상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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