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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73화 (47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73화

2월 28일 화요일에서 3월 1일 수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삼일절인 오늘이 쉬는 날이라서 그런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연극 [MOEB-436]에 대한 기사들과 관련된 글들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너튜브도 마찬가지였다.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대세에 따라 움직이는 너튜버들도 적당한 시간에 맞춰 생방송으로 리액션 영상을 촬영하거나 영화객처럼 리뷰 방송을 올리기도 했고, 장산범이나 안드로이드에 대한 정보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리뷰인가, 자랑인가. 영화객 연극 [MOEB-436] 리뷰!]

[연극 MOEB-436을 실제로 본 관객들의 인터뷰.]

[장산범은 실존했는가? 장산범 목격담!]

[우주에서 조선 시대로, 차원과 시간을 넘나드는 연극!]

[관객석에서 등장하는 000!]

[녹음 NO! 이서준 배우가 실제로 연기한 목소리!]

-기사들이 묘하게 스포일러와 비밀 사이를 넘나드네.

=빨리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영화객 님 리뷰 반은 자랑이었던 듯ㅋㅋ

-관객석에서 등장하다니…… 역시 어린이 연극 봄의 청룡님다운 연출.

=하긴 봄도 애들이 소원 비는 시간이 있었지. 나도 열심히 빌었는데ㅎㅎ

=근데 원래 대본에는 그런 시간 없었다고 하더라. 1회차 소원 비는 시간은 완전 애드리브였다고 하던데?

=ㅇㅇㅇ 그거 잘 보면 갑자기 관객석에 있던 애가 말해서 봄이는 당황하고 청룡님 혼자 커버함.

=중학생, 어른들 : 당황 / 8살 나 진 : 애드리브

=……슈퍼스타는 떡잎부터 다르네.

-목소리 진짜 똑같더라. 진짜 녹음인 줄.

=22 그것도 과학자랑 주모가 여자 목소리라서 더 신기했음. 그 정도까지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게 가능하구나 싶더라.

=33 목소리 변하는 것도 신기.

-보이스피싱 걸려오면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해 주면 웃기겠다ㅋㅋ

=ㅋㅋ대사도 똑같이ㅋㅋ

=피싱범 : 안녕하세요. 서울동부지검…….

??? : 안녕하세요. 서울동부지검…….

피싱범 : ?!?!?

=ㅋㅋ진짜 무섭겠다ㅋㅋ

-그거 앎? 7시부터 새 글 거의 안 올라옴ㅋㅋ

=22 인터넷 침묵. 진짜 썰렁하더라ㅋㅋ

=올라와도 ‘나는 일하는 중이라 못봐ㅠㅠ’뿐이고. 진짜 연극 안 본 사람이 없을 듯.

=22진짜 조금이라도 시간 있는 사람은 다 연극 본 듯. 조회 수 엄청나더라;;;

-우리팀 팀장님이 이서준 팬이라서 일찍 끝났다. 존나 좋음ㅎㅎ

=난 회사 사람들이랑 회의실에서 스크린으로 크게 봄ㅋㅋ 치킨이랑 피자도 시켜 먹었음.

=다 먹었음? 난 친구들이랑 보다가 반도 못 먹음. 넋 놓고 보느라.

=ㄴㄴ 우리도 먹다가 다 식음.

-치킨집 딸임. 주문 엄청 들어와서 죽을 뻔. 엄빠가 오늘 축구 경기 있냐고 물어보더랔ㅋㅋ

=222 편의점 팝콘도 엄청 나감.

=난 영화관에서 캬라멜 팝콘, 나초, 오징어 사서 집에 감.

=ㅋㅋ진짜 본격적이다ㅋㅋ

-새벽 3시였다는 캘리포니아에서도 봤다던데ㅋㅋ

=22 다른 나라 사람들도 연극 봤다고 SNS에 엄청 올라옴.

=연출, 작가, 주연 배우가 ‘서준 리’니까.

=연극 보고 영화객 생방도 봤다던데ㅋㅋ 우리 사촌 형 그거 통역해 준다고 바빴대ㅋㅋ 그리고 로봇청소기 VS 유기견으로 엄청 싸움ㅋㅋ

=걔넨 SF도 좋아하고 강아지도 많이 키우고 있어서 그랬을 듯.

=외국 너튜버들도 본격 토론 중ㅋㅋ 흥미진진ㅋㅋ

-난 유기견 쪽. 감정이 있으니까 반쯤 살아 있는 것 같음.

=22 유기견이 들개가 돼서 사람 공격 >> 장산범 아님?

-난 로봇청소기. 그냥 입력된 값인 듯? 과학자가 좀 세세하게 넣었겠지.

=22 아님 진짜 어디 에러 났다던가.

=너희 삭막하네……ㅠ 어떻게 그 밝고 슬픈 유진이를 보고도 그렇게 생각함?

=냉막한 안드로이드는 기억 안 남? 관객석에서 등장할 때 그 표정. 걘 기본이 로봇임.

=난리네. 근데 진짜 안드로이드 나오면 이렇게 싸울 것 같다.

-……나만 우리 집 로봇청소기한테 말 걸어봄?

=ㅋㅋ난 우리집 인공지능 스피커……ㅋ 솔직히 입력된 말 말고 이상한 말할까 봐 무서웠음.

=지NI : 어머니…….

=ㅋㅋㅋㅋㅋ

-내 동생이 미리내 예고 다니는데, 과학자 원래 ‘어머니’랑 ‘아버지’ 둘 다 가능했대. 배우가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서 정해졌다더라.

=오호. 아버지도 괜찮았겠다.

=지NI : 아버지…….

=ㅋㅋㅋㅋㅋ

-작품마다 하도 서준이가 죽어서 이젠 그만 죽어ㅠㅠ 왜 맨날 죽어ㅠㅠ라고 했더니…… 죽여 버림. 그것도 등장인물 싹 다 죽임.

=아들, 보부상1 직접 죽임 / 과학자 사고로 죽임 / 주모, 보부상2 내용상 연극 이후 죽임

=22 죽지 말라는 게 죽이라는 뜻이 아니었는데ㅋㅋ

=33 무슨 배틀로얄이냐고ㅋㅋ

=ㅋㅋ올킬ㅋㅋ

* * *

배우 이서준의 팬카페인 [새싹부터]도 티켓팅에 광탈해 연극을 보지 못했던 새싹들이 너튜브에 올라온 연극 [MOEB-436]을 보고 올린 글들로 복작복작했다. 늦은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새 글이 올라오는 속도는 주말보다 더 빨라 보였다.

[제목 : 저만 3025번 돌려보고 있나요?]

7시에 연극 올라온 뒤로 진짜 계속 돌려보고 있어요ㅋㅋㅋ

한 네 번째까지는 연극에 푹 빠져있다가 다섯 번째부터는 서준이 의상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새하얀 티에 새하얀 바지를 입은 유진은 순수해 보여서 좋고ㅋㅋ

길어진 머리칼에 정장을 입은 M은 진짜 처연하고 우울+냉미남 같아서 좋고ㅋㅋ

백발에 두루마기에 정장을 입은 장산범은 그냥 딴 세계 존재 같아서 너무 좋고ㅋㅋ

계속 웃으면서 보고 있어서 입꼬리가 경련이 날 것 같아요ㅋㅋㅋ

엄마가 불 켜진 제 방문 열었다가 기겁해서 나가셨어요ㅋㅋ

엄마 : 너 오늘 출……!(기겁, 문 닫음) 내가 뭘 본 거야?(이마 짚)

ㅋㅋ히죽히죽 웃고 있는 딸내미를 보셨습니다ㅋㅋ

벌써 저-기서 해가 뜨는 게 보이네요ㅋㅋ 저 오늘 출근인데ㅋㅋㅋ

잘못 본 줄 알았어요ㅋㅋ 왜 벌써 해가 떠요?ㅋㅋㅋ 이제 20,941번밖에 못 봤는데ㅋㅋㅋ

여튼, 해가 떴으니 출근해야겠죠. 서준이 포토북이랑 응원봉도 사야 하니까요ㅋㅋ

빨리 퇴근하고 와서 또 봐야겠어요ㅎㅎ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저도요ㅋㅋ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ㅋㅋ

-근데 정장 정말 잘 어울렸죠? 그거 협찬이래요?

=ㄴㄴ 그것도 학생들이 만들었대요.

=와…… 학생 솜씨가 아닌 것 같던데요? 서준이한테 되게 잘 어울려서 맞춤 정장인 줄 알았어요. 핏도 되게 깔끔하더라고요.

=ㅇㅇ 저도 어디 유명 브랜드인가 했어요.

-정장 위에 두루마기 입을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ㅠ 그 동서양의 조합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 부분은 진짜 나노 단위로 캡처했잖아요ㅠㅠ 바로 포카로 만들어야겠어요ㅠ

=ㄱㅆ) 백발+장발도 잘 어울렸죠? 진짜 현실 인물 아닌 것 같더라고요. 파란 머리도 그렇고 백발이 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ㅠ 노란 눈으로 쳐다볼 때는 오싹하면서도 심장이 뛰더라고요ㅠㅠ

=출근 준비하신다면서요ㅋㅋ

=ㄱㅆ) 양치질하는 중입니다ㅋㅋ 한 손으로 치고 있어요ㅋㅋ

=심장이 뛴 건 무서워서가 아닐까요ㅋㅋ 흔들다리 효과ㅋㅋ

=ㄱㅆ) ㅋㅋㅋㅋ

[공지 : 서준이 생일 기념 포토북, 응원봉 예약 판매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흙흙입니다.

3월 10일 서준이의 생일을 맞아 코코아엔터에서 포토북과 응원봉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모든 판매는 예약 판매로만 진행되며 이후 재판매 예정은 없을 예정입니다.

예약 날짜 : 3월 1일(수) 10:00~3월 4일(토) 23:59

도착 날짜 : 3월 10일 이후.

판매 개수 : 1인당 최대 3권.

꼭 늦지 않게 신청해 주세요.>

-구매한다면 언제 도착할까요?

=흙흙) 최대한 3월 10일에 맞춰 발송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서준이 생일에 맞춰서 도착한다면 좋겠네요!

=근데 인원이 인원인지라ㅠㅠ

-재판매는 진짜 없을까요?

=생일 기념으로 만든 거라…… 없을 것 같아요.

-3권 한정이라니ㅋㅋ 딱 감상용, 소장용, 포교용인가요ㅋㅋ

=전 감상용, 소장용, 소장용2 입니다ㅋㅋ

언제나 그렇듯 서준의 이름이 포함된 관련 기사도 뜨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배우 이서준 포토북, 응원봉 예약 판매 시작!]

[이서준 포토북, 3월 1일부터 4일까지. 오직 나흘 동안만 예약 판매!]

[코코아엔터, ‘1인당 최대 3권, 아마도 재판매는 없을 듯.’]

-재판매 없으면 리셀러 엄청 붙겠다.

=22 이서준 경력 이대로만 가도 엄청날 텐데, 20년 뒤에 팬 될 사람들은 못 사는 거잖아.

=333 리셀 가격 엄청 오르겠네.

=그때쯤이면 한 번 더 기념으로 내지 않을까?

=그거야 지금은 모르지.

-지금 입덕부정기이신 여러분. 그만 부정하고 포토북 사세요ㅠ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요ㅠ

=미래에 입덕하실 분들도 미리 사두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요ㅠ

=진짜 나중에 그런 글 올라올 것 같다. ‘이제 입덕했는데ㅠㅠ 포토북 갖고 싶어요ㅠ 어떻게 구하나요?ㅠ’

-나 중학생 새싹. 포토북 사려고 성적 걸고 용돈 받음. 이제 중간고사까지 열공해야 함.

=22 난 방 뒤져서 동전까지 모음ㅋㅋ

-여기 해외인데 해외배송 되나?

=ㅇㅇ된다더라. 근데 좀 늦을 듯.

=괜찮아ㅠㅠ 살 수 있기만 하면 돼ㅠㅠ

=해외판매는 각국 판매사이트 통해서 한대. 워낙 이 나라 저 나라 사려는 곳이 많아서.

=그럼 더 좋지ㅠㅠ

-오. 이제 좀 있으면 예약 사이트 열림.

=빨리 예약하면 빨리 받겠지? +_+

=이런 분 오억오조 명 있을 듯. 제발 사이트 터지지 마라.

=3

=2

=1

=……악! 멈췄어!

* * *

“……사이트 터졌대. 서준아. 가 봐야겠다.”

“네. 조심해서 가세요. 다호 형.”

서준을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윌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 데려다준 안다호가 2팀의 연락에 금세 호텔을 떠났다.

손을 휘휘 저으며 인사한 서준이 사 온 간식을 들고 손님1을 연기하며 두 감독이 머물고 있을 호텔 방으로 향했다.

“준! 어서 와.”

“어서 오렴.”

“안녕하세요. 라이언 감독님. 조나단.”

조나단과 라이언 감독이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두 분 아침 드셨어요?”

“아니, 이제 막 일어나서 못 먹었어.”

“그래요? 그거 큰일이네요. 여기 유명한 빵집인데 맛있어요. 아침으로 드세요.”

서준이 들고 있던 봉투를 내려놓았다.

한 조각씩 썰린 바게트부터 고소한 크루아상, 치즈와 토핑이 가득한 피자 빵까지. 맛나 보이는 빵들이 가득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제법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조나단은 얼른 접시를 챙겨와 늘어놓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사이 라이언 감독은 전기 포트에 물을 끓였다.

“준! 오렌지 주스 마실래?”

“네. 좋아요. 도와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오렌지 주스와 컵을 챙겨온 조나단 윌이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타는 라이언 감독의 모습을 보던 서준이 물었다.

“근데 어제 늦게 주무셨어요? 두 분 다 피곤해 보여요.”

“아…… 어제 436 편집본이 나왔잖아. 그거 때문에 조금 늦게 잤어.”

“영화객? 그 사람 리뷰도 봤지.”

커피잔을 든 라이언 감독이 자리에 앉았다.

조나단이 삼촌의 앞에 좋아할 것 같은 빵을 놓아두었다. 소스 하나 없는 바게트와 크루아상이었다. 라이언 감독도 포장을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제일 시청자가 많더라고. 채팅이랑 섞어서 방송하고 자막도 없어서 전부 이해하긴 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

“에반하고 리첼도 보던 중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지.”

라이언 감독의 말에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LA는 새벽이잖아요?”

“그때까지 안 자고 보고 있더구나.”

“그랬구나. 저도 리뷰 봤어요. 근데 12시 전에 끝나지 않았어요?”

조나단이 하하 웃으며 테이블 한쪽에 놓여 있을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서준도 그게 계속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삼촌이랑 내가 맡았으면 어떻게 연출하고 편집했을까 의논하다가 늦게 잤지, 뭐. 저건 콘티 그림이고.”

“아하.”

연출도, 편집도 메가폰을 쥐고 있는 감독마다 달랐다.

두 사람 다 감독인 데다가 원작인 연극도 본 상태니, 한 번쯤 생각해 본 것 같았다.

“직업병인가 보네요.”

“그런가 봐.”

서준의 말에 조나단 윌이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듯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읽어봐도 돼요?”

“그럼.”

라이언 감독의 말에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콘티가 그려진 종이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사이 배를 채운 조나단 윌은 소파에 몸을 묻고 휴대폰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시차가 다를 텐데도 ‘서준 리’의 소식으로 미국도 들썩이고 있었다.

그때, 눈에 띄는 단어가 보였다.

“포토북? 준. 포토북 내?”

콘티를 보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아, 네. 이번에 생일 기념으로 예약 판매 중이에요.”

“어떤 사진이 들어가는데?”

“이제 저도 성인이잖아요. 아역 시절을 기념할 겸 작품들을 촬영할 때 찍었던 비하인드 컷들을 위주로, 간간이 일상 사진도 있어요. ‘48시간’부터요.”

48시간.

눈을 끔벅거리며 기억을 되새기던 조나단 윌이 아하, 고개를 끄덕였다.

“준이 완전 아기였을 때 나왔던 영상?”

서준이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네. 그거요. 그때부터 나왔던 작품들 다 모은 포토북이에요.”

“오…… 그럼 신의 이름으로도 있어?”

“네. 두 장뿐이지만요.”

서준의 말에 조나단 윌이 반색했다가 삼촌의 눈치를 봤다.

바로 이틀 전에 혼이 나지 않았던가.

라이언 감독은 그런 조카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커피잔을 내려놓고 서준에게 물었다.

“쉐도우맨도?”

“네. 1, 2, 3. 시리즈 전부 있어요.”

“그거 하나 사야겠군.”

만족스럽게 웃는 라이언 감독의 모습에 서준이 웃었다.

“아니에요. 제가 나중에 드릴게요.”

“음. 그럼 더 빨리 받을 수 있나?”

“그럴 거예요.”

“그럼 한 권 부탁하마.”

“네.”

“나도. 준!”

“알았어요.”

서준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다시 콘티를 보았다.

머릿속에서 두 감독이 편집한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조나단 윌이 라이언 감독에게 배워서 그런지 비슷한 느낌이지만, 확실히 완성도는 차이가 났다.

‘하긴 경력 차이가 얼만데…….’

“오. 준. 이것 봐!”

조나단이 서준을 불렀다.

어느새 휴대폰을 내려놓은 조나단 윌은 큰 파인패드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라이언 감독도 재미있어하는 얼굴이었다.

“뭔데요?”

“48시간 영상 보려고 했는데 그 밑에 이게 뜨지 뭐야? 준의 팬들 진짜 장난 아닌 것 같아! 분명히 한국인이면 오늘 새벽밖에 시간이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 짧은 시간에 이걸 다 어떻게 만들었대.”

조나단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고 파인패드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체화면이라서 영상의 제목은 보이지 않았고 화면은 새까맸다.

“그럼 재생한다?”

“네.”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을 보며 씨익 웃던 조나단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둥.

파인패드의 스피커에서 나지막한 음이 흘러나왔다. 기타라기보다는 조금 더 굵직한 현을 튕기는 소리.

‘……어라?’

그다음에 흘러나오는 심장 고동 같은 북소리의 박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익숙한 음악이었다. 모를 수가 없는 전주였다.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릿하고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는 무겁게 한 발을 내딛는 듯 울려 퍼졌다.

[범]

그리고 화면이 밝아졌다.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새하얀 실들이 흩날리고 새하얀 천이 일렁였다. 하얀 두루마기에 박힌 검붉은 자국들이 불쑥불쑥 움직이는 짐승의 등처럼 움직였다.

두둥.

[범 내려온다.]

마치 사냥을 앞둔 범처럼 조용한 듯 읊조리는 박서진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 속 장산범의 발을 내딛는 모습이 보였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승이 내려온다]

마치 느릿하게 커다란 발을 디디던 범이 사냥감을 향해 다가가듯, 장산범의 전체적인 모습을 비추고 있던 화면이 천천히 바뀌었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쭉 찢어지고]

클로즈업된 장면을 모아 옆얼굴, 거칠어진 손과 날카로운 손톱, 지저분한 구두 등을 비추고 천천히 위쪽으로 향했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고장 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기묘한 장산범의 모습이 보였다.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음악과 아주 잘 어울렸다.

[범]

다시 한번 반복된 가사와 함께 화면에 생기 한 점 없는 싸늘한 장산범의 얼굴이 비쳤다. 온기 하나 없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다. 샛노란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본래 음원과 다르게 곡은 진득하게 늘어졌다.

0.5배속이라도 한 듯 늘어지는 음악에 기이한 장산범의 모습이 어우러져 오싹했다.

두둥.

심장 소리 같은 북소리가 크게 울리자, 화면 모서리부터 까만 물이 번져 나갔다.

[범이]

새하얀 두루마기, 새하얀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얼굴 위까지 잠식하던 어둠 속 남아 있던 짐승의 샛노란 눈동자.

[내려온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샛노랗게 빛나던 장산범의 두 눈동자가 천천히 감기고 나서야, 화면이 완전히 어둠에 물들었다.

그리고,

마치 두려움에 떠는 심장 소리처럼 희미한 북소리와 함께 새하얀 글씨가 떴다.

[브라운블랙 ‘범’×이서준 ‘MOEB-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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