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72화
“어머니.”
영화객이 말했다.
“아마도 M은 조선에, 한반도에, 지구에 추락했어도 그 단어만큼은 잊지 않았나 봅니다.”
-유진아ㅠㅠㅠ
-ㅠㅠㅠㅠ
“그리고 남아 있던 명령이랄까 추억이랄까, 여튼 과학자의 말도 있었죠. 앞서 나왔던 식사 시간. 과학자가 말합니다. ‘수분과 단백질, 지방, 무기질. 잘 기억해 두렴. 아마 몸에 에너지가 부족하면 머리카락 색부터 빠질 거야. 그리고 눈 색도 바뀔 정도면 아슬아슬하니까 잘 기억해 두고.’라고.”
영화객이 모니터에 무언가를 띄웠다. 사람 모양의 쿠키였다.
“수분, 단백질, 지방, 무기질. 그냥 놓고 보면 평범한 식단인 듯합니다만 뒤의 이야기까지 생각해 보면 아닙니다. 과학자가 인류가 아니고 에일리언 같은 외계인이라고 생각해 보면 여기에 딱 어울리는 에너지원, 먹이가 있습니다.”
-……쿠키? 달려라 쿠키?
-쿠키겠냐.
-ㅋㅋㅋㅋ
“네. 쿠키가 아니라 사람. 사람입니다.”
-이렇게 외계인이라는 사실이 확 닿은 적이 없네.
-……유진아. 우리 조금 떨어질까?
-그래서 M이 사람을 잡아먹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에너지가 부족해서 머리는 새하얗게 셌고 눈도 노랗게 변해버린 거죠. 그게 사람들에게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처럼 보인 겁니다.”
-단서 1 : 사람을 잡아먹음.
-단서 2 : 몸이 금속처럼 단단함.
-단서 3 : 머리가 새하얗고 눈이 노람.
-단서 4 :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함.
-단서 5 : 외계인이라 지구인과 생김새가 다름.
-결론 : 인간이 아님.
착착착 올라오는 댓글들에 영화객이 눈을 끔벅이다 입을 열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어디서 저 몰래 단톡방 만들어서 연습하고 오세요? 다들 왜 이렇게 잘 맞으세요? 봐요. 보통이라면 단서3하고 단서4 사이에 ‘ㅋㅋㅋ’이라도 올라와야 하는데 없어. 번호도 순서대로고 단서 내용도 다 달라!”
-ㅋㅋㅋㅋ
-아녀ㅋㅋㅋ
-그런 연습 안 함. 그냥 영화객 채널 고인물이지.
-22 이 정도 단합은 기본 아닌가?
-뉴비인데 무섭네요;;;
“저도 무서워요.”
영화객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여튼 그런 M이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꺼냅니다. 아마 설정상으로는 녹음한 것을 그대로 재생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이서준 배우가 너무, 아주, 정말, 잘 연기해 줬습니다.”
-짐승 소리>기계음>사람 목소리로 넘어가는 변화가 너무 좋았음.
-이서준(배우계의 고인물)
-ㅋㅋㅋ20살인데 경력이 14년.
-이렇게 숫자로 보니 더 대단하다. 진짜.
-진짜 고인물이잖앜ㅋㅋㅋ
“사람 목소리도 그냥 사람 목소리가 아니죠. 앞서 그냥 지나쳤던 한 부분.”
-주모 : 이보시오.
“네. 바로 주모의 목소리입니다. 그걸 딱 알아차렸을 때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M이 무대 위로 오릅니다. 진짜 그때까지 M밖에 안 보였어요. 스포트라이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위 배경이 다 지워지고 기이한 분위기의 M만 보이던 그때가 정말 대단했죠. 사람의 시선을 홀리는 그런 힘이, 아우라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지워지고 한 인물만 보이는 상황이라니.
영상은 편집이 처음부터 M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터라 그런 몰입감을 느끼지 못했다. 연극을 못 본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 싶었다.
-연그윽……!
-앞으로 내 이름은 ‘연 극못봄’이다. 평생 오늘을 기억하겠어.
-내 이름은 ‘연 극보고싶다’고.
“영상도 충분히 좋습니다. 연극의 장단점이 있고 영상의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그럼 리뷰로 돌아가 봅시다. 방 안에 있던 보부상은 같은 무대 위에선 M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물론 벽이 있다는 설정이겠지만 솔직히 그 아우라는 무시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태평하게 연기하더라고요. ‘이스케이프’와 ‘거울’에 나왔던 강재한 배우입니다.”
-진짜 잘함.
-역시 황금세대.
“M이 방문 앞에 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니, 녹음했던 것을 재생하죠.”
-??? : 이보시오.
-??? : 여기 문 좀 열어주소.
-목소리만 들으면 주모인 줄;;;
“주모의 목소리도 이서준 배우가 직접 연기한 것이라고 하던데, 진짜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보부상이 문을 열죠. M이 달려들고 보부상이 넘어집니다. 무대가 까맣게 변하고 탁탁, 마치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며 발버둥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영상에서는 이 부분도 연극보다 조금 길었습니다.”
-더 길었으면 소름;;;
-난 저 탁탁 소리도 무섭더라.
“저도요. 진짜 죽어가는 것처럼 잠시 후에는 소리도 안 들리고요. 그리고 무대가 밝아지며 보부상과 주모가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 대화를 나눕니다. 주모가 말하죠.”
영화객은 연극 [MOEB-436]를 마무리 짓는 대사를 입에 올렸다.
“우리는 요 뒷산 이름을 따서 장산에 사니,”
붉은빛 아래에서 관객석을 바라보는 새하얗고 붉은 M이 떠올랐다. 어쩐지 생기 하나 없는 텅 빈 눈과 마주친 것 같기도 했다.
“장산범이라고 부르지.”
-소오오름……!
-장산범이라고 부르지이!!!
-장산범! 장산범!!
-방송 시작부터 얼마나 부르고 싶은 이름이었는지!!!
그러고 보니 채팅에 한 번도 장산범이라는 단어가 올라온 적이 없었다. 장산은 있었지만.
“그러게요. 왜 다들 말 안 하셨어요?”
-……그냥?
-왠지 내가 먼저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클라이맥스니까 연극객 님이 하면 좋겠다 싶어서요?
그런 시청자들의 모습에 영화객이 하하, 웃었다.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제가 말하게 됐네요. 네. M의 정체는 바로 장산범이었습니다. 아니, 장산범이 안드로이드 M이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이 대사를 들었을 때는 진짜 소름이 돋고 입이 쩌억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진짜 모든 복선이 이어지는 그 짜릿함이란……!”
-저도요!
-영상으로 봤는데 나도 그랬음!
“왜 SF에서 조선으로 이어졌는지도 알겠고. 식단, 머리카락, 눈동자, 목소리 재생도 왜 나왔는지 알겠더라고요. 진짜 장산범 외계 안드로이드 설을 믿어도 될 정도로요.”
-ㅋㅋㅋㅋ
-그거 올라옴ㅋㅋㅋ
-너튜브에 올라왔어요ㅋㅋ
벌써 올라왔다는 이야기에 영화객도 웃음을 터뜨렸다.
“장산범. 장산범은 부산 장산에 사는 범, 호랑이입니다. 옛날 민담이 아니라 꽤 최근의 도시 전설이더라고요. 조선에는 장산범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 조선에 없었음?
-난 그때도 있는 줄.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해요. 새하얀 긴 털에 호랑이처럼 생긴 장산범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도록 만들어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왜 꼭 이런 종류의 귀신이나 요괴는 사람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는 걸까?
-……이야기가 재미있으라고?
-아하!
-그래도 M은 좀 이해가 됨.
-22 사람 죽이면 안 된다는 로봇의 3원칙은 망가졌지만, 방에 허락 없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명령은 남아 있는 M.
-ㅋㅋ그거 이상하지 않아?ㅋㅋ
“그렇네요. 방에 허락받고 들어가라는 명령은 그 속에서도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과학자인 어머니와의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요.”
-??? : 어머니가 부르면 문을 열어준다고 하셨어!
-유진아ㅠㅠㅠ
-??? : 어머니가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하셨어!
-그렇다고 사람 죽이는 건 좀ㅠㅠㅠ
영화객과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M이 걸치고 나왔던 새하얀 두루마기도 평범한 소품이 아니었습니다. 잘 보시면 뒤쪽 아랫부분에 호랑이 무늬처럼 듬성듬성 뭔가 묻어있거든요. 아마 이전에 사냥한 사람이나 동물의 피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걸 잘못 보고 호랑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죠.”
-근데 두루마기는 왜 입었을까요?
“그건 아마 과학자의 가운과 비슷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대사를 떠올려보시면 M이 ‘새하얀 가운을 입은 어머니’라고 말하거든요. 그것과 가장 비슷한 흰색 두루마기를 보고 저도 모르게 입어버린 거죠.”
-??? : 어머니의 가운이다! 헤헤. 입어봐야지!
-유진이는 어머니만 기억하는 듯ㅠㅠ
-버려져도 계속 그 자리에 있는 유기견 같음ㅠㅠㅠ
“그리고 연극 제목에도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MOEB-436. 1부 우주선에서의 대화로 안드로이드의 모델명인 줄 알았던 이 제목. 하지만 이렇게 뒤집어보면…….”
영화객이 모니터에 띄워져 있던 [MOEB-436]을 옆으로 뒤집었다.
[634-BEOM]
“643은 부산에 있는 장산의 높이입니다. 643M라고 하네요. 그리고 뒤에 있는 알파벳은 누가 봐도 범이죠. 장산과 범. 장산범. 제목부터 이 연극의 주인공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몰랐음.
-전혀 몰랐음;;;
-누가 제목을 뒤집을 생각을 해요.
-진짜 추리극이면 한 번쯤 생각해 보겠지만…… 이건 SF잖아??
-222 SF인 줄 알았는데 조선시대가 나오고, 장산범이 나오고. 이해하고 보니 추리극ㅋㅋㅋ
-근데 재미있어ㅋㅋ
“네. 평범하지 않은 연극이라 좋았습니다. 솔직히 아들이 나오는 부분까지는 클리셰이지 않나 싶었는데 그 뒤로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감탄만 나왔습니다. 관객석에서 등장하다니! 그런 압도감이라니! 그 장면은 진짜 평생 못 잊을 겁니다!”
-이젠 부럽다는 말도 지친다…….
-그래도 부러워!
“그리고 중간에 우주선 추락 장면. 생각해 보니까 관객석 뒤쪽에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이 세 군데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그 추락 장면 때 이서준 배우가 관객석 맨 끝으로 이동해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웃기네ㅋㅋ
-연극 볼 때는 몰라도 끝나면 다들 옷 갈아입느라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듦.
-ㅋㅋㅋ서준이도 그랬겠지ㅋㅋ 귀여웤ㅋㅋ
“그리고 미리내 예고에서 외국인들을 위해 추가 영상을 만들었더라고요.”
영화객이 너튜브 채널 [미리내 예고]에 들어갔다. [연극 MOEB-436] 영상 아래에 비슷한 시간에 올라온 영상이 하나 더 있었다.
“여기 ‘연극 MOEB-436을 보기 전에’라는 영상이 있습니다. 한국의 민담이나 요괴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 설명해 둔 영상이죠. 아마도 이번 연극의 중심이 되는 장산범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장산범을 설명하면서도 너무 티가 나지 않게 다른 요괴들의 설명까지 넣은 모양입니다.”
-나도 봤음. 이게 왜 올라오나 했다.
-222 갑자기 웬 한국요괴?? 했는데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외국인은 이서준 팬하기 힘들 듯.
-왜?
-한국어 작품이 많아! (그럼 한국어를 배우자!) → 어? 사극이라고? (그럼 한국역사를 배워야지!) → 어어……?? 한국민담이라고?? (……일단 열공)
-ㅋㅋ나보다 한국 잘 알 듯ㅋㅋ
-내의원 때랑 조금 다르네요.
영화객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네요. 내의원처럼 역사를 모르고 봐야 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 있다면 이번 연극처럼 민담을 알고 봐야 재미있는 작품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장산범 모르면 재미가 덜 하긴 할 듯.
-모르면 뭐, 거울 때처럼 여러 번 보면 되는 거고!
-22 장산범이라는 거 알고 봐도 재미있을 듯.
-연극객님. 커튼콜 했어요?
영화객이 활짝 웃으며 모니터 위로 여러 개의 사진을 띄웠다.
오오오!
시청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네! 커튼콜 했습니다! 촬영도 가능해서 사진도 찍었어요! 배우들은 물론이고 음악팀, 미술팀까지 올라왔더라고요. 다들 어깨에 힘을 빼니까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더 놀라웠습니다. 새삼 이렇게 재미있는 연극을 고등학생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더 놀라웠죠!”
영화객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서준 배우는 장산범 모습이었는데도 연극 중의 모습과 달리 부드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았는데도 금세 몰입에서 빠져나온 모양인 것 같더라고요! 진짜 그 차이를 눈앞에서 보니까, 왜 이서준, 이서준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흥분한 영화객이 감상을 늘어놓다가 이내 몸을 움찔 떨었다. 너무 열심히 말한 모양이었다. 영화객이 헛기침을 하며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아뇨. 재미있었어요.
-22 그저 부럽기만 할 뿐.
-나도 영화객 님 동생분이 계셨더라면…….
-영화객 동생 님 제 언니 안 하실래요?
영화객이 하하, 웃다가 정색했다.
“네. 절대 안 됩니다. 제 동생은 앞으로도 제 티켓팅을 대신해…… 주겠죠? 여튼 절대 안 됩니다!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다들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잖아요? 그럼, 연극 MOEB-436을 보여주신 미리내 예고 배우분들과 음악팀, 미술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내일 일정이요?
-중요한 거? 없는데?
-나도.
너튜브에 공개된 미리내 예고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감사인사를 한 뒤 방송을 끝내려고 했던 영화객이 눈을 끔벅였다.
“……내일 서준이 생일기념 포토북하고 응원봉 예약판매 첫날이잖아요?”
의아함이 가득 담긴 그 말에 채팅창이 잠깐 멈췄다.
-……아!
-……어!
-……까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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