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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69화 (46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69화

무대의 막이 내려가고.

극장 내부는 차갑고 묵직한 공기로 가득 찼다.

영화객은 멍하니 커튼으로 가려진 무대를 바라보았다.

우주에서 조선 시대로 이어지는 배경과 퍼즐처럼 맞춰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의 정체까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영화객은 무거운 극장의 분위기를 느끼며 연극의 여운을 즐기기 위해 잠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바로 옆을 지나가던 새하얀 것을 봤을 때 느꼈던 소름이 아직까지도 온몸에 남아 있는 듯했다.

순수했던 유진.

안드로이드 가짜 유진.

망가진 안드로이드.

새하얀 그것.

장산범.

그 모든 모습들이 영화객의 머릿속에서 되풀이됐다.

“하아.”

어느 순간.

따뜻한 바람이 부는 듯싶더니, 긴장으로 가득 차 있던 극장 안의 분위기가 확 풀려 버렸다. 동시에 뱃속부터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만족감으로 가득한 한숨이었다.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를 바로 눈앞에서 봤다는 사실에 영화객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벅참을 참을 수가 없어 영화객은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두 다리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허리를 폈다가 숙였다가 작게 움직이며 깍지 낀 두 손을 꽈악 마주 잡았다. 끝내는 몸을 웅크려, 바보처럼 웃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얼굴을 두 손바닥에 묻고 말았다.

흐……흐흐.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그 가슴 뻐근한 기분에 마른세수를 하던 영화객의 입에서 저절로 감상이 흘러나왔다.

“으아-. 너무 좋다.”

“하아-. 너무 좋은데?”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영화객이 움찔 몸을 떨고는 고개를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김수한이 영화객과 비슷한 자세로, 헤실헤실 귀까지 벌어지려는 입을 두 손으로 가린 상태로 영화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바보 같은 얼굴을 보는 순간,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 마음이 벅차서 아파트를 뽑고 싶은 기분이 든 게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두 사람만이 아닌 듯, 커다란 박수 소리가 극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막이 모두 내려가 무대를 완전히 가리고 나서야, 연기를 멈춘 서준이 어깨에 힘을 풀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노란 눈동자에 생기가 반짝 맴돌고 새하얀 머리카락이 사르르 움직였다.

“……좋아.”

흥분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서 기분이 조금 들떠, 있는 힘껏 연기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평소처럼 연기할 수 있었다.

옛날이라면 조금 폭주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서준이 무대 뒤로 향했다. 김주경과 한지호가 서준과 아이들에게 물병을 건네주었다.

“으으. 평소보다 더 긴장했던 것 같아요.”

“저도요. 저 실수한 부분은 없죠?”

그 말 그대로 박연지와 김영찬은 평소보다 지쳐 보였다. 물을 마신 강재한이 빙그레 웃었다.

“평소랑 똑같던걸. 잘했어.”

“원래 마지막 공연이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니까 괜찮아. 우리도 그래.”

김주경의 말에 박연지와 김영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후배들의 모습에 서준과 아이들이 빙그레 웃었다.

[(선)중급천사의 부채가 발동됩니다.]

목을 축이면서 능력을 발동한 서준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커튼콜 준비하자.”

“그래.”

고개를 끄덕인 연기팀 아이들이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물병을 내려놓고 연기팀의 뒤를 따라가던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도 같이 올라가자.”

“……우리도?”

음악팀 팀장 김채연과 미술팀 팀장 이솔이 의아한 얼굴로 눈을 끔벅였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작품 커튼콜이잖아. 다 같이 가야지.”

“그러네! 얼른 올라와.”

계단을 반쯤 올라간 한지호까지 휙휙 손을 내저으며 거들었다. 다른 연기팀 아이들도 어서 와, 하고 연신 손짓했다.

이솔이 눈을 데굴 굴리며 뒷목을 매만졌다.

“근데 커튼콜은 배우들끼리 하는 거잖아. 우리가 인사를 할 정도로 유명한 것도 아니고…… 좀 그렇지 않나?”

“여기 우리끼리 연극 만든 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 다들 좋아할 거야.”

서준의 말에 음악팀과 미술팀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물론 무대에 서기 부담되거나, 촬영할 수도 있으니까 촬영이 싫으면 올라오지 않아도 돼.”

“그거야 별로 신경 안 쓰는데…….”

관객이 가득한 무대 위에 올라 연주를 하고, 작게나마 기사 사진을 통해 얼굴을 알리는 음악팀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김채연이 앞서 걸음을 옮겼다.

“우린 좀 신경 쓰이긴 하는데…….”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을 하고, 전시회가 아니면 사람들 앞에 설 일이 거의 없는(아직 학생이라 전시회도 거의 없다.) 미술팀은 연습 때 봤던 텅 빈 관객석에 사람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전혀 상상이 안 됐다.

그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무대 뒤까지 아주 커다랗게 전해져 오는 박수 소리였다.

그 우렁찬 박수는 사람을 들뜨게 만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솔이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괜찮겠지, 뭐.”

미술팀 팀원들도 박수 소리를 들으며 긴장 반 설렘 반의 표정으로 무대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436]팀이 모두 무대에 오르는 동안에도 박수 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조금 긴장돼요.”

“나도 그래. 우린 관객분들 있을 땐 올라온 적이 없으니까.”

미술팀과 음악팀 아이들이 속닥거렸다.

“막 올라간다.”

한지호의 말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관객석 쪽을 바라보았다.

미술팀장 이솔은 심장이 너무 뛴다고 말하는 1학년 후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1학년 후배가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이솔을 바라보았다. 멋진 선배님!

“감사합니다.”

“아냐. 내가 떨려서 그래.”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 가득 담긴 이솔의 말에 다들 작게 웃었다. 조금 긴장이 풀어진 것 같았다.

천천히 올라가던 막이 시야 위로 올라갔다.

“……와.”

관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에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연주한 음악을, 자신이 만든 배경을 봤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심장이 떨렸다.

박민형은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조명&음향실에서 보던 모습과 무대에서 보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런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빠져들게 만들다니…….’

연기팀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특히, 이번 연극 내내 다양한 분위기 변화를 보이며 관객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했던 한 배우가.

박민형의 눈동자가 그 배우에게로 향했다.

무대 정중앙에 선 서준의 모습이 빛나는 것 같았다.

* * *

관객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커튼이 올라갔다.

나왔던 캐릭터들보다 많은 인원들에 관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오. 다른 학생들도 나온 모양이네요.”

“전부 미리내 예고 학생들이죠?”

“네.”

영화객과 김수한도 들뜬 얼굴로 두 손바닥이 뜨거워져라 박수를 쳤다.

무대의 앞에는 여섯 명의 배우가 캐릭터 의상 그래도 나란히 서 있었고, 그 뒤에 아이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서 있었다.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영화객이 서준을 보며 감탄했다.

“분위기가 전혀 다르네.”

무대 중앙에 선 서준은 긴 백발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장산범의 모습이었는데,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아까의 무시무시한 분위기는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기쁜 듯한 느낌이 가득해서 조금 인지부조화가 오기도 했다.

커다란 박수 사이로, 커튼콜을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 듯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준의 목소리였다.

[연극 MOEB-436을 관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작품을 만든 친구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연극 MOEB-436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입니다.]

서준과 연기팀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연극 MOEB-436의 배경과 소품, 의상을 제작해 준 미술팀입니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무대 위 연기팀과 음악팀까지 어색하게 인사하는 미술팀 팀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연극 MOEB-436의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제작해 준 음악팀입니다.]

연주회로 무대에 선 경험이 있는 음악팀 팀원들은 커다란 박수 소리에도 제법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커다란 박수와 환호가 극장을 울렸다.

다시 한번, 친구들과 함께 꾸벅 인사하는 서준을 보며 김수한은 왠지 입이 근질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 * *

관객들이 하나들 제2 소극장을 나왔다. 그 인파 속에 영화객과 김수한도 있었다.

“영화객 님. 약속 없으시면 저희랑 저녁 같이 드실래요? 제 친구들도 영화객 님 리뷰 좋아하거든요.”

김수한의 말에 영화객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바로 집에 가서 너튜브 보고 분석을 해야 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그거 아쉽네요.”

이것도 인연이라 두 사람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한시가 바쁜 영화객이 먼저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친구들이 김수한에게 다가왔다.

“영화객 님은? 가셨어?”

“어. 10시에 생방 하신다고 바쁘시대.”

“오늘 바로?”

김수한과 친구들이 걸음을 옮겼다.

“그럼 밖에서 먹는 것보다 포장해서 집에서 먹는 게 낫지 않나? 나도 너튜브에 올라오는 거 보고 싶거든. 촬영하고 편집한 감독님들이 엄청나잖아.”

“맞아. 연극이랑은 어떻게 다른 지도 궁금하고. 클로즈업 장면도 많을 것 같지?”

친구들의 말에 김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냥 집에서 너튜브 영상보고 바로 영화객 님 리뷰 볼까?”

“그래. 그러자.”

가는 길에 맛집이 있나 찾아보는 김수한과 친구의 모습에 다른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커튼콜 할 때 조마조마했음.”

“?왜?”

“너 또 소리 지를까 봐.”

푸하하하.

그 말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친구가 웃음을 터뜨렸다. 짚이는 게 있는 김수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그랬어. 쟤가 그때 뭐랬더라?”

“‘나 진! 다음 작품에선 얼굴 좀 보자!’라고 했지. 얼마나 놀랐는지 12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목소리 진짜 우렁찼지. 사람들 다 쳐다보고.”

친구들이 킬킬킬 웃어댔다.

이래서 친구는 오래 사귀면 큰일인가 보다. 그 이후로 친구들의 입에서 나오는 온갖 흑역사에 김수한이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어쩐지…… 입이 근질근질하다 했다.’

그 옛날의 작은 꼬마 배우와 현재의 훌쩍 자란 배우를 떠올리며, 나 진과 이서준의 팬 김수한이 작게 웃었다.

* * *

“엄청 맛있어요!”

김영찬이 눈을 빛내며 두꺼운 스테이크 조각을 한입에 삼켰다. 다른 1, 2학년들도 테이블 가득한 음식들에 눈을 빛내며 포크 질을 멈추지 않았다.

후배들의 왕성한 식욕에 서준과 3학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일정을 마친 [436]팀은 뒤풀이를 가졌다.

뒤풀이 장소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는데 오늘 저녁 시간 동안 빌리기로 했다.

“나 이런 거 드라마에서만 봤는데…… 비싸지 않아?”

이솔이 감탄하며 레스토랑 안을 둘러보았다. 인테리어며 소품이며 음식까지 모자란 구석이 없었다.

“엣헴. 이분이 바로 배우 이서준입니다.”

“한국인 배우 최초로 오스카상과 황금종려상을 받으셨죠.”

짜짠!

하고, 두 손을 반짝반짝 효과음이 날 것처럼 흔들며 말하는 한지호와 김주경의 모습에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돈 걱정하기엔 서준이 너무 대단했다.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며 웃던 서준이 말했다.

“괜찮아. 이번 연극 수익에서 떼도 남을걸.”

아. 그게 있었지.

정식 공연의 수익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단순하게 계산해 봐도 꽤 많은 금액이 될 것 같았다.

“다른 손님들이 왔다가 실망하고 가면 어쩌죠?”

페페로니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문 박민형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여기가 여기저기 자주 빌려주는 곳이라서 괜찮아.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빌릴 수 있고 요리도 맛있어서 평상시에도 우리처럼 단체 손님이 빌릴 때도 있어서 며칠 전에 꼭 공지를 올리거든.”

“진짜 드라마에 나온 곳이었네요.”

포크에 로제 파스타를 둘둘 말던 박연지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어떤 드라마에 나왔나 고민하듯 주변을 살폈다.

네 명씩 앉은 테이블 위에는 스테이크와 피자, 파스타 등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맛있는 음식들과 시원하고 톡 쏘는 음료수들이 가득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하게 시켜.”

“네! 잘 먹겠습니다!”

“진짜 맛있어요!”

아이들을 보는 서준의 눈빛에 친구들이 웃고 말았다.

“꼭 애들 밥 먹이는 부모님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그 말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너희도 필요한 거 있으면 시키고.”

“그럼 스테이크 한 접시 더. 영찬이가 너무 맛있게 먹는다.”

한지호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 뒤를 이어 스테이크 주문이 쏟아졌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레스토랑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음식을 날랐다.

다들 오늘 손님으로 고등학생들이 온다는 소리는 들어서 그 식사량을 짐작하고 각오하고 있었지만(몇몇 뷔페에서는 중, 고등학생의 요금이 성인 요금보다 비싸다.), 그게 배우 이서준과 그 친구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곧 있으면 영상이 업로드되는 7시.

조금 전만 해도 못 보겠구나 싶어 실망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도 영상보다 실물이지!’

하고 배우 이서준과 그 친구들을 보던 레스토랑 직원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다들 엄청 친절하시네.”

“그러게. 다음에 또 올 것 같아.”

서준과 아이들도 그런 직원들의 모습에 활짝 웃으며 뒤풀이를 즐겼다.

* * *

오후 7시 정각.

서준과 [436]팀 아이들이 즐겁게 뒤풀이를 즐기고.

여러 대의 차량을 이용해 직원들과 함께 [436]팀 아이들을 뒤풀이 장소에 데려다준 안다호가 레스토랑에서 포장한 음식들을 챙겨 코코아엔터 2팀 사무실로 올라가려던 때.

너튜브 채널 [미리내 예고]에 [연극 MOEB-436]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업로드됐다.

그와 동시에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잠시 너튜브가 버벅거릴 정도로 순식간에 조회 수가 늘어나고 ‘연극 영상이 업로드됐다’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티켓팅에 성공해 연극 [MOEB-436]를 은하수센터에서 본 사람들도, 티켓팅에 실패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기대하는 표정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10시 정각.

영화객의 [연극 ‘MOEB-436’ 직관 리뷰! 이서준 배우의 연기를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습니다! (동생에게 무한한 감사를!)]라는 제목의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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