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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68화 (46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68화

“먼저 리허설부터 하자!”

[436]팀의 팀장, 서준은 먼저 리허설을 진행했다.

아직 공연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의상은 입었지만, 분장은 하지 않았다. 할 일이 없는 음악팀과 미술팀 아이들이 관객석에 앉고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윌도 관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삐---

시작음이 울리고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윌의 눈이 무대 위를 떠나지 않았다.

연극과 영화.

장르는 다르지만 배경과 음악, 조명의 도움을 받아 배우의 연기를 보여준다는 큰 틀은 다르지 않았다.

‘/관객석까지 활용할 수 있는 건 연극뿐이지만./’

라이언 감독이 관객석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두루마기가 하늘하늘 일렁이고, 인외의 것 같은 낯설고도 싸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확실히 영화 촬영 때보다 서준의 분위기가 약하긴 하지만, 바로 옆에 관객들이 앉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딱 알맞은 정도인 것 같았다.

첫 리허설이 끝난 후.

라이언 감독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동선을 바꾸거나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조언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몇 시간 뒤가 공연이며, 몇 달 동안 연습을 해와서 배우들의 합이 몸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배우들이 라이언 감독의 조언에 너무 신경 쓰다가 지금까지 해왔던 연기를 해야 할지 아니면 라이언 감독의 조언에 따라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면 큰일이었다.

“/내 이야기는 그냥 가볍게 들으면 된다. 지금이 아니라 다른 작품을 할 때 한 번쯤 생각해 보라는 의미니까./”

“네!”

연기팀 아이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도움을 주러 왔던 은하수센터 직원들이 영어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라이언 감독과 [436]팀에 눈을 끔벅였다.

“/그리고 음악팀./”

“네!”

연기팀에게만 조언해 줄 줄 알았는데 라이언 감독의 코멘트는 미술팀, 음악팀을 가리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무대와 배우를 중심이 된 조언이었다.

분야가 달라서 앞으로의 진로에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라이언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생각보다 광범위한 조언에 서준이 눈을 깜빡이다 조나단 윌에게 물었다.

“/라이언 감독님 연극하신 적 있어요?/”

“/없을걸?/”

조나단 윌도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도 곰곰이 라이언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다가 아, 하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브로드웨이 루머./”

“/……아, 그게 있었지./”

서준과 조나단 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브로드웨이 루머]

라이언 윌 감독이 젊었던 시절, 브로드웨이를 주제로 만들었던 영화였다.

물론 라이언 윌 감독의 이름에 걸맞게, 화려한 브로드웨이의 무대 뒤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고발 영화였다.

“/그때 브로드웨이에서 일하면서 취재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맞아. 아무래도 직접 일하는 편이 여러 이야기를 알 수 있었대. 그 영화 상영하고 나서 브로드웨이가 한동안 난리가 났다더라고. 뭐, 잠깐 출입금지도 당했었대./”

서준의 말에 조나단 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라이언 감독이 젊었을 때라 서준은 그저 남아 있는 자료나 기사들로밖에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조카인 조나단 윌은 좀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조나단 윌이 묘한 눈빛으로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라이언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 경험을 이런 데서 쓸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요./”

서준과 조나단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오늘 오후 5시, 연극 ‘MOEB-436’ 마지막 공연!]

[연극 ‘MOEB-436’ 오늘 7시 너튜브 업로드!]

[라이언 윌 감독, 조나단 윌 감독도 보러 왔다!]

-시간 진짜 안 간다.

=22 어제부터 시간이 멈춘 기분.

=33 빨리 7시 됐으면……!

-영화객님 연극 보러 가셨겠지?

=부럽ㅠㅠㅠ

부러움이 가득한 댓글들을 살펴보던 영화객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은하수센터.

들뜬 기분에 발걸음까지 가벼웠다.

은하수센터와 가까워질수록 영화객처럼 기대로 가득한 표정의 사람들이 보였다.

“다 혼자 온 것 같네.”

워낙 경쟁률이 세서 지인들과 함께 온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서준 배우의 팬들은 미리 SNS로 연락하고 자체 제작한 굿즈를 교환하며 금세 친해지는 것 같았다.

“영화객 님! 이거 받아가세요!”

“아하하하. 감사합니다!”

영화객도 그랬다.

서준의 찐팬으로 알려진 너튜버라서 그런지 이곳저곳에서 영화객을 불러댔다.

“저 이거 보려고 스포일러도 안 봤잖아요.”

“저도요.”

투명 포카를 건네주는 새싹의 말에 영화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포일러 피한다고 영화객도 꽤 고생했다.

마지막 공연이라 더욱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것도 오늘로 끝이죠.”

“그러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전 아직 약속이 남아서요!”

“그럼 수고하세요!”

새싹과 인사를 한 영화객은 마음이 넉넉해지는 굿즈들을 조심히 챙기고 들뜬 얼굴로 은하수센터 제2 소극장으로 향했다.

매표소에서 실물티켓으로 바꾸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연극 MOEB-436! 지금 입장하시면 됩니다!”

영화객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제2 소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 큰데?”

말만 소극장이지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은하수센터 내의 극장들 중 작은 극장을 뜻하는 거라, 일반적으로 불리는 소극장보다는 컸다.

영화객은 거의 한 달 동안 티켓을 바라보며 이제는 외워버린 자리로 향했다.

[바]석의 계단 바로 옆, 조금 앞자리. 정중앙이었다.

은하수센터 홈페이지에서 미리 좌석도를 살펴보긴 했지만 실제로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니 더 좋았다.

자리가 마음에 든 영화객이 활짝 웃으며 최대한 관람하게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오. 너 정중앙이네.”

“너흰 어디야?”

계단 바로 옆자리라서 그런가, 이동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그대로 들렸다. 영화객에 옆을 잠시 살폈다.

자리를 찾는 듯 세 남자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인들이랑 같이 온 건가?’

다들 얼마나 운이 좋은 건지.

영화객은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아.”

“아?”

“’아’석이라고.”

“나도.”

티켓을 살피며 말하는 두 남자에 [바]석의 남자가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맨 끝 쪽이네. 운도 없지…….”

“티켓팅 된 것만 해도 어디냐.”

“그러니까.”

“그럼 우린 간다. 끝나고 보자.”

영화객의 옆에서 대화하던 세 남자 중 두 명이 [아]석으로 향하고, 남아 있던 한 명이 안쪽 자리인 듯 영화객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제가 안쪽이라서 잠시만…… 어?”

“……어?”

남자의 얼굴을 본 영화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서로 얼굴은 잘 알고 있었다.

“……김수한 감독님?”

“영화객 님 아니세요?”

영화 리뷰 너튜버와 영화감독인 만큼 서로의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영화객과 김수한이 웃으며 악수를 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주위에서 잠시 웅성웅성 대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수려 잘 봤습니다.”

“아하하. 전 조연출이었는데요, 뭘. 박 감독님께 전해드릴게요.”

영화객과 김수한이 자리에 앉았다.

“티켓팅에 성공하시다니, 역시 나 진의 첫 팬이시네요.”

영화객의 말에 김수한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네. 거울은 못 봤으니 436은 꼭 봐야죠.”

“아까 그 두 분은 친구분이세요? 여기 지인분들이랑 오신 분은 처음 봅니다.”

김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률이 세긴 했죠. 저희도 다섯이서 도전했다가 세 명만 성공했어요. 운 좋게 같은 타임이지만 자리가 멀긴 하지만요.”

“다섯 명 중 세 명이 성공이면 60% 성공이네요. 그 치열한 경쟁률 속에서 그런 성공률이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김수한도 친구들도 참 운이 좋은 것 같았다.

“아, 나중에 연극 리뷰에서 감독님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그럼요. 저야 좋죠.”

김수한의 대답에 영화객이 기쁜 표정으로 휴대폰에 메모했다.

“연극 리뷰는 언제 하실 생각이신가요?”

“오늘 10시부터 라이브 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연극을 보면서 분석은 못 할 것 같으니까 너튜브 영상을 보고 분석할 생각이거든요.”

“하긴, 서준이 연극은 몰입도가 상당하죠.”

12년이나 흘렀지만, 어린이 연극 [봄] 때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한 김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관객들이 술렁였다.

영화객과 김수한이 의아한 눈빛으로 술렁임의 원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소극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 최소영 배우네요.”

“워킹맨 재미있었죠. 오늘 초대받았나 봅니다.”

최소영 배우가 [나]석의 한자리에 앉았다. 영화객과 김수한이 있는 [바]석의 바로 앞, [나]석의 일부가 초대석인 것 같았다.

최소영의 옆자리에는 벌써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는 사이인 듯 최소영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오…….”

최소영과 인사를 하기 위해 옆으로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의 얼굴에 김수한과 영화객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이제야 알아차린 게 의아할 정도였다.

“……들어오기 전부터 앉아계셔서 못 봤나 봅니다.”

“그러게요. 오늘 오실 거라는 건 알았지만…… 진짜 오셨네요.”

라이언 윌 감독과 조나단 윌 감독이었다.

영화객은 얼른 휴대폰을 들어 잊어버리기 전에 지금 상황과 기분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근데 최소영 배우와 윌 감독님들이 아는 사이였던가요?”

“서준이가 미리 말하지 않았을까요?”

김수한도 휴대폰을 꺼내 [아]석에 있을 친구들에게 연신 메시지를 보냈다.

<ㅋㅋㅋㅋ

<여기 라이언 감독님이랑 조나단 감독님 있음.

<거기선 보이냐?ㅋㅋㅋ

놀리는 기색이 다분했다.

* * *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436]팀은 무대 뒤로 향했다.

공연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 분장을 끝낸 연기팀 배우들은 마지막으로 머릿속으로 제 역할을 떠올리거나 대본을 훑어보며 자신의 대사를 읽어보기도 했다.

새하얀 티셔츠에 새하얀 면바지를 입고 겉옷을 걸친 서준도 자리에 앉아, 자신이 쓴 [MOEB-436]의 대본을 마지막으로 읽어보고 있었다.

두 개의 전생에서 소재를 떠올려 만들어낸 연극 [MOEB-436].

하나는 장산범과 비슷한 존재인 아이스 골렘이었고, 또 하나는 아주 먼 미래 과학이 발달한 종족의 손에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였다.

‘그 능력은 쓰기 힘들겠지만…….’

악의 도서관에서 찾아낸 안드로이드의 생은 거의 최종병기나 다름없는 살생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등급도 상급이었다.

연기에 활용하기엔 어려운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읽기만 하고 지나갔는데, 이렇게 연극의 소재로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전생의 안드로이드는, 전투용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처음 의식이 생겨났을 때부터 선의 도서관이 아니라 악의 도서관이 열렸다.

안드로이드는 악의 도서관에서 능력을 얻고 전투에 써먹고 생명을 학살했다.

그 뛰어난 능력 덕분에 권력을 잡았던 첫 주인이 암살당하고 소유권이 넘어가고 다시 두 번째 주인이 죽고 소유권이 넘어가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

그러길 몇 번.

그래도 마지막엔 ‘과학자’와 같은 좋은 주인을 만났지만 ‘유진’의 모티브가 되는 자에게 프로그램이 망가져 제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 물론 ‘유진’도 죽였다.

그 이후, ‘안드로이드’는 주인을 해쳤다는 이유로 안드로이드 처리반에게 공격당해, 금속 조각 하나 남김없이 소멸당했다.

물론 얌전히 죽진 않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면 안드로이드 처리반과 전투가 일어났던 행성이 반파되었다고 했다.

‘역시 악의 도서관.’

다음 생에 능력이 된다면 꼭 취급 주의라고 적어놓고 싶었다.

“서준아. 시간 다 됐어.”

대본을 팔랑팔랑 넘기며 안드로이드의 생을 떠올리던 서준이 김주경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아, 잠시만.”

대본을 덮은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김주경, 한지호, 강재한, 박연지, 김영찬, 이솔, 김채연, 박민형 등.

이번 연극을 만들기 위해 몇 달이나 노력했던 [436]팀 전원이 모여 있었다.

“이렇게 다 모이니까 진짜 마지막 공연 같네.”

서준의 말에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에 모두 설레면서도 아쉬운 모양이었다. 싱숭생숭한 표정의 팀원들을 둘러본 서준이 입을 열었다.

“그동안 다들 고생했어. 너희가 없었으면 이렇게 멋진 연극은 만들지 못했을 거야. 내 작품이 아니라 우리 작품이라서 더 좋았던 것 같아.”

서준도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가슴이 벅찬 상태였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원래 그랬다.

오지 않을 것 같지만 끝내 오고 마는.

끝나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미련이 남아 아쉬운.

‘아쉬움이 남지 않으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그리고 [436]팀은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직 공연이 남아 있으니까 나중에 뒤풀이에서 할게. 내가 쏘는 거니까 다들 참석하는 거 잊지 말고. 진짜 맛있는 곳이야.”

“그래! 당연히 가야지!”

“많이 먹어도 되죠?”

“그럼!”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서준도 웃으며 말했다.

“화이팅할까?”

“이젠 안 하면 아쉬울 것 같아요.”

박연지의 말에 아이들은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리며 둥그렇게 모였다. 그리고 가운데로 한 손을 뻗었다.

“윽. 좁아.”

“손! 손이 안 닿아요!”

“여기 저도 있어요! 선배님들!”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비좁긴 했지만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오늘이 지나면 이제 더 이상 불리지 않을 [436]팀 팀장, 서준은 빠진 사람은 없나 살펴본 후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쉬움이 남지 않게. 마지막까지 멋지게 해보자!”

하나, 둘!

[436]팀원들이 모았던 손을 동시에 위로 들어 올리며, 마지막으로 크게 외쳤다.

“436! 화이팅!”

* * *

삐----

신호음이 울리고.

연극 [MOEB-436]의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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