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64화
“아직 시작 안 했지?”
한예대 연기과 과대 황도윤이 두 손 가득 먹을 걸 들고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에 있던 연기과 학생회 임원들이 그런 황도윤을 반겼다.
여기는 학생회 임원 중 하나의 자취방.
“두 손 무겁게. 밥만 잘 챙겨오면 됨.”
집주인이 그렇게 허락했으니, 거의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곳이었다. 부모님이 제법 부자라 집이 큰 덕분이기도 했다.
“네. 시작 안 했어요.”
“광고도 아직 안 나왔어.”
차유나와 학생들이 황도윤에게서 받은 비닐봉지들을 거실로 옮겨 테이블 가득 펼쳐놓았다. 배달은 안 하는 맛집부터 마트에서 사 온 음료수와 술까지.
“대낮부터 무슨 술이야?”
“워킹맨 끝나면 밤이잖아.”
“이제 슬슬 낮도 길어지는데요?”
“그래서 안 마실 거야?”
“놉.”
“취향까지 맞춰서 사 온 술을 안 마실 수가 있나?”
집주인과 학생들이 희희낙락하며 냉장고 안에 술병들을 넣어놓았다.
“그럼 배부터 채울까요?”
“그러자!”
황도윤과 학생들은 SBC 채널을 배경음 삼아 틀어놓고, 테이블 가득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OT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차유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형이 고생하셨지.”
“어떻게 서준이 앞에서 그렇게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어요?”
칭찬에 황도윤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하지만 칭찬으로 끝날 친구들이 아니었다.
“바로 전날까지 덜덜 떨었으면서 말이야.”
“그러게요. 무슨 촬영처럼 대본을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나.”
“등장하는 방법도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했잖아.”
킬킬 웃으며 놀리는 친구들에 황도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너희도 OT 준비 어떻게 하냐고 발 동동 굴렀잖아! 서준이가 OT 보고 실망해서 학교 안 오면 어쩌나, 하고!”
“? 그런 적 없는데?”
“네가 제일 심했어! 위장약까지 먹었잖아!”
고개를 갸웃하는 친구에게 황도윤이 쏘아붙이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생각보다 서준이가 더 착했죠?”
“그러게. 경력이 그 정도면 조금 모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애들도 그렇고.”
뒤풀이 때 서준과 이야기를 나눠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10년이 넘는 대단한 경력과 슈퍼스타라는 이름에 조금 머뭇거렸는데도 먼저 다가와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 서준의 모습이 떠올라 흐뭇하게 웃었다.
제비뽑기에 떨어져 뒤풀이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들이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황도윤. 연락 금지 언제 풀 생각이야?”
“계속 놔두려고.”
황도윤의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개강하면 풀 생각 아니었어?”
“이것 봐.”
황도윤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바나나톡 앱 위로 999가 떠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학생들이 기겁했다.
“……이게 뭐야?”
“과 단톡방 연락 금지 풀라는 이야기지, 뭐.”
“전부요?”
“어. 너흰 무슨 연락 없어?”
친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희야…… 도윤 오빠 핑계 댈 걸 아니까 연락이 거의 없어요.”
연기과 과대 황도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다행이네.”
“와…… 근데 과 단톡방은 조용해서 이렇게 연락이 많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그래도 이걸 보니까 도윤이 형이 왜 연락 금지한 줄 알 것 같아요.”
다들 질린 얼굴로 지금도 하나둘 도착하는 메시지들을 바라보았다.
“과 단톡방을 개인 연락으로 채울 수는 없으니까.”
“다 그런 내용이야?”
“그렇지 뭐. 후배로 이서준 배우가 들어왔는데, 그 이서준 배우와 연락하고 친해질 기회인데 하루라도 빨리 연락해서 친분을 쌓고 싶은 거지.”
“과 단톡방에 있는 선배만 100명이 넘을 텐데, 우르르 연락하면 좀 그렇지.”
“한 번씩 인사한다고 해도 100번이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수의 신입생들에게 전하는 연락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이서준에게만’ 전해지는 연락은 괜찮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쏠려 마음이 상할 신입생들에게도, 하루 종일 오는 선배들의 연락으로 불편해할 이서준에게도.
그래서 과대 황도윤은 교수님들의 힘까지 빌려 ‘과 단톡방 개인 연락 금지 규칙’을 만들어냈다.
“욕이야 좀 듣고 있지만.”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친구들이 과대다운 황도윤을 칭찬하듯 토닥토닥거렸다.
“서준이도 개강하면 큰일이겠네.”
“내가 그런 개인적 만남과 연락까지 막을 권한은 없긴 하지만…….”
황도윤이 빙그레 웃었다.
“최대한 막아주는 수밖에.”
오오오.
과대다운 발언에 짝짝 박수를 쳤다.
“선배답네! 언제는 서준이를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고민하던 황도윤이!”
“서준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루 종일 고민하던 황도윤이!”
점점 놀리는 쪽으로 변해갔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던 때, 차유나가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슬슬 시작할 시간 안 됐어요?”
“그러네. 광고 나오고 바로 시작하겠다.”
“술 마실 사람!”
학생들은 광고하는 동안 테이블 위에 텅 빈 그릇들을 치우고, 술과 안주를 늘어놓았다.
“광고가 기네.”
“서준이가 나오니까.”
“근데 서준이가 나온 거는 우연이라고 하잖아요. 저번 주 촬영 때요.”
[워킹맨!]은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이라 이미 광고 자리를 맡아놓은 기업들이 있을 텐데도, 이서준이 이번 편에 나온다고 그 사이사이에 새로운 광고를 잘도 끼워 넣은 것 같았다.
“거의 일주일 만에 저 광고주들을 다 구한 건가?”
“서준이가 나온다니 알아서 찾아왔겠죠. 테이크 마이 머니, 하고.”
차유나가 인터넷 짤방처럼 투명한 돈을 잡고 흔드는 시늉을 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여기 스포일러 보신 분?”
“전 안 봤어요. 스포일러 극혐.”
“나는 지나가다 슬쩍 봤어. 자세히는 못 봄.”
“난 궁금해서 봤어.”
그 말에 모두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진한 눈빛에 남학생이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비밀 엄수. 말 안 할게.”
다들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12세 관람가라는 연령 고지를 한 [워킹맨!]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워킹맨!]은 시작부터 평소와 달랐다.
“응? 보통 멤버들끼리 잡담하지 않아요?”
“그러게. 왜 이렇게 짧지?”
평소라면 적당히 예열하듯 멤버들끼리 잡담을 나누는 장면이 있었을 텐데 정말 간단히 대화를 끝낸 박영진이 [바벨탑]의 게스트들을 소개했다.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아직 방송되지 않은 [바벨탑]의 등장 장면을 보여주었다.
“편집한 건가?”
“그런가 본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분량이 많아서 잘랐나 봐요.”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들도 연기과 학생들을 반응과 똑같았다.
-워킹맨 원래 이렇게 속도감 있었음? 잡담시간 확 줄었네.
=ㄴㄴ 저번 주까지만 해도 평소랑 똑같았음.
-알맹이만 쏙쏙 편집한 느낌인데 재미있네!
=22 보통 게스트 소개한다고 뭐, 댄스 타임이나 잡담하는데…… 솔찍 그거 재미없음.
=앞으로도 이렇게 해라. 워킹맨.
=그건 무리일 듯ㅋㅋ
-앞부분이 이러면 뒷부분도 비슷할 것 같다.
-뒤에 이서준이 나와서 분량이 많은가 봄.
=ㅇㅇㅇ 이거다.
=확실히 나라도 이서준이 나오는 곳부터는 편집 1도 안 하고 내보낼 듯.
=ㅋㅋ리얼 타임ㅋㅋ
=서준이 팬으로서 1초도 편집 안 하고 보여줬으면ㅎㅎ
-난 아까부터 스태프 쪽 살펴보고 있다.
=22 검은 모자. 검은 모자.
=근데 왜 오늘따라 모자 쓴 스태프가 많냐?
=피디도 일부러 스태프가 나오는 장면 많이 넣은 것 같지 않음?
[워킹맨!]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냥 즐겁게 보는 사람들과 이서준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이서준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근데 모르겠다.
=22 있긴 한 거냐?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워킹맨!]의 진행에 아하하하, 웃던 연기과 학생 중 하나가 [워킹맨!] 1부 방송이 끝나고 광고가 나오자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근데 이러면 바벨탑 홍보는 안 되지 않을까요?”
“하긴. 재미있기는 한데 드라마 홍보에는 도움이 될까 싶네.”
연기과라서 그런가.
드라마 홍보가 가장 먼저 걱정이 되었다.
“SBC도 생각이 있겠지. 자체 제작 드라마를 홍보 안 하는 방송국은 없을 테니까.”
황도윤의 말에 차유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다들 서준이 발견했어요?”
“아니. 못 봤어.”
“아직 안 나온 거 아니야? 이서준 배우 보신 분, 이라는 자막도 아직 안 떴잖아.”
1부가 끝났으니 서준을 보여줄 만도 한데, [이서준 배우 보신 분?]이라는 자막도 뜨지 않았다.
“갑자기 출연한 거니까 2부에 나올 것 같은데?”
“그렇겠네요.”
모두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광고가 끝나고 [워킹맨!] 2부가 시작되었다. TV 화면 속 새하얀 눈이 쌓인 스키장이 보였다.
-스키장 재미있겠다.
-이번 겨울에 놀러 가야지!
-근데 이서준은 언제 나옴?
=22 일반인 섭외하는데 아직 나올 삘이 아님.
=……문뜩 그런 생각이 듬. 나오긴 하는 건가. 그저 시청률을 위한 SBC의 광역 어그로가 아니었을까.
=ㅋㅋ안 나오면ㅋㅋ SBC 폭파하러 간닼ㅋㅋ
=ㅋㅋㅋ나도 약속 취소하고 보고 있는데ㅋㅋ 같이 가자ㅋㅋ
=일주일 동안 얼마나 설렜는뎈ㅋㅋㅋㅋ
=오늘만을 기다렸다고ㅋㅋㅋㅋ
=나도ㅋㅋㅋㅋㅋ(설마 이게 진짜 웃는 걸로 보이냐? SBC???(급정색))
=(스포 본) 서준이 나와요. 다들 진정하세요;;;
4팀이 각자 흩어져 일반인 출연자들을 섭외하고 게임을 진행했다. 앞 팀의 순서가 지나가고 최소영팀의 순서가 되었다.
제시어는 양궁.
[새내기]라는 이름표가 붙은 일반인 출연자가 익숙하게 자세를 취했다. 어디선가 풉! 하고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와…… 쟤 양궁 선수야?
=222 진짜 잘하는데.
=선수 맞는 거 같다. 나 양궁 하는데 선수삘이 남.
=오오. 타이밍 좋네!
-근데 방금 웃음소리는 뭐야?
=아까 봤던 쟤 친구들인 듯ㅋㅋ
=사실 나 같아도 내 친구가 진지하게 저런 포즈 취하면 웃길 것 같긴 함.
=ㅋㅋ나도ㅋㅋ
“양궁!”
최소영팀이 답을 외쳤다. 피디가 정답 판정을 내리고 빠르게 박영진이 문제를 냈다. 다시 한 바퀴를 돌아 새내기 차례가 돌아오자 자막이 떴다.
[시청자 여러분도 맞혀보세요.]
제시어가 가려져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새내기가 앞으로 걸어와 뒤를 바라보더니 무릎에 반동을 주어 뒤로 몸을 젖혔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두 다리를 공중으로 뛰어 착지. 그리고 다시 한번 백덤블링을 돌았다.
-오오오!
-양궁 선수가 저런 것도 함?
=하겠냐ㅋㅋㅋㅋ
-체조 쪽 아님?
=222 양궁이야 흉내 낼 수 있잖아.
=태권도도 백덤블링 합니다.
=ㅋㅋ 공중돌기도 하잖아.
-종목이 뭐가 됐든 체고 쪽 애인 듯. 스키복 입고 돌기는 꽤 힘들지 않나?
=22 고글도 쓰고 있고 장갑도 끼고 있고.
=근데 인형탈 쓰고 백덤블링 하는 영상도 꽤 있어서 보기보단 쉬울 듯.
=ㄴㄴ 보통은 못 함.
=222 일반인인 나도 못 함.
=ㅋㅋㅋㅋ
최소영이 자신도 모르게 ‘……서커스?’하고 말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영진이 곧바로 ‘기계체조’라는 정답을 외쳤다.
최소영팀이 1등을 하고 일반인 출연자들이 촬영장을 벗어났다.
상품권을 받고 일행들에게 향하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워킹맨! 촬영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자막이 떴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는 새내기와 친구들을 비추던 화면이 멤버들과 게스트들에게로 향했다.
연기과 학생들이 어쩐지 새내기와 친구들에게 시선이 간다고 생각할 때, ‘헐! 서준이!’라고 외치는 정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나오나 본데!”
“아. 전화? 최소영 배우가 전화해서 오는 거구나?”
“와. 전화하면 바로 올 정도로 친한 모양인가 봐요.”
연기과 학생들이 눈을 반짝였다.
바로 연락할 것 같았던 최소영의 순서는 뒤로 미뤄졌지만,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의 통화는 속도감 있게 편집되어 금세 최소영의 차례가 되었다.
“그럼 이제 소영이 차례!”
“서준이랑 자주 연락해?”
“네. 다진이, 이다진 배우랑 단톡방도 있어요.”
“오오!”
연예인들의 반응처럼 인터넷도 들썩이고 있었다.
-이서준이랑 최소영이랑 안 친하다던 애들 어디 갔냐?
=저번 주 워킹맨 예고편으로 벌써 다 사라짐ㅋㅋㅋ
=진짜 빠르네ㅋㅋㅋ
-근데 편집 느려졌지?
=222 거의 리얼 타임인듯.
=33 잘린 거 하나도 없는 것 같다.
TV 화면 속 최소영이 말했다.
“근데 서준이가 바빠서 못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럼! 우리도 알지.”
“그냥 편하게 해. 편하게.”
-편하게 해요! 언니!
=우리는 전화 받는다는 걸 알지만, 편하게 해요!
=ㅋㅋㅋㅋ
어느새 연예인들과 한마음이 된 시청자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최소영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통화 버튼을 눌렸다.
촬영장이 조용해졌다.
아마 TV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조용해졌을 터였다.
뚜르르-
신호음이 막 시작되려던 찰나,
둥!
스피커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응?
-무슨 소리야?
소리에 맞춰 화면이 조금 흔들리며 옆으로 돌아갔다. 보통이라면 편집됐을 움직임이었지만, 반사적으로 돌렸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둥둥!
묘하게 익숙한 소리, 아니, 음악이었다.
심장이 저절로 음악에 박자를 맞추듯 뛰었다.
“이건……!”
황도윤과 학생들이 눈을 부릅떴다.
겨우 몇 마디. 그러나 시청자들은 알 수 있었다.
[쉐도우맨]
진 나트라의 OST였다.
현장에서와 달리, 갑작스럽게 녹음된 벨소리는 작아서 [워킹맨!]제작진은 따로 음향효과를 주었다. 물론 너무 크지는 않게 벨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워킹맨!] 제작진은 최대한 현장에서의 놀람을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의 감각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걸 경고하듯 알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카메라에 비친 듬성듬성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다른 존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와아…….”
그 중심에 새하얀 스키복을 입고 하늘색 고글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스타의 아우라라는 게 이렇게 살갗으로 느껴지는구나 싶었다.
눈의 착각인가.
남자의 뒤에서 밝게 빛나는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았다.
둥둥!
진 나트라의 OST가 울렸다.
이번에는 벨소리가 아니라, 제대로 배경음으로 넣었다.
스피커를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 소리가 시청자들의 심장마저 쿵쿵 뛰게 만들었다. 눈도 깜빡일 수도 없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남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던 고글을 이마 위로 옮겼다.
……!
모를 수가 없는, 익숙한 얼굴에 사람들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기겁할 듯 놀라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남자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왼손의 스키 장갑을 벗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적막이 흘렀다.
모든 음악이, 소리가 꺼진 것 같았다.
마치 주인공에게만 집중하게 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주인공이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소영이 누나?”
……!!
경악한 시청자들의 귀에 확인 사살하듯 최소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이 네가 왜 여기 있어?”
갑자기 나타난 슈퍼스타에 스키장은 놀란 사람들의 찐 비명 소리로 가득 차버렸다. 그리고 그 비명은 TV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전염되었다.
-???!!!
-으아아아아!?!?
-……아니, 서준이가 왜 여기서 나와!?
-뭐야, 전화하고 오는 거 아니었어!? 왜 전화를 저기서 받아?!!
-연출? 연출이야!?
=그러게. 연출인가!?
=맞는 듯. 연출이 아니면 이렇게 등장할 수가 없지!!
-헐. 잠깐만 여기서 끝이 아닌가 봐…….
몰래카메라인가 의심하는 멤버들, 진심으로 경악하는 제작진, 연극을 본 정훈과 부러워하는 최소희, 그리고 인사하는 이서준의 친구들까지. 거의 편집 없이 그대로 담겼다.
“……어쩐지 어디서 본 것 같더라.”
“우리 후배님들이었네.”
연기과 학생들은 먹던 음식들을 내려놓고 멍하니 TV 화면만 바라보았다.
그때, 화면이 어두워졌다. 새하얀 자막이 떴다.
[이서준 배우 보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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