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61화
SBC 방송국은 어제저녁에 들어온 소식으로 오늘도 들썩이고 있었다.
“워킹맨은 무슨 복이 있어서…….”
“그러게. 이서준이 예능 두 번 나온 건 워킹맨이 유일하잖아.”
“세 번이죠. 옛날에 역 촬영할 때. 잠시 나왔잖아요.”
거의 스쳐 지나가듯 나왔지만, 시청률은 엄청 났었다. 그 일을 떠올린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방송에는 안 나오려나…….”
신기하게도 이런 이야기들은 예능국에서만 나와야 할 것 같지만, 드라마국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바벨탑 편 방송 언제 한다고?”
[바벨탑]팀은 갑작스럽게 생긴 홍보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주요! 바로 편집 들어갔대요!”
“그거 방송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어? 비슷한 분위기로 티저 만들어 놓고 싶은데!”
“잠시만요!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이서준의 출연으로 [워킹맨!]에 몰릴 시청자들을 홀릴 만한 [바벨탑]의 홍보 영상을 만들어 [워킹맨!] 방송 바로 뒤에 붙이기 위해서였다.
“워킹맨 시청자들 중 반의반만 봐도……!”
효과가 좋으면 아마 첫 방송 시청률은 예상보다 많을 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바벨탑]팀의 얼굴이 매우 밝았다.
그런 [바벨탑]팀을 다른 팀의 피디들과 조연출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벨탑 홍보는 확실히 되겠어.”
“그러게. 최소영이랑 이서준이랑 그렇게 친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바로 어제저녁 일인 데다가 예능국의 일이라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최소영의 친분으로 이서준이 출연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져 있었다.
“근데 그 정도로 친하면 카메오로 출연해 주지 않을까요?”
한 피디의 말에 누군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출연 안 할걸. 흥행하고 싶은 작감이라면 한 번쯤 이서준 사단 배우들한테 그런 제안을 해봤겠지. 근데 봐봐. 막상 이서준이 카메오로 작품은 없잖아.”
“아마 재수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모두 십여 년 전 이지석이 출연했던 드라마 [재수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은 친분은 기본이고 작품도 확실해야 출연할 거야. 워낙 작품 보는 눈이 까다로워서.”
“카메오 작품인데도요?”
그저 얼굴만 잠시 내미는 카메오 촬영인데, 작품까지 고를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카메오라도 이서준 필모에 들어갈 작품이니까.”
“이서준 필모를 봐봐. 딱 봐도 완벽. 하잖아. 쉐도우맨부터 시작해서…….”
외우기라도 한 듯, 한 피디가 늘어놓는 이서준의 필모그래피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거기다 흥행 실패한 건 하나도 없잖아.”
“그러게요. 이렇게 모아놓으니 장난 아니네요. 이서준이 작품 보는 눈 좋다는 이야기는 옛날부터 들었는데…….”
정말 어떻게 그렇게 좋은 작품들로만 쏙쏙 고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대단했다.
“하. 나도 그 필모에 끼고 싶다.”
“촬영 중에 이서준 배우랑 친해져서 이서준 사단에 끼면 더 좋고.”
그 말에 다들 진심으로 동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 고르는 기준이 뭘까요? 작품성? 흥행성? 독특한 소재?”
“그걸 알았으면 벌써 이서준 섭외하고도 남았지.”
그러고는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알아도 절대 안 가르쳐 줘야지.’
* * *
이틀 후, 일요일.
SBC 예능 [워킹맨!]이 방송되었다.
“아하하하!”
평소처럼 웃음을 준 [워킹맨!]의 본방송이 끝나고 다음 주 예고가 흘러나왔다. 일부는 다른 방송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고 몇몇은 다음 주에 누가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7번 틀지?”
송유정의 발길질에 동생이 리모컨을 사수했다.
“잠깐만. 누가 나오는지만 보고.”
“뭐, 새 드라마 홍보나 하겠지.”
따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송유정의 말대로 [워킹맨!]의 다음 주 예고편에는 새 드라마 [바벨탑]의 배우들이 나타났다. 배우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고 다음 주 방송분에서 궁금증을 끌어낼 만한 장면들을 몇몇 보여주었다.
“근데 예고편이 묘하게 기네.”
“그러게.”
원래라면 이것보다 빨리 끝나고 광고가 나와야 하지 않나 싶을 때,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아직 화면 한구석에 [다음 주 예고!]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고장은 아닌 것 같았다.
송유정과 동생이 눈을 크게 떴다.
“방송사고?”
“헐. 어떡해!”
송유정과 동생이, 그리고 각자의 집에서 [워킹맨!]을 시청자들이 휴대폰을 꺼내 알아보려던 찰나,
새까만 화면에 새하얀 글씨가 나타났다.
[이서준 배우 보신 분?]
“……?”
그 문장이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송유정과 동생의 눈이 점점 커지다가 입까지 쩌억 벌어졌다.
“뭐어어!?!”
* * *
한국예술대학교.
고등학교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커다란 한예대 캠퍼스를 보며 몇몇 학생들이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엄청 크다.”
“우리 어디로 가면 돼?”
“B관? B관이 어디야?”
한눈에 봐도 우물쭈물 어색해 보이는 게 다음 달에 입학할 새내기 같아, 선배들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 OT인가 봐.”
“그러게. 다들 엄청 귀엽네.”
“어…… 그럼 이서준도 오나?”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대학생들이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서준은 보이지 않았다.
“근데 어제 워킹맨 봤어?”
아쉬움을 뒤로한 대학생들이 바로 어제 방송했던 [워킹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고편 말하는 거지? 나 본방으로는 못 보고 클립 영상만 봤어.”
“난 본방 봤는데 놀라서 기절하는 줄.”
“이서준 배우 보신 분. 그 한 문장이 그렇게 임팩트 있을 줄이야.”
“맞아. 그거 보고 옛날에 봤던 게 생각나서 다시 찾아봤잖아. 다시보기 조회수도 엄청 늘었을걸.”
다들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거 목격담 뜨더라. 사진이랑 영상도 있던데?”
“난 스포일러라서 안 보고 있어. 근데 예고편에 서준이 있는 거 확실해?”
“응. 난 영상 봤는데…… 진짜 놀람. 서준이가……!”
“아! 말하지 마. 나 본방으로 볼 거야.”
“나도 본방 꼭 챙겨보려고. 근데 바벨탑 홍보하는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서준이가 나왔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무리의 새내기들이 연기과 OT가 있을 A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선 몇 명이나 붙었대?”
박시영의 말에 양주희가 한 명 한 명 이름을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접어갔다. 일단 여기 7명에 정보람, 김하운…… 열 손가락이 모두 접혔다가 한쪽 손만 펴졌다.
“14명일걸.”
“많은 거지?”
“38명 중에서 14명이 미리내 예고니까 많은 거지. 그리고 재수한 분들도 있으니까 미리내 예고 출신은 더 많지 않을까?”
양주희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다 같은 학교라서 그런지 그냥 고등학교 오는 것 같지 않아? 나만 그래?”
한지호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오늘 한예대에 오기 전, 한 번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교복 안 입고 학교 와서 조금 어색하긴 해.”
전성민이 제 옷과 친구들의 옷을 번갈아 보았다. 다들 같은 디자인이었던 교복이 아니라, 색도 모양도 다른 사복이었다.
“나도 그랬어. 오늘 아침에 뭐 입어야 하는지 고민했다니까.”
김주경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워킹맨!]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제 방송 예고편에 너희도 나오더라.”
서준의 말에 강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잠깐 스쳐 지나가던데?”
“진짜 스쳐 지나가서 엄마 아빠는 못 알아봤지만.”
한지호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 *
A관 301호실.
먼저 도착해있던 신입생들은 문이 열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이서준이 언제 올지 모르니 반사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몇 번 돌아보자, 마침내 이서준이 나타났다.
“어, 왔네.”
“너흰 맨날 같이 다니네.”
먼저 와 있던 김하운과 정보람, 미리내 예고 3학년들이 웃으며 서준과 친구들을 반겼다. 재수생으로 합격한 미리내 예고 선배들도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도 인사하고 싶다!’
다른 학교에서 현역으로 들어온 신입생들도, 재수, 삼수를 거듭한 신입생들도 힐끗힐끗 서준과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어제 [워킹맨!]으로 화제가 된 터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눈치만 보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난 모양이었다.
앞문이 열리고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선배로 보이는 사람들의 등장에 서준은 물론이고 신입생들이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OT를 맡게 된 3학년 과대, 황도윤입니다.”
38명의 신입생 앞에 선 황도윤이 웃으며 인사했다.
그 뒤를 이어 나머지 사람들도 인사를 했다. 이번 OT를 맡게 된 연기과 학생회였다.
“현역으로 합격한 분들도 계시고 여러 번 시험을 쳐서 오신 분도 계시고 꿈을 찾아 도전하신 분도 계시니까, 높임말로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학번이라서 말 놓았다가는 알고 보니 3살 연상!이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학생회 사이에서 풉! 하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황도윤이 웃으며 말했다.
“제 경험담입니다.”
황도윤이 교탁 앞에 섰다. 학생회 임원들이 안내문을 나누어주었다.
“저희 연기과 OT는 오늘 하루로 끝납니다. 먼저…….”
황도윤이 간단히 OT에 대해 설명했다.
수강신청이나 졸업 등 학교에 대한 설명, 교수님들과의 인사, 새내기들끼리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선배들까지 모여 뒤풀이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꼭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몇몇 신입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쩍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황도윤은 어쩐지 출석률이 100%일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다른 건 다 제쳐놓고, 제일 중요한 수강신청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로 나중에 정신없어질 테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하게 설명하고 가야 하거든요.”
황도윤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새내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눠드린 안내문에 저희 연기과를 졸업할 때 필요한 학점과 전공필수 학점, 교양필수 학점이 적혀 있습니다.”
서준이 안내문을 보았다.
직접 시간표를 만든다, 라는 중, 고등학교와는 다른 시스템이 조금 재미있었다.
“학점이 모자라면 계절학기 수업을 듣거나 등록금 내고 학교를 더 다녀야 하니까 계획 잘 세우셔서 4년 이내에 끝내도록 노력합시다.”
“네!”
황도윤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안내문에 나와 있는 대로 바로 이틀 뒤가 수강신청날이고, 오전 9시부터 시작입니다. 수강신청 마지막 날까지 자유자재로 수업을 바꿀 수 있으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럼 이제 수강신청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합니다.”
황도윤의 뒤로 빔프로젝터 영상이 나타났다.
한예대 홈페이지에서 로그인하고 팝업창을 클릭하자 수강신청 화면이 나타났다.
“수강신청 페이지에 들어가면, 여기 강의계획서 파일이 있어요.”
황도윤이 가리키는 곳에 강의계획서 다운로드라는 버튼이 있었다. 마우스 커서가 버튼을 클릭하자 곧 스크린 가득 강의계획서가 나타났다.
“이렇게 강의계획서를 살펴보시면 무슨 요일, 몇 교시에, 몇 시간 동안 수업을 하는지 나와 있습니다. 이거 잘 보시고 원하는 요일이나 시간에 시간표를 짜면 됩니다. 월요일에 학교 오기 싫다, 주 4일 수업을 듣고 싶다 하시면 나머지 요일에 수업을 밀어 넣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게 공강이죠.”
오.
주 4일 수업이라는 이야기에 새내기의 눈을 반짝반짝 빛났다.
“물론 강의 내용도 중요합니다. 모두 들어보셨죠? 대학 조별 과제의 무시무시한 소문들.”
서준과 친구들, 그리고 새내기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연기과도 비슷합니다. 오히려 촬영 같은 일정이 있어서 빠지기 쉽거든요.”
>??? : 저 오늘 독립 영화 촬영이라서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 : 급하게 촬영이 잡혀서……
>??? : 오디션이……
스크린 위로 익숙한 바나나톡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그걸 보며 설명하던 황도윤이 흐릿하게 웃었다.
“제 경험담입니다.”
“아…….”
안타까움이 가득한 탄성이 들려왔다.
“그래서 연기과 교수님들 수업에는 조별 활동이 거의 없는데 교양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시는 분들이 꽤 계시니까, 강의계획서 잘 읽어보고 수업 선택해야 합니다. 연기과 말고 다른 과들도 각종 행사 때문에 빠지는 날이 많거든요.”
“네!”
“그리고 과제 중에 시험이랑 레포트가 있는데 이것도 잘 보고 고려하세요. 오늘 뒤풀이에서 선배들에게 강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새내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간표를 짤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점심시간.”
밥이란 소리에 모두 집중했다.
황도윤의 말과 동시에 스크린에 ‘망한 시간표들’이라는 이름으로 떠돌아다니는 시간표들이 떴다.
“대학교에서는 따로 점심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1교시부터 마지막 교시까지 꽉 채우면 밥 먹을 시간이 없죠. 잘못하면 쉬는 시간에 삼각김밥만 먹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제 경험담입니다.”
아…….
어디선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언제 밥을 먹을 것인지 잘 생각해서 시간표를 짜세요.”
새내기들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러분. 한예대 캠퍼스가 꽤 넓죠?”
“네.”
“그래서 강의를 고를 때 강의실과 건물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강의 잘못 고르면 쉬는 시간 안에 여기서부터,”
황도윤이 스크린에 뜬 캠퍼스 지도의 맨 아래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까지 뛰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쭈우욱 길을 따라 움직여 지도 맨 위 건물까지 올라갔다.
“1학기 내내.”
“…….”
“열심히. 땀 뻘뻘 흘리면서.”
“…….”
“이것도 경험담입니다.”
어쩐지 황도윤을 바라보는 새내기들의 눈빛이 안쓰러워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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