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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57화 (45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57화

오전, 오후에 사용할 수 있는 리프트권을 산 아이들은 건물 내에 있는 장비 대여점으로 향했다. 스키나 스노보드 장비는 물론이고 방수가 되는 스키복과 두꺼운 장갑, 단단한 고글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한지호는 곧장 스노보드를 골랐고 다른 아이들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미리 생각해 보긴 했지만, 막상 스키나 스노보드 장비를 보고 있으니 둘 다 재미있어 보였다.

“처음 타는 거니까 스키가 나으려나?”

“스노보드는 두 발이 같이 묶여 있어서 움직이기 힘들지만, 스키는 나름 걸을 수도 있고 폴대도 있으니까.”

양주희의 물음에 박시영이 대답하며 한지호를 가리켰다. 언제 받았는지 대여한 스노보드에 두 발을 끼우고 낑낑대고 있는 한지호의 모습에, 초보자 양주희와 전성민은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스키를 골랐다.

“그럼 우리는 스노보드 탈까?”

“그러자.”

모든 스포츠에 능숙한 서준과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김주경은 스노보드를 타기로 했다.

“쟤네는 날아다니겠다.”

“그러게.”

스노보드보다 스키가 좋은 박시영은 스키를, 서준과 김주경보다는 못하지만 제법 스노보드를 타는 강재한은 스노보드를 선택했다.

그렇게 스키팀과 스노보드팀이 정해지고 장비를 든 아이들이 새하얀 눈이 가득한 밖으로 나왔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일단 넘어지는 법부터 배우자.”

스키팀, 박시영이 양주희와 전성민을, 스노보드팀, 서준과 김주경이 한지호와 강재한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넘어질 때는 엉덩이부터. 괜히 손으로 짚었다가는 손목 다쳐.”

“뒤에서 언제 사람이 내려올지 모르니까 넘어지면 곧바로 일어나야 해. 쉬더라도 아래까지는 내려와야 하고.”

안전. 또 안전.

서준과 아이들은 안전에 주의하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배우는 아이들도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30분 후.

제법 스키와 스노보드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 * *

“완전 재밌어!”

즐거움으로 얼굴이 활짝 핀 아이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건물 내 푸드코트로 향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한 딱딱한 고글을 이마 쪽으로 올리고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사 와서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나도!”

“으흐. 따뜻하다.”

해가 하늘 높이 떠 있긴 했지만 추웠는지 다들 원하는 음식 종류는 비슷했다. 따뜻한 국물 요리들이 테이블 가득 채우고 있었다. 뜨끈한 국물을 마신 아이들의 표정이 흐물흐물 풀어졌다.

“서준이랑 주경이는 이제 상급자 코스로 가도 되지 않아?”

강재한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과 함께 논다고 초, 중급자 코스에만 있었던 서준과 김주경이었다.

“그러게. 너희가 타기엔 너무 쉬워 보이던데.”

“우리 때문이면 이제 상급자 코스로 가도 괜찮아.”

친구들의 말에 부들부들한 순두부찌개를 먹고 있던 서준과 해물이 가득 칼국수를 먹고 있던 김주경이 말했다.

“안 그래도 밥 먹고 상급자 코스로 가려고.”

“1시간만 열심히 타고 올게.”

“더 오래 타도 됨. 구경하러 갈 거니까.”

한지호의 말에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먼저 내려갈게.”

“그래.”

고글을 쓴 김주경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촤아악, 하고 방향을 옆으로 꺾을 때마다 쌓여 있던 눈이 가볍게 일어났다. 그 멋진 모습에 구경하러 온 친구들이 아래에서 두 팔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준의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상급자 코스인 만큼 초, 중급자 코스보다 높이도 높았고 경사도 급했다. 간간이 크고 작은 점프대도 있어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에도 좋았다.

“오!”

주경이 점프대 위로 올라가 점프했다.

그리고 가볍게 착지.

짝짝, 김주경에게는 들리지 않을 박수를 치던 서준은 쓰고 있던 고글을 다시 고쳐 쓰고, 스노보드에 장착된 부츠를 가볍게 흔들어보았다. 꽉 맞물린 부츠는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적어서 다행이지 사람이 많을 때는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게 주의하는 것도 중요했다.

서준이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스노보드의 끝이 내리막에 걸렸다. 서준은 뒤에 놓인 오른발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았다.

‘하나, 둘.’

상체를 앞으로 숙이자, 경사를 따라 스노보드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눈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김주경 때와 마찬가지로 쌓여 있던 하얀 눈이 작은 물보라처럼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속도가 점점 붙어 차가운 바람이 얼굴 위로 불어왔지만,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했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글 때문에 좁아진 시야로 작은 점프대가 보였다.

서준은 내려오던 속도 그대로 점프대 위로 올라가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그랩.

허공에서 몸을 웅크려 오른손으로 양발 중앙의 보드를 잡았다.

오오!

어쩐지 친구들의 감탄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작게 웃은 서준이 가볍게 착지한 후, 다음 점프대로 향했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당겨 잠시 느려졌던 움직임에 조금 더 속도를 붙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점프!

이번엔 회전이었다.

빙글빙글. 서준은 공중에서 옆으로 두 바퀴를 돌고 착지했다.

스르륵.

그렇게 스노보드를 타고 이런저런 묘기를 보여주던 주경과 서준이 차례로 친구들의 앞에 미끄러져 왔다. 짝짝 가벼운 박수 소리 대신 텁텁, 두꺼운 장갑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날아다니네!”

“주경이랑 서준이 진짜 잘 탄다!”

“동계 올림픽 경기 보는 줄!”

친구들의 감탄에 서준과 주경이 아하하하 웃었다.

* * *

리프트 오후권이 끝나기 2시간 전.

동쪽에 떠 있던 해도 이제 서쪽으로 지고 있었고, 그만큼 아이들도 능숙하게 스키와 스노보드를 타고 있었다.

“어? 뭐지?”

상급자 코스를 충분히 즐기고 온 서준과 김주경, 그리고 이제 제법 능숙하게 타게 된 아이들은 중급자 코스에서 즐겁게 놀다가, 우르르 한쪽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쩐지 저쪽이 유난히 밝은 것 같았다.

“저기서 워킹맨 촬영한대!”

“진짜? 보러 가자!”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서준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서준은 말없이 이마 위에 있던 고글을 내려썼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그 자연스러운 동작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스키나 탈까?”

“그러자. 사람들도 다들 구경 가서 한산하고.”

아이들은 다시 리프트를 타고 위쪽으로 올라갔다. 위쪽에도 [워킹맨!]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모양이었다.

“바벨탑 홍보 촬영이래!”

“바벨탑? 배우들도 왔대?”

“어! 네 명!”

이번 대화에는 서준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글이 얼굴의 반을 가려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것 같았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눈을 끔벅이던 친구들은 아하, 하고 무언갈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바벨탑에 최소영 선배님이 나오시지.”

“오셨으려나?”

최소영.

이다진과 동갑내기 친구로, 어린이 연극 [봄]에서 주인공 ‘봄’을 맡아 연기했던 배우.

[봄]의 청룡님 역을 맡았던 서준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우리도 가 볼까?”

“아냐. 괜찮아. 나중에 연락하지, 뭐. 그리고 소영이 누나가 왔는지도 모르고.”

게스트로 나온 [바벨탑]의 배우가 4명쯤이면 여주인공인 최소영도 왔을 것 같았지만, 괜히 촬영에 방해될까 싶어, 친구들의 물음에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20분 후.

신나게 스키와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온 서준과 아이들이 다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리프트 쪽으로 향하려던 그때, 고글을 쓴 아이들의 앞으로 조금 전 화제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저기. 혹시 촬영 괜찮으세요?”

배우 최소영이었다.

* * *

3월 방영 예정인 SBC 수목 드라마. [바벨탑].

높은 탑을 쌓아 신에게 닿으려고 했다가 신이 내린 벌로 하나였던 언어가 수십 개의 언어로 나누어졌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통역가들에 대한 드라마였다.

[바벨탑]에 출연하는 네 배우가 홍보를 위해 [워킹맨!]에 출연했다. 앞선 촬영지에서 게임을 하고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 곳은 바로 스키장.

“우와. 스키장!”

“스키 타고 싶다!”

워킹맨 멤버들도, [바벨탑]의 배우들도 새하얀 눈이 쌓인 스키장에 탄성을 흘렸다. 잠시 스키장을 찍던 카메라가 멤버들에게로 향했다.

인원은 워킹맨 멤버 8명과 [바벨탑] 배우 4명으로 총 12명. [바벨탑]의 네 배우가 팀장으로 총 4팀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럼 이번 게임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워킹맨 피디가 멤버들에게 네 개의 미션지를 내밀었다.

“여기 미션지에 쓰인 조건에 맞는 일반인 분들을 찾아, 같이 문제를 맞히시면 됩니다. 사람을 찾는 시간과 문제를 맞히는 시간을 합산해서 등수를 나눌 예정입니다.”

워킹맨 멤버들이 쉬울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 사이, 네 명의 팀장이 앞으로 나와 미션지를 뽑았다.

“소영이 누나! 제발 쉬운 사람!”

“소영아!”

최소영팀의 팀원, 정훈과 박영진의 기도에 최소영팀의 팀장, 최소영이 신중하게 하나를 골랐다.

[고글, 스노보드, 새내기 남학생]

미션지를 펼칠 최소영팀이 눈을 끔벅였다.

“새내기? 새내기가 여기서 왜 나와?”

“오빠! 우리는 어묵 국물, 스키, 30대 여자야! 어묵 국물이 뭐야, 도대체!”

“오! 우린 스키, 40대 남자!”

“조건이 두 개밖에 없어요? 좋겠다!”

“저 팀 엄청 쉬울 것 같은데?”

미션지를 보고 놀라는 멤버들을 보며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전부 해당하는 분들을 찾아 함께 와주시면 됩니다. 어묵 국물은 발견 당시 마시고 있는 사람만 해당됩니다.”

“헐…….”

멤버들이 무어라 속닥거리자 피디가 말했다.

“멤버가 사주는 거 안됩니다.”

“에이…….”

꼼지락 꼼지락 비상금을 꺼내고 있던 [바벨탑]의 배우가 다시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었다.

잠시 생각하던 최소영이 입을 열었다.

“여기 새내기라는 말은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인가요?”

“네. 현역이든, 재수든, 삼수든 올해 입학하는 새내기면 모두 괜찮습니다.”

박영진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범위가 늘긴 했는데……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게요.”

피디가 출발을 외치자, 워킹맨 멤버들과 게스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묵 국물이라는 단어가 문제인 최소희팀은 푸드코트가 있는 건물 안으로, 새내기라는 단어가 문제인 최소영팀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달려갔다. 나머지 두 팀도 흩어져서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없는데?!”

“그러게요.”

정훈의 말에 최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글을 쓴 스노보더들을 찾아 물어보면 거의 졸업했거나 대학생이긴 했지만 2, 3, 4학년들로 새내기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2월에 새내기 행사가 꽤 있었던 것 같아요. OT나 새내기 배움터 같은 거 말이에요.”

최소영의 말에 정훈이 먼 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난 대학 졸업한 지가 오래돼서…….”

하여튼 여러모로 새내기를 찾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거였다.

최소영이 급하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훈과 최소영에게 배정된 카메라맨들이 그 모습을 그대로 찍었다.

“어! 저기도 있네!”

리프트로 향하는 방향에 스키와 스노보드를 든 한 무리가 있었다.

정훈과 최소영이 얼른 달려갔다. 어쩐지 다가갈수록 고글을 쓴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이 조금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라, 최소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촬영 괜찮으세요?”

가장 담담하게 서 있는 하얀색 스키복을 입은 사람에게 묻자, 아무래도 고글 속에서 눈을 끔벅이고 있지 않을까, 싶은 잠시의 침묵 뒤로 대답이 들려왔다.

“아, 네. 괜찮아요.”

하얀 스키복의 대답에 다른 일행들도 조금 진정한 듯했다.

“혹시 대학 졸업 하셨어요? 아님, 이제 새내기?”

“……올해 입학해요.”

그 말에 최소영과 정훈이 와아!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만세를 외쳤다. 멀리서 박영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마지막이야! 다른 팀 다 찾았대!”

“형! 여기! 찾았어요!”

최소영과 정훈의 마음이 급해졌다.

“저희 워킹맨 촬영 중인데, 잠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퀴즈만 맞히시면 되는데, 상품도 드려요!”

“어…… 잠시만요.”

하늘색 고글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새하얀 스키복을 입은 새내기가 몸을 돌렸다. 아마도 또래 친구들인 것 같은 아이들이 이글루처럼 둥글게 모여 쑥덕쑥덕 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몰랐지만, 최소영과 정훈, 그리고 막 도착한 박영진이 애타게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내기가 몸을 돌려 최소영과 정훈, 박영진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나오는 건 좀…….”

“고글 쓰고 계시면 됩니다!”

“이름도…….”

“퀴즈만 맞히고 가세요! 친구분들도 구경하러 오시고요!”

얼마나 급한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이어졌다.

이해한다.

방송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부담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최소영과 정훈, 박영진이 두 손을 모으고 애절한 표정으로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이 아니면 안 된다. 이 아이들이 이 스키장에 있는 유일무이한 새내기들일 것 같았다.

파란색 스키복을 입은 아이가 툭툭, 하얀색 스키복을 입은 아이를 쳤다. 다른 아이들도 하얀 스키복을 입은 아이를 툭툭 쳤다.

얼떨결에 친구들에게서 떠밀린 새내기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고글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럼 퀴즈만 풀게요.”

“와아아아!”

최소영팀이 만세를 불렀다.

‘근데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던 세 사람은 기다리고 있다는 스태프의 손짓에 이내 떠오르던 걸 잊고, 새내기와 함께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최소영이 뒤를 돌아보며 ‘친구분들도 오세요!’ 하고 외쳤다.

“우리도 가자.”

“그래. 그러자.”

파란색 스키복을 입은 한지호가 킬킬 웃으며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뜻밖의 상황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워킹맨!] 촬영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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