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56화
커튼 너머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상기된 얼굴의 [436] 음악팀은 악기를 챙겨 무대 뒤로 향했다. 졸업식을 돕고 있던 방송부 부원들이 의자를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잘했어!”
무대 뒤에서 듣고 있었던 방송부 부원들과 선생님들이 짝짝 박수를 치자 [436] 음악팀이 환하게 웃었다.
“평소보다 더 잘한 느낌이야.”
김채연이 두 손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제 손으로 만들어냈던 생생한 연주가 떠올랐다. 꿈을 꾸는 것처럼 환상적인 연주였는데, 어쩐지 다음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벅차올랐다.
아마 연주할 당시, 자신의 눈빛은 서준이 연기할 때나 박민형이 조명을 다룰 때 보였던 그 ‘완벽’을 위한 눈빛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다들 연습 때보다 잘했어.”
“모두 엄청 멋졌어요!”
다른 팀원들도 들뜨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대 뒤로 돌아왔는데도 아직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있어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이래서 무대 위에 한 번 오르면 떠나기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축하 공연은 맨 마지막에 해야 했나 봐.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는걸?”
음악과 선생님이 웃으며 말하자, 아이들이 아하하하 웃었다.
* * *
미르홀을 울리는 관객들의 환호성은 쉽게 그치지 않아, 결국 다음 순서를 위해 안내방송을 내보내야 했다.
그사이 서준과 [436] 음악팀이 관객석으로 돌아왔다. [436] 연기팀과 미술팀도 몰랐던 탓인지 다들 놀란 얼굴이었다.
“너희 진짜 잘하더라!”
“갑자기 나와서 깜짝 놀랐어!”
“근데 어쩌다 축하 공연을 하게 된 거야?”
김주경의 물음에 다른 아이들도 궁금한 눈빛이었다.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연극 연습할 때 미술팀이랑 연기팀은 할 일이 있는데 음악팀은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최대한 학생들의 힘만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정식 공연이었다.
연기팀은 당연히 매 공연에 나와야 했고 공연 하루 전에도 은하수센터에 출근해 연습을 해야 했다. 그리고 미술팀은 돌아가며 출근해서 세트장을 점검하고 소품을 확인하고 수리했다.
하지만 음악팀은 음향을 맡은 김채연이 녹음본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라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녹음본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원본과 복사본이 있었기 때문에 해결방법도 간단했다.
“그래서 가끔 와서 미술팀 일을 도와주기도 했잖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간단한 일밖에는 못했지만.”
서준의 말에 강재한과 김주경, 한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공이 달라 어쩔 수 없었다. 음악과인 만큼 연기는 할 수 없었고 미술팀의 일도 미술과보다 서투른 게 당연했다.
“같은 436팀인데 연기팀하고 미술팀만 공연에 집중하니까 아쉬워하는 것 같더라고.”
보통이라면 연습이나 콩쿠르 같은 대회에 좀 더 열중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436]팀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함께 연습하다 보니 소속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다들 열심히 하는데 나만 할 일이 없으면 아쉬울 것 같긴 해.”
양주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채연이가 뭔가 할 게 없을까, 하고 물어보길래 축하 공연은 어떨까, 생각했어.”
학생들끼리 오를 수 있는 행사가 미리내 예고 졸업식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여울 예중 졸업 축하 공연 때가 저절로 떠올랐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음악팀 애들도 좋다고 하고 선생님들한테도 여쭈어봤더니 다들 괜찮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하게 됐지. 연습실은 은하수센터에서 빌려줬어.”
같은 ATR재단이라서 그런지 흔쾌히 연습실 하나를 내주었다.
아마도 오늘 졸업식에 ATR재단의 높으신 분들이 온 것이 허락에 큰 비율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구나.”
“아무튼, 진짜 놀랐어.”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서준이 너, 여전히 바이올린 연주 잘하더라.”
“가끔 연습하거든.”
감탄하는 친구들에 서준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끔 연락하는 벤자민 교수님과 제이슨도 있고, 같이 연주하자고 놀러 오는 수빈이까지 있으니 연습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오늘 영상이 나가면 또 연주하자고 하겠네.’
부쩍부쩍 실력이 늘어가는 수빈이가 눈을 반짝이며 바이올린을 들고 달려올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를 지어졌다.
[그럼 지금부터 졸업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천천히 미르홀의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학생들도 모두 무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3학년 6학급의 반장과 부반장들이 학생들의 대표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교장 선생님에게서 졸업장을 받는 양주희와 전성민의 모습에 서준과 친구들이 짝짝 박수를 쳤다.
[마지막으로 교가를 제창하겠습니다.]
3년간 불렀던 교가를 마지막으로, 미리내 예고 졸업식이 모두 끝났다.
어쩐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 * *
졸업식이 끝나고 학생들과 가족들은 미르홀 밖으로 나왔다. 학생들과 가족들이 서로를 찾느라 시끌벅적했다.
“서준아!”
“엄마! 아빠!”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한다. 아들!”
서은혜와 이민준이 상기된 얼굴로 웃으며 서준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두 개의 꽃다발을 품에 안은 서준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사진 찍어야지!”
서은혜가 카메라를 들었다.
화면 속 미리내 예고의 모습과 꽃다발을 들고 있는 서준의 모습이 보였다. 추운 날씨에 볼과 코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은혜가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만족하자 이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아빠랑 같이 찍을까?”
“응.”
이민준이 서준의 옆에 서자 서은혜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꽃다발을 들고 있는 서준은 아빠보다 키가 컸다.
대견하면서도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던 서은혜는 이내 웃으며 셔터를 눌렀다.
“엄마랑도 찍자!”
“응!”
엄마와도 한 컷 찍은 서준은 옆에 있던 강재한에게 부탁해 가족사진을 찍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이 만족스럽게 사진을 보았다.
“서준아. 같이 찍자!”
“그래!”
강재한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강재한과 한 번, 어째선지 강재한의 가족과 한 번 사진을 찍었다. 민망해하는 강재한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은 바나나톡으로 보내달라고 강재한에게 말하는 서준의 눈에 김한석이 보였다.
3학년들이 주가 되는 졸업식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연말 공연이라는 행사가 있어서 1, 2학년들과 친한 3학년들이 많아서 1, 2학년들도 3학년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한석아. 사진 찍을래?”
“네!”
김한석과도 한 컷, 박연지와 김영찬과도 한 컷, 박민형과도 한 컷을 찍었다.
3학년들은 3년 동안의 추억이 가득 담긴 졸업식 사진을 남기기 위해, 북적북적한 운동장에서 연신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카메라를 들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서준아!”
“이서준!”
그중 단연 인기 있는 건 서준이었다.
서준도 친구들의 부름에 활짝 웃으며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녔다.
연기과, 미술과, 음악과 할 것 없이 친구들의 부름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아들을 보며 서은혜와 이민준이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만 봐도 서준이 얼마나 즐겁게 학교 생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잠시 후.
한바탕 사진 찍기가 끝나고 1, 2학년들은 교실로 돌아갔다.
“잘 가!”
“나중에 연락해!”
눈물을 글썽이던 3학년들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하나둘 미리내 예고를 떠났다. 정말로 졸업이라는 생각에 여러모로 생각이 많은 것처럼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서준도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엄마 아빠에게로 향했다.
“은수랑 수빈이는 요 앞에 있대.”
“응.”
꽃다발을 든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미리내 예술 고등학교.
3년 동안 지냈던 학교가 거기에 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개학하고 나서도 매일 아침이면 등교를 하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수업을 듣고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오랫동안 머물렀던 자리를 떠나는 것은 여러 번 겪어도 슬프고 먹먹한 기분이었다.
서준은 그렇게 잠시 학교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몸을 돌렸다.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는 법.
추억이 깃든 장소에 작별인사를 한 서준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만날 인연과 작품을 기대하며 교문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미리내 예고 오늘 졸업식!]
[배우 이서준, 김주경, 한지호…… 졸업!]
[배우 이서준, 올 3월 한국예술대학 입학!]
-오. 오늘 졸업식임?
=ㅊㅎㅊㅎ!
-미리내 예고 졸업식 명단 장난 아니네;;;
=그러게. 쟤네들이 다 성인이 된다니까 신기함.
-배우 쪽 경쟁률 치열해지겠다.
=감독, 작가들은 고를 수 있는 배우들이 늘어서 좋겠네.
=22 황금세대라니……! 빨리 작품 나왔으면 좋겠다!
=근데 배우의 연기력이 좋다고 작품까지 좋은 건 아니라서.
=……그건 그래.
-헐. 서준이 졸업식에서 연주함!
=(링크)
=……왜 내 동생은 미리내 예고가 아닐까?
=222 가족이 여울 예중-미리내 예고면 서준이 졸업 공연, 졸업식 축하 공연은 다 봤을 것 같다.
=333 부럽다ㅠㅠ
-곡 진짜 좋다 (12451번째 재생 중)
=22 음악과 애들도 엄청 잘함. 소리가 풍성해.
=33 이서준은 본업이 배우면서 전공자들 뺨치게 잘하네.
=이서준 부업이 바이올리니스트(그레이 바이니, 월드투어 경험 있음)니까.
=ㅇㅇ 나도 국내에서 하는 연주회 갔었음! 후원금도 냄!
=ㅋㅋ과몰입ㅋㅋ 근데 나도 갔음(진지)
=어억?! 서준이가 언제 연주회 했어? 그런 이야기 한 번도 못 들었는데?! ㅇㅁㅇ!! 나만 못 본 거야? 나만?! 피켓팅이라 못 갔겠지만, 연주회 했는지도 몰랐다니……!
=속닥)오버 더 레인보우(영화) 말하는 거임.
=……아하! (주섬주섬 기념 티켓을 꺼낸다) 나도 갔음^^!
=ㅋㅋㅋㅋㅋ
-근데 저 편곡은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악기 구성도 처음 보는 것 같고.
=22 피아노도 3개인데 다 같은 악보를 치는 게 아닌 것 같음.
=채널 [JUN]에 영상이랑 [편곡자 : 이서준]이라고 올라옴.
=와…… 와……(말잃)
-진지하게 이서준 음악 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재능만으로 따지자면 스포츠도…… 친구들(박지오, 잭 스미스)하고 전문가들 이야기만 봐도 가능성 있지 않음?
=??서준이 본업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아니 생각해 봐. 스포츠 경기는 매년 일정하게 있잖아. (작년 야구 경기 : 팀당 144번) TV로도 볼 수 있고 경기장에서도 볼 수 있고. 근데 배우는 좋은 작품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 직접 볼 일도 거의 없고.
=……144번……!……헉! 설득당할 뻔했다!
=ㅋㅋㅋㅋㅋ
* * *
“하암.”
셔틀버스에 탄 아이들이 크게 하품을 했다. 스키장에 가려고 새벽같이 일어난 탓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들 놀러 가는 게 즐거운지 들뜬 얼굴로 손에 들고 있는 스키장 팸플릿을 살펴보고 있었다.
텅 빈 맨 뒤쪽 자리의 바로 앞자리, 창가에 앉은 서준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사탕을 꺼냈다.
“재한아. 사탕 먹을래?”
“고마워.”
모자를 푹 눌러쓴 서준이 옆자리에 앉은 강재한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 어느 코스를 탈 것인지 진지하게 보고 있던 강재한이 사탕을 입에 넣었다. 새콤한 레몬맛 사탕에 강재한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찡그려졌다.
작게 웃은 서준이 이번에는 앞자리에 앉은 전성민과 한지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키랑 옷은 가서 빌릴 거지?”
“어. 난 스노보드 탈래.”
“오. 탈 수 있어?”
“가서 배워야지.”
“사탕 먹을래?”
“오. 감사!”
부시럭부시럭 사탕 껍질을 까서 입에 넣은 한지호와 전성민도 새콤한 레몬 맛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다음은 서준과 강재한의 건너편 자리에, 앞뒤로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양주희와 김주경, 박시영.
“확실히 오늘 사람이 없긴 한가 봐. 자리가 남네.”
“그러게. 서준이가 날짜를 잘 골라.”
“여기 사탕 먹어.”
“아, 고마워.”
서준이 준 새콤한 레몬맛 사탕이 입에 들어가자, 아이들의 얼굴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잠이 번쩍 깨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서준과 아이들이 탄 스키장 셔틀버스가 1시간을 넘게 달려 스키장에 도착했다.
앞자리부터 차례로 내리는 사람들의 뒤를 이어,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 스키장을 바라보았다.
“올해 새로 지어진 곳이래.”
양주희의 말에 오오, 감탄이 나왔다. 새로 지어진 곳이라서 그런지 건물도, 장식품들도 깔끔하고 깨끗했다.
“근데 사람은 생각보다 없네? 홍보가 안 돼서 그런가?”
“평일이라 그런 거 아니야?”
생각보다 없기는 한데,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런 스키장의 상황에 한지호가 눈을 반짝였다.
“딱 놀기 좋네!”
“그러게!”
신이 난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은 친구들과 놀이공원과 스케이트장에 놀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논다기보다는……’
오늘 안에 놀이기구를 전부 타고야 말겠다는, 최대한 오래 스케이트를 타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던 친구들이었다.
‘나도 그랬지만.’
친구들과 열심히, 신나게 놀이공원을 돌아다녔던 자신이 떠올라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늘도 그럴 것 같네.’
아마 하루 종일, 한 번도 쉬지 않고 스키를 타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점심은 뭐 먹을래?”
음.
먹는 시간은 빼고.
팸플릿에 나오는 스키장 내의 식당에 관해 이야기하며 서준과 아이들은 들뜬 얼굴로 스키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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