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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55화 (45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55화

“서준아. 안녕!”

“안녕.”

친구들의 인사에 서준도 웃으며 인사하고 오랜만에 교실에 발을 디뎠다.

오늘은 2월 13일.

미리내 예고 졸업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한 달 반 정도 텅 비어 있던 자신의 자리에 앉은 서준은 책상과 주변을 잠시 살펴보았다. 교과서가 있던 책상 서랍도 이제 텅 비어버렸고 다른 아이들 책상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 자리에 앉은 것도 오늘이 마지막.

왜 항상 마지막이라고 하면 이렇게 마음이 쓸쓸해지는지 모르겠다.

서준은 다른 때보다 더 북적북적한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수능이 끝난 고3이라서 그런가, 학교 수업이나 특강이 있던 보통의 여름, 겨울 방학과는 달리 이번 겨울방학은 정말로 ‘방학’처럼 아무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시간이 있으면 가끔 만나기는 했을 테지만, 일정이 맞지 않으면 거의 1달 반 동안을 보지 못한 친구들이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희야. 방학 동안 뭐 했어?”

서준과 친구들도 방학 동안 무엇을 했는지 서로 이야기했다.

“난 알바. 집 근처 편의점이랑 카페에서 일하고 있어. 오늘은 졸업식이라 빠졌고 내일부터 다시 가야 해.”

양주희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난 주희라면 오디션 볼 줄 알았는데…….”

“그러게.”

박시영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양주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럴까 고민하긴 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까 드라마나 영화에 편의점 씬이랑 카페 씬이 많이 나오잖아. 뭐, 알바를 안 해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직접 체험해 보는 편이 잘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오.

아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긴 작품에 편의점이랑 카페가 자주 나오기는 하지.”

“대사를 할 때도 있고.”

“나 같아도 알바 경험 있는 사람을 뽑을 것 같긴 해.”

엑스트라가 그렇게 비중이 크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외로 이런 경험이 합격과 불합격을 나눌 수 있었다.

“다시 차근차근 올라가야지.”

아역 배우로 제법 유명하지만, 성인이 되었으니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는 진짜 신인들보다야 좋은 위치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 변화라는 리스크와 ‘이 정도는 하겠지’ 하는 사람들의 기대심 때문에 어려움은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비슷한 직업을 가진 조연이나 주연일 때도 고려될 수도 있고.”

“……양주희. 큰 그림 장난 아니네.”

“나도 알바 해볼까?”

몇 마디로 친구들을 알바의 늪으로 빠뜨려 버린 반장, 양주희였다.

서준도 잠시 혹한 얼굴이었다.

“난 오디션 보고 다녔어. 아역하고 성인역으로.”

연기과 학생의 전형적인 방학을 보낸 전성민의 말에 박시영과 연극 [MOEB-436]에 출연 중인 강재한, 김주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이나 연습이 없는 날이면 학원에서 수업을 듣거나 오디션을 보고는 했다.

“근데 맡을 배역이 넓어져서 그런지 경쟁자들이 다 어른들이더라.”

전성민의 말에 다들 동의하듯 크으, 인상을 쓰고 말았다.

“맞아. 나도 그랬어. 아역 오디션 보러 갈 때는 매번 봤던 애들이었는데, 이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더 많더라.”

“경쟁자들이 갑자기 몇 배로 늘어난 느낌이랄까…… 꼭 우물 밖으로 나와서 바다를 보는 기분이야.”

“이런 거로 어른이 되었다는 걸 실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앞으로는 계속 이렇겠지.”

살벌해진 경쟁률을 실감하며 다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친구들의 대화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1월 1일이 되자마자, 지금만을 기다렸다는 듯 들어오는 작품들과 제안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들어온 대로 최대한 빠르게 살펴보려던 2팀은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 진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메일들과 작품들에 결국 하루도 되지 않아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안다호와 2팀은 빠르게 살펴보는 건 불가능하니 아예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방송 예정 날이 적혀 있긴 했지만 ‘급한 사람이 양보하겠지’ 하고 웃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되나 싶지만.’

그쪽 일은 다호 형과 2팀이 알아서 잘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안다호와 2팀이 관계자들에게 은근슬쩍 ‘작품과 제안이 이만큼 들어와서 곤란하다.’라는 이야기를 흘려보내서, 경쟁이 치열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검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심어두었지만, 그건 서준이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 덕에 서준은 공연이나 연습이 없는 날에는 느긋하게 코코아엔터에 들러 들어온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멋쩍어하는 서준을 알아차린 친구들이 웃었다.

“서준이 넌 규격 외지.”

“맞아. 차라리 규격 외인 게 났지. 서준이랑 같이 경쟁하면 진짜 망해. 주연은 네가 하고 조연이나 단역은 우리가 하게 해줘.”

응응.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뭐…… 다음에 한 번쯤은 겨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

“좋은 작품이라면 상대가 서준이라도 도전해 봐야지.”

“오오!”

의욕적인 강재한과 전성민의 말에 아이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지호가 눈을 끔벅였다.

“……나만 놀러 다녔어?”

맹한 표정으로 말하는 한지호의 모습에 다들 빵 터지고 말았다.

“당연히 일정 없을 때는 우리도 놀았지.”

“같이 놀이공원도 갔다 왔잖아. 스케이트장도.”

“그러고 보니 두 번 다 사람이 적어서 좋았어. 날씨도 괜찮았고. 서준이가 날짜 고르는 능력이 있나 봐.”

“그래서 일코도 잘하나?”

강재한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 목요일에 스키장 가는 거 맞지?”

“응. 맞아.”

“새벽부터 일어나려면 힘들겠다.”

“아니, 저기요? 난 진짜 공연이랑 연습 없을 땐 계속 놀았다니까? 지금이라도 오디션 찾아봐야 하나?”

심각해진 한지호의 표정에 서준과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졸업식 날이라도 변함없이 시끌벅적한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서준아. 주희야. 쌤이 교무실로 오래.”

2반 아이가 서준과 양주희를 불렀다.

“그래? 알았어.”

“알려줘서 고마워.”

서준과 양주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주희는 3학년 대표일 거고.”

“아, 서준이 너 또 연주하는구나.”

친구들의 말에 서준이 씨익 웃었다.

* * *

미리내 예고의 졸업식은 미르홀에서 열렸다.

졸업 공연을 보러 왔던 3학년 가족들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미르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장산범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야. 기사 같은 데서 436 발견하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니까.”

다른 사람들이 피켓팅! 외쳐가며 원하는 연극을 먼저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되었다.

“친구들도 자꾸 연락이 오더라고요. 너희 애 미리내 예고 다니지 않냐면서, 연극 봤냐고.”

“표도 구해달라고 하지 않아요?”

“맞아요. 근데 초대권은 팀원들만 받잖아요.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하더라구요. 왜 같은 학교 학생인데 못 받느냐고.”

“애들은 다 졸업 공연으로 봤으니까 그런 건데 말이에요.”

학부모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서준 배우가 인기가 많긴 많아요.”

“연기 잘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작품도 잘 만들고요.”

주위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품 안에 꽃다발을 든 서은혜와 이민준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열심히 내리눌렀다. 사방에서 아들의 칭찬이 들려오니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도 벌써 졸업이네.”

이민준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꽃다발에서 물씬, 꽃향기가 풍겼다.

“그러게.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가 며칠 전 같은데…….”

부부의 머릿속에 입학생 대표로 섰던 서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때 새로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번 졸업식에도 연주하려나?”

“연주요? 무슨 연주요?”

“여울 예중 졸업식 때는 이서준 배우가 연주해 줬거든요. 오버 더 레인보우요.”

“와…… 정말요?”

그 대화에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려나?”

“글쎄.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중학교 때도 안 가르쳐 줬잖아.”

“나중에 찾아보면 알겠지. 카메라 준비해 둘까?”

“그래. 그러자.”

이민준에게 꽃다발을 넘긴 서은혜가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 세팅했다. 다른 가족들도 점점 다가오는 졸업식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

잠시 후.

미르홀에 학생들이 한 반 한 반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3학년들이 앞자리에, 1, 2학년들이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3학년 자리가 좀 비지 않았어?”

“그러게. 뭐지?”

“우리 애가 없는데?”

술렁이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부부가 속닥거렸다.

“서준이도 없는데?”

“주희는 3학년 대표일 거고 서준이는 이번에도 연주하나 봐.”

친구들 부모님 사이에서도 양주희는 그런 이미지였다.

[지금부터 미리내 예고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술렁임이 잦아들고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ATR 재단 관계자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개식사와 국민의례 순서가 지나고 교장 선생님의 축사가 이어졌다.

[다음은 2학년 대표의 송사와 3학년 대표의 답사가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무대 끝에서 2학년 대표와 3학년 대표가 무대 위로 나타났다. 3학년 대표는 모두의 예상대로 만인의 반장, 양주희였다. 3학년 아이들은 한 치의 놀람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졸업 축하 공연이 있겠습니다.]

축하 공연이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감탄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무대 쪽으로 카메라 렌즈를 비추었다. 서은혜와 이민준도 마찬가지였다.

여울 예중 졸업식 때처럼 무대 옆에서 서준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천장까지 올라가 있던 커튼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려오던 커튼이 무대를 모두 가려버리자 다들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뭐지?”

무대의 막이 내려오고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다지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다들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졸업식 축하 공연,]

안내 방송과 함께 커튼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

오오오!

무대 위의 모습에 학생들과 가족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감탄들이 흘러나왔다.

[MOEB-436팀의]

무대 위.

미리내 예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각자 의자에 앉아 있었다. 김채연은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았고 다른 아이들도 첼로, 바이올린, 플루트 등 각자 전공 악기를 손에 들었다.

무대 중앙에는 지휘봉을 든 작곡 전공의 팀원이 있었고, 그 옆에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린 서준이 서 있었다.

“오케스트라……?”

아니, 정식 오케스트라라고 하기엔 연주자 수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삼중주나 사중주같이 기존에 있는 몇 중주의 연주 형식이라고 하기에는 같은 악기도 여럿 있었고 하나밖에 없는 악기도 있었다. 무대 위에 있는 전자피아노만 무려 3대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지금 연주할 곡은 12살 때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1]이라는 명곡을 작곡한 이서준이 [436] 음악팀에 맞춰 직접 편곡한 오케스트라 버전이니까.

[오버 더 레인보우입니다.]

와아아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3학년들의 가족들은 좀 더 잘 찍기 위해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뜻밖의 오케스트라에 잔뜩 상기된 서은혜와 이민준도 마찬가지였다.

무대 정중앙, 지휘자를 맡은 작곡 전공의 팀원이 관객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자 서준과 [436]팀원들도 꾸벅 인사를 했다. 다시 한번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휘자가 연주자들 쪽으로 몸을 돌리자,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하던 관객석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서준은 바이올린에 턱을 괴고 오른손에 든 활을 바이올린의 현 위에 올려두었다. 김채연도 피아노 건반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고 팀원들도 각자 악기를 잡고 연주를 준비했다.

잠시 연주자들을 둘러본 지휘자가 들고 있던 지휘봉을 힘차게 움직였다.

따단!

설렘과 기쁨.

이제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어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친구들을 위해 서준은 정성껏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런 서준의 바이올린을 받쳐주는 다양한 악기들의 소리가 선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깊은 절망.

바이올린 하나로 표현되던 절망이 수많은 악기들과 만나 더욱 깊은 절망을 만들어냈다. [오버 더 레인보우]가 8년 전 곡이니 온갖 버전의 연주가 나왔지만 이렇게까지 절절히 다가오는 건 별로 없었다.

특히 바이올린.

같은 바이올린의 소리와 다른 악기들의 소리에 묻힐 법도 한데, 유난히 귀에 박히는 듯한 생생한 선율이 있었다.

서준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중심으로 넓은 미르홀은 마치 조금이라도 건들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음울한 선율들로 가득 차버렸다.

그리고 찬란!

퍼엉!

하고 모든 선율이 폭죽처럼 터져버린 것 같았다. 그 불꽃 같은 선율이 관객들의 몸과 마음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플루트 등 어느 악기 할 것 없이 하나의 곡으로 어우러져 관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관객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희미하게 사그라지고 남아 있던 따뜻한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연주가 끝난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관객들의 눈에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하는 서준과 [436] 음악팀이 보였다.

와아아아!!

더 이상 울렁이는 감정을 참지 못한 관객들에게서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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