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51화
“아, 우리 청룡님 보러 갈래?”
김채연의 말에 오전 연습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온 [436]팀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연극했다고 했지!”
“워킹맨으로 본 적은 있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저도요. 봄도 VOD로 봤거든요. 실제로 보고 싶었어요!”
어쩐지 굉장히 적극적이다.
곧바로 연습에 들어가려고 했던 서준은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빛에 뒷목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아아!
만세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청룡님 보는 게 저렇게 좋은 건가?”
“너 연습 너무 빡세다니까.”
한지호의 말에 김주경과 강재한이 작게 웃었다.
연기과 3학년들이야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다른 과 아이들이나 1, 2학년들은 조금 힘들지도 몰랐다.
연습을 잠시 미루고 ‘청룡님’의 머리 모형을 보러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솔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어릴 때 DVD로 봤었는데.”
“저도요. 그땐 그냥 재미있어서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칭찬 스티커 효과를 위해서 엄마가 보여준 것 같아요.”
박연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 또래의 아이들 중 어린이 연극 [봄]을 보지 않은, 그리고 여의주를 모으지 않은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
집에서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보여줬던 것이 바로 어린이 연극 [봄]이었다. 선생님들에게 ‘청룡님’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인터넷에는 경험담이 가득했다.
“전 여의주 조각 대신 여의주 모양 스티커를 모았어요.”
김영찬의 말에 선배들이 오호, 감탄했다.
“하긴 여의주 조각은 세 개뿐이라서 착한 일 세 번 할 때마다 소원 들어줘야 하니까 의외로 부모님들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우리 엄마는 여의주 조각을 한 스무 개 정도 만들어 줬으면 했대. 내가 너무 열심히 한다고.”
한지호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붉히고 착한 일을 찾아다녔을 꼬맹이 한지호가 저절로 떠올랐다.
“우리 집은 점수제였어. 심부름하면 3점. 엄마 아빠 말 잘 들으면 5점. 해서 총 100점 채우면 여의주 조각을 하나 얻었어.”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응. 그것 때문에 계산 실력이 엄청 늘었지.”
김채연의 말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은하수센터는 월요일은 휴관이라, 직원이나 공연을 준비하는 관계자들 이외에는 사람이 없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평소라면 꼬마 아이들로 북적거렸을 청룡님 주변도 그랬다.
“오……!”
“생각보다 크다.”
텅 빈 공간, 홀로 있는 청룡님을 보며 아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서준도 조금 들뜨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
은하수센터에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연극을 보러올 때면 한 번씩 오기는 하지만, 워낙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청룡님이라 끼어들 틈이 없었다.
‘허리까지 오는 애들 사이에 낄 수도 없고.’
가까이서 본 청룡의 커다란 눈동자가 왠지 서준을 반기는 듯했다.
푸른빛 수염도 예전과 같은 색이었다. 10년이 넘은 모형인데도 색이 바랜 부분은 한 군데도 없는 걸 보니, 은하수센터에서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청룡님과 함께 사진을 찍은 [436]팀은 오후 연습을 위해 제2 소극장으로 향했다.
연습이 힘들어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연습이 싫은 건 아니었다. 바로 내일이 공연이라 연습의 필요성은 아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평소보다 힘든 연습에 조금의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근데 선배님. 촬영은 언제 해요?”
김영찬이 서준에게 물었다.
이 ‘촬영’은 너튜브에 올라갈 영상을 말하는 것으로, 졸업 공연 당시 찍었던 영상도 너튜브에 업로드할 예정이었지만, 아무래도 정식공연을 하는 만큼 영상의 퀄리티를 높여 하나 더 찍기로 했다.
[436]팀도 흔쾌히 동의했다.
아마 관객석에서 무대를 보는 영상과 무대 위까지 올라가는 영상을 서로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을 터였다.
“아직 감독님들이 정해지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1월 말쯤? 너튜브로 공개하는 거니까 공연으로 좀 더 익숙해진 다음에 촬영하면 어떨까 싶어.”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 때 찍어주셨던 감독님들이 해주셨으면 좋겠네.”
강재한의 말에 다른 아이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감독님도 감독님인데, 그 영상 전 세계 공개죠?”
“전 세계 공개라기보다는 너튜브에 업로드하는 거지.”
“그거 같은 말 아니야? 서준이가 나오면 다 보잖아. 거울도 그랬고.”
한지호의 말에 아이들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객 수로 따지면 촬영을 더 잘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전 내일 공연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하긴 내일 공연은 유료잖아. 너튜브는 무료고.”
공연이 중요하냐, 촬영이 중요하냐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둘 다 잘해야 한다는 것.
“그럼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제2 소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팀원들을 보며 팀장, 서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아무도 도망, 아니, 연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굳게 문을 닫았다.
* * *
1월 3일.
연극 [MOEB-436]의 첫 공연 날이 되었다.
인터넷은 [연극 ‘MOEB-436’오늘 공연 예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가득했고, 티켓팅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이 기대와 부러움으로 가득한 댓글을 잔뜩 적고 있었다.
물론, 1회차 예매에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은하수센터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와, 사람 많다.”
지하철 입구에서 나온 송유정과 임예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이 성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들뜬 얼굴로 한쪽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멀리서도 건물이 보이는 은하수센터가 있는 방향이었다.
“우리도 얼른 가자!”
송유정과 임예나도 가방을 꼭 쥐고 이동하는 무리에 합류했다.
은하수센터는 처음이지만, 지도를 볼 필요도 없이 앞사람들이 가는 데로만 가면 돼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탁 트인 공간이 보였다.
“여기에 2 소극장이 있나 봐.”
[MOEB-436]이 공연될 제 2 소극장이 있는 건물 앞은 들어갈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벤치가 있긴 했지만, 사람이 많아 모두 앉을 수는 없었다.
송유정과 임예나는 일단 건물 안에 있는 매표소에서 휴대폰 문자로 받은 e티켓을 보여주고 실물 티켓으로 교환하였다.
[MOEB-436]
[1월 3일 1회차]
[마석]
장르가 SF라는 걸 보여주는 듯 새까만 티켓에 새하얀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너도 1회차에 성공하다니…….”
“그러게. 무슨 일이래?”
실물 티켓을 보며 실실 웃던 송유정과 임예나는 신기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다 티켓팅에 성공했는데 그게 1회차 공연이었다. 자리도 [마]석과 [바]석으로 사이의 통로를 건너뛰고 바로 대각선 자리였다.
“바로 옆은 아니지만, 대각선 자리라니 신기하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같이 보니까 좋다! 이야기할 사람도 생기니까.”
임예나의 말에 송유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이후에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재미였다.
“응원봉 챙겨 왔어?”
“응. 켜진 않을 거지만.”
송유정이 어깨에 멘 가방을 툭툭 쳤다. 동글동글한 새싹봉이 만져졌다.
연극에 방해될 테니 켜진 않을 거지만 그냥 가방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든든했다.
임예나도 히죽 웃으며 가방 안 새싹봉을 보여주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송유정과 임예나가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보았다. SNS 알림이었다.
“오. 금손님 오셨다!”
“얼른 받으러 가자!”
송유정과 임예나가 활짝 웃으며 금손님이 있다는 장소로 걸어갔다. 들뜬 기분 때문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직접 그린 그림을 나눠주는 금손님 주위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SNS로 미리 약속한 송유정과 임예나가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가져온 과자를 주었다.
금손님이 웃으며 구김 하나 없는 카드를 송유정과 임예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에 연극이라서 청룡님이랑 김진우 이미지로 그려봤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연극도 꼭 그려주세요!”
“네! 너튜브 영상 공개되면 바로 올릴게요.”
너튜브 영상 공개는 아마도 2달 후인 3월.
하지만 스포일러에는 철저한 새싹들은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감독님들이 찍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러게. 거울 좋았는데…… 그 세 분은 바빠서 안 되려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금세 연극 시간이 되었다.
새싹들은 물론이고, 어떤 연극일지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제2 소극장으로 이동했다.
“연극 끝나고 보자.”
“그래.”
송유정이 [마]석에, 임예나가 [바]석에 앉았다. 하나둘 채워지는 관객석에 괜스레 자신마저 들뜨는 듯했다.
운이 좋아 함께 온 송유정과 임예나와 달리, 치열한 경쟁률 때문인지 지인과 함께 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다들 조용조용히 자리에 앉아 연극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곧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송유정과 임예나는 안내방송에 따라 휴대폰을 끄고, 비상구를 확인했다.
삐이---
소리와 함께 관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송유정과 임예나, 관객들이 상기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천천히 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파란 조명 빛 아래, 새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관객들을 향해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으크륵스므.
여자의 입에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 * *
음향&조명실.
박민형과 김채연, 그리고 직원들이 조용히 창밖,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미르홀과 마찬가지로 관객석 위, 무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음향&조명실에서는 무대가 참 잘 보였다.
-당신은, 누구시죠?
-……뭐?
-제, 어머니는 어디 계시나요?
“민형아. 우주선 추락 장면 준비하자. 통로는 2번.”
“네.”
김채연의 말에 박민형이 조금 떨리는 손으로 조명 기계에 손을 올렸다.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왔던 직원들은 관객들처럼 연극에 푹 빠진 상태였다.
무대 위, 경고음과 붉은빛 조명이 빠르게 깜빡이고.
“지금!”
콰아아앙!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무대 옆에서 튀어나온 강재한에게서 검은 천을 받은 서준이 얼른 모습을 가리고 존재감을 줄이면서 1번 통로를 향해 달려갔다.
존재감을 조절하는 건 서준에게 가장 쉬운 일이었다.
박민형은 1번 통로가 비치지 않게끔 주의하며 가지각색의 조명으로 관객들은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솔: ㄷ
“도착했대!”
통로 맨 끝 커튼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솔은 김채연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서준이 두루마기와 가발을 쓰는 것을 도왔다.
희미한 불빛에도 많이 연습한 덕분인지 금세 가발을 쓸 수 있었다.
이솔이 가발을 깔끔하게 빗질하는 사이 노란색 렌즈까지 낀 서준이 백발을 가리기 위해 다시 검은 천을 뒤집어썼다.
-그놈의 호랑이는 시도 때도 없이 나와!
>이솔: ㅇ
“끝났대.”
박민형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서준이 커튼 밖으로 나왔다.
“요기서 나오고!”
강재한의 대사에 서준이 있는 곳과 가장 먼 곳, [다]서과 [라]석의 가운데 통로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다음은 가석하고 나석 사이.’
“조기서 나오고!”
[436]팀의 계획대로 타이밍 좋게 [가]석과 [나]석 사이 통로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강재한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송유정과 임예나도 마찬가지였다. SF에서 조선 시대로 넘어간 게 잘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그런 의문마저 희미하게 만들었다.
번쩍!
세 번째 스포트라이트마저 켜지고, 이제 마지막.
“저-기서도 나오지!”
강재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박민형이 조명을 켰다. 동시에 서준이 백발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벗었다.
[마]석과 [바]석 사이 통로를 비추는 조명에 웃으며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송유정과 임예나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두둥!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서준, 아니, 장산범이 걸음을 옮겼다.
[(악)아이스 골렘의 메아리-중하급이 발동됩니다.]
[[(악)아이스 골렘의 메아리-중하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아이스 골렘의 메아리(최하급)이 발동됩니다.]
사냥감의 소리를 따라 합니다.
움직임이 무겁고 둔합니다.
주변의 기온을 약간 하강시킵니다.
모델: 눈호랑이
진짜 장산범은 아니나 장산범과 같은 방법으로 먹이를 사냥했던, 눈호랑이의 모형을 본떠 만든 골렘. 이번 연극의 모티브가 된 서준의 전생 중 하나였다.
추위에 강한 [(선)얼음 사막 슬라임의 유사]과 기온을 하강시키는 [(악)아이스 골렘의 메아리]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제법 잘 어울리는 듯했다.
서준은 무거운 아우라를 풍기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새하얀 꽃밭 속 새까만 돌멩이 하나가 눈에 띄듯, 부드러운 선기 속 서준을 뒤덮은 마기는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면서도 시선을 끌었다.
흔들리는 새하얀 머리칼, 팔랑이는 붉은 무늬가 박힌 흰색 두루마기. 그 안에 보이는 조금 헝클어진 하얀 셔츠와 검은 정장. 그리고 창백한 얼굴과 어디를 보는지 탁한 것 같으면서도 샛노란 눈동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이 내딛는 걸음걸음 하나에 둥, 둥 북소리가 들렸고 심장도 함께 뛰는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나타난 장산범의 모습에 송유정과 임예나, 그리고 관객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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