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45화
무대가 어두워졌다.
서준과 김주경은 얼른 테이블 뒤에 숨겨놓았던 옷을 위에 걸쳐 입었다. 몇 번이고 연습해 봐서 무대가 다시 밝아졌을 때는 둘 다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물론, 상의뿐이지만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던 여자가 유진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진이 머리가 많이 자랐네. 여기 앉아봐. 엄마가 잘라줄게.”
유진이 의자에 앉았다. 어디선가 커트보를 꺼낸 여자가 콧노래를 부르며 가위로 그렇게 자란 것 같지 않은 유진의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길에 유진은 눈을 감는다. 포근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어머!”
뒤를 돌아본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니터에 업로드 바가 생겼다. 여자의 지시도 없이, 우주선과 연결된 저장 장치에 유진 본인이 접속한 것이었다.
“다운로드는 자유롭게 설정해 놨지만, 업로드라니!”
‘그거…… 위험한 거 아닌가.'
하고 SF를 좋아하는 몇몇 관객들이 생각할 때,
“이런 건 평범한 안드로이드는 못할 텐데! 역시 내 아들이야!”
여자는 즐거워했다.
“어떤 걸 저장한 거니?”
“어머니와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어요.”
유진의 그 한마디면 여자는 정말로 기뻐했다.
머리카락을 다듬고 난 후, 여자와 유진은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화로운 음악이 깔리던 중, 별과 별만 비추던 모니터에 새로운 물체가 나타났다.
그걸 알아차린 유진은 여자에게 말했다.
“어머니. 우주선 한 대가 다가오고 있어요. 나쁜 사람이 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제가 확인해 볼게요.”
“역시 우리 유진이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니까.”
사람.
안드로이드의 심장이 두근 뛰었다.
에너지 순환장치가 잠시 고장 났나 싶어 잠시 가슴 쪽에 손을 댄 유진이 고개를 갸웃하고 모니터 앞에 섰다.
“우주선. 우주선. 통신 연결 바랍니다.”
“젠장. 넌 또 뭐야?”
커다란 모니터에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고생 꽤나 한 듯, 상처가 나 있고 거친 모습이었다. 따뜻하고 몽실몽실한 것들만 봐왔던 유진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건,
안드로이드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직감이었다.
“어머니나 불러!”
“여기 당신의 어머니는 없습니다.”
이 남자가 불행을 가져올 거다.
유진이 느낀 것처럼 관객들도 변하는 분위기에 몰입했다.
“이 깡통이 뭐라고 하는 거야?”
깡통.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에 유진이 잠시 멈칫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말…….”
“유진아악!!”
시끄러운 상황에 방에서 나와 모니터를 본 여자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던 비명을 질렀다. 유진이 돌아보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저 기계일 뿐인 자신이 그럴 수 없겠지만,
불안으로 심장이 쿵쿵 뛰는 것 같았다.
“어머,”
“어머니. 저 깡통은 왜 만드신 거에요?”
남자가 유진의 말을 가로챘다.
“그것보다 문 좀 열어봐요. 이거 거의 고장 직전이에요.”
“아,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지금 당장. 지금 당장 열어줄게.”
여자가 유진을, 안드로이드를 밀치고 조종석 앞에 섰다. 물론 기계인 안드로이드를 밀칠 만한 힘은 없었지만, 안드로이드는 어쩐지 힘이 쭉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밀려주었다.
여자가 여러 버튼을 눌리니, 곧 모니터에서 남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무대 오른쪽에서 거칠어 보이는 복장으로 남자가 나타났다. 모니터로 보이던 남자였다.
여자가 달려갔다. 남자가 귀찮은 표정으로 네네, 대답했다.
유진의 시선은 조금 전부터 어머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불안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주 잡은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물론 그런 버릇이 설정되어 있을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아, 저 우주선 좀 사 주세요.”
“그럼! 당연히 사 주고말고.”
“여기서 쇼핑몰까지는 1년 정도 걸리죠? 그러니까 진작에 신형으로 사시라니까…….”
그 모든 것을 안드로이드는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 안드로이드와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턱을 매만졌다. 자신의 옆에 있는 어머니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자신이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울컥.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듯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거 어머니가 만드신 거예요?”
“그, 그래…… 네…… 네가 죽은 줄 알고…….”
어머니가 울고 계시는데 안드로이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했던 우주선이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신기하네. 보통 안드로이드랑 다르네요. 감정이 있는 것 같은데? 화가 난 건가? 짜증이 난 건가? 야. 깡통.”
“……깡통이 아닙니다.”
“그럼?”
몇 번을 분석해 봐도 고장은 아니었지만,
입술이 떨리는 것 같았다.
마주 잡은 두 손을 꽈악 쥐었다.
“유,진입니다.”
“허.”
남자가 헛웃음을 뱉더니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여자는 안드로이드를 원망하는 듯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어머니의 눈빛에 안드로이드는 제 눈이, 시각 장치가 고장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 반갑다.”
남자가 말했다.
“나도 유진이거든.”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정말로 고장이 나버린 것 같았다.
* * *
무대의 불이 꺼졌다가 켜졌다.
아무래도 이번 연극은 무대의 불이 꺼짐과 켜짐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여자와 유진, 아니, 안드로이드가 앉아 있던 의자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상의가 바뀌어 있었다. 조명이 꺼진 사이 갈아입은 모양이었다.
“이제 쇼핑몰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8달이면 될 거란다. 얼마 안 남았어. 그런데 꼭 그렇게 돌아다녀야겠니? 우주가 얼마나 위험한데…….”
여자의 표정이 침울해 보였다. 방랑벽이 있는 아들을 차마 말릴 수도 없었다.
“이제 겨우 4개월밖에 안 지났네.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한군데 붙어 있을 성격도 아니고.”
남자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1년에서 8달.
불이 깜빡하는 사이에 4개월이 지났다.
테이블 위의 와인병을 들고 와인잔에 붓던 남자가 나오지 않는 와인을 보고 인상을 쓰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야! M! 와인 가져와!”
M?
처음 듣는 이름에 관객들이 새로운 등장인물인가, 생각할 때, 무대 오른쪽에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무대 위를 걷는 검은 구두와 단정한 검은색 바지가 보였다.
새하얀 셔츠의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그고 새까만 넥타이를 목줄처럼 매고 바지와 같은 원단의 재킷을 입고 있었다.
4개월 동안 긴 새까만 머리카락을 꽁지머리처럼 묶고 손에 딱 맞는 새하얀 장갑을 끼고 둥그런 와인 병을 들고 있는 남자는 마치 집사처럼 보였다.
유진, 아니, 안드로이드 M이었다.
M은 조금 창백한 얼굴로 남자의 와인잔에 와인을 따랐다. 그런 M을 살아 있는 사람인, 진짜 유진인 남자가 살펴보았다.
“신기하다니까. 어떻게 안드로이드한테 감정이 있는 것 같지? 이건 어떻게 만든 거예요, 어머니?”
“글쎄. 기록대로 만들어 보고 있는데 같은 건 안 나오더구나.”
술에 취한 듯 남자가 킬킬 웃으며 안드로이드에게 물었다.
“야. 네 이름이 뭐라고?”
“……MOEB 안드로이드 모델을 바탕으로 436번째 만들어진 MOEB-436입니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안드로이드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성격 나쁜 남자가 킬킬 웃었다.
“MOEB 안드로이드 모델을 바탕으로 436번째 만들어진…….”
관객들의 귓속에 M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MOEB-436입니다.”
조금 슬픈 목소리인 것 같았다.
* * *
다시 한번 무대가 암전됐다가 밝아졌다.
그사이 또 시간이 흘렀다. 여자는 같은 옷을, 남자는 처음 등장했을 때 옷을 입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M의 머리카락이었다.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 등 뒤로 늘어뜨린 M이 마치 로봇 같은 딱딱한 표정으로 장식품처럼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좋아. 새 우주선도 샀겠다, 바로 출발해 볼까?”
“유, 유진아! 일주일만 더, 아니, 4일만 더 여기서 지내면 안 되겠니?”
여자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4일 정도야. 마지막 점검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남자가 하품을 하며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여자가 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대 울기 시작했다. 조용히 걸어가 여자의 방문 앞에선 M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추억 속의 어,머니는 항상 웃고 계시는데…….”
M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길어진 머리카락이 하나로 묶여 흔들렸다.
“내가 진짜 아들이라면 더 행복하실 텐데…….”
부품에 이상이라도 있는 것인지 깊은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그 뜨거운 것이 머릿속의 저장, 판단 장치에까지 침범한 것 같았다. 안드로이드의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조용히 남자가 들어간 방을 바라보는 M의 모습에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배경음마저 사라진 적막이 심상치 않았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던 유진은 우울과 슬픔으로 가득한 M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M은 걸음을 옮겨 남자의 방 앞에 섰다. 남자는 일개 ‘깡통’인 자신의 부름에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었다.
M이 허공을 바라보듯, 관객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뒤 모니터에 새로운 영상이 재생됐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아마도 M이 조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유진아.”
발달한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서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관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진아. 문 열어봐.”
방 밖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침대 위에 누워 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무슨 일이에요?”
짜증을 내며 문을 연 남자가 제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인상을 썼다.
“뭐야. 너? 어머니느……!”
안드로이드가 장갑을 낀 손으로 남자의 입을 막았다.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힘으로 남자를 뒤로 밀어붙여 침대로 이끌었다.
붉은 조명 아래.
입과 코가 막힌 남자가 반항했다. 안드로이드의 등 뒤에서 긴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잠시 후.
남자의 움직임이 사라졌다.
안드로이드, 아니, 제 이름을 되찾은 유진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얼른 답답한 장갑을 벗어 던지고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
“……뭐?”
주인님이라고 부르던 M의 호칭이 달라졌다. 울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어주세요. 어머니. 저 유진이 왔어요. 언제든 열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M. 너 지금 무슨…….”
여자가 고장 나버린 것 같은 안드로이드의 모습에 이마를 짚었다.
“유진이 말대로 일찌감치 버렸어야 했는데.”
“걱정 마세요. 제가 어머니를 위해 그 남자를 버렸어요.”
문밖의 안드로이드가 빙그레 웃었다.
상냥하고 부드럽게 설정된 목소리가 이번만큼은 아주 차갑고 냉정하게 들렸다. 여자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불안하다.
“……그게 무슨?”
“가짜 유진이요. 어머니를 슬프게만 하던 남자를 제가 버렸어요.”
이해되지 않는 말에 여자가 숨을 들이마셨다. 예리한 직감이 뇌리를 관통했다. 불안이 무겁게 여자를 짓눌렀다.
“유진아……!”
여자가 미친 듯이 남자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침대를 보고 몸을 멈추고 입을 틀어막았다. 부들부들 떨며 두어 걸음 물러났다.
“이게…… 이게 무슨…… 안드로이드는 사람을 죽이지 못할 텐데……3원칙이, 3원칙이 기본적으로 박혀 있었을 텐데……!”
“어머니. 기억해 보세요. 저랑 지내던 때가, 행복했던 그때가 기억나지 않으세요?”
안드로이드가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어버린 머리카락을 여자에게 보여주었다. 불쌍하게 보이는 그 표정에 여자는 소름이 돋았다.
“이, 이런 설정은 넣은 적이 없어…….”
두려움에 떠는 여자의 말에도 안드로이드는 제 할 말만 뱉어냈다.
“어머니가 잘 챙겨 먹으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흰 머리카락들이 생겨버렸어요. 그리고 그동안 자르지 못해서 이렇게 자라버렸어요. 어머니. 그때 잘라주신 것처럼 머리카락을 잘라주세요.”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니터 앞으로 달려가 버튼을 눌러댔다. 뒷모습만 보이는데도 얼마나 분노에 불타오르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가끔 뒤돌아보는 모습은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너…… 너같은 안드로이드 때문에!!”
“어머니. 진정하세요. 건강에 나빠요.”
안드로이드와 옥신각신하는 바람에, 여자의 흰색 가운은 벗겨지고 단정하던 머리칼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졌다.
분노가 두려움을 이겨냈다. 여자가 소리쳤다.
“내 아들을 죽여놓고……가장 소중하다고? 다 지워 버릴 거야!!”
모니터에 삭제 중이라는 창이 떴다.
여자를 위로하던 안드로이드의 작동이 순간 멈추었다. 허공을 바라본다.
때마침 관객석 쪽을 보고 있어 관객들이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소중한 추억을 빼앗기는 걸 아는 듯 슬픔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여자가 비틀비틀 안드로이드에게로 걸어왔다.
“왜 너 같은 걸 만들어서…… 왜!”
여자가 멱살을 쥐고 흔들어댔지만 만들어진 금속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는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때.
붉은 조명이 무대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깜빡였다. 비상 상황을 알리는 경고음도 울려 퍼졌다.
당황한 여자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삭제 작업이 모두 멈추어버렸다.
안드로이드는 우주선과 연결되어 있었고, 우주선은 안드로이드와 연결되어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자료가 삭제되는 걸 원하지 않았고, 우주선은 그 자료를 삭제하는 걸 원했다.
제 소중한 추억을 지키기 위해, 안드로이드는 빠르게 우주선 내부에 침입해 온갖 방어벽들을 건드리고 망가뜨리고 부셨다.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삭제를 막을 수 있는 건지 분석할 시간은 없었다.
“어머니가 사라진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의 안드로이드가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모니터에 수십 개의 파일이 뜨고 침입을 당한 듯 붉게 물들었다가, 침입을 막은 듯 원래대로 돌아오고 다시 붉게 물들었다.
점점 깜빡임이 빨라지는 붉은 조명과 심장까지 뛰게 만드는 경고음에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지, 관객들은 알 수 있었다.
그때, 모니터가 깨끗하게 변하고 광활한 우주가 비쳤다. 새까만 우주와 반짝이는 별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이상함을 느낀 여자가 헐레벌떡 모니터 쪽으로 달려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다시 안드로이드에게로 달려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할 거야! 운전 장치가 완전히 삭제됐잖아! 이대로면 추락해 버려! 빨리, 빨리 복구해! 복구하라고!”
누구 하나도 양보하지 않는 격렬한 싸움에 결국 모두 지워진 것이었다.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허공을 바라보던 안드로이드의 눈이 반짝 빛났다. 로딩이 끝난 걸 알아차린 여자가 반색했다. 안드로이드의 시선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뭐?”
“제, 어머니는 어디 계시나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여자가 당황한 것도 무시한 안드로이드는 ‘어머니’를 찾으러 움직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널 만들었어! 어서 빨리 운전 장치를 복구해!”
안드로이드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때보다도 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정말로 기계 같은, 사람과 다른 얼굴이었다. 핏기 하나 없는 피부도, 번들거리는 눈동자도, 긴 머리카락도 모두 만들어진 것 같았다.
“아뇨. 당신은 제 어머니가 아닙니다. 제 어머니는 언제나 단정하시고 하얀 가운을 입으시는, 아들 유진을 아주 사랑하시는 분이시거든요.”
조금 전, 안드로이드와의 다툼으로 머리 모양이 엉망이 되고 새하얀 가운이 벗겨진 여자가 외쳤다.
“내가, 내가 널 만들었다니까!!”
“아뇨. 제 어머니는 언제나 단정하시고 하얀 가운을 입으시는, 아들 유진을 아주 사랑하시는 분이시거든요.”
안드로이드가 말했다.
“아뇨. 제 어머니는, 하얀 가운을, 아들 유진을 아주 사랑,”
말했다.
“아뇨. 제 어머니는, 아들, 유진, 사랑.”
자료가 대부분 날아간 안드로이드는 그저 단편적인 것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제 어머니는…… 아들…… 유진…….”
붉은빛이 빠르게 깜빡였다. 여자가 고장 난 안드로이드를 잡고 흔들었다.
“어머니…… 아들…….”
시끄럽게 우는 경고음, 점멸하는 붉은빛 아래.
여자가 소리를 쳤다.
보고 있던 관객들마저 덩달아 빠르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땀이 차는 두 손을 꽉 쥐고 있을때,
홀로 평안한 안드로이드가 중얼거렸다.
“어머니…… 어머니…….”
콰아아앙!
여자의 비명과 함께 무대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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