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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43화 (44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43화

특별 강의를 듣기 위해, 오전부터 미리내 예고 연기과 연습실 중 가장 넓은 특별실에 연기과 3학년들이 모였다.

“특강 하루 만에 다 한대.”

양주희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다?”

“응.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부.”

“그래서 오전부터 하는구나.”

“근데 내일 졸업 공연인데 왜 특강을 오늘 하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으음.

그거야 특별강의를 할 강사들이 한국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여러모로 시달리게 될 테니까 최대한 노출 없이 졸업 공연만 보고 빠질 계획, 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는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근데 이렇게 스케줄을 잡아도 오늘내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특강 강사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친구들을 보고 작게 웃던 서준은 특별실 문 앞에 서 있는 담임 쌤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2학기 시작부터 오늘의 특별강의가 예정되어 있었던 걸 보면, 선생님들은 몇 달 동안이나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단하네요. 쌤.’

‘하하. 뭘.’

서준의 눈빛에 서준이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정시운이 하하 웃었다. 중간에 말할 뻔했지만 뭐, 이 정도면 성공적인 깜짝 강의이지 않나 싶었다.

입구에 서 있던 정시운이 3학년 부장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두 배우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정시운도 이렇게 가까이서 (서준을 제외한) 할리우드 배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 다들 오늘 특강 잘 들어. 아주아주 드문 기회니까.”

정시운의 말에 아이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떴다. 서준만이 소리 없이 작게 웃었다.

“들어오세요.”

그 말에 오늘의 특별 강의를 맡을 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습니다. 미리내 예고 연기과 3학년 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 아시는 분들 손!”

한국인처럼 유창한 한국어와 낯익은 듯하면서도 낯선 얼굴에, 특별실에 모여 있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멈추어버렸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통째로 얼어버린 것만 같았다.

“어라? 전부 모르시나 봐.”

“저희 다시 갈까요?”

놀라는 리첼 힐과 손가락으로 문밖을 가리키는 에반 블록의 모습에 특별실이 폭발했다.

와아아악!!!

으아아아악!!!

“뭐, 뭐야?”

특별실과 가장 가까운 교실에 있던 2학년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함성이었다.

그런 함성 속에서 서준은 친구들에게 붙잡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멱살을 안 잡는 게 어딘가 싶었다.

“왜 말 안 했어!?”

“에반 블록이라니! 리첼 힐이라니!”

“으아아아!”

한지호는 머릿속에서 한국어를 지워 버린 것 같았다.

“근데 너희는 이스케이프 촬영할 때 못 봤어?”

슈퍼스타들의 등장에 역시 흥분한 전성민이 물었다. [이스케이프]에 출연했던 아역 배우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어찌나 세게 젓는지 붕붕 소리마저 날 것 같았다.

“그거 완전 비밀 촬영이었잖아!”

“에반 블록의 ‘ㅇ’도 못 봄!”

“하지만 친필 롱패딩은 있지!”

김주경의 말에 오오오, 감탄이 쏟아졌다.

“자자. 얘들아. 지방 방송 끄고.”

정시운의 말에 그 어느 때보다 흥분하고 있던 3학년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조용해지지 않고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들의 귀여운 반응을 보고 있던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배우 에반 블록입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리첼 힐입니다.”

아이들이 다시 한번 와아아!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인터뷰나 방송을 한 적은 있지만, 강의를 하는 건 처음이네요. 그래서 오늘은 강의라기보다, 저희가 겪은 촬영장은 어떤 곳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연기나 촬영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있다면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

잘한다, 잘한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국인 못지않은 두 외국 배우의 한국어 실력에 넋을 놓고 감탄하던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짝짝 박수를 쳤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자리에 앉으면서, 미리내 예고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의 특별 강의가 시작되었다.

* * *

“야야야야!”

왠지 오늘따라 더 화려하고 더 맛있는 급식을 먹고 있던 연기과 2학년 박연지와 친구들이 왠지 익숙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아마 3달 전에 이랬던 것 같다.

달려오는 친구의 얼굴은 상기되다 못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박연이 이서준 선배님 팀에 합류한 것보다 더 큰 일이 있나?”

“없는 듯.”

“나날이 늘어나는 연기력……!”

박연지와 친구들이 짝짝 박수를 치고는 관심을 돌렸다.

“근데 아까 그 고함은 뭐였을까?”

“쌤도 별말 없었고.”

“아니! 사람이 왔으면 아는 척이라도 해!”

“그래. 그래. 무슨 일이야?”

씩씩대던 친구가 박연지의 말에 다시 어쩔 줄 몰라했다.

“너희 내가 방금 누구보고 온 줄 알아?”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세상에…… 세상에……!”

호들갑 떠는 연기는 얘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하지 않을까 싶었다.

박연지와 친구들이 찹스테이크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으려던 찰나, 친구가 외쳤다.

“리첼 힐이랑 에반 블록이 왔어!!”

“……?”

뜬금없는 이름들에 박연지와 친구들은 물론이고 주위에 있던 학생들까지 멈춰 버렸다.

그때, 와아악!! 환호성 같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급식실과 점점 가까워지는 그 소리에 심장이 저절로 쿵쿵 뛰었다.

마치, 쉐도우맨이 등장하기 전 들려오는 음악 같기도 했다.

“리첼 힐이랑 에반 블록이 지금 급식실로 오고 있다니까?!”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친구의 목소리가 귀를 스쳐 지나가고, 스피커를 통해 듣던 익숙한 목소리들이 날것으로 들려왔다.

“여기가 준이 밥 먹는 곳이구나. 드라마랑 비슷한가?”

“오! 안녕, 얘들아! 오늘 메뉴는 뭐야? 맛있니?”

에반 블록이 급식실을 둘러보고 있고 리첼 힐이 입구 쪽 테이블에 앉은 1학년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질문을 받은 연기과 1학년 김영찬과 친구들이 넋을 놓고 리첼 힐을 바라보았다.

“……나 꿈꾸나?”

박연지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내한 기사는 하나도 뜨지 않았는데, 할리우드 스타들이 여기에, 우리 학교에 있었다.

“……나랑 같은 꿈 꾸는 듯.”

옆자리의 친구도 중얼거렸다.

묘하게 환상 같은 모습이었다.

“에반. 리첼. 여기 식판이요.”

그 환상을 마구 부수는 존재가 있었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여기 있는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원인 제공자.

미리내 예고의 유일무이한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이 급식판 두 개를 할리우드 스타, 에반 블록과 리첼 힐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그냥 보면 화보나 다름없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급식판과 익숙한 급식실 창문과 벽이 묘하게 현실감을 주고 있었다.

“……서준 선배님 때문에 오셨나 봐……!”

그 말이 방아쇠가 되었다.

환상이나 꿈같은 게 아니라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아이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고, 곧 연기과는 물론이고 음악과, 미술과 아이들의 입에서 우렁찬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박연지와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아까 수업시간에 들려왔던 굉음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 * *

몇 시간 후.

“재미있었다! 애들 너무 귀여웠지!”

“바짝 얼어붙긴 했지만 말이야. 3학년은 준이 있어서 괜찮았지.”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1학년 특강까지 모두 끝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재미있었다니 다행이에요. 애들도 다 좋아하던데요?”

두 사람과 같이 주차장으로 향하던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거야말로 다행이네.”

“내일 공연도 기대된다! 배우들도 온다며?”

“네. 감독님들이랑 작가님도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하하 웃었다.

“다들 엄청 놀랄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근데 준. 기사는 아직 안 났지? 아니면 내가 못 찾는 건가?”

“아뇨. 아직 하나도 안 나왔어요.”

한국 사이트들을 익숙하게 돌아다니며 나온 기사는 없는지 살펴보는 에반 블록의 모습에 서준이 대답했다. 아이들에게 내일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 지켜질 줄은 몰랐다.

“준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준 이야기도 밖에 잘 안 퍼지잖아.”

“하긴. 이 학교 애들이 많이 착한가 봐.”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의 말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그건 능력 때문이지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리첼 힐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미리내 예고 아이들은 서준의 이야기를 하지 않던 일상에 익숙해졌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내일이면 기사가 나겠지?”

“네. 여러 사람들이 올 테니까요. 기자도요.”

학생들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ATR재단의 관계자들도 올 거다. 그리고 특강 강사 자격으로 졸업 공연을 보러올 배우들을 찍으러 기자들도 올 터였다.

“뭐, 미르홀에 들어오지는 못하고 건물 입구에서 머물러야 하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요.”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니 금방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두 할리우드 스타가 한국에 있는 동안 케어하게 된 코코아엔터 2팀 직원이 있었다.

“그럼 마무리 잘해. 준. 저녁 식사 때 보자.”

“은혜랑 민준이랑 맛있는 거로 많이 준비해 놓을게!”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은 서준의 집에서 다 함께 먹기로 했다.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조심해서 가요.”

차가 주차장을 벗어날 때까지 보고 있던 서준은 배정받은 미르홀의 대기실로 향했다. 내일이 졸업 공연이니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야 했다.

[436]팀의 대기실은 제1 연습실보다 조금 작았지만 [436]팀 전원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고 배우들이 입을 의상들과 화장품이나 가발 같은 분장용품들, 기다란 거울들이 있었다.

“꿈…… 꿈인가?”

“리첼 힐을 보다니…….”

“특강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맞아. 눈 깜빡하니까 끝나 있었어. 하나도 기억이 안 나.”

[436]팀 아이들은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아마 교실에 있을 다른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서준이 웃으며 짝! 박수를 쳤다.

그 소리에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김주경이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아. 어떻게 에반 블록 배우랑 리첼 힐 배우가 온 거야? 촬영이나 스케줄이 있으셔?”

“우리 연극 보러 온 거래.”

서준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아, 그ㄹ……?”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려던 팀원들이 모두 굳어버렸다.

우리, 연극을, 보러, 온 거란다.

“……연극? 내일도 온다고?!!”

“응.”

시원스러운 서준의 대답에 기겁한 아이들은 또 할리우드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좋아해야 할지, 그런 배우들 앞에서 연극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에 싫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편하게 생각해. 종호 삼촌…… 김종호 선배님도 오고 이지석 선배님도 오는걸.”

……아. 그랬지.

두 배우뿐만 아니라 특강을 했던 배우, 감독, 작가들이 모두 올 예정이었다는 걸 아이들은 깨달았다. 유명인들이 와서 즐거웠던 만큼 부담이 쌓였다.

“그리고 정식 공연을 하면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올 테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니, 어깨는 무거워지는데 마음은 조금 가벼워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경 선배님. 모르는 사람들이 나을까요? 선배님들이 나을까요?”

박연지의 물음에 김주경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글쎄…… 모르는 사람들은 돈 내고 보는 거잖아. 그쪽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긴 저라도 돈을 냈는데 연극이 허접하면 싫을 것 같아요.”

맞아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팀원들의 프로다운 모습을 보고 있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점검하자.”

“그래!”

“네!”

서준과 [436]팀은 의상들을 점검하고 빠진 분장용품은 없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배경과 가구들이 있는 무대 뒤쪽으로 가서 혹시 부서진 곳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음원도 예비용까지 준비해 놨어.”

김채연의 말에 [436]팀이 데굴데굴 눈을 굴리다 친구와 눈을 마주치고는 헤헤 웃었다. 몇몇은 시원하다는 듯 기지개를 켜기도 했다.

“그럼 다 끝났네?”

“으하. 마음이 좀 편한 것 같다.”

“그래도 내일 공연까지 긴장 풀면 안 돼.”

내일 무대에 배경을 설치해야 하는 미술팀장 이솔의 말에 음악팀장 김채연이 말했다.

“아니지. 정식 공연 때까지 풀면 안 되지.”

오오.

김채연의 말에 다들 감탄하다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함께 웃다가 친구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로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

* * *

그리고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틀 전.

미리내 예고의 졸업 공연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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