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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41화 (44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41화

수능이 끝나면 한가로워지는 일반 고등학교와 달리, 아직 수시 일정이 남은 미리내 예고 교무실은 여전히 바빴다.

특히, 음악과와 미술과는 해외 대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도 있어 그쪽 일정과 입학 절차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반면에 대부분이 국내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곧바로 연기자 생활에 뛰어드는 학생들이 많은 연기과는 제법 여유로웠다.

학생들의 진학 희망, 1순위인 한예대 수시는 이미 끝났고 정시는 아직 수능 성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능 이후의 수시 일정도 대부분 수능 성적이 발표된 이후에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연기과 1학년 선생님이 유자차 한 잔을 건네며 3학년 1반 담임, 정시운에게 물었다.

“정 쌤. 이번에 나온 마린사 영화 보셨어요?”

“아, 감사합니다. 네. 개봉하자마자 봤죠.”

따뜻한 유자차를 받아 든 정시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벌써 11월 말.

마린사의 새 히어로 영화가 개봉한 지 벌써 일주일이 훌쩍 넘었다.

히어로 영화가 취향엔 안 맞는 선생님들도 있었지만 연기과이니 새로 나오는 영화들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알 필요가 있었다.

‘뭐, 할리우드 영화에까지 신경 쓰냐고 하겠지만…….’

맡고 있는 반에 할리우드 스타가 있고, 그 스타 덕분에 한국인 배우들이 할리우드로 가는 길이 조금 쉬워졌다면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어쩌면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또 다른 할리우드 스타가 나올지도 몰랐다.

꿈같은 이야기긴 하지만 세상사가 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게다가 정시운은 멋진 CG와 화려한 액션이 들어간 히어로 영화도 좋아해서 매번 챙겨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1학년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 영화도 팬텀처럼 뭔가 좀 아쉽지 않았어요?”

히어로 영화의 팬으로서 아쉬움이 많이 담긴 한숨이었다.

“그렇긴 했죠. 재미있긴 했지만요.”

“시즌 2로 처음 마린사 히어로 영화를 접한 사람들은 괜찮다고는 하는데…… 역시 시리즈물은 시즌 1이 가장 재미있나 봐요.”

1학년 선생님의 말에 정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시즌 2가 나오는 거겠죠.”

맞는 말이다.

시즌 1이 흥행하지 않았다면 시즌 2도 나오지 않았을 거다.

“이런 게 ‘박수 칠 때 떠나라’일까요?”

“이제 겨우 2편 나왔는데요, 뭘. 또 어셈블처럼 히어로들이 함께 나오는 영화가 나온다고 하면 반응이 달라질지도 모르고요.”

정시운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쩌면 우리가 히어로 영화에 너무 익숙해진 걸 수도 있어요.”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CG.

넋을 놓고 보게 만드는 액션.

그리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의 이야기.

처음 볼 때는 기대감도 없고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어 인상 깊게 다가오지만, 익숙해진다면 기대감이 가득 쌓여 있는 데다가 시즌 1이라는 훌륭한 비교 대상이 있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정시운의 말에 1학년 선생님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흥행하면 흥행할수록 더 그렇죠.”

마린사의 새 히어로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일 개봉할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이클립스]

소설 제목을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사용한 작품이었다.

“시사회 반응이 안 좋더라고요.”

“원작이 있으면 보통 그렇지 않나요?”

개봉 전 시사회까지 보러 갈 정도면 출연하는 배우 중에 좋아하는 배우가 있거나, 원작 소설을 좋아해서 가는 경우가 있었다.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본 팬이라면 영화화한 작품을 보는 눈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원작이 있는 작품은 기본적으로 원작 팬들의 원성을 사며 시작하고는 했다.

물론, 그런 원작 팬들의 마음에까지 쏙 들면 흥행은 보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멋지게 영상화한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정시운의 말에 1학년 선생님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가 아니에요. 그냥 소재만 가져온 거 아니냐, 소설을 읽어보기는 했냐, 하는 소리까지 나온다니까요?”

“허어…….”

생각보다 날 선 반응에 정시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1학년 선생님이 책상 한편에 꽂혀 있는 소설 [이클립스]를 보며 침울하게 말했다.

“저도 원작 재미있게 읽어서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는 접고 보러 가야 하나 봐요.”

연기과 선생님인 만큼 영상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며 작품을 직접 보기 전에는 함부로 재단할 수 없었지만, 소설 [이클립스]의 팬들과 출연하는 배우들을 보러 간 사람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말하는 걸 보면 영화 [이클립스]는 망한 게 틀림없었다.

1학년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올해 기대작이었는데…….”

드르륵.

그때 교무실의 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교무실 문 쪽으로 향한 선생님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마찬가지로 활짝 미소를 띤 정시운이 입을 열었다.

“서준아. 무슨 일이야?”

서준이 웃으며 담임인 정시운의 자리로 향했다.

“미르홀 무대 조명 때문에요.”

“아, 그랬지. 여기 잠깐 앉아봐.”

서준의 간이 의자에 앉힌 정시운이 자료들 속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찾았다. 1학년 선생님이 웃으며 물었다.

“서준아. 유자차 마실래?”

“네. 감사합니다.”

서준이 웃으며 따뜻한 유자차가 든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유자차가 달콤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아, 그리고 한예대 합격 축하해.”

“감사합니다.”

서준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 한예대 합격 발표가 났다.

마킹 실수가 없다면 가채점만 봐도 무난히 합격할 점수라서 서준을 만나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서준의 한예대 합격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여기 있네.”

서류를 찾아낸 정시운이 서준에게 건넸다.

“서준이 네가 전에 물어봤던 건 가능할 것 같아. 여기 종이에 적혀 있는 게 무대에 설치해 줄 수 있는 조명들인데, 미르홀 창고에 있는 조명이랑 은하수센터에서 가져올 수 있는 조명들이야.”

정시운이 서류에 나와 있는 조명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 서준은 종이에 적혀 있는 조명의 모델명과 크기를 자세히 살피며 귀를 기울였다.

거기에는 서준이 연극을 준비하면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조명들도 있었다.

‘역시 우리 학교!’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무대 설비를 가지고 있는 은하수센터의 장비를 그대로 받아오는 학교다운 제품 퀄리티였다.

“미르홀 무대 천장의 지지대도 감당할 무게가 있어서 설치할 수 있는 조명 수는 이 정도가 한계일 거야. 잘 생각해 보고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양쪽 벽이나 바닥에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 보고.”

“네.”

정시운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지지대의 무게를 넘겼다가 사고가 나는 건 서준도 원하지 않았다.

“조명은 다음 주까지 정해서 가져오면 돼. 조명을 설치할 위치도 정해오면 좋긴 한데 어려우면 선생님이랑 이야기해 보고. 여기. 그림 위에 조명이 비출 방향이랑 위치를 그려주면 돼.”

“네. 알겠습니다.”

정시운은 미르홀 무대가 흑백으로 간단히 그려진 종이와 조명 장치 목록을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옷은 어때? 잘 만들고 있어?”

종이를 다시 살펴보는 서준에게 아이들의 졸업공연 상황을 점검해야 하는 정시운이 물었다. 특히 옷까지 직접 만든다는 [436]팀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네. 어제 1차 가봉했어요.”

1차 가봉은 모양을 대충 잡아놓은 옷을 실제로 입고 몸의 핏에 맞추는 작업이었다. 그게 끝나면 본격적인 의상 제작이 시작된다.

“날짜는 맞출 수 있겠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의상팀 애들이 정말 잘하거든요. 1차 가봉인데 고칠 만한 부분도 많이 없었고 그 부분들만 다듬으면 바로 입어도 될 것 같았어요.”

서준이 웃으며 말하자 정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옷까지 만든다는 애들은 처음이라서…… 걱정이 많네. 늦어질 것 같으면 곧바로 선생님한테 알려주고.”

어쩐지 익숙한 말에 서준이 눈을 끔벅이다 웃고 말았다. 자신이 의상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네. 그럴게요.”

이야기가 끝나고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정시운이 입을 열었다.

“아, 서준아. 12월 특별강의 있잖아.”

“? 네.”

갑자기 특강은 왜?

고개를 갸웃한 서준이 대답했다.

“언ㅈ…… 윽…….”

정시운이 옆구리를 감싸고 허리를 숙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서준이, 아마도 그 공격을 넣었을 1학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서준과 눈을 마주친 1학년 선생님이 호호호 웃었다.

“아냐. 서준아. 얼른 가 봐. 연습해야지!”

“……네에. 그럼 가 보겠습니다.”

서준이 옆구리를 붙잡고 끙끙 앓는 정시운과 호호호 웃는 1학년 선생님을 보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이내 꾸벅 인사를 하고는 교무실을 나섰다.

잠시 교무실이 조용해졌다.

서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선생님들이 소리가 들리지 않자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정 쌤. 비밀이라고 했잖아요.”

“아니, 거기서 특강 이야기는 왜 꺼내?”

“우리도 엄청 입이 간질간질하구만!”

선생님들의 타박에, 깜빡하고 서준에게 특별강의 강사들이 언제 오냐고 물을 뻔했던 정시운이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 * *

[평가원, 오늘 수능 채점결과 발표!]

[수능 등급 컷에 관심 집중!]

[수능 성적표, 온라인 발급도 가능]

[영화 ‘이클립스’, 원작 소설을 읽기나 하셨는지??]

[소설 원작 영화 흥행 VS 폭망!]

-삼수는 안 해도 되겠네!!

=오! 축하축하!

=재수한다고.

=……아앗.

-건너건너 들었는데 이서준 한예대 합격이라더라.

=?? 여기 아무도 이서준이 불합격할 거라고 생각 안 함.

=22 평상시 성적도 좋다고 하잖아.

-합격 축하해! 서준아!!

=이제 한예대 캠퍼스에서 서준이 볼 수 있는 거임?

=서준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이젠 진짜로 있는 존재인지 의심됨.

=22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

=333 지금 우리는 속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의심을 없애기 위해선 빨리 콬아가 팬미팅을……!

-와…… 와…… 이클립스……!

=보통이라면 감탄의 댓글이었겠지만ㅋㅋ 이번만큼은 중의적인 의미가 가득.

=중의적 : 두 가지 뜻 이상으로 해석됨.(올해 수능 침. 아직 지식이 남아 있음)

=진짜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기자도 비꼬고 있어ㅋㅋ 원작을 읽기나 하셨는지?????

=안 읽었겠지.

=22 읽으면 이런 내용으로 만들 수가 없지.

-영화 이클립스 요약 : 캐붕과 캐붕의 콜라보.

=이것만 보고 소설이랑 많이 다르구나, 난 소설 안 봤으니 괜찮겠지! 하고 갔더니, 영화 속에서 캐릭터 붕괴가 일어나네???

=캐붕(소설 캐릭터)과 캐붕(영화 캐릭터)의 콜라보.

-이것도 진짜…… 대단한 일임.

=ㅇㅇ 2시간밖에 안 되는 영화 속에서 캐릭터 붕괴가 일어나다닠ㅋㅋ

=처음 : 절대로 용서 못 해!

마지막 : 다 이해해. 용서합니다.

=ㅋㅋ아니, 전개가 그렇게 되면 이해라도 할 텐데ㅋㅋ 설득력은 쥐뿔도 없어ㅋㅋ

-주말드라마 보는 기분.

=222 진짜라면 평생 원수일 텐데 끝에 가서 사과, 후회, 용서, 이해, 눈물의 해피엔딩ㅋㅋ

=고구마엔딩이겠지ㅎ

-차라리 이서준에게 맡기지 그랬냐.

=22 걔 중학교 때 각색한 게 거울이잖아.

=근데 이건 각색도 아님.

=ㅇㅇㅇ 그냥 소재만 같은 다른 영화.

-영화객 다른 거 리뷰 방송하다가 이클립스 이야기에 한숨 쉼ㅋㅋ

=ㅋㅋ찐 반응이라 웃겼다ㅋㅋ

=자기도 모르게 나왔어ㅋㅋ

-이거 만든 회사가 어디야? 어떻게 이걸 개봉할 생각을 했지?

=우리나라만 이렇고 다른 나라 평가는 좋은 거 아님?

=(해외 영화 평가 사이트 링크) 망했습니다.

=와아…….

* * *

사람들이 [이클립스]의 이야기로 떠들썩해져 있을 때, 미리내 예고 [436]팀은 점점 다가오는 졸업 공연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르홀 무대 뒤.

서준과 팀장들은 의상팀에서 만든 의상을 점검하고 음악팀에서 녹음한 음원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했다.

“배경 설치는 나중에 따로 해보자. 오늘은 일단 동선이랑 음악 타이밍만 확인하고.”

“알았어.”

“배우들은 움직일 때 불편한 곳 없는지 바로 말해줘.”

“응!”

“서준아. 조명은 지금 확인해 볼까?”

배경을 맡은 미술팀이 아니라 음악팀 팀장인 김채연의 말에 중학교 때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작게 웃었다. 서준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것도 같이 해보자. 민형이도 채연이랑 같이 가고.”

“어!? 제가요?”

배우들의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있던 박민형이 몸을 움찔 떨며 고개를 들었다.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펴보고 좋은 의견 있으면 말해줘.”

“네넵!”

짝!

서준이 박수를 치며 크게 외쳤다.

“그럼 무대 연습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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