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40화
[올해 수능, 국어 쉬웠고 영어, 수학 어려웠다!]
[가채점으로 만점자 4명 추정!]
[가채점으로 예상하는 등급컷!]
벌써 수능을 치고 일주일이 흘렀다.
아직 학교 일정은 남아 있으니 아침부터 등교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지만, 확실히 수능 전보다 분위기가 풀어지기는 했다.
“어제 음악과에 브블 왔다며?”
“어. 그렇다더라.”
“저 어제 지나가면서 봤어요!”
어제오늘 연기팀의 화제는 브라운블랙의 특별강의였다. 아니, 연기팀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브라운블랙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김채연과 음악팀에게서 강의가 정말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서준은 형들의 인기에 만족스럽게 웃다가, 도착한 메시지에 입을 열었다.
“지금 의상팀 애들 온대.”
“와. 진짜 직접 만드는구나.”
대본을 읽던 김주경이 감탄했다. 다른 아이들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음악팀에서도 직접 작곡한다며?”
“의상팀 이야기 듣더니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긴 건 기존의 곡을 쓰는데 짧은 건 작곡해 본대. 예비용으로 골라둔 곡이 있으니까 문제가 되진 않을 거야.”
한지호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미술팀이 의상을 직접 만든다는 소식에 음악팀도 의지를 불태우는 것 같았다.
“이번 연극 되게 수제작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그러게요! 대본도 서준 선배님이 직접 만드셨고 세트장이랑 의상도 다 팀원들 손으로 만들잖아요!”
강재한의 말에 두 후배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작품들도 몇몇 소품이나 배경을 직접 만들고는 하지만, 이번 연극이 유난히 자체 제작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아.”
어디 한 군데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준의 말에 동의하듯 다들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436]의 의상팀이 제1 연습실로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는 의상팀을 연기팀이 반갑게 맞았다.
미리 누구를 맡을지 정해온 모양인지, 줄자를 든 의상팀 팀원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각자 맡은 배우들에게로 흩어졌다.
“가만히 서 있으시면 돼요.”
그러고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수를 쟀다.
서준의 담당은 의상팀 팀장 박민형이었다.
박민형은 줄자를 들고 서준의 목둘레부터 차근차근 재며 아래로 내려갔다. 서준은 눈을 빛내며 노트에 숫자를 써넣는 민형에게 말을 걸었다.
“민형아. 옷 만들 준비는 잘돼가?”
“네. 원단도 다 사 놨어요. 오늘 치수 재고 바로 제작에 들어가려고요. 아, 선배님. 팔 좀 들어주세요.”
그 말에 서준이 양팔을 옆으로 들자 박민형이 줄자로 서준의 가슴둘레를 쟀다. 수평을 맞추고 너무 꽉 조이지 않게 주의했다. 줄자에 표시된 숫자를 보고 노트에 기록했다.
서준은 문득 미술과 아이들이 칭찬했던, 이 재능 넘치는 후배가 궁금해졌다.
“미술은 언제부터 했어?”
“초등학교 때부터요. 5학년 때였나…… 그때 왠지 미술이 좋아져서 시작하게 됐어요.”
노트를 놓고 다시 줄자를 든 박민형이 서준의 허리둘레를 재며 말했다.
“사실…… 저 선배님이랑 같은 초등학교 다녔어요.”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매실초?”
“네. 5학년 때 전학 온 거지만요.”
사실은 3년 전, 여울 예중에 다닐 때 말하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이 생기지 않아 묵혀둔 이야기였다.
“와. 그럼 초등학교 때부터 후배였네.”
“헤헤.”
박민형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러면서도 서준의 치수를 재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고?”
“엄마한테 들었는데, 저희 집이 서준 선배님이 전에 사시던 집이었대요. 반상회에서 들으셨대요.”
이번엔 진짜 놀랐다.
초등학교 후배야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수백 명이 넘으니 그저 감탄하는 정도로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천하의 서준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종 아파트?”
“네.”
볼펜을 들고 있던 박민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서준이 감탄을 흘렸다.
놀라는 선배님의 모습에 박민형은 어쩐지 웃음이 나와 히히 웃고 말았다.
“지금도 살고 있어?”
“네. 5학년 때부터 쭉이요.”
박민형이 등 길이를 재는 사이, 서준은 전에 살던 집을 떠올렸다.
아주 오랫동안,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았던 우리 집.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많은 추억이 쌓여 좋긴 하지만 예전의 집은 어린 날의 추억이 가득해 특별한 곳이었다.
“그 집 정말 좋아. 햇빛도 잘 들고 벌레도 안 나오거든.”
여러 추억들이 떠올라, 빙그레 웃으며 말한 서준은 아차 싶었다.
‘그건 내 능력 덕분이었지.’
더는 서준이 마나를 충전해 주지 않아 저절로 사라졌을 문양들이 생각났다.
‘지금은 나올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런 서준의 생각과 달리 박민형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부모님이 좋아하셨어요. 전에 살던 집은 어디선가 계속 벌레가 나왔는데 지금 집은 안 그렇거든요.”
“그래?”
처음 몇 달은 능력 덕분이었겠지만, 지금까지도 안 나온다는 걸 보면 관리의 힘이 아닌가 싶었다.
“집에 좋은 기운이 있나 봐요. 옛날엔 감기도 자주 들었는데 이사 온 후부터는 잘 아프지도 않고. 처음 몇 달은 뭐랄까, 집이 따뜻한 느낌? 이 들기도 했어요.”
박민형의 말에 무언가가 떠올라, 잠시 눈을 끔벅이던 서준은 이어지는 말에 웃고 말았다.
“풍수지리가 좋은가 봐요.”
“하하. 그런가 봐.”
박민형이 줄자를 길게 늘어뜨려 서준의 다리 길이를 쟀다.
“미술팀원들이 그러던데, 다른 일들도 도와주고 있다며?”
“아, 네. 그냥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말인데요. 선배님. 저 조명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해 봤거든요.”
“그래?”
서준이 눈을 빛냈다.
그런 서준의 반응에 박민형이 환한 얼굴로 열심히 생각해 왔던 조명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음. 좋은 생각인데? 리허설 때 해보면 좋을 것 같아.”
서준의 칭찬에 박민형이 헤헤 웃었다.
서준이 그런 박민형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번에는 음악팀 팀장 김채연이 조명을 담당하지 않아도 될지도 몰랐다.
쭈그려 앉은 박민형이 서준의 허벅지 둘레를 재고 무릎 둘레를 쟀다. 무릎 부분은 움직임이 많은 관절 부분이니 정확하게 재야 했다.
“진로는 무대 연출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
“아…… 그건 아니에요. 그냥 이것저것 하고 싶어서 도전해 보는 중이에요.”
“의상 제작도?”
“네. 중학교 때, 거울 만들 때요.”
“응.”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바지 리허설 무대를 보면서 이렇게 만드는 게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때는 아직 1학년이라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거울]팀이 자유로운 분위기이긴 했지만, 모든 게 대단해 보이는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중학생 1학년에게는 조금 버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마무리 리허설이라서 수정하기에는 너무 늦기도 했었다.
발목 둘레를 재던 박민형의 손이 멈추었다. 그날을 떠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리허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세상이 변하는 느낌? 같은 게 들더라구요. 세상의 색들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보이지 않았던 게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같은 어둠인데도, 같은 빛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마치,
희미하게 반짝이던 재능이 한순간 빛을 발한 것 같았다.
“그런 감각을 알고 나니까, 거울의 무대 연출이 조금 아쉬웠어요.”
박민형이 앗, 하고 허둥지둥 말을 이었다.
“조금이요! 아주 조금! 세트장의 위치나 어…… 의상 같은 거요!”
“알아. 이해했어.”
연극 [거울]의 팀장 서준이 웃으며 말하자 박민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선배님이라면 고등학교 때도 졸업 공연 때 연극이나 영화를 만들겠구나 싶어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더 잘 만들면 좋을 것 같아서요.”
미르홀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고, 의상도 만들어 보고. 영화 촬영 현장으로 연극 준비 현장으로, 여울 예중에서 해주는 직업 견학도 가 보았다.
“영화도?”
“네.”
쑥스러워하는 박민형의 모습에 서준이 감탄을 내뱉었다. 이 정도 정성이면 1학년인 박민형이 의상팀 팀장을 맡게 된 것도 이해가 갔다.
“아쉽게도 신발은 못 만들지만요.”
“……신발도 만들 생각이었어?”
“네에. 선배님 작품을 더 멋지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정말로 아쉬워하는 박민형의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박민형의 손은 쉬지 않았다.
서준의 발 사이즈까지 잰 박민형이 몸을 일으키고 노트와 볼펜을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이건 그냥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는데…… 처음 몇 달 동안 집에서 느낀 따뜻함? 같은 게 학교랑 서준 선배님한테서도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미리내 예고에서도요.”
그 말에 서준이 잠시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 박민형은 곧바로 이상한 소리를 했다는 듯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에요. 어쩌면 서준 선배님이랑 같은 학교라는 게 기뻐서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네요. 서준 선배님이 살았던 집이라고 하니까 왠지 관심이 가서 여울 예중에 도전해 본 거거든요.”
“그래?”
“네. 예고도 있는데 중학교까지 예중으로 가야 할까 부모님하고 고민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길게 늘어져 있던 줄자를 둘둘 말면서 활짝 웃는 박민형의 모습에 서준도 부드럽게 웃었다.
* * *
졸업 공연 준비에 집중했다고는 해도 [436]팀은 모든 시간을 연습에만 쏟아붓지는 않았다. 적당한 휴식은 필수였다.
서준도 이번 주말은 쉬기로 했다.
오늘은 수능을 끝낸 소꿉친구들과 놀기로 한 날.
1월에 스페인으로 떠나는 박지오를 위해 만나는 것이기도 했다.
“근데 떠나기 전에 볼 거잖아.”
“그건 그래.”
“지오는 연락만 하면 나오니까.”
미나의 말에 서준과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네가 아니지만, 시간이 있을 때는 연락 한 번으로 모이는 사이였다.
‘뭐, 시간이 없을 때도 근처에 있으면 잠깐 만나지만.’
미나가 어느 한 곳을 주시했다.
“저기 오네.”
저 멀리서 쌍둥이가 오고 있었다.
아기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둘 다 체격이 컸다.
야외에서 훈련하는 박지오는 햇빛에 적당히 그을려져 있어 건강하게 보였고 실내에서 공부하는 박지후는 햇빛을 잘 받지 못해서 그런지 조금 창백해 보였다.
‘그렇다고 지후가 건강이 나쁜 건 아니지.’
서준은 익숙하게 능력을 사용해 박지오와 박지후의 건강을 체크하다가 멈칫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항상 하던 건강 체크였는데…… 눈앞에서 반짝이는 선기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뭐랄까…… 저 둘. 딱 봐도 어떤 성격인지 알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미나와 지윤이 키득키득 웃는 사이 쌍둥이가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
“다들 일찍 왔네?”
“아냐. 우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지윤의 말에 씨익 웃던 지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서준의 시선에 눈을 끔벅였다.
“왜? 뭐 묻었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지오를 보던 서준이 시선을 돌려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박지후.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가 꿈인 미나 오웬.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김지윤.
빛나는 축구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박지오.
머릿속에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타석에서 훌륭한 재능을 뽐내고 있는 잭 스미스.
꿈요정을 만났던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인 김수빈.
미술적 재능이 빛나고 있는 박민형.
그리고 황금세대라고 불리는 친구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아내고 꿈을 키워나가는 게 과연 우연일까?
서준은, 그저 둘러대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박지오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지오 : 여기서 연습이 더 잘되는 것 같으니까 미룬 거지.]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밖으로 흘려보내는 선기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서준과 오래 지냈거나 서준이 연기할 때 많은 선기와 마주했거나.
‘아니면 민형이처럼 집이나 학교에 남아 있던 선기가 계기가 됐거나.’
서준이 열심히 선기를 충전했던 여울 예중 학생들과 지금 충전하고 있는 미리내 예고의 학생들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들이나 박민형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니,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것 같긴 했다.
서준은 잠시 이게 문제가 될까 고민했지만, 곧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세계에도 미지의 힘이 남아 있다는 증인.
꿈요정의 흔적이 남아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
‘수빈이는 선기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제이슨은 절대 아니지.’
서준과 만나기 전부터 자신의 재능을 빛냈던 제이슨 무어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딱히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선기가 재능을 깨우고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 재능을 어느 정도로 키울지는 개인의 노력에 달렸으니까 말이다.
‘마기만 조심하면 되겠다.’
지금까지도 연기 이외에는 마기를 꺼내지 않았고 [(선) 중급천사의 부채]로 뒤처리도 확실히 했지만, 앞으로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서준아?”
지윤이 서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서준이 아, 하고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 있어?”
걱정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일 한예대 합격 발표하는 게 생각나서.”
“아. 그랬지!”
“근데 서준이 네가 떨어질 일은 없잖아.”
“수능 가채점도 최저등급은 가뿐히 넘고.”
“어떻게 영어를 만점을 받냐? 이번에 어려웠다며?”
서준과 소꿉친구들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을 음식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갈 음식점도 미나의 맛집 지도가 알려주는 맛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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