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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38화 (43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38화

수능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평소와 같은 메뉴로 든든하게 먹은 서준과 부부는 평소와 다름없이 따뜻하게 차려입고 평소 잘 먹는 반찬이 담긴 수능 도시락을 빠뜨리지 않고 잘 챙겨 차에 올랐다.

“최대한 평소처럼 지내려고 해도 묘하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네.”

“그러게 말이야.”

그런 엄마 아빠와 달리, 정말 평소와 다름없는 기분인 서준은 창밖으로 거리를 구경했다.

기자들이 올 수도 있으니 늦게 가면 다른 수험생들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안다호의 조언에 일찍 출발했기 때문인지 도로가 한산해 보였다.

가끔 학생들과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다 같은 목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신기한 느낌이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이 힐긋힐긋 서준을 살폈다. 긴장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창밖을 구경하는 서준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에 부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켜 놓은 라디오에서 수능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역대 수능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나지막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서준과 부부가 귀를 기울였다.

“라디오에도 나오네.”

“수능 날 뉴스가 재미있긴 하지.”

“맞아.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렇지, 입실 시간 다 돼가면 경찰차 타고 오는 애들도 있고 오토바이 타고 오는 애들도 있잖아.”

“처음 보는 애들 태워다 주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가지 미담과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시간이었다.

하하호호 웃던 서은혜와 이민준이 이내 긴장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남 일일 땐 재미있었는데, 우리 일이 되니까 긴장된다.”

“그러게. 여기서 사고 나면 서준이랑 나랑만 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사고 안 나게 조심할게.”

놔두고 갈 거라는 장난기 가득한 서은혜의 말에 이민준이 운전대를 잡은 손에 약간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런 엄마 아빠의 대화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이런 범죄 같은 부정행위들도 있었지만 안타까운 상황도 종종 있었죠. 춥다며 입혀준 아버지의 외투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는지 모르고 시험을 치다가 울리는 바람에 퇴실당한 학생도 있었고,]

이민준이 움찔 몸을 떨었다.

[어머니가 준비해 준 도시락 주머니에 실수로 들어간 휴대폰이 울렸던 학생도 있었죠.]

서은혜가 움찔 몸을 떨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걱정된 서은혜가 뒤를 돌아보자, 눈이 마주친 서준이 웃으며 도시락과 겉옷 주머니를 살펴보고 말했다.

“없어. 괜찮아.”

서은혜와 이민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는 사고도 나지 않고 제시간에 학교 근처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이 서준과 부부를 반겼다.

“다호 형. 사람들 많아요?”

“응. 어디서 샜는지 기자들도 왔더라. 미리내 예고 애들이 시험을 치는 학교도 알아내기 쉬운 데다가 수능 칠 때 자리마다 이름이 붙으니까 학교를 특정하기는 쉬웠겠지.”

안다호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방송국 카메라도 촬영 중이고.”

수능 날 학교 앞을 찍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많은 학교 중 서준이 시험 칠 학교에서 촬영하는 건 굉장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이러면 거의 들킨 거나 다름없지. 서준이가 편하게 시험 치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씁쓸하게 웃는 안다호의 모습에 서준이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괜찮아요. 다호 형. 카메라 하나 있다고 컨디션이 바뀔 정도로 경력이 적은 것도 아니고요.”

서준의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이다. 오히려 서준이라면 카메라를 만나 반짝반짝 빛날지도 몰랐다.

안다호가 한결 풀어진 얼굴로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은 여기서 헤어지고 조금 떨어져서 가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아버님 회사는 알려졌지만 생방송 뉴스로 나가는 건 파급력이 다르니까요.”

서은혜와 이민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가방을 멘 서준이 조금 코끝이 빨개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춥겠다.”

찬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옷을 매만지는 엄마아빠의 손길에 서준이 쑥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내가 해도 되는데…….”

“엄마가 하게 해줘. 좀 있으면 서준이 너도 성인이잖아.”

서은혜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대견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아직 뽈뽈뽈 기어오던 아기가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말이다.

“네가 성인이 되면 혼자 결정하고 혼자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날 거고 엄마 아빠가 돌봐주는 일도 이제 거의 없을 테니까…… 오늘이 거의 마지막으로 챙겨줄 수 있는 날이잖아.”

“그래. 오늘은 엄마 아빠한테 맡겨.”

엄마 아빠의 말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옷매무새를 정리해 준 서은혜와 이민준이 서준을 꼬옥 안았다.

열심히 하고 와, 잘 치고 와, 평소대로만 해, 긴장하지 마.

온갖 말들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모든 말이 부담될까, 부부는 두려워졌다.

“우리 아들. 도시락 맛있게 먹어.”

“끝나고 영화 보러 가자.”

그래서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번 시험이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는 걸, 그보다 더 좋고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응. 도시락 맛있게 먹을게. 영화도 보러 가자!”

서준이 하하 웃으며 엄마 아빠를 꼬옥 껴안았다.

* * *

새벽 댓바람부터 나와 있던 기자들과 방송국 스태프들의 눈에 걸어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보였다.

“이서준 늦게 오려나?”

“이 학교는 맞는 거야?”

“미리내 예고 애들은 이 근처로 배정받았다던데?”

“그럼 좀 기다리면 오겠지.”

학교 측에서 준비한 마실 거리를 가지고 수험생들이 하나둘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보온병 든 커피를 따라 마시던 기자가 저 끝에서 걸어오는 한 남학생의 모습이 얼른 커피를 뱉어냈다.

“왔다!”

그 한마디에 기자들이 벌떼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소란에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던 수험생들과 학부모들, 수험생들을 안내하던 선생님들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다란 렌즈의 카메라들이 번쩍번쩍 빛났다. 아직 촬영 시간이 아니라 느긋하게 있던 방송국 카메라들도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태프들이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이원생중계로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의 전화를 받은 방송국 쪽도 급하게 움직였다. 피디의 신호에 급하게 앞의 멘트를 마무리한 아나운서가 미리 준비한 멘트를 입에 올렸다.

[올해 수능을 치르는 스타들 중 이 배우를 빼놓을 수 없죠. 바로 이서준 배우인데요. 오스카상, 황금종려상 등 성인 배우들도 받지 못했던 상을 받으며 한국을 알렸던 이서준 배우가 오늘 수능을 치기 위해 시험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지금 바로 현장 연결해 보겠습니다.]

“……헐.”

집에서 아침을 먹고 있던 미리내 예고 아이들과 소꿉친구들이 생방송 뉴스로 나오는 친구의 모습에 잠시 놀랐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걸 아는지 기자들도 마구잡이로 달려들진 않았다. 통행하는 수험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교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서준에게 리포터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서준 배우. 리포터 최유나입니다.”

삼사 방송국에서 세 명의 리포터가 따로 왔지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서준의 인터뷰를 담당하는 건 KBC의 최유나로 정해졌다.

“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잠시 인터뷰 가능할까요?”

“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수험생들도 수험생들의 학부모들도 갑작스러운 연예인의 등장에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수능이라는 커다란 이벤트가 잠시 가려진 것 같았다.

서준이 리포터와 잠시 인터뷰를 하는 사이,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궁금해서 슬쩍 봤다가 서준의 모습에 놀란 표정으로 구경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서준도 리포터도 그걸 알아차리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시험 잘 치세요!”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준이 웃으며 카메라를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사람들이(2팀 직원들이다) 터주는 길을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잘생겼더라.”

“그러게.”

서준이 왔다는 소식에 급하게 구경나온 인근 주민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서준의 뒷모습밖에 보지 못한 주민들은 안타까워했다.

“오오오. 돌아본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던 서준이 뒤를 돌아, 상기된 얼굴로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모님을 발견했다. 안다호와 2팀 직원들도 있었다.

가방에 든 도시락의 무게와 찬바람 하나 느껴지지 않는 목도리에서 부모님의 사랑이 느껴졌다. 서준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꾸벅 인사를 했다. 서은혜와 이민준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 * *

가방을 멘 서준이 최대한 존재감을 죽이고, 마치 교실을 찾는 수험생인 듯 연기하며 학교 곳곳을 돌아다녔다.

자신은 괜찮지만, 자신의 등장에 집중력을 잃을지도 모르는 수험생들을 위해 최대한 능력이 담긴 문양을 여기저기 새겨넣을 생각이었다.

그때 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지호 : 너 뉴스 나왔더라ㅋㅋㅋ

>강재한 : 일찍 갔네! 난 이제 출발했음!

>양주희 : 난 도착했어. 2-4반!

>김주경 : 밥 먹다가 엄청 놀랐어ㅋㅋ

>김주경 : (뉴스 영상)

서준이 김주경이 보내준 영상을 보았다.

말간 얼굴의 자신이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배우 이서준으로서는 여러 번 뉴스에 나왔지만, 학생 이서준으로서는 처음인 것 같았다.

잠시 영상을 보던 서준이 작게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복도 벽에 문양을 새겨넣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험생들로 교실의 모든 자리가 가득 차게 되었다. 친구들이 모두 도착한 걸 확인한 서준이 휴대폰을 종료시키고 가방에 잘 넣어두었다.

입실 시간도 지나고 첫 번째 시험을 칠 시간이 다가오자, 감독 선생님이 들어와 수험생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벽에 새겨넣은 능력에 서준의 수험생3 연기까지 더해지니, 서준을 신경 쓰는 수험생은 없었다. 주민등록증과 수험표로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던 선생님이 놀라긴 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첫 번째 시험은 국어.

서준과 수험생들은 종이 울리자마자 동시에 시험지를 펼쳤다.

서준은 차근차근 읽으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옳은 것, 옳지 않은 것. 잘 보고 구분해 문제를 풀었다. 확실히 모의고사를 쳐봐서 그런지 금세 익숙해졌다. 앞 문제를 모두 풀고 문학으로 넘어간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양반 : (그 광경을 보고 못마땅한 듯 부채를 집어 벙거지를 때리며) 이놈! 거기서 그러지 말고 부네나 불러오너라.

초랭이 : (바쁜 제자리걸음으로 뛰어나가 부네를 데리고 나온다.)……]

대본이다.

서준이 흥미로운 눈으로 지문을 바라보았다.

* * *

점심시간.

미리내 예고 아이들이 모였다. 낯선 학교지만 적당히 자리를 잡아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펼쳤다.

시험을 잘 못 쳤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들 괜찮은 분위기였다. 작게 웃은 서준이 냠냠 계란말이를 먹었다. 조금 식었지만 맛있었다.

“모의고사랑 느낌이 비슷하지 않아?”

“맞아. 그래서 중간부터는 편하게 쳤어. 국어 비문학 문제도 괜찮아서 그런지 시간이 조금 남더라.”

“나도. 이번에 국어가 쉬운 듯.”

한지호가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보온병에 싸온 따끈한 된장국 국물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준 서준이 말했다.

“난 국어 문제 다 풀고 시간이 남길래 문학 지문 다시 읽었어. 대본처럼 보이길래 시선이 가더라.”

“아, 나도. 직업병인가 봐.”

김주경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나도 모르게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탈놀이라는 게 특이하기도 했고.”

“그 지문 문제도 그랬지.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 속에 담긴 의미는? 하고 물으니까 캐릭터 분석하는 느낌이 들더라.”

강재한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그래서 쉽게 풀었어.”

“매일 하는 거니까.”

친구들의 말에 서준도 시험 칠 때를 떠올리며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일단 문제는 제대로 풀긴 했는데…… 괜히 다른 보기들도 신경 쓰이더라. 양반은 거만한 성격인데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라고 적혀 있으니까, 왠지 그렇게 연기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머릿속으로 해보기도 했어.”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점심을 먹던 서준과 아이들은 다음 시험을 위해서 일찍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다음 시험은 영어.

서준에겐 국어 다음으로 쉬운 과목이었다.

* * *

몇 시간 후.

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이 지친 얼굴로, 후련한 얼굴로, 아쉬운 얼굴로, 밝은 얼굴로 하나둘 나타났다. 마중 나온 부모님과 만나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집에 가기도 했다.

우르르 몰려나가는 수험생들과 어느새 몰려든 기자들을 보니 늦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켠 휴대폰에도 그런 안다호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럼 우리 먼저 갈게!”

“잘 가.”

친구들도 먼저 가고 사람들이 드문드문해질 무렵, 서준이 학교를 나왔다.

“나온다!”

“이서준 배우!”

몰려나오던 수험생들 사이에서 바쁘게 서준을 찾고 있던 기자들이 서준을 발견했다. 느지막이 나오던 수험생들도 스타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시험장에 이서준이 있었어?

대기하고 있던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이 서준을 보호하며 교문 근처에 적당한 자리를 만들었다. 아침처럼 짧게 인터뷰를 한 서준은 바로 앞까지 온 차에 올랐다.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다호 형. 엄마랑 아빠는요? 집에 계세요?”

안전벨트를 매며 묻는 서준에 조수석에 앉은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요 앞에 음식점에 계셔. 서준이 너랑 저녁 먹고 영화 보러 가신다고.”

“정말요?”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안다호의 말대로, 근처 음식점의 개인실에서 서준을 기다리고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은 밝은 얼굴로 들어오는 서준의 모습에 뭉클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서준아. 고생했어!”

“수고했다. 우리 아들!”

라고 말하며 꼭 안아주는 엄마 아빠에 서준이 꽃처럼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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