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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35화 (43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35화

“우리 여기서 보고 갈래?”

“그러자!”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송유정의 말에 같은 마음이었던 임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십 분이 넘는 영상이라면 가까운 임예나의 집에서 각 잡고 봤을 테지만 2분 남짓한 영상이라 그냥 여기서 보기로 했다.

송유정과 임예나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두 사람이 다니는 대학 안에 있는 카페로, 여러 학생들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었다.

오늘은 큰 소리가 나오기 쉬운 조별 과제가 아니라 노트북만 두드리는 개인 과제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평소보다 조용했다.

집중할 수 있겠다 싶어 안심한 두 사람은 상기된 얼굴로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전체화면으로 바꾼 화면에, 어느새 레포트는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화면 커서 좋네.”

“그러게!”

넓은 노트북 화면은 손바닥만 한 휴대폰보다 훨씬 좋았다.

송유정과 임예나가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동영상의 배경은 사람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코코아엔터 연습실이었다.

제목에 ‘재연’이라고 적혀 있던 걸 보니, 아예 다시 찍은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그 연습실에 서준이 서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저는 오늘 한예대 실기 시험을 치고 왔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모두 보여드린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요. 모두 새싹 분들과 여러분의 응원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한 서준이 말을 이었다.

[보답의 의미로 실기 시험의 재연 영상을 준비해 봤습니다. 이번 실기 영상은 편집이 약간 들어가서 다른 실기 영상과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모두 재미있게 봐주세요.]

서준의 인사가 끝나고 화면이 까맣게 물들었다가, 다시 밝아졌다.

장소는 변함없이 연습실이었고 서준이 그곳에 서 있었다.

‘……아닌데?’

조금 전과 같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묘하게 찜찜하고 싸한 존재가 거기 서 있었다.

웃고 있던 그가 이내 걸음을 옮겨 조용히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달칵]

화면에 손과 문고리가 클로즈업되어 비쳤다. 배경음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지 문을 잠그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문을 잠근 남자가 뒤로 돌더니,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접니다.]

송유정과 임예나가 눈도 깜빡하지 않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한예대 실기 시험이 화제가 되면서 여울 예중과 미리내 예고의 실기 영상을 다시 찾아봤던 두 사람이라 다른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카메라 앵글이 고정되어 있었던 이전의 두 영상과는 달리, 편집된 이번 영상은 풀샷과 클로즈업 샷이 오고 가며 더욱 화려하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지금은 그저 영상 속 서준의 연기에 푹 빠져 있을 뿐이었다.

노트북 화면 가득,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싸늘한 웃음이 비치자, 송유정과 임예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 * *

[신의 이름으로.]

광기에 물든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2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빡 않고 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송유정과 임예나가 허억, 하고 격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와…… 이게 뭐야?”

저도 모르게 그런 감탄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저히 실기 시험을 위한 연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배경과 옷이 잘 보이지 않는 클로즈업 화면만 본다면 완성된 작품의 한 부분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어쩐지 보이지 않았던 상대역, 제이크 도블마저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름이 돋은 팔을 매만지며 송유정이 감탄하는 사이, 까맣게 변한 화면에 다시 보기 버튼이 떴다.

‘이건 한 번 더 봐야 해!’

한 번이 뭐냐, 질릴 정도로 봐야 했다.

여기가 어딘지, 지금 뭘 하고 있었는지 다 잊어버린 송유정이 얼른 마우스로 손을 뻗었다.

“저기…….”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송유정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왜 지금껏 몰랐는지,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의 뒤에 서 있었다.

다들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과제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스쳐 지나가듯 본 노트북 화면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끝까지 보고 말았다.

옛날의 무성영화가 이랬을까.

소리 없이 화면만 보는데도 충분히 시선을 사로잡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그래도 소리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지금 보시던 거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 * *

-이게 뭐야…… 장난 아니다…….

=22 제대로 악역 아닌가?

=333 진 나트라하고는 다른 느낌으로 싸함.

-실기 영상이라는 게 아쉽다ㅠ 더 보고 싶음.

-칼은 어디서 나온 거야? 갑자기 나와서 놀람ㅋㅋ

=소매에서 나옴. 슉!

-ㅋㅋ지하철에서 보고 있는데 양옆 사람들까지 같이 봄ㅋㅋ

=나도ㅋㅋ 회사에서 보고 있는데ㅋㅋ 하나둘 모이더랔ㅋㅋ

-2분이라서 다행이지…… 넋놓고 보다가 내릴 역 지나칠 뻔했다.

=……난 계속 다시 보다가 지나침ㅠㅠ

-근데 이거 어디서 가져온 장면이야? 영화? 드라마?

=밑에 적혀 있네. 신의 이름으로.

=찾아보니 미국 독립영화임.

=어쩐지…… 부르는 이름이 제이크 도블이더라ㅋㅋ

-원작도 보고 싶어졌다.

=22 앞뒤 상황 알고 싶음. 이거 보려면 어디서 봐야 함?

=333 미국 독립영화는 어디서 봄?

-이서준은 도대체 어디서 이런 영화를 알아내는 거임?

=감독이 조나단 윌이라서 그런 듯.

=?? 그게 누군데?

=쉐도우맨 감독 조카!!

=……헐?!

영상이 업로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시 이서준!’을 외친 기자들이 우르르 기사들을 올렸다.

[배우 이서준, 실기 재연 영상 너튜브에 공개!]

[‘신의 이름으로’, 미국 독립영화제 수상작!]

[쉐도우맨 감독의 조카, 조나단 윌 감독!]

[‘신의 이름으로’! 플러스+에서 보자!]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22 짧아서 더 많이 보는 듯.

-영화제 수상작이었구나. 몰랐음.

=뭐…… 우리나라 독립영화 수상작도 모르잖아.

-플러스에 있다니 보러 가야지!

=플러스엔 없는 게 없음ㅋㅋ

=22 진짜 이런 게 있나? 싶은 것도 있더라.

=근데 그런 것도 재미있어ㅋㅋ

* * *

사람들에게 서준의 실기 영상임을 알려준 송유정과 임예나는 빠르게 짐을 챙겨 학교와 가까운 임예나의 집으로 향했다.

“플러스에 있다니까 바로 보자!”

“외국 독립영화까지 찾아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앞뒤 내용이 궁금하니까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은 익숙하게 TV에 플러스를 연결하고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문득, 레포트가 떠올랐지만 그건 내일의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애써 존재감을 뿜뿜 뿜어대는 레포트를 무시한 송유정과 임예나는 플러스+에 들어가 검색으로 [신의 이름으로]를 찾으려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영상이 업로드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플러스+의 메인 화면에는 벌써 [신의 이름으로]의 이미지가 떠 있었다.

“플러스는 거의 서준이 덕질하는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플러스+의 발 빠른 대처에 송유정과 임예나가 실실 웃으며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TV 화면에 [신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God]라는 글자가 나타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건물, 가장 위층에서 13명의 사람이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야?]

[당신들은 누구야?!]

상황으로 보아하니 13명의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보였다.

서준의 대사가 떠올랐다.

초대.

아마 이 중에 12명의 사람들을 초대한 범인, 서준이 연기했던 캐릭터가 있을 터였다.

그것이 이 영화의 최대 반전이지 않았을까 싶어 조금 김이 샜지만,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서준이가 연기한 캐릭터가 누군지 모르겠어.’

이 모든 일을 꾸민 범인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누구인지 모르겠다.

송유정과 임예나가 빠르게 13명의 얼굴을 훑었다. 일단 제이크 도블이라고 불린 남자는 뺐다. 그러면 12명이 남는다.

여자, 남자가 섞여 있었지만 서준의 보여준 연기는 여자도, 남자도 할 수 있는 연기였다.

‘이 여자인가? 아니, 저 남자가 수상한데?’

범인 찾기에 돌입했지만, 제이크 도블을 빼고 전부 수상해 보였다.

어느새 송유정과 임예나는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13명의 사람들은 꽉 막힌 창문으로 나가는 것 대신, 1층으로 가기 위해 처음에 눈을 떴던 가장 위층에서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건물에는 범인이 설치해 놓은 듯한 함정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3명의 범죄자들이 본성을 드러내며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고 또 함정에 당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죽어 나가다 결국 7명으로 줄어들었다.

영화는 15세 관람가인 만큼 적당히 보여줄 건 보여주고 숨길 건 숨겼다. 감독이 잘 조절한 모양이었다.

일곱 명이 한 방에 갇혔다. 방에는 아무런 물건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여기는 1층.

이제 저기 있는 문밖으로 나가면 모든 일은 끝이었다.

기뻐하는 일곱 명과는 달리, 송유정과 임예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부터 서준이 연기한 부분이 나올 차례인 것을 직감했다.

카메라가 한 남자를 비추었다.

13명 중에 가장 평범해 보이던 남자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 남자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송유정과 임예나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서준이 보여줬던 광기와는 다른 광기가 남자의 눈동자에 서렸다.

뒤쪽으로 걸어간 남자가 벽의 한 곳을 눌렸다. 그에 창문과 문을 막듯, 철컹철컹 철창이 떨어졌다.

아하.

서준은 저 모습을 ‘문 잠그는 연기’로 표현한 모양이었다.

[접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여기로 초대했습니다.]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버럭 화를 내던 제이크 도블이 칼에 찔렸다. 이미 여러 함정으로 상처를 입은 상태라 쉽게 당하고 말았다. 13명 중 가장 소심해 보이던 청년이 겉옷을 던져 범인을 방해했다.

[신의 이름으로.]

광기에 물든 남자가 경건한 얼굴로 웃었다.

여기까지가 실기 영상이었다.

남자가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버튼을 눌렀다.

양옆 벽의 틈새가 열리고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제이크 도블과 함께 두 명이 죽어 나가고 두 명이 심하게 다쳤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한 명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겉옷을 던졌던 청년이었다. 화살이 다리에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청년이 가쁘게 숨을 쉬었다.

화살이 멎었다.

남자는 경건한 얼굴로 죽어간 범죄자들이 저지른 잘못들을 늘어놓으며 중상자들의 몸에 단검을 쑤셔 박고 뽑아냈다.

심판, 신의 이름, 징벌, 처벌, 엄징 등.

남자가 내뱉는 단어들을 듣던 청년이 덜덜 떨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나, 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요. 심, 심판이라면서요? 징벌이라면서요? 그, 그럼 죄가 없는 절 죽이면 안 되는 거잖습니까……!]

[…….]

남자가 청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설득된다고 느껴진 탓인지 청년의 말이 빨라졌다.

[저를 범죄자로 생각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뭐든 솔직하게, 제가 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해명하겠습니다! 올해입니까? 아니면 작년입니까?]

법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울면서 애원했다.

[밖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발…… 전 범죄 같은 건 저지르지 않았어요……!]

[알아.]

[제발! 제발……네?]

엎드려 빌던 청년이 들려온 남자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잘못 들었을 거다. 하지만 청년의 눈동자는 불안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바, 방금 무슨……?]

[다 안다고. 너 죄 안 지은 거.]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청년의 허망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그냥]

그의 멍청함을 비웃듯, 남자는 지금까지 ‘신’을 부르며 경건했던 얼굴을 집어치웠다.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야.]

숨기려고 해도 은근히 삐져나오던 잔인한 즐거움을 이제는 대놓고 드러낸 남자가 칼을 든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이 세상에 신이 어디 있어?]

그리고 화면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신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God]

[조나단 윌 Jonathan Will]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송유정과 임예나가 쩌억 입을 벌렸다.

* * *

>조나단 : JUUUUUN?!!!

>조나단 : 이게 뭐야?!?!

‘빠르네?’

영상을 올리고 15분도 안 돼서 조나단 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 빠른 속도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LA도 지금 오후라 일찍 볼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올 줄은 몰랐다.

[436]팀이 제1 연습실에 모여, 커다란 스크린으로 [신의 이름으로]를 시청하는 동안 서준이 조용히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다들 화면에 집중하는 터라 서준이 나가는 것도 알지 못했다.

<ㅎㅎ 봤어요?

>조나단 : 당연히 봤지! 나도 준의 채널 구독해 놨거든!

그런 줄은 몰랐던 서준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조나단 : 삼촌도 같이 봤어! 잘했다고 하시더라.

나중에 라이언 감독님에게도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서준이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조나단은 어땠어요?

>조나단 : 나도 당연히 잘 봤지! 연기 잘하더라!

>조나단 : 내 머릿속에 있는 범인을 그대로 뽑아낸 느낌이었어. 상대역이 없어도 그 정도로 인상이 깊게 남을 줄은 몰랐…… 아니, 이게 아니지-!!

>조나단 : 네가 이 대본에 관심 있는 줄 알았으면 나중에 만드는 건데!

>조나단 : 그럼 더 멋진 영화가 나왔을 텐데……!

어쩐지 조나단이 대성통곡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서준이 킥킥 웃으며 조나단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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