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34화
‘……문을 왜?’
면접관들이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문을 잠근 서준이 무슨 일 있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허공을 향한다. 면접관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접니다.”
서준이 상냥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여러분들을 여기로 초대했습니다.”
서준의 대사는 마치 여기가 어디고, 누가 자신들을 초대했는지 의아해하는 ‘여러분들’의 의문을 풀어주는 듯했다.
‘초대?’
면접관들이 단번에 단순한 파티 초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게 마냥 즐겁고 행복한 파티라면 이서준이라는 유능한 배우가 이렇게 질척하고 찜찜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서준의 눈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한군데씩, 앉아 있는 면접관들의 시선보다 위쪽에 머물렀다.
“강도. 살인. 사기.”
마치 그곳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서 있는 듯했다.
“가정폭력. 유괴. 강간.”
6명의 범죄자가 거기에 나타났다.
그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고 있던 서준의 표정이 일순 처연해졌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고해성사를 하러 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신실한 사제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모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으셨군요.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방긋 웃었다.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신께서 절 보내셨으니까요.”
그 급격한 분위기 변화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면접관들이 그렇듯, 보이지 않는 여섯 명의 범죄자들도 그렇게 느낀 듯했다.
서준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무언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했다.
‘씨X 새끼가…… 무슨 개소리야!?’
여기에 초대될 만큼 범죄자들의 성격은 불같았다.
가장 먼저 폭발한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서준에게 다가갔다. 서준은 그런 남자를 보고도 뒤로 물러나거나 주춤거리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오히려 미소가 짙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준의 고개가 조금 위로 향했다. 서준보다 키가 큰 남자가 바짝 붙자 시선을 맞추기 위한 듯했다. 어쩌면 남자는 서준의 멱살을 쥐고 있지도 몰랐다. 주먹을 날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문을 잠근 서준을 기억하고 나갈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나름 머리를 쓴 모양이었다.
자신보다 작은 서준의 체격을 보고 언제든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방심한 탓도 있었다.
그렇다. 방심.
어느 순간 서준의 손에 칼이 들려있었다.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서준은 날카로운 칼로 제 멱살을 잡은 남자의 옆구리를 쑤셨다.
방어가 전혀 되지 않는 얇은 옷을 단번에 뚫고 단단한 살을 파고 들어간 칼이 더욱 깊게 들어가도록, 서준은 손등에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손잡이를 꽉 쥐었다.
갑자기 나타난 고풍스러운 단검에 마치 그 세계 속에 초대된 사람들처럼 숨죽이고 있던 면접관들이 덜컹, 몸을 움찔했다.
상대 배역이 없는 탓에 칼은 허공을 찌르고 있었고 진짜 칼이 아니라 칼날은 뭉툭했다.
하지만 서준의 서늘한 웃음과 칼을 쥔 손에 온몸의 힘을 실은 듯한 움직임에 면접관들의 몸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서준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손목을 돌려, 상처를 헤집듯 칼을 더욱 깊숙히 쑤셔 넣었다. 어디선가 귀를 찢는 남자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서준이 남자의 옆구리에서 칼을 빼내고 뒤로 두 걸음 정도 물러났다.
쿵! 하고 옆구리를 감싸며 쓰러지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서준은 칼을 아래쪽으로 휘둘렀다. 칼을 흠뻑 적시고 있던 시뻘건 피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례대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뉘우치고 싶어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상냥하지만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가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럼 기꺼이 바람대로 해드려야죠.”
서준이 안쓰러운 듯 바라보는 표정으로, 그러나 그 눈빛에 담긴 즐거움을 숨기지 못하고 손에 든 칼을 능숙하게 돌렸다. 그 모습은 이런 짓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서준은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상처를 두 손으로 누르며 끙끙 앓고 있는 남자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범죄자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몇몇은 이 미치광이에게서 탈출구를 찾는 듯했다.
“제이크 도블 씨.”
이름이 불린 남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의 범죄와 그 증거들이 적힌 초대장까지 보냈으니 이름을 모를 리가 없건만, 왠지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남자, 제이크 도블이 도움을 청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텅 빈 건물 안에는 휘두를 무기조차 구하기 힘들었고 오늘 처음 본, 거기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자신을 구해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서준이 칼을 거꾸로 쥐고 위로 들어 올렸다. 면접관들 눈에는 마치 뭉툭한 칼날이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두려움으로 떨리는 제이크 도블의 눈을 보며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동시에 높게 들었던 칼을 아래로 힘껏 내리박았다.
“4개월 전, 롬행크스를 기억하십니까?”
보이지 않는 제이크 도블을 통과한 뭉툭한 칼날이 바닥에 박혔다. 얼마나 힘껏 내려쳤는지 칼날이 깊숙하게 바닥으로 들어가 거의 손잡이 앞까지 박혀 버렸다.
그에 면접관들은 화들짝 놀랐다가, 끼익,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칼날에 촬영에서 쓰는 소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짜 칼 같은 위험한 소품을 실기에 사용할 수 없는 걸 잠시 잊고 말았다.
그만큼 서준의 자유 연기에 푹 빠진 것이었다.
“그 지역의 어떤 집에 아주 마음씨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죠.”
끼익.
푸욱, 하고 살을 파고드는 소리 대신 바닥과 부딪힌 칼날이 손잡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마찰음이 들렸다.
“동네 주민들에게도 어린아이들에게도 친절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저와는 다른, 베풂이라는 사명을 가지신 신실한 분들이셨죠.”
끼익.
그건 남자의 비명소리 같기도 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항상 좋은 분들이 모두 먼저 신에게로 가버리시는지.”
끼익.
질척한 소음이 면접관들의 귀에 달라붙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제 사명이겠죠.”
남자의 몸에서 튀어나온 피들이 날아가 서준의 얼굴과 옷에 묻었다.
“제이크 도블씨. 부디, 신의 곁에서 그분들에게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끼익, 하고 칼을 박아 넣을 때, 서준이 빠르게 뒤로 돌아 무언가를 쳐냈다.
무기로 쓸 만한 건 모두 치워뒀으니 겉옷이라도 휘두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항도 익숙했다. 옷을 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서준이 흐트러진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아는 사이는 아닐 텐데……”
면접관들이 침을 삼켰다. 저 연기 속 세상에서는, 아마 저 말끔한 얼굴에 시뻘건 피가 잔뜩 묻어 있을 터였다.
서준의 눈에 범죄자들의 도움을 받아 서준과 떨어진 곳으로 질질 끌려 이동하는 제이크 도블이 보였다. 숨을 헐떡이는 걸 보아하니 금방 죽을 것 같았다
“뭐, 상관은 없습니다.”
오늘은 조금 이르긴 했지만, 위기 앞에서 함께 움직이는 범죄자들을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늦든 빠르든 여러분 모두 회개하게 될 거니까요.”
범죄자들의 얼굴이 질린 것처럼 보여, 미치광이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럼 지금부터. 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위대한 신의 사명을 받은 미치광이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가 들고 있는 칼에는 아직도 피가 남아 있는 듯했다.
면접실 창문으로 붉은 노을빛이 쏟아져 내렸다.
서준의 얼굴과 옷, 들고 있던 칼까지 노을빛에 물들었다.
피에 붉게 물든 미치광이가 그 누구보다 신실한 얼굴로, 진심을 담아 상냥하게 말했다.
“신의 이름으로.”
* * *
“시험 잘 봤어?”
서준이 차에 오르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안다호가 웃으며 물었다.
“네. 다호 형.”
연기를 끝냈는데도 멍하니 보고 있던 면접관들을 보면 확실히 잘 본 것 같았다.
“칼은?”
“좋던데요? 힘껏 내려쳐도 고장도 안 나고.”
서준이 오른쪽 팔을 아래쪽으로 뻗자, 겉옷 소매에 넣어두었던 단검이 연기할 때처럼 슉, 하고 내려왔다. 안다호가 빙그레 웃었다.
“소매 크기 맞춰서 찾아온 보람이 있네.”
“다들 갑자기 칼이 나오니까 엄청 놀라시더라고요.”
“그래? 뭐 힘든 건 없었고?”
“카메라가 한 대밖에 없어서 앵글 안에서 연기하는 게 조금 곤란하긴 했어요.”
“그럼 화면 밖으로 나간 거야?”
안다호가 걱정스러운 듯 백미러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한예대 연기과는 지원자의 숫자가 많아 면접실을 다섯 군데로 나누었다.
그리고 1차로 해당 면접관들이 실력이 부족한 지원자들을 구분하고, 2차로 모든 연기과 교수들이 모여 1차 합격한 지원자들의 영상으로 합격 여부를 판단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영상이라 안다호는 순간 걱정이 들었다. 잘 연기해 놓고 앵글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아예 찍히지 않았다면 큰일이었다.
그런 매니저의 모습에 14년이라는 긴 시간을 카메라 앞에서 보낸 배우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바닥까지 화면에 들어갈 정도로 넓게 찍혀서 동선을 조금 수정하니까 괜찮았어요.”
안다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서준의 경력을 떠올리고는 웃고 말았다.
걱정할 걸 걱정해야 했다.
“잘했어. 바로 집으로 갈 거지?”
“아니요. 형. 회사로 가주세요.”
서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 안다호가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 바로 찍으려고?”
“네. 이 기분 그대로 찍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 알았어.”
서준을 태운 차가 코코아엔터로 향했다.
“근데 영상 올라가면 조나단이 엄청 놀라겠는데?”
“그쵸? 그래서 일부러 말 안 했어요.”
서준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영상을 보고 깜짝 놀라 연락할 조나단 윌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서준아. 영상 편집하고 올리는 건 어때?”
안다호는 서준을 기다리면서 떠올렸던 생각을 이야기했다.
“다른 연기학원 영상이야 홍보 때문이라 밋밋하지만, 서준이 네 영상의 목적은 다르니까 멋지게 편집해도 괜찮을 것 같던데 말이야.”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관심을 가지는 서준의 실기 영상은 이벤트성 영상에 가까웠기 때문에, 마음껏 편집해도 상관없을 터였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눈을 빛냈다.
“그러네요! 그 생각은 못 했어요. 학교에서 올리는 게 아니니까 편집해도 되는구나.”
서준을 흘깃 본 안다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준의 표정을 보아하니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럼 편집해 줄 사람 구할까?”
“으음.”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다호 형. 제가 한번 해볼래요.”
“네가 직접?”
“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다른 건 손댈 필요 없고 잘 이어붙이기만 하면 되잖아요.”
눈을 동그랗게 떴던 안다호가 이어진 서준의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른 영상보다 편집하기는 쉬울 터였다.
“그것도 괜찮겠네.”
서준이 신이 난 얼굴로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는 손이 아주 빨랐다.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영상 편집 책 사요, 형. 감독님들한테 괜찮은 책 없는지 물어볼게요.”
“그래. 그러자.”
그런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가 웃으며 내비게이션에 가까운 서점을 검색했다.
* * *
그리고 며칠 후.
너튜브 채널[JUN]에 예고도 없이 한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그에 곧바로 구독자들에게 알림이 전해졌고,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새싹들과 일반인들, 기자들이 너튜브 앱을 열었다.
레포트를 쓰고 있는지 아무 말이나 쓰고 있는지, 반쯤 넋 놓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임예나와 송유정도 알림에 흐느적흐느적 휴대폰을 보았다.
“……서준이 채널이네?”
반쯤 감겼던 눈을 또렷해졌다.
쓰고 있던 레포트를 잊지 않고 저장한 임예나와 송유정이 들뜬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영상이지?”
“실기 시험 보고 간단히 인사 영상이라도 올린 게 아닐까?”
“아, 그럴지도.”
실기 시험 잘 보라고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감사 인사 영상을 올렸을 수도 있었다.
“실기 시험 때 어떤 연기를 했는지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게.”
송유정과 임예나도 서준의 실기 시험 영상이 올라오지 않는 사실에 아쉬워했었다.
“어떤 작품인지 알면 찾아봐야지.”
“나도 같이 보자.”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려는 송유정과 임예나가 업로드된 영상의 제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예대-실기/자유 연기/재연]
<원작 : 신의 이름으로(조나단 윌)/In the name of God(Jonathan Will)
배우 : 이서준
편집 : 이서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