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33화
“한예대 경쟁률이 147 대 1이라고 하던데!!”
“38명만 뽑는다면서요?”
다음 입시를 위해 미리미리 해당 내용을 찾아본 박연지와 김영찬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왔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알았던 경쟁률을 떠올린 3학년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지원자 수 기억 나냐?”
“5,500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끝에 두 자리는 정확하게 기억 안 나.”
“5,586명이야.”
고개를 젓는 강재한 대신 서준이 대답했다.
생각보다 센 경쟁률을 보고 꽤 놀라 기억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작년, 재작년, 그전까지도 한국예술대학 연기과 경쟁률은 100이 넘었었다. 기본적으로 몇천 명이 지원한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생각해도 어마어마하네.”
“우리 학교 시험 칠 때 경쟁률이 얼마더라?”
“13 대 1이었던 것 같은데.”
한지호가 얼른 휴대폰을 꺼내 3년 전 미리내 예고 경쟁률을 찾아보았다. 서준과 아이들이 모두 흥미로운 얼굴로 한지호를 바라보았다.
“13.55 대 1. 40명 뽑는데 542명 지원했대.”
“갑자기 10배로 늘었네.”
“그때도 엄청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은 진짜 장난 아니다.”
서준과 3학년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실기 시험 때, 심사위원들이 지원자들 연기 다 보는 거겠지?”
“5,500명을? 와…… 시간 엄청 걸릴 듯.”
“왜 갑자기 이렇게 늘었을까요?”
김영찬의 물음에 김주경이 대답했다.
“대학 입시는 고등학교랑 달리 나이제한이 없으니까, 재수도 하고 삼수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다른 일을 하다가 배우가 되고 싶어서 오는 경우도 있을 테고. 아니면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는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고등학생으로 지내면서 꿈을 찾았을 수도 있지.”
서준의 말에 강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처럼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꿈꾸는 애들도 드물긴 하겠다.”
“근데 그게 540명.”
한지호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지망생은 많은데 정작 배우가 돼서 계속 연기를 해나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놀랍다.
“근데 선배님은 대학 왜 가시는 거에요?”
박연지의 물음에 김영찬과 3학년들도 궁금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하긴 나도 궁금하긴 했어. 서준이 너라면 대학은 안 가고 바로 연기 시작할 것 같았거든.”
“실기 열심히 준비하는 건 네 성격에 당연한 일이니까.”
강재한의 말에 한지호와 김주경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연기를 할 때는 어떤 작품이든, 어떤 상황이든 항상 최선을 다하지.”
“대본 하나도 쉽게 고르지 않고 열심히 고민하고.”
그들의 친구, 이서준이라는 배우는 그런 배우였다.
어떤 순간이든 연기에 엄격하고, 연기를 사랑하는.
그래서 더더욱 곧바로 배우 생활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의 말에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음. 공감대 형성이랄까?”
“공감대?”
“우리나라는 대부분 대학을 가잖아. 물론 안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보통’의 생활을 많이 겪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
물론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도 연기할 수는 있지만, 겪어보면 더 잘 연기할 수 있을 터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무 연기에만 파묻히지 않게, 적당히 평범한 생활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이쪽은 엄마 아빠와 다호 형의 의견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곧바로 배우 생활에 전념할 서준이 걱정된 것이었다.
보통 아역 배우나 일찍 연예인이 된 사람들은 매니저나 다른 사람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관리해 주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보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어려워했다.
물론 서준이야 본인부터가 스스로 하는 성격이었고 부부와 안다호도 서준이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게 했지만, 그건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은 미성년자 때의 일이었다.
미성년자와 성인.
본인이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을 지는 자유도와 책임감부터가 달랐다.
그래서 서은혜와 이민준은 서준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성인의 책임을 지고 연예계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반은 성인, 반은 학생 같은 대학생으로 지내길 바랐다.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며 천천히 성인으로서의 무한한 자유와 무거운 책임이 생긴 자기 자신을 인식해 나가길 바랐다.
같은 학교 생활이라도 미성년자로 지내는 고등학교 생활과 성인으로 지내는 대학교 생활은 다르니까 말이다.
엄마 아빠와 안다호의 의견에 서준도 동의했다.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신 서준이 말을 이었다.
“학교 다닐 때 정도의 스케줄이면 대학도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하긴. 대학은 휴학할 수도 있으니까.”
“응. 게다가 대학 가면 신선한 작품들도 많을 것 같고.”
이해가 가는 서준의 진학 이유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지막에 붙은 서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목적이구나!”
“……아냐.”
한지호의 외침에 찔린 서준이 뒤늦게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
“아닌데……”
“확실히 상업 영화보다 학생들이 만드는 영화는 주제가 다양해서 연기하긴 재미있을 것 같긴 해.”
“응. 나도 그렇게 생각……!”
낚였다.
강재한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던 서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찐한 시선에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그 모습에 3학년들과 박연지, 김영찬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한바탕 웃고 난 후, 김주경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한예대에서 실기 영상 공개 안 한다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나도 좀 아쉬웠어. 서준이 실기 영상 보면 공부할 게 많거든. 1, 2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몰입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방법 같은 거 말이야.”
“저희 학원에서도 선배님 실기 영상을 보고 비슷하게 연습해서 시험 보는 애들도 많아요.”
박연지의 말에 김영찬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게?”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똑같은 배역을 연기하면 연기하는 거지, 비슷하게는 무슨 말일까?
“똑같은 배역에 똑같은 연기를 하기엔 정답 같은 선배님 영상이 있으니까 비교되잖아요. 그래서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배역을 연기하는 거죠.”
아하.
박연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입을 열었다.
“나도 생각해 봤는데, 내가 다시 찍어서 올리면 어떨까 싶어.”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시 찍는다고?”
“응. 너튜브에 찾아보니까 연기학원에서 홍보용으로 올린 영상들이 많더라고. 예고나 대학의 실기 영상은 비공개라 못 올리니까 실기 때 했던 연기를 재연해서 업로드한 영상 말이야.”
“아, 나 본 적 있어. 우리 학원도 다른 학교 애들 영상 찍더라. 나는 학교에서 실기 영상을 공개해서 안 찍었지만.”
“나도 그런 식으로 찍어서 올리면 어떨까 싶어.”
좋은 연습실도 있고 그 장면을 찍을 카메라도 많았다. 영상을 올릴, 수많은 구독자가 있는 너튜브 채널[JUN]도 있으니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엄청 좋은데?”
“그러게. 못 볼 줄 알았는데!”
“꼭 올려주세요! 선배님!”
친구들과 후배들의 성화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10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예술대학, 한국예술대학교에서는 10월 6일부터 시작한 시험의 실기 시험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한예대의 학과들은 수많은 지원자들을 위한 실기 시험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중,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스타, 이서준의 지원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연기과는 5,586명이나 되는 지원자들을 살펴보기 위해 14일 동안 시험을 진행될 예정이었다.
[배우 이서준, 한국예술대학교 지원!]
[한예대를 졸업한 스타들은?!]
[배우 이서준, 배우 이다진, 박도훈의 후배가 될까?]
[한예대 연기과 지원자 총 5,586명!]
[특기자 전형은 없다! 오로지 연기력으로 판가름한다!]
그렇게 시작된 한예대 수시가 벌써 11일째가 되었다.
“지원자는 조금 늘었는데…… 화제는 몇 배로 불었네.”
연예부 기사마다 한예대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오후에 있을 실기 시험을 위해 한예대에 온 학생 하나가 질린 얼굴로 말하자, 오늘 비슷한 시간대로 배정받은 같은 연기학원 학생들도 모두 같은 표정을 지었다.
“쌤. 다른 때보다 더 기사가 많이 나온 것 같죠?”
그 말에 오늘 시험을 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조언할 겸 따라온 연기학원 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야. 작년엔 이렇게 기사가 많지는 않았는데…….”
한예대에 배우나 가수가 입학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닌 만큼 기사가 줄줄 나오는 것이 이해하지만 역시 이서준 정도 되는 스타는 그 양부터가 엄청난 것 같았다.
“근데 기사가 안 나오는 걸 보니 실기 영상은 역시 공개 안 할 건가 봐요.”
“한 사람 때문에 규칙을 바꾸진 않겠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운 눈치였다.
“이번에 합격 못 하면 이서준 거 보고 연습하려고 했는데 아쉽네.”
“나도. 5,500명이나 되는데 합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야. 5,500명이 전부 경쟁자는 아닐걸. 그냥 지원만 해본 사람들도 있을 거야.”
배우가 꿈이라 한예대에 지원했지만, 오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는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허수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경쟁률은 조금 낮을 거야.”
강사의 말에 다들 조금 긴장이 풀린 표정을 지었다.
“이제 대기실로 들어가자. 난 못 들어가니까 다들 아까 말했던 거 잊지 말고.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해.”
“네에!”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학생들에 강사가 다시 한번 조언을 할 때, 한 남학생이 징징 울리는 휴대폰을 꺼냈다. 쏟아지는 메시지를 읽는 눈이 천천히 커지기 시작했다.
“……헐. 쌤.”
“응?”
“……대기실에 이서준 있대요.”
“……뭐?”
“이서준이요! 이서준!”
순간 주변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몇 초 후.
“이서준!?”
“이서준이 오늘이라고!?”
무작위로 결정되는 실기 시험 시간.
최종 보스의 등장에, 오늘 같은 시간대에 시험을 치는 수험생들이 모두 경악했다.
* * *
묘하게 조용한 대기실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미안할 일은 아닌데 미안하네.’
온전히 대학 쪽에서 정해주는 순서이니만큼 서준이 잘못한 건 없었지만, 김하운의 반응을 떠올리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울 예중에서 서준의 바로 뒤에 시험을 치고, 미리내 예고에서 서준의 바로 앞에 시험을 쳤던 김하운은 서준과 자신의 한예대 시험 날짜가 나오는 날까지 다리를 달달달 떨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시험 날짜가 나오던 날.
자신은 1일 차에, 서준은 11일 차에 배정받은 걸 알게 된 김하운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까지 질렀다.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여주는 성격이 아닌데 말이야.’
그 정도로 김하운이 초조해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보면 누군진 몰라도 자신의 바로 뒤에 연기할 학생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봐주면서 연기할 생각은 없는 서준이 쓰게 웃으며 들고 온 대본에 집중했다.
시간이 흘러, 학생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후반부쯤 서준의 차례가 되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서준이 면접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면접실에 들어서자 카메라 한 대와 세 명의 면접관이 보였다. 면접관들의 앞에는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서준의 인사에 면접관들이 눈을 빛냈다. 오전부터 지금까지 학생들의 연기를 보느라 조금 지루했는데 정신이 확 들었다.
“저기 앉으세요. 면접 후 지정 연기, 자유 연기를 보겠습니다.”
“네.”
면접관의 손짓에 의자에 앉은 서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준의 자기소개에 면접관들 사이에서 숨길 수 없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알고 있어도 새삼 놀라운 경력이었다.
그리고 몇 개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한예대에서 준비한 지정 연기가 이어졌다. 면접도 지정 연기도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짧았던 지정 연기는 조금 더 보고 싶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 하나가 남았지.’
어디서 찾아오는지 매번 찰떡같은 작품 선택과 연기력으로 화제가 되는 이서준의 자유연기.
면접관들이 기대 서린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준비해 온 자유 연기를 보여주세요.”
어쩐지 보고 있는 자신들이 더 떨리는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교수들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동선 밖으로 치웠다. 그리고 다시 면접관들의 앞에 섰다.
눈빛이 진지해졌다. 대사를 받아줄 인물이나 배경이 없는 만큼 더 집중하고 몰입해야 했다.
서준이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여전히 현역 배우로 활동 중인 면접관은 어쩐지 어디선가 ‘레디, 액션!’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서준이 만드는 세계 속에 완전히 빨려 들어간 느낌.
그런,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감이 서준에게 있었다.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면접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면접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검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제법 즐거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소리는 없었지만 움찔거리는 서준의 모습은 가볍게 허밍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서준의 연기를 숨죽이고 바라보던 면접관들이 눈을 끔뻑였다.
즐거워 보이는데…… 묘하게 기분이 나쁘고 찜찜해졌다.
조금 전까지 산뜻했던 공기가 무겁고 질척하게 가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서준은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내리눌렸다. 그러고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조용히 움직였는지 발소리도 나지 않았다.
면접관들의 시선이 서준을 따라 움직였다. 서준은 면접관들 쪽으로 다가온 것도 아니고 옆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뒤로 돌아 자신이 들어온 문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달칵-
문을 잠갔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그 소리에,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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