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30화 (43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30화

-근데 슬슬 그 이야기 나올 때 안 됐냐?

=그 이야기?

=이서준 졸업 공연.

=오. 까먹고 있었는데 감사. 이서준 팬임?

=이서준 팬은 아닌데 작품은 기다리고 있음.

=ㅋㅋ저기옄ㅋㅋ 팬 아니면 이렇게 날짜 보면서 기다리고 있지 않아요ㅋㅋ

=22 아직 기사도 안 났는데 말이야ㅋㅋ

-근데 이야기 나오니까 궁금하긴 하네.

=3년 전에는 연기학원에서 슬슬 이야기 나오던데.

=이번에도 건너건너 연기학원에 다니는 지인들이 소문을 물어다 주지 않을까?

=내 주위엔 없어ㅠㅠ

-이번엔 기존 연극 작품이려나? 아니면 또 각색이려나?

=각색이면 좋겠다. 재미있는 소설 발굴!

=222 거울 재미있게 봄.

=333 내가 책을 읽을 줄이야! 거울 작가님 차기작도 재미있더라.

=오. 차기작 나왔음?

-미리내 예고는 영화도 가능하다던데 영화로 나오려나?

=연극이었으면! 정식 공연 보러 가고 싶다ㅠㅠ

=22 이서준 연기 직접 보고 싶다

-(두)알아왔음(둥)

=오오오!

=기다리고 있었다!

=정보1. 연극.

=와! 연극! 정식 공연 기대해도 되나!?

=이건 예상하고 있었음.

=22 영화객 인터뷰에서도 연극할 것 같다고 했지. (영화객 칸 영화제 이서준&에반 블록 인터뷰 영상 링크)

=정보2. 장르는 SF.

=?? SF라고??

=이건 예상도 못 함;;;

=연극에 SF라니…… 상상이 안 된다.

=정보3. 이서준 순수 창작 연극.

=헐??

=……서준이가 창작한 연극이라고??

=이게 제일 놀라움ㄷㄷㄷ

=오디션 캐릭터들 정보도 있는데 이건 별로 안 중요할 것 같아서 말 안 할 거임.

=오오. 스포일러 방지 감사!

-근데 저거 믿어도 되는 건가?

=222 장르도 그렇고 창작이라는 내용도 그렇고 믿기지가 않는데.

=333 너무 뜬금없긴 하다.

-저도 이야기 들었는데 저거 맞대요.

=22 이서준 창작 SF 연극.

이서준의 차기작, 미리내 예고 졸업 공연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을 떠돌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화제에 목이 마른 기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이서준의 차기작만으로도 충분히 기삿거리가 되는데, 내용도 만만치 않게 흥미진진했다.

“연극도 연극인데…… SF라…….”

“연극에서는 드문 장르긴 하지.”

연극이 정식 공연이 된다면 일반인도 배우 이서준의 연기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데다가 장르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SF였다.

언급될 때마다 이렇게 화제가 되니 기자들이 서준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였다.

“거기다 제일 중요한 건 이거지.”

“이서준 창작 작품.”

잠시 사무실에 침묵이 돌았다.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창작이라니 생각도 못 했네. 근데 거울 각색된 거 보면 대본 쓰는 건 잘할 것 같더라.”

“창작은 조금 다른 일이긴 하지만…… 묘하게 믿음이 가지 않아? 이서준은 잘할 것 같다는 믿음이.”

“이서준 배우는 어떤 작품을 만들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마 대중들도 기자들과 같은 마음일 터였다.

“근데 신기하지 않아요? 다른 배우들은 이렇게 활동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에요.”

확실히 학교 활동이라도 대부분 작가나 감독이 따로 있게 마련이었고, 배우가 직접 두 팔을 걷어붙여서 각색하고 창작 대본을 만드는 건 드문 일이었다.

“보통은 소속사에서도 말리지. 배우가 이서준이면 얼마나 돈이 되는 작품들이 많겠어. 한번 삐끗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이력에도 금이 가고.”

기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 이력을 생각하면 흠은 안 되겠지만…… 이서준의 첫 실패로 인상 깊게 남을걸.”

기자로서는 연극이 성공해도 실패해도 기사로 쓰기엔 좋지만 말이다.

“내 배우였으면 진짜 위험한 선택은 안 하고 지금까지의 이력 그대로 끌고 갈 텐데 말이야. 코코아엔터는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니까.”

“성인이면 몰라도…… 아직 학생이라서 괜찮지. 도전해 볼 만한 나이잖아.”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코코아엔터에서 연락 왔어. 다 맞는 정보래!”

그 말에 그제야 기자들은 써 놓은 기사들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3년 전, 서준의 출연 오보 기사가 가득했던 [배심원]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기자들과 이번 [블루문]의 새 멤버 영입 기사로 신뢰성을 잃은 기자들이 기사를 내기 전 확인 절차를 거치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확인 작업도 안 하고 올린 기자들도 있긴 했다.

다행히 그 내용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리내 예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들(미술, 음악, 연기할 것 없이)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고 코코아엔터에서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서준의 졸업 공연에 대한 소식들이 기사로 나오기 시작했고, 빠르게 올라가는 조회 수를 보며 기자들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코코아엔터에서 정보를 확인했다고 하니 댓글 반응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졸업 공연이면 이서준 배우가 벌써 고3이란 소리인데…… 이서준 배우는 어느 대학에 지원할까요?”

“한국예대겠지, 뭐.”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이 나올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한국예술대학교였다.

“고3, 재수생 할 것 없이 한국에 있는 예대 지망생들이 바라는 1순위 대학이잖아.”

다른 기자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 기자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실기도 볼까요? 이서준 배우는 매번 입시 실기 영상도 화제가 됐잖아요.”

“오. 그러네. 그게 있었지?”

“근데 이서준 정도면 특별전형 아니야? 한국예대 입시가 어떻게 되더라.”

다음 기사 소재를 찾은 기자들이 눈을 번뜩이며 한국예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10월에 실기가 있네.”

“발표는 11월이고. 수능 이야기랑 같이 넣어서 쓰면 괜찮겠다.”

“……헐.”

실기며 발표며 수능까지.

기사로 낼 소재들이 많아 희희낙락하는 기자들 사이로 나지막한 탄성이 들렸다. 기자들이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막내 기자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좋은 쪽으로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뭐야, 왜 그래?”

“뭐 잘못 올렸어? 오타야 금방 수정하면 되지.”

모두의 관심 속에 막내 기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국예대는 실기 영상 공개 안 한대요.”

“……뭐?!”

기자들의 경악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 * *

[배우 이서준, 차기작은 예고 졸업 공연!]

[SF 연극, 그리고 이서준의 순수 창작 작품!]

[올해는 어떤 연기를? 대학 입시를 앞둔 배우 이서준!]

[한국예대 실기 영상 공개 안 한다?]

미리내 예고, 식당.

점심시간이라서 학생들로 북적북적했다.

“연극 기사 나왔네.”

“학원을 통해서 알려졌나 보다.”

“그래도 줄거리나 캐릭터 설명 같은 스포일러는 없어서 다행인 듯.”

서준과 친구들이 인터넷에 뜬 기사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식판에 음식을 받았다. 오늘 메뉴는 부들부들한 수육으로 매콤한 겉절이와 상추까지 나와 쌈을 싸먹는 재미가 있었다.

“다들 서준이 창작 연극이라니까 되게 놀라는 것 같지 않아?”

“나도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 엄청 놀랐어.”

친구들과 함께 빈자리에 앉던 서준의 시야에 빠르게 점심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이 들어왔다. 다들 손에 종이를 쥐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슬쩍 보니 서준이 준비한 오디션용 대본 같았다.

아마 다들 점심시간을 아껴가면서 다음 주에 있을 오디션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바로 이틀 전, 수요일에 오디션 공고를 붙인 서준은 다음 주부터 오디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중학생 때처럼 월요일 화요일은 음악과와 미술과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연기과 오디션을 볼 계획이었다.

“오디션을 너무 일찍 잡았나?”

서준의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다들 중학생 때보다 실력도 늘었을 테고.”

“오디션용 대본도 네 연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랑 가장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 대사들을 가져온 거잖아. 그것도 유명한 작품들로만.”

“다들 한 번씩 봤을 테고, 책만 읽었을 때랑 달리 영상도 있으니까 연습하기도 편할걸.”

“그러면 다행이네.”

친구들의 말에 서준이 안심한 표정을 짓고는 수육 한 점과 배추 겉절이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잘 익은 수육은 하나도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담백한 수육과 매콤한 겉절이가 어우러져 아주 맛있었다.

“근데 한국예대가 실기를 공개 안 했구나. 난 왜 당연하게 공개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전성민의 말에 쌈을 한입 가득 넣고 우물우물거리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박시영이 웃으며 말했다.

“여울 예중이랑 미리내 예고가 계속 공개해서 그럴걸. 이번에 찾아보니까 다른 학교들은 실기를 공개 안 하더라.”

“맞아. 여울 예중이랑 미리내 예고가 특이한 거야. 같은 ATR 재단이라서 그런가 보더라.”

양주희의 설명에 다들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점심 식사를 이어나갔다.

* * *

빛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진짜 빛처럼 지나가서 처음 공고를 보고 눈을 감았다가 뜨니 오늘이 된 것 같았다.

오늘은 금요일.

오디션의 마지막 날이었고 오늘 오후에 오디션이 있는 연기과 2학년 1반, 박연지는 저절로 속이 아파지는 것 같았다.

2학기 개학하고 이제 겨우 열흘이 지났는데 오디션 공고에 오디션까지. 너무 폭풍 같은 일정이었다.

“또 기사 났어.”

“이서준 선배님 창작 작품이라서 그런가, 관심이 중학교 때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아냐. 중학교 때도 이 정도였어.”

여울 예중 출신 아이들과 다른 학교 출신 아이들이 인터넷에 뜬 기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일찌감치 오디션을 끝낸 아이들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중학교 때보다 더 무섭다고 할까, 진지하다고 해야 할까? 역시 1 대 1로 보는 이서준 선배님은 심장에 안 좋은 것 같아.”

“그냥 만났을 때는 좋을걸. 연기랑 관련되니까 그런 거지. 이번에도 미술과랑 음악과는 천사 같았대.”

“맞아. 친절하고 레슨도 해주시고. 이럴 때는 다른 과 학생이 되고 싶더라.”

들려오는 오디션 후기들에 어쩐지 속이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박연지는 다른 중학교 출신으로, 이서준 선배님의 오디션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더욱 떨리고 긴장됐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흘러, 오디션 시간이 되었다.

박연지는 후우, 한숨을 내쉬고 임시로 마련된 오디션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 안에는 연기과 1학년, 3학년이 함께 있었는데 캐릭터별로 나눈 것은 아닌 듯싶었다.

자리에 앉은 박연지가 눈을 데굴 굴렸다.

연극 [거울]에 출연했던 박시영 선배님과 강재한 선배님이 있었고,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는, 무려 칸 영화제에 다녀온 김한석도 있었다.

마치 마왕의 성을 지키는 사천왕 같은 느낌이랄까.

‘세 명이니까 삼천왕인가?’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같은 역은 아니지만, 대기실에 함께 있어도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위액이 분비되는 것처럼 속이 쓰렸다. 반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기도 했다.

‘집중. 집중하자.’

구깃구깃한 종이를 내려다보며 박연지는 그렇게 되뇌었다.

그렇게 분량이 많은 역할은 아니라 오디션용 대본도 짧았다. 몇 번이고 읽고 외우고 연기해서 이제는 꿈속에서도 연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학년 박연지.”

“……네!”

사천왕이었나 보다.

[거울]에 출연했던 양주희의 등장에 잠시 멈칫한 박연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주희가 씨익 웃으며 손짓했다. 박연지가 그 뒤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대기실 바로 옆 연기과 제2 연습실이 오디션 장소였다.

언제나 봤던 연습실 문이 오늘따라 무겁고 차갑고 무섭게 느껴졌다.

“긴장 풀고. 준비해 온 대로만 해도 괜찮아.”

“……네! 감사합니다.”

양주희의 부드러운 말에 박연지가 후읍, 숨을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

연습실 중앙에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 박연지, 아니, 활동하고 있는 모든 아역 배우의 롤모델일 슈퍼스타 이서준이 앉아 있었다.

조용히, 진지한 얼굴로 지원서들을 살피고 있던 서준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거기 표시된 자리에 서 주세요.”

“앗, 네!”

박연지는 떨리는 걸음으로 바닥에 표시된 곳에 섰다. 앞으로 마주 잡은 두 손이 조금 떨렸다. 그 떨림을 눈치챈 모양인지 서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편하게 해요. 자기소개 먼저 부탁할게요.”

서준의 배려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무섭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안도한 박연지가 가볍게 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2학년 1반 12번 박연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본격적인 연기를 보여줄 시간이 다가왔다.

남아있던 긴장까지 풀기 위해 숨을 흐읍 들이마신 박연지가 내쉬려던 찰나,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움찔한 박연지와 서준의 눈이 마주쳤다.

조금 전까지 부드러웠던 새까만 눈동자에 진지함이 서렸다. 표정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눈동자에서 풍기는 분위기에 저절로 긴장이 됐다.

‘차라리 감독님 앞에서 오디션 보는 게 나을 것 같더라.’

‘압박감 장난 아님.’

친구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박연지는 꿀꺽 침을 삼켰다. 하나부터 열까지 네 연기를 분석하고 해체해 주겠다, 라는 눈빛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 같았다.

‘중학생 때, 한석이가 그러더라.’

‘서준이 형 연기에 봐주는 거 없다고.’

사냥감을 앞에 둔 육식동물처럼, 번뜩이는 서준의 검은 눈동자는 정말로, 하나도 봐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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